몸에서 생기는 성질을 관찰하며 머물고,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며 머물며, 생기고 사라지는 성질을 함께 관찰하며 머문다. 또는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이 오직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 확립된다. 그는 의존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네 가지 몸 관찰이 끝났다.
Samud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ṁ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ṁ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ṁ viharati. ‘Atthi kāyo’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Cuddasa kāyānupassanā niṭṭhitā.
디가 니까야 DN 22 대념처경 (Mahāsatipaṭṭhānasutta)배경
무덤터의 마지막 비교 뒤 몸 관찰 후렴의 나머지가 온전히 제시됩니다. 몸의 생김·사라짐·두 변화가 함께 있는 성질을 보고,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만 세웁니다. 이어 의존하지 않음과 세상 무엇도 취하지 않음으로 태도를 한정하고, 몸에서 몸을 관찰한다는 결론을 냅니다. 마지막에는 호흡·자세·분명한 앎·몸 부분·네 요소와 아홉 무덤터 관찰을 합친 열네 몸 관찰의 종료가 선언됩니다. 몸 수행의 긴 갈래가 비집착에서 닫히고 다음에는 느낌 관찰이 시작됩니다.
묵상
열네 몸 관찰은 마지막에도 “필요한 만큼”과 “취하지 않는다”는 경계를 남깁니다. 무덤터 수행을 직접 시도하거나 끝까지 견딜 필요는 없어요. 긴 몸 관찰 가운데 안전하게 기억하고 싶은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