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의 생멸을 보고 취착 없이 관찰을 맺다

느낌의 생김·사라짐을 보고 느낌이 있다는 알아차림만 필요한 만큼 세우며 의존과 취착 없이 느낌 관찰을 맺음

느낌에서 생기는 성질을 관찰하며 머물고, 느낌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며 머물며, 느낌에서 생기고 사라지는 성질을 함께 관찰하며 머문다. 또는 “느낌이 있다”는 알아차림이 오직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 확립된다. 그는 의존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Samudayadhammānupassī vā vedanā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vedanā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vedanāsu viharati. ‘Atthi vedanā’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디가 니까야 DN 22 대념처경 (Mahā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안·밖·안팎의 범위 뒤 느낌 관찰은 시간의 변화와 태도의 경계로 마무리됩니다. 먼저 느낌에 생기는 성질, 사라지는 성질, 두 성질이 함께 있음을 관찰합니다. 이어 “느낌이 있다”는 알아차림은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만 확립된다고 한정됩니다. 느낌을 나의 고정된 상태로 키우거나 붙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 무엇이 있는지 놓치지 않을 정도의 앎입니다. 마지막의 의존하지 않음과 세상 무엇도 취하지 않음은 즐거운 느낌뿐 아니라 괴롭거나 중립적인 느낌에도 집착하지 않는 방향을 밝히고 느낌 관찰 전체를 닫습니다.

묵상

“느낌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필요한 만큼만 세운다는 말은 붙잡음과 무시 사이에 어떤 자리를 만들까요? 강한 느낌을 오래 바라보기가 버겁다면 멈춰도 괜찮아요. 지금 가능한 만큼의 알아차림은 어느 정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