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성냄·어리석음의 있음과 없음을 알다

마음 관찰을 묻고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이라는 세 대칭의 여섯 상태를 각각 그대로 앎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마음에서 마음을 어떻게 관찰하며 머무는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탐욕 있는 마음을 “탐욕 있는 마음”이라고 알고, 탐욕 없는 마음을 “탐욕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 있는 마음을 “성냄 있는 마음”이라고 알고, 성냄 없는 마음을 “성냄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 있는 마음”이라고 알고, 어리석음 없는 마음을 “어리석음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Idha, bhikkhave, bhikkhu sarāgaṁ vā cittaṁ ‘sarāg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ṁ vā cittaṁ ‘vītarāgaṁ cittan’ti pajānāti. Sadosaṁ vā cittaṁ ‘sados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dosaṁ vā cittaṁ ‘vītadosaṁ cittan’ti pajānāti. Samohaṁ vā cittaṁ ‘samoh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mohaṁ vā cittaṁ ‘vītamohaṁ cittan’ti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2 대념처경 (Mahā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느낌 관찰이 끝나자 세 번째 영역인 마음 관찰이 열립니다. 첫 물음에서 한 번, 답을 여는 문장에서 다시 한 번 수행자들을 불러 호격은 모두 두 번입니다. 첫 여섯 상태는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이라는 세 쌍입니다. 각 경우 마음을 먼저 밝히고 바로 같은 상태 이름으로 안다고 되받아, 긍정뿐 아니라 부정 상태도 독립된 문장으로 남깁니다. 여기서는 세 상태의 발생 원인이나 버리는 절차보다 현재 마음이 어느 쪽인지 식별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다음에는 위축·산란과 마음의 크기·높이·삼매·해탈로 구별이 이어집니다.

묵상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있음과 없음이라는 세 쌍에서 지금 가장 구별하기 쉬운 대비는 무엇인가요? 마음을 여섯 칸 중 하나로 확정하거나 곧바로 바꿀 필요는 없어요. 작은 표지 하나만 알아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