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있다는 최소한의 앎으로 마음 관찰을 닫다

마음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만 세우고 의존과 취착 없이 마음 관찰을 마무리함

또는 “마음이 있다”는 알아차림이 오직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 확립된다. 그는 의존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Atthi cittan’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디가 니까야 DN 22 대념처경 (Mahā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마음의 생김과 사라짐을 본 뒤, 마음 관찰의 마지막은 무엇을 얼마나 알아차릴지를 한정합니다. “마음이 있다”는 알아차림은 오직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만 확립됩니다. 탐욕 있는 마음부터 해탈하지 않은 마음까지 열여섯 상태를 “나”로 굳히거나 하나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명령이 아닙니다. 수행자는 어떤 견해나 대상에도 기대지 않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착하지 않으며 머뭅니다. 이 두 부정이 마음 관찰을 닫고, 다음 영역에서는 개별 상태를 넘어 조건과 관계를 살피는 현상 관찰이 시작됩니다.

묵상

“마음이 있다”는 앎을 필요한 만큼만 세우고 아무것도 취하지 않는다는 결말은 열여섯 상태와 어떤 거리를 만들까요? 마음을 설명하기가 벅차다면 쉬어도 괜찮아요. 지금 놓아둘 수 있는 이름 하나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