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악의가 있으면 “내 안에 악의가 있다”고 알고, 없으면 “내 안에 악의가 없다”고 안다.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의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고, 이미 생긴 악의가 어떻게 버려지는지 알며, 버려진 악의가 앞으로 어떻게 다시 생기지 않는지 안다.
Santaṁ vā ajjhattaṁ byāpādaṁ ‘atthi me ajjhattaṁ byāpādo’ti pajānāti, asantaṁ vā ajjhattaṁ byāpādaṁ ‘natthi me ajjhattaṁ byāpād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byāpād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byāpādassa pahānaṁ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byāpādassa āyatiṁ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2 대념처경 (Mahāsatipaṭṭhānasutta)배경
두 번째 장애인 byāpāda, 악의에도 바로 앞의 감각적 욕망과 같은 네 단계가 적용됩니다. 현재 안에 악의가 있음과 없음을 각각 알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의가 생겨나는 조건을 살핍니다. 이미 생긴 악의가 어떻게 버려지는지, 버려진 악의가 앞으로 다시 생기지 않는지도 차례로 압니다. 반복되는 형식은 욕망과 악의를 같은 감정으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장애에 동일한 인과 질문을 적용합니다. 이 대목에는 새 호격이 없고 앞에서 부른 수행자들을 향한 지침이 그대로 이어지며, 뒤에는 나머지 세 장애가 같은 구조로 계속됩니다.
묵상
악의가 있을 때 그 사람 자체로 굳히지 않고, 생기는 조건과 버려지는 조건을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떤 차이를 만들까요? 갈등을 자세히 떠올리는 일이 불편하다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지금 안전하게 볼 수 있는 전조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