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감각 영역을 안팎과 생멸로 살펴 마치다

여섯 감각 영역을 안·밖·안팎과 생멸로 관찰하고 필요한 알아차림만 세운 뒤 그 수행을 결론지음

“이렇게 안으로 현상들에서 현상들을 관찰하며 머물고, 밖으로 관찰하며 머물며, 안팎으로 관찰하며 머무느니라. 현상들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관찰하며 머물고,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며 머물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며 머무느니라. 또 ‘현상들이 있다’는 알아차림이 오직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 확립되느니라.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들지 않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여섯 안팎 감각 영역에서 현상들을 관찰하며 머무느니라.”

Iti ajjhatta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Atthi dhammā’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hasu ajjhattikabāhiresu āyatanesu.

디가 니까야 DN 22 대념처경 (Mahā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눈·귀·코·혀·몸·마음의 여섯 안쪽 영역과 각각의 바깥 대상을 살핀 뒤 공통 후렴이 이어집니다. 관찰 범위는 안·밖·안팎의 셋이고, 변화의 양상은 일어남·사라짐·일어남과 사라짐의 셋입니다. 감각의 만남에서 족쇄가 형성되는 과정을 자기 안에만 가두지 않고 넓게 보며, 어느 상태도 고정하지 않고 생멸을 관찰합니다. “현상들이 있다”는 알아차림도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만 확립되고, 의지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붙들지 않습니다. 끝에서 세존은 이 전 과정을 여섯 안팎 감각 영역에서 현상들을 관찰하는 방식이라고 결산하여 절을 닫습니다.

묵상

감각의 만남을 살피며 얻은 설명이나 판단을 다시 붙들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은 안팎과 생멸 가운데 한 관점만 조용히 남기고, “현상이 있다”는 앎에 필요한 만큼만 머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