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안으로 현상들에서 현상들을 관찰하며 머물고, 밖으로 관찰하며 머물며, 안팎으로 관찰하며 머무느니라. 현상들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관찰하며 머물고,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며 머물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며 머무느니라. 또 ‘현상들이 있다’는 알아차림이 오직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 확립되느니라.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들지 않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일곱 깨달음 요소에서 현상들을 관찰하며 머무느니라.”
Iti ajjhatta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Atthi dhammā’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ttasu bojjhaṅgesu.
디가 니까야 DN 22 대념처경 (Mahāsatipaṭṭhānasutta)배경
평온까지 일곱 요소의 존재·부재·발생·완성을 살핀 뒤 공통 후렴이 이어집니다. 수행자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라는 세 범위에서 관찰하고, 요소들이 일어나는 성질과 사라지는 성질, 두 성질 모두를 봅니다. 깨달음 요소는 길러야 할 유익한 성질이지만 그 역시 조건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현상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습니다. “현상들이 있다”는 알아차림은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만 확립되고, 그는 의지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붙들지 않습니다. 끝에서 세존은 이 전 과정을 일곱 깨달음 요소에서 현상들을 관찰하는 방식이라고 결산하여 절을 닫습니다.
묵상
유익한 알아차림이나 집중이 생겼을 때 그것을 곧 내 성취라고 붙들고 싶어진 적이 있나요? 그 요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함께 차분히 보며 필요한 만큼만 조용히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