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취하지 않고 현상 관찰을 맺다

현상들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앎에 필요한 만큼만 세우고 의지하거나 취하지 않으며 네 진리의 현상 관찰과 전체 현상 관찰을 마침

“또는 ‘현상들이 있다’고 그의 알아차림이 확립되되, 오직 앎과 알아차림에 필요한 만큼만 확립되느니라.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하지 않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네 성스러운 진리에서 현상들 가운데 현상들을 관찰하며 머무느니라.” 현상 관찰이 끝났다.

‘Atthi dhammā’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atūsu ariyasaccesu. Dhammānupassanā niṭṭhitā.

디가 니까야 DN 22 대념처경 (Mahā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현상 관찰의 후렴은 “현상들이 있다”는 최소한의 알아차림으로 수렴합니다. 그 확립은 앎과 알아차림에 필요한 만큼을 넘지 않으며, 수행자는 어떤 견해나 대상에도 의지하지 않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하지 않습니다. 세존은 수행자들을 부르며 이것이 네 성스러운 진리에서 현상들 가운데 현상들을 관찰하는 방식이라고 결론짓습니다. 마지막 종료 표지는 장애에서 네 진리까지 이어진 현상 관찰 전체가 여기서 끝났음을 알립니다.

묵상

경험을 설명하는 이름이 알아차림에 도움이 되다가 어느 순간 붙잡을 견해가 되는 때도 있나요? 지금 일어난 것에 “현상이 있다”고만 말해 본다면, 더 많은 판단을 보태지 않고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