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 수행에도 기대되는 두 결실

네 알아차림의 확립을 이와 같이 이레 동안 닦아도 바로 이 삶의 완전한 앎과 돌아오지 않음 가운데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힘

“수행자들이여, 누구든 이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을 이와 같이 이레 동안 닦는다면 두 결실 가운데 하나를 기대할 수 있느니라. 바로 이 삶에서 완전한 앎을 얻거나, 남은 집착이 있다면 돌아오지 않음에 이르느니라.”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ṁ bhāveyya sattāhaṁ, tassa dvinnaṁ phalānaṁ aññataraṁ phalaṁ pāṭikaṅkhaṁ diṭṭheva dhamme aññā;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ti.

디가 니까야 DN 22 대념처경 (Mahāsatipaṭṭhānasutta)

배경

보름도 제쳐 둔 뒤 기간의 내림은 이레에서 끝납니다. 조건은 처음부터 변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몸·느낌·마음·현상의 네 알아차림의 확립을 앞에서 설명한 방식으로 닦는 것입니다. 결실도 바로 이 삶에서 완전한 앎을 얻는 것과 남은 집착이 있을 때 돌아오지 않음에 이르는 것, 정확히 둘입니다. 일곱 해에서 시작한 기간의 반복은 가장 짧은 이레에도 같은 조건과 같은 두 결실을 온전히 되풀이하며 닫힙니다.

묵상

이레라는 짧은 기간이 격려보다 압박으로 느껴진다면 그 느낌도 그대로 둘 수 있어요. 결과를 서두르지 않고, 일주일 동안 한 가지 알아차림을 자주 기억하는 실험 정도로 읽는다면 무엇을 부담 없이 살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