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이 늙음과 죽음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아난다여, 그것이 어떻게 그러한지는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다여, 태어남이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어떤 식으로도 전혀 없다고 하자.
신이 신으로, 간답바가 간답바로, 야차가 야차로, 귀신이 귀신으로,
인간이 인간으로, 네발짐승이 네발짐승으로, 새가 새로, 파충류가 파충류로
태어나는 일이 전혀 없다고 하자.
이렇게 태어남이 전혀 없어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하겠는가?
‘Jātipaccayā jarāmaraṇan’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ṁ. Jāti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 devānaṁ vā devattāya, gandhabbānaṁ vā gandhabbattāya, yakkhānaṁ vā yakkhattāya, bhūtānaṁ vā bhūtattāya, manussānaṁ vā manussattāya, catuppadānaṁ vā catuppadattāya, pakkhīnaṁ vā pakkhittāya, sarīsapānaṁ vā sarīsapattāya, tesaṁ tesañca hi, ānanda, sattānaṁ tadattāya jāti nābhavissa. Sabbaso jātiyā asati jātinirodhā api nu kho jarāmaraṇaṁ paññāyethā”ti?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2장에서 세운 아홉 단계를 이제부터 하나씩 실제로 증명하는 절차가 시작됩니다. 이 절은 그 증명 방식의 본보기입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문제의 조건(여기서는 태어남)이 '완전히, 어디에도, 어떤 식으로도' 없다고 가정합니다. 그다음 그 조건이 없다면 결과(늙음과 죽음)도 있을 수 없는지를 묻습니다. 여덟 가지 존재 부류(천신부터 파충류까지)를 낱낱이 짚은 것은, 어떤 예외도 남기지 않고 '태어남이 없으면 늙음과 죽음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방식은 이후 4~19장의 모든 증명에서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묵상
어떤 결과가 반드시 그 원인이 있어야만 나타난다는 것을, 원인이 없는 경우를 상상해 봄으로써 확인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겪고 있는 일 하나를 골라, 그 일이 있기 전에 무엇이 먼저 있어야 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늙음과 죽음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태어남이니라.’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jarāmaraṇassa, yadidaṁ jāti.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앞 절에서 던진 물음에 대한 답과 결론입니다. 아난다는 '태어남이 전혀 없다면 늙음과 죽음도 있을 수 없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를 근거로 부처님은 태어남이 늙음과 죽음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네 개의 낱말을 나란히 쓴 것은 같은 말을 겹쳐 강조하는 이 경의 문체로, 뒤에 이어지는 모든 증명의 결론에서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이 짧은 문답과 선언이 한 벌을 이루어, 이후 열네 번 더 형태를 바꾸어 가며 반복됩니다.
묵상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방식으로 확인해 보니 오히려 마음이 놓이는 관계가 있나요? 아니면 여전히 복잡하게 느껴지는 관계가 있나요? 둘 다 있어도 괜찮아요. 지금은 그저 구별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존재가 태어남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욕망의 존재나 물질의 존재나 비물질의 존재나, 그 어떤 존재도 전혀 없다고 하자.
이렇게 존재가 전혀 없어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있다고 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태어남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존재이니라.’
‘Bhavapaccayā jātī’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Bhavo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 kāmabhavo vā rūpabhavo vā arūpabhavo vā, sabbaso bhave asati bhavanirodhā api nu kho jāti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jātiyā, yadidaṁ bhavo.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두 번째 증명으로, 앞 절과 같은 틀을 그대로 따릅니다. 되풀이되는 도입부('그것이 어떻게 그러한지 알아야 하느니라')는 '…'로 줄였습니다. 이번에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존재이며, 원문은 존재를 욕망의 존재(감각적 욕망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물질의 존재(물질은 있으나 감각적 욕망은 벗어난 세계)·비물질의 존재(물질조차 없는 세계) 셋으로 나눕니다. 이는 불교 우주관에서 존재 전체를 남김없이 아우르는 세 갈래이며, 이 셋 가운데 어디에도 존재가 없으면 태어남도 없다는 것이 이 절의 결론입니다.
묵상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존재감' 같은 것이 사실은 여러 조건이 모여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을 떠올리면,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드나요? 무리해서 답을 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한번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집착이 존재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욕망에 대한 집착이나 견해에 대한 집착이나 규범과 의식에 대한 집착이나
자아 이론에 대한 집착이나, 그 어떤 집착도 전혀 없다고 하자.
이렇게 집착이 전혀 없어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있다고 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존재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집착이니라.’
‘Upādānapaccayā bhav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Upādānañ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 kāmupādānaṁ vā diṭṭhupādānaṁ vā sīlabbatupādānaṁ vā attavādupādānaṁ vā, sabbaso upādāne asati upādānanirodhā api nu kho bhav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bhavassa, yadidaṁ upādānaṁ.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세 번째 증명입니다. 이번에는 취착을 넷으로 나눕니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견해에 대한 취착, 규범과 의식(형식적인 계율이나 의례)에 대한 취착, 그리고 자아 이론에 대한 취착입니다. 물질뿐 아니라 생각과 믿음과 자아관까지도 붙들어 매달리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네 갈래가 보여 줍니다. 넷 가운데 어느 것이든 붙드는 데서 존재(다시 태어나 이어지는 삶)가 비롯된다는 것이 이 절의 결론입니다.
묵상
생각이나 믿음, 또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자기 이해에 유난히 강하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 있나요? 그것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억지로 놓으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갈애가 집착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형색에 대한 갈애나 소리에 대한 갈애나 냄새에 대한 갈애나 맛에 대한 갈애나
감촉에 대한 갈애나 마음에 나타나는 것에 대한 갈애나, 그 어떤 갈애도 전혀 없다고 하자.
이렇게 갈애가 전혀 없어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이 있다고 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집착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갈애이니라.’
‘Taṇhāpaccayā upādānan’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Taṇhā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 rūpataṇhā saddataṇhā gandhataṇhā rasataṇhā phoṭṭhabbataṇhā dhammataṇhā, sabbaso taṇhāya asati taṇhānirodhā api nu kho upādānaṁ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upādānassa, yadidaṁ taṇhā.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네 번째 증명입니다. 갈애를 여섯 가지 감각 대상, 곧 눈에 보이는 형색·소리·냄새·맛·감촉·마음에 나타나는 것에 대한 갈애로 나눕니다. 이 여섯은 눈·귀·코·혀·몸·마음이라는 여섯 감각 문에 정확히 대응하며, 갈애가 어느 한 감각에 국한되지 않고 여섯 감각 모두를 통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여섯 갈래 가운데 어느 것이든 갈애가 없으면 취착도 없다는 것이 이 절의 결론입니다.
묵상
오늘 하루 동안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마음, 이 여섯 가운데 어느 문을 통해 가장 강한 끌림이나 밀어냄을 느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도 괜찮은 관찰이에요.
‘느낌이 갈애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눈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나 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나 코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나
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나 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나 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나,
어떤 느낌도 전혀 없다고 하자.
이렇게 느낌이 전혀 없어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있다고 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갈애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느낌이니라.’
‘Vedanāpaccayā taṇhā’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Vedanā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 cakkhusamphassajā vedanā sotasamphassajā vedanā ghānasamphassajā vedanā jivhāsamphassajā vedanā kāyasamphassajā vedanā manosamphassajā vedanā, sabbaso vedanāya asati vedanānirodhā api nu kho taṇhā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taṇhāya, yadidaṁ vedanā.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다섯 번째이자 이 앞부분 사슬의 마지막 증명입니다. 느낌을 여섯 감각의 접촉에서 생긴 여섯 가지로 나누어, 앞 절의 갈애와 정확히 같은 틀로 다시 짚습니다. 갈애의 뿌리가 느낌이고, 그 느낌은 어느 감각 문에서든 접촉을 거쳐야 비로소 생긴다는 것이 이로써 확정됩니다. 이 지점에서 태어남부터 느낌까지 다섯 단계의 증명이 모두 끝나고, 경은 9장에서 느낌 이후의 갈래로 화제를 넓혀 갑니다.
묵상
기분 좋은 느낌이든 불편한 느낌이든, 그 느낌이 몸의 어느 감각을 거쳐 들어왔는지 짚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어떤 감각이 함께 작동하고 있는지 살짝 알아차려 보아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