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에서 다툼까지, 또 하나의 갈래

느낌에서 갈애를 거쳐 다툼과 폭력에 이르는 또 다른 사슬을 세우고 증명합니다.

이렇게, 아난다여,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구함이, 구함을 조건으로 이득이, 이득을 조건으로 평가가, 평가를 조건으로 욕망과 탐욕이, 욕망과 탐욕을 조건으로 집착이, 집착을 조건으로 소유가, 소유를 조건으로 인색이, 인색을 조건으로 지킴이 있느니라.

Iti kho panetaṁ, ānanda, vedanaṁ paṭicca taṇhā, taṇhaṁ paṭicca pariyesanā, pariyesanaṁ paṭicca lābho, lābhaṁ paṭicca vinicchayo, vinicchayaṁ paṭicca chandarāgo, chandarāgaṁ paṭicca ajjhosānaṁ, ajjhosānaṁ paṭicca pariggaho, pariggahaṁ paṭicca macchariyaṁ, macchariyaṁ paṭicca ārakkho.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5~8장에서 느낌까지 사슬을 증명한 부처님이, 이제 느낌에서 출발하는 또 다른 갈래를 새로 펼치십니다. 느낌에서 갈애가 일어나는 것까지는 앞서와 같지만, 그 뒤로는 취착으로 곧장 가지 않고 아홉 단계를 더 거칩니다. 갈애가 구함(찾아 나섬)을 낳고, 구함이 이득(손에 넣음)을, 이득이 평가(어떻게 쓸지 따짐)를, 평가가 욕망과 탐욕을, 그것이 집착을, 집착이 소유를, 소유가 인색을, 인색이 지킴(지키려는 방비)을 낳는 과정입니다. 이는 마음속의 갈애가 실제 세상에서 재물과 소유를 둘러싼 행동으로 번져 가는 경로를 보여 줍니다.

묵상

작은 바람 하나가 어느새 지키고 방어해야 할 무언가로 불어나 있던 경험이 있나요? 그 과정을 한 단계씩 되짚어 보면, 어디쯤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멈출 수 있었을지 가만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지킴으로 말미암아 몽둥이를 드는 것과 칼을 드는 것과 다툼과 언쟁과 논쟁과 서로 삿대질함과 이간질과 거짓말, 이렇게 여러 나쁘고 유익하지 않은 것들이 생겨나느니라.

Ārakkhādhikaraṇaṁ 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ṁtuvaṁpesuññamusāvādā aneke pāpakā akusalā dhammā sambhavanti.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앞 절에서 마지막에 이른 '지킴'이 낳는 결과를 밝히는 대목입니다. 무언가를 지키려는 마음은 몽둥이와 칼을 드는 폭력에서부터 다툼·언쟁·논쟁 같은 말싸움, 서로 삿대질하며 대드는 것, 이간질, 거짓말까지 여덟 가지 나쁜 행위로 번져 갑니다. 사소한 느낌 하나에서 시작된 사슬이 결국 사회적 갈등과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며, 이는 개인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연기가 어떻게 사람 사이의 다툼으로 확장되는지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이어지는 10~18장에서는 이 아홉 단계를 거꾸로 하나씩 증명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지키려는 마음이 앞세워질 때, 말투나 행동이 평소보다 날카로워진 경험이 있나요? 그때 정말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지금 뚜렷하게 잡히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킴으로 말미암아 몽둥이를 드는 것과 칼을 드는 것과 다툼과 언쟁과 논쟁과 서로 삿대질함과 이간질과 거짓말, 이런 여러 나쁘고 유익하지 않은 것들이 생겨난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지킴이 전혀 없어 지킴이 소멸하면, 이런 여러 나쁘고 유익하지 않은 것들이 생겨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이런 여러 나쁘고 유익하지 않은 것들이 생겨나는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지킴이니라.’

‘Ārakkhādhikaraṇaṁ 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ṁtuvaṁpesuññamusāvādā aneke pāpakā akusalā dhammā sambhavantī’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sabbaso ārakkhe asati ārakkhanirodhā api nu kho 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ṁtuvaṁpesuññamusāvādā aneke pāpakā akusalā dhammā sambhaveyyun”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ṁtuvaṁpesuññamusāvādānaṁ anekesaṁ pāpakān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sambhavāya yadidaṁ ārakkho.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9장에서 편 아홉 단계를 이제부터 거꾸로 하나씩 증명합니다. 이 절은 그 첫 번째로, 지킴이 없으면 몽둥이와 칼을 드는 것에서 거짓말까지 여덟 가지 나쁜 일도 없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여기서부터 18장까지는 4~8장과 똑같은 틀('그것이 어떻게 그러한지 알아야 하느니라'로 시작해 '없다고 하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결론으로 끝맺는 틀)이 아홉 번 되풀이되므로, 각 절에서는 반복되는 도입부를 '…'로 줄이고 그 절만의 고유한 내용만 옮겼습니다.

묵상

내가 무언가를 지키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면 어떤 다툼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을지 상상해 볼 수 있나요? 실제로 내려놓을 수 있는지는 별개로 하고, 그저 상상만 해 보는 것으로 충분해요.

‘인색이 지킴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인색이 전혀 없어 인색이 소멸하면, 지킴이 있다고 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지킴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인색이니라.’

‘Macchariyaṁ paṭicca ārakkh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sabbaso macchariye asati macchariyanirodhā api nu kho ārakkh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ārakkhassa, yadidaṁ macchariyaṁ.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두 번째 증명입니다. 무언가를 지키려는 마음보다 먼저, 그것을 남과 나누고 싶지 않은 인색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입니다. 인색이 없다면 애초에 지킬 이유도 없다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인과관계입니다. 이 단계는 나눔과 지킴이 정확히 반대 방향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앞서 9~10장에서 지킴이 다툼과 폭력으로 번진다고 했으니, 그 뿌리를 한 걸음 더 거슬러 인색까지 짚어 낸 셈입니다.

묵상

무언가를 나누기 아까워하는 마음이 들 때, 그 뒤에 곧바로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따라오는 것을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그 두 마음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짧게 느껴지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소유가 인색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소유가 전혀 없어 소유가 소멸하면, 인색이 있다고 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인색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소유이니라.’

‘Pariggahaṁ paṭicca macchariyan’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sabbaso pariggahe asati pariggahanirodhā api nu kho macchariyaṁ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macchariyassa, yadidaṁ pariggaho.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세 번째 증명입니다. 인색한 마음보다 먼저, '이것은 내 것이다'라는 소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입니다.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았다면 인색해질 대상 자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유가 인색을 낳고 인색이 지킴을 낳는 이 두 단계는, 물건 하나를 손에 넣는 순간부터 이미 그것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의 흐름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직 다섯 단계가 더 남아 있지만, 사슬은 이미 소유라는 눈에 보이는 자리까지 뚜렷하게 내려와 있습니다.

묵상

'내 것'이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그전에는 없던 어떤 무게가 함께 따라오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그 무게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지금 뚜렷하게 잡히지 않아도 괜찮아요.

‘집착이 소유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집착이 전혀 없어 집착이 소멸하면, 소유가 있다고 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소유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집착이니라.’

‘Ajjhosānaṁ paṭicca pariggah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sabbaso ajjhosāne asati ajjhosānanirodhā api nu kho pariggah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pariggahassa—yadidaṁ ajjhosānaṁ.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네 번째 증명입니다. 소유하기에 앞서 먼저 그것에 들러붙는 집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입니다. 집착 없이는 '내 것'으로 삼는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집착은 아직 소유로 굳어지기 전, 마음이 대상에 달라붙기 시작하는 첫 단계에 해당합니다. 앞서 4장의 증명 방식을 그대로 빌려, 이번에는 집착이라는 마음의 움직임 하나에 소유라는 사회적 관계 전체가 달려 있음을 보입니다.

묵상

아직 내 것이라 부르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어떤 대상에 은근히 달라붙어 있음을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그 대상이 물건이었는지,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생각이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욕망과 탐욕이 집착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욕망과 탐욕이 전혀 없어 욕망과 탐욕이 소멸하면, 집착이 있다고 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집착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욕망과 탐욕이니라.’

‘Chandarāgaṁ paṭicca ajjhosānan’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sabbaso chandarāge asati chandarāganirodhā api nu kho ajjhosānaṁ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ajjhosānassa, yadidaṁ chandarāgo.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다섯 번째 증명입니다. 집착보다 먼저 욕망과 탐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입니다. 원하는 마음과 탐하는 마음이 먼저 일지 않으면, 대상에 달라붙는 집착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단계는 뒤에 이어질 평가(어떻게 쓸지 따지는 마음)가 실제로 욕망과 탐욕으로 굳어지는 지점을 보여 줍니다. 사슬의 한가운데 자리한 이 고리는, 마음이 대상을 재는 데서 원하고 탐하는 데로 넘어가는 순간을 짚어 냅니다.

묵상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이 곧바로 집착으로 굳어지기 전 짧은 틈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 본 적이 있나요? 그 틈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요. 지금 뚜렷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평가가 욕망과 탐욕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평가가 전혀 없어 평가가 소멸하면, 욕망과 탐욕이 있다고 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욕망과 탐욕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평가이니라.’

‘Vinicchayaṁ paṭicca chandarāg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sabbaso vinicchaye asati vinicchayanirodhā api nu kho chandarāg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chandarāgassa, yadidaṁ vinicchayo.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여섯 번째 증명입니다. 욕망과 탐욕보다 먼저 평가, 곧 손에 넣은 것을 어떻게 쓸지 따지고 재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입니다. 이득을 얻은 뒤 그것을 저울질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강한 욕망과 탐욕이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재는 마음 자체는 아직 중립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탐욕의 씨앗이 움튼다는 것을 이 절이 짚어 줍니다. 언뜻 계산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이 단계가 실은 탐욕이 자라나는 온상이라는 것이 이 증명의 요점입니다.

묵상

무언가를 이리저리 따져 보는 동안, 어느새 그것을 더 간절히 원하게 된 경험이 있나요? 따지는 행위 자체가 마음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갔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지금 뚜렷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득이 평가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이득이 전혀 없어 이득이 소멸하면, 평가가 있다고 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평가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이득이니라.’

‘Lābhaṁ paṭicca vinicchay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sabbaso lābhe asati lābhanirodhā api nu kho vinicchay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vinicchayassa, yadidaṁ lābho.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일곱 번째 증명입니다. 평가보다 먼저 이득, 곧 무언가를 실제로 손에 넣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입니다. 아직 손에 넣지 않은 것을 두고는 어떻게 쓸지 따질 것도 없다는 단순한 인과입니다. 구함이 이득으로, 이득이 평가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마음이 대상에 다가가는 순서를 하나씩 짚어 보여 줍니다. 아홉 단계 가운데 뒤에서 두 번째 자리로, 이제 사슬은 그 출발점인 구함 하나만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묵상

바라던 것을 손에 넣자마자 곧바로 '이걸로 무엇을 할까' 하고 따지기 시작한 경험이 있나요? 손에 넣기 전과 후, 마음이 대상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구함이 이득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구함이 전혀 없어 구함이 소멸하면, 이득이 있다고 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이득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구함이니라.’

‘Pariyesanaṁ paṭicca lābh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sabbaso pariyesanāya asati pariyesanānirodhā api nu kho lābh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lābhassa, yadidaṁ pariyesanā.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여덟 번째 증명입니다. 이득보다 먼저 구함, 곧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입니다. 찾아 나서지 않으면 손에 넣는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절부터는 사슬이 갈애 가까이까지 다시 돌아와, 다음 절에서 이 아홉 단계 전체가 갈애 하나로 수렴하는 지점에 이릅니다. 지킴에서 시작해 거슬러 온 여덟 번의 증명이 이제 이 사슬의 첫머리, 곧 갈애 바로 앞자리에 다다랐습니다.

묵상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 전, 그 행동을 밀어붙인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나요? 그 마음이 지금도 남아 있는지, 이미 지나갔는지 가만히 살펴보아도 좋아요. 뚜렷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갈애가 구함의 조건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느니라. … 갈애가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어떤 식으로도 전혀 없다고 하자.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나 존재에 대한 갈애나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나, 어떤 갈애도 전혀 없다고 하자. 이렇게 갈애가 전혀 없어 갈애가 소멸하면, 구함이 있다고 하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구함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일어남이고 조건이니, 곧 갈애이니라.’

‘Taṇhaṁ paṭicca pariyesanā’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 Taṇhā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sabbaso taṇhāya asati taṇhānirodhā api nu kho pariyesanā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pariyesanāya, yadidaṁ taṇhā.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9~17장에 걸친 아홉 단계 증명의 마지막 자리입니다. 구함보다 먼저 갈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이는데, 이번에는 갈애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계속 있고자 하는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사라지고자 하는 갈애) 셋으로 나눕니다. 이 세 갈래는 7장에서 여섯 감각 대상으로 나눈 갈애와는 다른 방식의 분류로, 갈애가 무엇을 향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방향(가지려는 쪽과 없어지려는 쪽)을 향하는지에 주목합니다. 이로써 갈애에서 구함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고리가 확인됩니다.

묵상

무언가를 더 가지고 싶은 마음과, 반대로 지금 이 상황이 아예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마음, 둘 다 갈애의 한 모습이라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나요? 최근에 둘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마음을 품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이렇게, 아난다여, 이 두 가지 현상은 느낌이라는 한 지점에서 만나 합쳐지느니라.

Iti kho, ānanda, ime dve dhammā dvayena vedanāya ekasamosaraṇā bhavanti.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9장부터 이어진 '지킴에서 구함까지' 아홉 단계 증명과, 4~8장의 '늙음과 죽음에서 갈애까지' 다섯 단계 증명이 여기서 하나로 합쳐집니다. 두 사슬 모두 결국 갈애를 거쳐 느낌이라는 같은 지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현상'이란 갈애에서 시작해 취착·존재·태어남·늙음과 죽음으로 가는 갈래와, 갈애에서 시작해 구함·이득·평가·욕망과 탐욕·집착·소유·인색·지킴·다툼으로 가는 갈래를 가리킵니다. 겉으로는 전혀 다른 두 방향(하나는 다시 태어남으로, 하나는 사회적 갈등으로)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같은 느낌이라는 것이 이 한 문장의 요점입니다. 다음 19장부터는 이 느낌 자체의 조건을 다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묵상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두 가지 어려움이 사실은 같은 뿌리, 이를테면 같은 느낌이나 같은 상황에서 함께 자라난 것임을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지금 겪는 어려움 두 가지를 떠올려, 혹시 같은 자리에서 갈라져 나온 것은 아닌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