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다여, 자아를 규정하는 이들은 어떻게 규정하는가?
아난다여, 물질을 지니고 유한한 것으로 자아를 규정하는 이는
‘나의 자아는 물질을 지니고 유한하다’라고 규정하느니라.
혹은 물질을 지니고 무한한 것으로 자아를 규정하는 이는
‘나의 자아는 물질을 지니고 무한하다’라고 규정하느니라.
2. Attapaññatti Kittāvatā ca, ānanda,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Rūpiṁ vā hi, ānanda,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rūpī me paritto attā’ti. Rūpiṁ vā hi, ānanda,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rūpī me ananto attā’ti.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경의 화제가 연기에서 자아에 대한 견해로 넘어가는 대목입니다. 지금까지 무엇이 무엇을 조건 짓는지를 다뤘다면, 이제부터는 사람들이 '자아'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유형별로 정리합니다. 자아를 규정하는 방식은 물질을 지녔는지 아닌지, 그리고 유한한지 무한한지, 이 두 기준을 조합해 넷으로 나뉩니다. 이 절은 그 가운데 첫 두 가지, 곧 물질을 지니고 유한한 자아, 물질을 지니고 무한한 자아를 보입니다.
묵상
'나'라는 것을 몸이 있는 것으로, 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떠올려 본 적이 있나요? 지금 떠오르는 나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이 물질적인지 무한한지 한번 가늠해 볼 수 있을까요?
혹은 물질이 없이 유한한 것으로 자아를 규정하는 이는
‘나의 자아는 물질이 없이 유한하다’라고 규정하느니라.
혹은 물질이 없이 무한한 것으로 자아를 규정하는 이는
‘나의 자아는 물질이 없이 무한하다’라고 규정하느니라.
Arūpiṁ vā hi, ānanda,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arūpī me paritto attā’ti. Arūpiṁ vā hi, ānanda,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arūpī me ananto attā’ti.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앞 절에 이어 나머지 두 유형을 마저 보입니다. 물질이 없이 유한한 자아, 물질이 없이 무한한 자아입니다. 이렇게 물질의 있고 없음과 유한·무한이라는 두 기준을 엇갈려 짜면 자아를 규정하는 방식이 모두 네 가지로 정리됩니다. 이 넷은 이어지는 24장에서 하나씩 분석되며, 결국 이 네 가지 모두가 '자아관이 잠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로 판정됩니다. 물질의 있고 없음이라는 기준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전제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묵상
몸이라는 형태 없이도 '나'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그런 상상이 얼마나 뚜렷하게, 혹은 얼마나 흐릿하게 그려지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지금 잘 그려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난다여, 그 가운데 물질을 지니고 유한한 것으로 자아를 규정하는 이가 있느니라.
그는 지금 그렇게 규정하거나, 미래에 그렇게 되리라고 규정하거나,
또는 ‘비록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되도록 만들겠다’라고 생각하느니라.
아난다여, 이러할 때 ‘물질을 지니고 유한하다는 자아관이 잠재해 있다’라고 말할 만하니라.
Tatrānanda, yo so 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Etarahi vā so 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rūpiṁ parittattānudiṭṭhi a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23장에서 나열한 네 유형을 이제 하나씩 분석합니다. 이 절은 그 첫 번째 본보기로, 물질을 지니고 유한한 자아를 규정하는 이가 실제로 어떤 세 가지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지를 보입니다. 지금 그러하다고 여기거나, 미래에 그렇게 되리라 여기거나, 아직은 아니지만 그렇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 세 방식 가운데 어느 것이든 그 사람 안에는 '이런 자아관'이 잠재해 있다고 판정됩니다. 이 분석 틀은 뒤의 세 유형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묵상
지금의 나에 대해서든, 앞으로 되고 싶은 나에 대해서든, '이런 내가 진짜 나다'라고 마음속에 그려 둔 모습이 있나요? 그 모습을 그저 알아차려 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바꾸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물질을 지니고 무한한 것으로 자아를 규정하는 이도 마찬가지이니,
지금이든 미래든 그렇게 규정하거나 그렇게 되도록 만들겠다고 생각하느니라.
이러할 때 ‘물질을 지니고 무한하다는 자아관이 잠재해 있다’라고 말할 만하니라.
물질이 없이 유한한 것으로 자아를 규정하는 이도 마찬가지이니,
이러할 때 ‘물질이 없이 유한하다는 자아관이 잠재해 있다’라고 말할 만하니라.
Tatrānanda, yo so 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Etarahi vā so 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rūpiṁ anantattānudiṭṭhi a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Tatrānanda, yo so a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Etarahi vā so a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a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arūpiṁ parittattānudiṭṭhi a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형은 첫 번째와 완전히 같은 틀로 분석되므로, 원문도 '마찬가지다'라는 식으로 되풀이 구조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여기서는 그 반복을 압축해 옮기되, 물질을 지니고 무한한 자아, 물질이 없이 유한한 자아라는 두 유형을 빠짐없이 짚었습니다. 셋 다 같은 결론, 곧 지금이든 미래든 그렇게 여기거나 그렇게 만들려는 마음 안에 해당 자아관이 잠재해 있다는 판정으로 끝납니다.
묵상
'무한하다'거나 '형태가 없다'는 식으로, 좀 더 추상적으로 그려 본 나의 모습이 있었나요? 구체적인 모습이든 추상적인 모습이든, 둘 다 마음이 그려 낸 그림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것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아난다여, 그 가운데 물질이 없이 무한한 것으로 자아를 규정하는 이가 있느니라.
그는 지금 그렇게 규정하거나, 미래에 그렇게 되리라고 규정하거나,
또는 ‘비록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되도록 만들겠다’라고 생각하느니라.
아난다여, 이러할 때 ‘물질이 없이 무한하다는 자아관이 잠재해 있다’라고 말할 만하니라.
아난다여, 이만큼이 자아를 규정하는 이들이 규정하는 방식이니라.
Tatrānanda, yo so a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Etarahi vā so a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a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arūpiṁ anantattānudiṭṭhi a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Ettāvatā kho, ānanda,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네 번째 유형을 마저 분석하고, 23~24장 전체를 마무리하는 요약을 덧붙입니다. 물질이 없이 무한한 자아를 규정하는 이 역시 앞의 세 유형과 똑같은 방식으로 분석되어, 그 안에 해당 자아관이 잠재해 있다고 판정됩니다. 마지막 문장 '이만큼이 규정하는 방식이다'는 네 유형이 자아를 규정하는 모든 경우를 남김없이 아우른다는 것을 못 박습니다. 다음 25~26장에서는 이 네 유형을 정확히 뒤집어, 자아를 규정하지 않는 경우를 다룹니다.
묵상
물질도 없고 한계도 없는, 가장 추상적인 형태로 '나'를 그려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그런 그림을 그려 보는 것 자체가 지금 어떤 느낌을 주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잘 안 그려져도 괜찮아요.
아난다여, 자아를 규정하지 않는 이들은 어떻게 규정하지 않는가?
아난다여, 물질을 지니고 유한한 것으로도, 물질을 지니고 무한한 것으로도,
물질이 없이 유한한 것으로도, 물질이 없이 무한한 것으로도,
자아를 규정하지 않느니라.
3. Naattapaññatti Kittāvatā ca, ānanda,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Rūpiṁ vā hi, ānanda,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rūpī me paritto attā’ti. Rūpiṁ vā hi, ānanda,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rūpī me ananto attā’ti. Arūpiṁ vā hi, ānanda,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arūpī me paritto attā’ti. Arūpiṁ vā hi, ānanda,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arūpī me ananto attā’ti.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23장에서 나열한 네 유형을 그대로 가져와 정확히 반대로 뒤집는 대목입니다. 원문은 23장과 마찬가지로 '물질을 지니고 유한한 것으로 자아를 규정하지 않는 이는 규정하지 않나니 나의 자아는 물질을 지니고 유한하다고 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네 번 되풀이하는데, 여기서는 네 유형을 한 문장에 나란히 놓아 옮겼습니다.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아를 이 네 틀 가운데 어느 것으로도 고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26장에서 이 부정 역시 24장과 같은 방식으로 분석됩니다.
묵상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딱 잘라 규정하지 않고 지내 본 순간이 있나요? 그런 순간이 불안하게 느껴졌는지, 오히려 홀가분하게 느껴졌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둘 다였을 수도 있어요.
아난다여, 그 가운데 물질을 지니고 유한한 것으로도 무한한 것으로도
자아를 규정하지 않는 이가 있느니라. 그는 지금도 미래도 그렇게 규정하지 않으며,
‘그렇게 되도록 만들겠다’라고도 생각하지 않느니라.
아난다여, 이러할 때 물질을 지니고 유한하다는 자아관도 무한하다는 자아관도
잠재해 있지 않다고 말할 만하니라.
Tatrānanda, yo so 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Etarahi vā so 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n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rūpiṁ parittattānudiṭṭhi nā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Tatrānanda, yo so 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Etarahi vā so 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n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rūpiṁ anantattānudiṭṭhi nā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24장에서 자아를 규정하는 이들을 분석한 것과 똑같은 틀로, 이번에는 규정하지 않는 이들을 분석합니다. 물질을 지니고 유한한 자아, 물질을 지니고 무한한 자아, 이 둘 다에 대해 지금도 미래도 그렇게 여기지 않고, 그렇게 만들려는 마음도 없다면, 그 자아관이 아예 잠재해 있지 않다고 판정됩니다. 24장의 판정과 정확히 대구를 이루는 이 판정은, 자아관이 있고 없고가 결국 마음이 무엇을 향해 움직이는지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생각도, '앞으로 이런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도 없이 그냥 있어 본 순간이 있다면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런 순간이 낯설게 느껴져도 괜찮아요. 흔치 않은 순간이니까요.
물질이 없이 유한한 것으로도 무한한 것으로도 자아를 규정하지 않는 이도 마찬가지이니,
이러할 때 그런 자아관도 잠재해 있지 않다고 말할 만하니라.
아난다여, 이만큼이 자아를 규정하지 않는 이들이 규정하지 않는 방식이니라.
Tatrānanda, yo so a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Etarahi vā so a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a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n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arūpiṁ parittattānudiṭṭhi nā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Tatrānanda, yo so a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Etarahi vā so a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a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n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arūpiṁ anantattānudiṭṭhi nā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Ettāvatā kho, ānanda,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나머지 두 유형, 곧 물질이 없이 유한한 자아와 물질이 없이 무한한 자아에 대해서도 같은 판정을 내리며 25~26장 전체를 마무리합니다. 결국 물질의 있고 없음, 유한과 무한을 조합한 네 가지 자아관 가운데 어느 것도 붙들지 않는다면, 그 어떤 자아관도 잠재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나는 모른다'는 무지가 아니라, 넷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전제 자체에서 벗어난 태도를 가리킵니다. 다음 27장부터는 자아를 '규정'하는 문제에서 자아를 느낌과 겹쳐 '여기는' 문제로 초점이 옮겨 갑니다.
묵상
넷 중 하나를 반드시 골라야 한다고 여겨 온 물음이 있다면, 애초에 그 넷 말고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나요? 답을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물음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