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가지 벗어남과 마음·지혜로 함께 풀려남

수행자가 실제로 드나드는 여덟 단계의 해탈과, 그 정점인 양쪽으로 해탈함을 밝힙니다.

아난다여, 여덟 해탈이 있느니라. 무엇이 여덟인가? 물질을 지닌 채 물질을 보는 것이 첫째 해탈이고,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며 밖의 물질을 보는 것이 둘째이니라. 오직 아름다움에 마음을 둔 것이 셋째 해탈이니라.

6. Aṭṭhavimokkha Aṭṭha kho ime, ānanda, vimokkhā. Katame aṭṭha? Rūpī rūpāni passati ayaṁ paṭhamo vimokkho. Ajjhattaṁ arūpasaññī bahiddhā rūpāni passati, ayaṁ dutiyo vimokkho. Subhanteva adhimutto hoti, ayaṁ tatiyo vimokkho.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의식이 머무는 자리에 대한 논의에 이어, 이제 수행자가 실제로 닦아 들어가는 '여덟 해탈'을 다룹니다. 앞서 33~34장이 중생이 태어날 수 있는 자리를 그저 살펴보는 것이었다면, 이 여덟 해탈은 수행자가 스스로 단계를 밟아 들어가는 실제 명상의 과정입니다. 처음 세 단계는 물질(형상)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로 구분됩니다. 물질을 지니고 물질을 보는 단계, 안으로는 물질에 대한 인식 없이 밖의 물질만 보는 단계, 그리고 아름다움 자체에 마음을 오롯이 두는 단계입니다.

묵상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안에서 보는지 밖에서 보는지에 따라 인상이 달라진 경험이 있나요? 지금 당장 답하지 않아도, 그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만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어서고 부딪힘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다양한 인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허공은 끝이 없다’며 무한한 허공의 영역에 들어 머무는 것이 넷째 해탈이니라. 이를 넘어 ‘의식은 끝이 없다’며 무한한 의식의 영역에 들어 머무는 것이 다섯째이니라.

Sabbaso rūpasaññānaṁ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ṁ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ṁ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catuttho vimokkho.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ṁ samatikkamma ‘anantaṁ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pañcamo vimokkho.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물질을 다루던 앞의 세 단계를 지나, 이제부터는 형상 없는 경지로 들어갑니다. 넷째 해탈은 물질에 대한 인식 자체를 완전히 벗어나 무한한 허공에 드는 것이고, 다섯째는 그 허공의 인식마저 넘어 무한한 의식에 드는 것입니다. 이는 33장에서 다룬 의식이 머무는 다섯째·여섯째 자리와 같은 경지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태어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수행자가 스스로 들어가는 선정의 단계로 다루어집니다.

묵상

생각이 하나씩 잦아들며 점점 넓어지기만 하는 상태를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그 상상이 흐릿해도 괜찮아요, 그런 방향이 있다는 것만 느껴 보아도 좋아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떠올려 보아도 됩니다.

무한한 의식의 영역을 넘어 ‘아무것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들어 머무는 것이 여섯째이고,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을 넘어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에 들어 머무는 것이 일곱째이니라.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ṁ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chaṭṭho vimokkho.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ṁ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sattamo vimokkho.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여섯째와 일곱째 해탈로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과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까지 나아갑니다. 한 단계씩 더 미세하고 고요한 경지로 나아가는 이 흐름은, 앞서 33장에서 다룬 자리들을 수행자가 실제로 밟아 올라가는 순서와 정확히 겹칩니다. 다음 절에서 마지막 여덟째 해탈, 곧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 이르러 이 흐름이 완결됩니다. 인식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말하기 어려운 경계까지 다가선 자리이기도 합니다.

묵상

한 단계씩 더 고요해지는 과정을 몸으로 겪어 본 적이 있나요? 명상이 아니어도, 마음이 점점 가라앉던 순간이 있었다면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지금 뚜렷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천천히 떠올려 보세요.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을 넘어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 들어 머무는 것이 여덟째 해탈이니라. 아난다여, 이것이 여덟 해탈이니라.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aṭṭhamo vimokkho. Ime kho, ānanda, aṭṭha vimokkhā.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여덟 단계에 걸친 해탈의 마지막 자리, 곧 인식과 느낌 자체가 완전히 소멸하는 경지에 이르며 이 목록이 마무리됩니다. 물질을 보는 단계에서 시작해 형상 없는 영역들을 차례로 넘어, 끝내 인식과 느낌마저 없는 자리에 이르는 이 여덟 단계는 이 경뿐 아니라 여러 경에서 되풀이되는 잘 알려진 정형구입니다. 다음 36장에서는 이 여덟 해탈을 실제로 자유자재하게 넘나드는 경지가 설명됩니다.

묵상

생각도 느낌도 완전히 멈춘 상태를 상상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두렵게 느껴지든 평온하게 느껴지든, 둘 다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지금 뚜렷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천천히 떠올려 보세요.

아난다여, 수행자가 이 여덟 해탈을 순서대로도 들고 거꾸로도 들고 순서대로와 거꾸로도 들며,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들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며,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직접 앎으로 실현하여 갖추어 머물면, 이를 일러 양쪽으로 해탈한 수행자라 하느니라. 아난다여, 이 양쪽으로 해탈함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양쪽으로 해탈함은 없느니라.

Yato kho, ānanda, bhikkhu ime aṭṭha vimokkhe anulomampi samāpajjati, paṭilomampi samāpajjati, anulomapaṭilomampi samāpajjati, yatthicchakaṁ yadicchakaṁ yāvaticchakaṁ samāpajjatipi vuṭṭhātipi. Āsavānañca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vuccatānanda, bhikkhu ubhatobhāgavimutto. Imāya ca, ānanda, ubhatobhāgavimuttiyā aññā ubhatobhāgavimutti uttaritarā vā paṇītatarā vā natthī”ti.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경 전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가르침입니다. 여덟 해탈을 순서대로도 거꾸로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게 되고, 그 위에 번뇌가 다한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까지 갖춘 이를 '양쪽으로 해탈한 이(우바또바가위뭇따)'라 부릅니다. 이는 34장의 '지혜로 해탈한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경지로, 선정의 자유자재함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모두 갖춘 상태입니다. 세존은 이보다 더 높은 해탈은 없다고 단언하시며 연기에서 시작해 해탈에 이르는 경 전체의 여정을 마무리하십니다.

묵상

어떤 상태에도 자유롭게 들고 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하나에 갇혀 있는 것과는 다른 자유일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유난히 벗어나기 어렵게 느끼는 상태가 있다면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만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였다.

Idamavoca bhagavā. Attamano āyasmā āna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īti.

디가 니까야 DN 15 대인연경 (Mahānidānasutta)

배경

경을 맺는 서술자의 문장입니다. 세존께서 말씀을 마치셨고, 아난다 존자가 만족하여 기뻐했다는 짧은 서술로 긴 대화가 마무리됩니다. 경의 첫머리에서 아난다는 연기가 '뻔하다'고 말했다가 부처님께 곧바로 바로잡힌 바 있습니다. 연기의 사슬을 낱낱이 증명받고 자아에 대한 견해를 반박받고 해탈에 이르는 전 과정을 들은 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말이 온전히 되돌려지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경이 이 모음에서 두 번째 경임을 밝히는 편집자의 표시입니다.

묵상

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서야 비로소 처음의 내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깨달은 경험이 있나요? 그런 경험이 지금 어떻게 남아 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뚜렷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