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세타여, 이 네 가지 계급이 있으니, 왕족, 바라문, 평민, 천민이니라.”
1. Catuvaṇṇasuddhi Cattārome, vāseṭṭha, vaṇṇā— khattiyā, brāhmaṇā, vessā, suddā.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세존의 반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자리로, 원문은 이 대목에 "네 계급의 청정"이라는 소제목을 붙였습니다. 이는 경문이 아니라 후대 편집자가 붙인 표제이므로 그대로 옮기되 대화체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세존께서는 사회에 실제로 있는 네 계급, 곧 왕족·바라문·평민·천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논의를 시작하십니다. 계급이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 안에서 무엇이 사람을 가르는지를 되묻는 방식입니다.
묵상
어떤 구분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과, 그 구분이 사람의 가치를 정한다는 주장은 서로 다른 이야기일 수 있어요. 지금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구분 가운데, 이 둘을 구별해서 다시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있을까요?
“바세타여, 왕족 가운데도 어떤 이는 살아있는 것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며, 탐욕스럽고, 악의를 품고, 삿된 견해를 지니느니라.”
Khattiyopi kho, vāseṭṭha, idhekacco pāṇātipātī hoti adinnādāyī kāmesumicchācārī musāvādī pisuṇavāco pharusavāco samphappalāpī abhijjhālu byāpannacitto micchādiṭṭhī.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왕족부터 시작해 열 가지 해로운 행위, 곧 살생·도둑질·삿된 음행·거짓말·이간질·거친 말·쓸데없는 말·탐욕·악의·삿된 견해를 하는 이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자리입니다. 이 열 가지는 불교 전통에서 "열 가지 해로운 행위"로 잘 알려진 목록과 같습니다. 몸·말·마음 셋으로 나눈 순서를 그대로 따릅니다. 다음 카드에서 이 행위들이 왜 나쁜지, 그리고 이것이 왕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이어집니다.
묵상
어느 집단에나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그 집단 전체를 판단할 때 얼마나 고려하고 있나요? 지금 떠오르는 집단이 있다면 잠시 생각해 보아도 좋아요. 그 판단이 공평했는지도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이런 것들은 해로우며 허물이 있고 익히지 말아야 하며 성자답지 못하니, 어두운 행위로서 어두운 결과를 낳아 지혜로운 이들의 나무람을 받나니, 왕족 가운데도 이런 이가 있느니라.
바라문 가운데도, 평민 가운데도, 천민 가운데도 마찬가지니라.”
Iti kho, vāseṭṭha, yeme dhammā akusalā akusalasaṅkhātā sāvajjā sāvajjasaṅkhātā asevitabbā asevitabbasaṅkhātā naalamariyā naalamariyasaṅkhātā kaṇhā kaṇhavipākā viññugarahitā, khattiyepi te idhekacce sandissanti. …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앞 카드에서 나열된 열 가지 행위에 대한 평가입니다. 원문은 이 평가 문장을 바라문·평민·천민에 대해서도 같은 말로 그대로 되풀이하는데, 이 카드에서는 왕족의 경우만 온전히 옮기고 나머지 세 계급은 "마찬가지"로 줄였습니다. 핵심은 이 열 가지 나쁜 행위가 특정 계급에 국한되지 않고 네 계급 모두에 고루 나타난다는 것이며, 다음 카드에서는 반대로 좋은 행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 이어집니다.
묵상
어떤 행동이 "해롭다"고 판단할 때, 그 기준을 지금 나는 얼마나 분명히 알고 있나요? 그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 스스로 정한 것인지 아니면 물려받은 것인지도 잠시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그러나 바세타여, 왕족 가운데도 어떤 이는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갖지 않으며,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이간하는 말을 하지 않고, 거친 말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으며,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가 없고, 바른 견해를 지니느니라.”
Khattiyopi kho, vāseṭṭha, idhekacco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paṭivirato, 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o, musāvādā paṭivirato,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anabhijjhālu abyāpannacitto, sammādiṭṭhī.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앞 카드와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자리입니다. 앞서 나열된 열 가지 해로운 행위를 하나하나 부정형으로 바꾸어, 그것을 하지 않는 이, 곧 좋은 행위를 하는 이가 왕족 가운데도 있다고 밝힙니다. 나쁜 행위(앞 카드)와 좋은 행위(이 카드)가 나란히 놓이는 구성이며, 이 둘을 함께 보아야 어느 한쪽만으로 판단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다음 카드에서 이 좋은 행위에 대한 평가와 다른 계급으로의 확장이 이어집니다.
묵상
나쁜 행위만이 아니라 좋은 행위도 특정 집단에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기준을 다시 살펴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이런 것들은 이로우며 허물이 없고 익힐 만하며 성자다우니, 밝은 행위로서 밝은 결과를 낳아 지혜로운 이들의 칭찬을 받나니, 왕족 가운데도 이런 이가 있느니라.
바라문 가운데도, 평민 가운데도, 천민 가운데도 마찬가지니라.”
Iti kho, vāseṭṭha, yeme dhammā kusalā kusalasaṅkhātā anavajjā anavajjasaṅkhātā sevitabbā sevitabbasaṅkhātā alamariyā alamariyasaṅkhātā sukkā sukkavipākā viññuppasatthā, khattiyepi te idhekacce sandissanti. …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앞 카드에서 나열된 좋은 행위에 대한 평가입니다. 원문 구조는 앞서 나쁜 행위를 평가한 문장과 정확히 대칭을 이루며, 이 카드에서도 왕족의 경우만 온전히 옮기고 나머지 세 계급은 "마찬가지"로 줄였습니다. "밝은 행위·밝은 결과·칭찬"이 "어두운 행위·어두운 결과·나무람"을 그대로 뒤집는 구조입니다. 나쁜 행위와 좋은 행위가 네 계급 모두에서 뒤섞여 나타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다음 절에서 이 둘이 "뒤섞여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어떤 행동이 "이롭다"고 판단할 때, 그 기준이 나쁜 행동을 가르는 기준과 정확히 반대라는 것을 알아차려 보아도 좋아요. 지금 그 기준을 스스로 세워 본다면 무엇일지 천천히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이렇게 네 계급 모두에서 어둡고 밝은 행위가 뒤섞여 나타나고, 지혜로운 이들의 나무람과 칭찬을 함께 받는데도, 바라문들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말하느니라.
‘바라문이야말로 가장 높은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낮다.
…
바라문이야말로 범천의 친아들, 그 입에서 태어난 이, 범천이 낳고 범천이 지어내고 범천의 상속자다.’
Imesu kho, vāseṭṭha, catūsu vaṇṇesu evaṁ ubhayavokiṇṇesu vattamānesu kaṇhasukkesu dhammesu viññugarahitesu ceva viññuppasatthesu ca yadettha brāhmaṇā evamāhaṁsu: ‘brāhmaṇova seṭṭho vaṇṇo, hīnā aññe vaṇṇā; … brāhmaṇāva brahmuno puttā orasā mukhato jātā brahmajā brahmanimmitā brahmadāyādā’t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앞의 두 절에서 확인한 사실, 곧 어둡고 밝은 행위가 네 계급 모두에 뒤섞여 있다는 관찰을 요약한 뒤, 그런데도 바라문들이 여전히 앞서(3.6-3.9) 인용된 네 가지 주장을 되풀이한다고 지적합니다. 원문이 그 네 문장을 다시 그대로 인용하므로, 이 카드에서는 처음과 마지막 문장만 옮기고 가운데는 줄임표로 나타냈습니다. 사실과 주장이 이렇게 나란히 놓이면서 다음 절의 반박이 이어집니다.
묵상
사실이 이미 다르게 말하고 있는데도 예전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그런 모습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나 자신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아도 좋아요.
“지혜로운 이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느니라.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바세타여, 이 네 계급 가운데 누구든 번뇌가 다하고 청정한 삶을 완성하여 할 일을 다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참된 목적을 이루어 존재의 족쇄를 남김없이 끊고 바르게 알아 해탈한 수행자가 있다면, 그는 이치로써 그들 가운데 으뜸이라 불리나니, 이치 아닌 것으로는 아니니라.”
Taṁ tesaṁ viññū nānujānanti. Taṁ kissa hetu? Imesañhi, vāseṭṭha, catunnaṁ vaṇṇānaṁ yo hoti bhikkhu arahaṁ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ṁyojano sammadaññāvimutto, so nesaṁ aggamakkhāyati dhammeneva, no adhammena.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앞 절의 바라문 주장에 대해 세존께서 내리시는 첫 번째 결론입니다. 지혜로운 이들은 그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 이유로 네 계급 어디서든 번뇌를 다한 아라한이 나올 수 있고 그가 "이치(담마)"로써 으뜸이 된다는 것을 듭니다. 여기서 "담마"는 태생이나 혈통이 아니라 사람이 수행을 통해 실제로 이루어 낸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며, 이 구별이 경 전체의 결론을 미리 보여 줍니다.
묵상
어떤 사람을 가장 존경할 만하다고 느낄 때, 그 존경은 그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는가에서 오나요, 아니면 그 사람이 실제로 이루어 낸 것에서 오나요? 지금 떠오르는 사람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이치야말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높으니, 지금 여기서도 다음 생에서도 그러하니라. 이것을 이렇게도 알아야 하나니,
어떻게 이치야말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높은지를.”
Dhammo hi, vāseṭṭha, seṭṭho janetasmiṁ, diṭṭhe ceva dhamme abhisamparāyañca. Tadamināpetaṁ, vāseṭṭha,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dhammova seṭṭho janetasmiṁ, diṭṭhe ceva dhamme abhisamparāyañca.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앞 카드의 결론, "이치로써 으뜸이 된다"는 말을 "이치야말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높다"는 후렴으로 못 박습니다. 이 후렴은 경 전체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되며 각 논의의 매듭을 짓는 역할을 하는, 이 경의 중심 주제라 할 만한 문장입니다. 마지막 문장, "이렇게도 알아야 한다"는 이어지는 절들에서 이 결론을 뒷받침하는 실제 사례가 제시될 것을 미리 알리는 문장입니다.
묵상
같은 결론이 다른 방식으로 다시 증명되는 것을 볼 때, 처음 한 번 들었을 때와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나요? 그 차이가 나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지도 잠시 천천히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수행자 고따마가 이웃한 사꺄족 가문에서 출가하였음을 알고 있느니라. 그런데 사꺄족은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을 따르는 처지이니, 사꺄족은 빠세나디 왕에게 엎드려 절하고 일어나 맞이하며 합장하고 예의를 갖추느니라.
바세타여, 사꺄족이 빠세나디 왕에게 갖추는 이 예의를, 빠세나디 왕은 오히려 여래에게 갖추나니, ‘수행자 고따마는 좋은 가문에서 났고 나는 나쁜 가문에서 났다.’
Jānāti kho, vāseṭṭha, rājā pasenadi kosalo: ‘samaṇo gotamo anantarā sakyakulā pabbajito’ti. Sakyā kho pana, vāseṭṭha, rañño pasenadissa kosalassa anuyuttā bhavanti. Karonti kho, vāseṭṭha, sakyā raññe pasenadimhi kosale nipaccakāraṁ abhivādanaṁ paccuṭṭhānaṁ añjalikammaṁ sāmīcikammaṁ. Iti kho, vāseṭṭha, yaṁ karonti sakyā raññe pasenadimhi kosale nipaccakāraṁ abhivādanaṁ paccuṭṭhānaṁ añjalikammaṁ sāmīcikammaṁ, karoti taṁ rājā pasenadi kosalo tathāgate nipaccakāraṁ abhivādanaṁ paccuṭṭhānaṁ añjalikammaṁ sāmīcikammaṁ, na naṁ ‘sujāto samaṇo gotamo, dujjātohamasm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담마가 태생을 넘어선다는 두 번째 실례로 빠세나디 왕의 일화가 제시됩니다. 사꺄족은 꼬살라국에 종속된 처지라 빠세나디 왕에게 신하로서 예를 갖추는데, 그 빠세나디 왕이 도리어 사꺄족 출신인 세존께 같은 예를 갖춘다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왕이 세존을 그렇게 대우하는 이유가 다음 절에서 밝혀집니다. 인용부호 안의 말은 다음 절에서 부정될 왕의 생각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묵상
지위나 신분이 더 높은 사람이 오히려 다른 이유로 누군가에게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그때 그 예는 무엇 때문이라고 느껴졌는지, 왜 인상 깊었는지도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수행자 고따마는 힘이 세고 나는 약하다, 수행자 고따마는 잘생겼고 나는 못생겼다, 수행자 고따마는 권세가 있고 나는 보잘것없다’고 이렇게 생각해서가 아니니라.
오히려 빠세나디 왕은 오직 이치를 존중하고 이치를 중히 여기고 이치를 받들고 이치를 공경하여, 그렇게 여래에게 엎드려 절하고 일어나 맞이하며 합장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이니라.
바세타여, 이것으로도 이렇게 알아야 하나니, 어떻게 이치야말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높은지를.”
Balavā samaṇo gotamo, dubbalohamasmi. Pāsādiko samaṇo gotamo, dubbaṇṇohamasmi. Mahesakkho samaṇo gotamo, appesakkhohamasmī’ti. Atha kho naṁ dhammaṁyeva sakkaronto dhammaṁ garuṁ karonto dhammaṁ mānento dhammaṁ pūjento dhammaṁ apacāyamāno evaṁ rājā pasenadi kosalo tathāgate nipaccakāraṁ karoti, abhivādanaṁ paccuṭṭhānaṁ añjalikammaṁ sāmīcikammaṁ. Imināpi kho etaṁ, vāseṭṭha,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dhammova seṭṭho janetasmiṁ, diṭṭhe ceva dhamme abhisamparāyañca.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앞 절에서 인용된 왕의 생각을 세존께서 직접 부정하십니다. 왕이 세존께 예를 갖추는 것은 힘·외모·권세 같은 세속적 조건 때문이 아니라, 오직 담마(이치) 그 자체를 존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아라한의 사례에 이어 담마가 태생을 넘어선다는 두 번째 실례로 제시된 것이며, 두 사례 모두 "이치야말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높다"는 같은 결론으로 마무리됩니다.
묵상
누군가를 존중할 때, 그 사람이 가진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키는 원칙이나 삶의 태도 때문이었던 적이 있나요? 그 존중은 조건 때문이었던 존중과 어떻게 달랐는지 천천히 견주어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그대들은 서로 다른 태생, 다른 이름, 다른 가문,
다른 집안에서 집을 떠나 출가하였느니라. ‘그대들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그대들은 ‘저희는 사꺄의 아들을 따르는 수행자입니다’라고 밝히느니라.”
Tumhe khvattha, vāseṭṭha, nānājaccā nānānāmā nānāgottā nānākul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ā. ‘Ke tumhe’ti—puṭṭhā samānā ‘samaṇā sakyaputtiyāmhā’ti—paṭijānātha.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세존께서 이제 바세타와 바라드와자 두 사람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십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태생과 가문 출신이면서도 똑같이 "사꺄의 아들을 따르는 사문"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앞서 바라문들의 계급 주장과 대비하여 읽으면, 이는 태생이 아니라 함께 따르는 스승과 길로 정체성을 삼는 완전히 다른 방식입니다. 태생의 차이가 하나의 새로운 정체성 앞에서 무의미해지는 이 모습이, 다음 카드에서 이어지는 더 깊은 선언의 바탕이 됩니다.
묵상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믿음이나 목표로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태생이나 배경의 차이가 얼마나 중요하게 느껴졌는지, 지금 돌아보면 어떤지도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누구든 여래에 대한 믿음이 뿌리내리고 굳게 서서 확고하며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브라흐마나 이 세상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이라면,
그는 이렇게 말해도 마땅하니라 - ‘나는 세존의 친아들, 그 입에서 태어난 이,
이치가 낳고 이치가 지어내고 이치의 상속자다.’”
Yassa kho panassa, vāseṭṭha, tathāgate saddhā niviṭṭhā mūlajātā patiṭṭhitā daḷhā asaṁhāriyā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ṁ, tassetaṁ kallaṁ vacanāya: ‘bhagavatomhi putto oraso mukhato jāto dhammajo dhammanimmito dhammadāyādo’t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앞 카드에서 확인한 공통의 이름에 이어, 여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 이라면 "나는 세존의 친아들, 이치가 낳은 이"라고 스스로 말해도 된다고 하십니다. 이 말은 앞서 바라문들이 "브라흐마의 친아들"이라 자처한 것(3.9)과 정확히 같은 틀을 빌려, 태생이 아니라 믿음과 이치가 참된 혈통을 이룬다고 맞세우는 것이며, 다음 카드에서 그 근거가 되는 여래의 다른 이름들이 밝혀집니다.
묵상
무언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 깊어졌던 순간이 있나요? 그 믿음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는지, 지금도 그 믿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 천천히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바세타여, ‘이치의 몸’이라는 것도,
‘범천의 몸’이라는 것도, ‘이치가 된 이’라는 것도, ‘범천이 된 이’라는 것도,
모두 여래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니라.”
Taṁ kissa hetu? Tathāgatassa hetaṁ, vāseṭṭha, adhivacanaṁ ‘dhammakāyo’ itipi, ‘brahmakāyo’ itipi, ‘dhammabhūto’ itipi, ‘brahmabhūto’ itip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앞 절에서 "이치의 상속자"라 말해도 되는 까닭을 밝히는 대목입니다. 여래를 가리키는 여러 별칭, 곧 "이치의 몸(담마까야)", "브라흐마의 몸(브라흐마까야)", "이치가 된 이", "브라흐마가 된 이"가 나열되는데, 이는 바라문들이 신성시하는 "브라흐마"라는 말조차 결국 여래 자신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흡수됨을 보여 줍니다. 이로써 두 수행자를 향한 세존의 위로가 마무리되고, 다음 절부터는 세상이 어떻게 지금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밝히는 훨씬 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묵상
어떤 낱말이 원래 가리키던 것과는 다른 더 깊은 뜻으로 쓰이는 것을 알아차린 경험이 있나요? 그 낱말을 다시 볼 때 느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왜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천천히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언젠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세상이 수축하는 때가 있느니라. 세상이 수축할 때 뭇 삶은 대개 극광천에 태어나느니라.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먹으며,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며, 영광에 머물러 아주 오랜 세월을 그렇게 지내느니라.”
Hoti kho so, vāseṭṭha, samayo yaṁ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ayaṁ loko saṁvaṭṭati. Saṁvaṭṭamāne loke yebhuyyena sattā ābhassarasaṁvattanikā honti. Te tattha honti manomayā pītibhakkhā sayaṁpabhā antalikkhacarā subhaṭṭhāyino ciraṁ dīghamaddhānaṁ tiṭṭhant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이 절부터 경의 두 번째 큰 부분, 곧 세상이 지금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세존께서는 계급 논쟁을 떠나 우주가 주기적으로 수축과 팽창을 되풀이한다는 배경을 먼저 놓습니다. 세상이 수축할 때 뭇 삶은 극광천(빛으로 가득한 하늘 세계)에 태어나, 아직 몸이 없이 마음으로만 이루어진 채 기쁨을 양식으로 삼으며 스스로 빛을 냅니다. 이 최초의 상태가 다음 카드에서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며 조금씩 무너져 가는 과정의 출발점입니다.
묵상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몸과 배고픔과 갈라진 처지가, 사실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생겨난 것이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잠시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또 언젠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세상이 팽창하는 때가 있느니라. 세상이 팽창할 때 뭇 삶은 대개 극광천의 무리에서 죽어 이 세상으로 오느니라. 그들은 여기서도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먹으며,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며, 영광에 머물러 아주 오랜 세월을 그렇게 지내느니라.”
Hoti kho so, vāseṭṭha, samayo yaṁ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ayaṁ loko vivaṭṭati. Vivaṭṭamāne loke yebhuyyena sattā ābhassarakāyā cavitvā itthattaṁ āgacchanti. Tedha honti manomayā pītibhakkhā sayaṁpabhā antalikkhacarā subhaṭṭhāyino ciraṁ dīghamaddhānaṁ tiṭṭhant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앞 카드의 수축에 이어, 세상이 다시 팽창하는 국면입니다. 극광천에 머물던 뭇 삶이 이번에는 그 하늘에서 죽어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데, 아직은 몸이 없이 마음으로만 이루어진 최초의 상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앞 카드와 거의 같은 문장이 되풀이되는 것은 수축과 팽창이 대칭을 이루는 순환임을 보여 줍니다. 이 최초의 순수한 상태가 다음 절부터 땅의 단맛을 맛보면서 서서히 무너져 가는 것이 이 경 후반부 전체의 줄거리입니다.
묵상
무언가 다시 시작될 때, 이전의 순수했던 상태를 그대로 지니고 출발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 상태가 그 뒤로 어떻게 변해 갔는지, 지금은 무엇이 남아 있는지도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