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세타여, 그러자 그 뭇 삶들은 땅에서 우러난 단맛을 손으로 뭉쳐 덩이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느니라. 그들이 그렇게 하자 그들의 스스로 빛나던 빛이 사라졌느니라.
스스로 빛나던 빛이 사라지자 해와 달이 나타났느니라.”
3. Candimasūriyādipātubhāva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rasapathaviṁ hatthehi āluppakārakaṁ upakkamiṁsu paribhuñjituṁ. Yato kho te, vāseṭṭha, sattā rasapathaviṁ hatthehi āluppakārakaṁ upakkamiṁsu paribhuñjituṁ. Atha tesaṁ sattānaṁ sayaṁpabhā antaradhāyi. Sayaṁpabhāya antarahitāya candimasūriyā pāturahesuṁ.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던 것이 손으로 뭉쳐 먹는 것으로 발전하면서, 뭇 삶은 몸에서 나던 스스로의 빛을 잃습니다. 그 빛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해 해와 달이 나타납니다. 원문의 "3. 해와 달이 나타나다"라는 소제목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몸이 거칠어질수록 스스로 빛나던 존재는 바깥의 빛에 의존하는 존재로 바뀌어 가며, 이는 뒤이은 모든 상실의 첫 사례이자 앞으로 되풀이될 패턴의 원형입니다.
묵상
더 많이 가지려 할수록 오히려 스스로 지니고 있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나요? 그 자리를 무엇이 대신 채웠는지, 그것으로 충분했는지, 아니면 여전히 아쉬운지도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해와 달이 나타나자 별과 별자리가 나타났고, 별과 별자리가 나타나자 밤과 낮이 구별되었으며, 밤낮이 구별되자 한 달과 보름이 구별되었고, 한 달과 보름이 구별되자 계절과 해가 구별되었느니라.
바세타여, 이만큼에서 이 세상은 다시 팽창을 마쳤느니라.”
Candimasūriyesu pātubhūtesu nakkhattāni tārakarūpāni pāturahesuṁ. Nakkhattesu tārakarūpesu pātubhūtesu rattindivā paññāyiṁsu. Rattindivesu paññāyamānesu māsaḍḍhamāsā paññāyiṁsu. Māsaḍḍhamāsesu paññāyamānesu utusaṁvaccharā paññāyiṁsu. Ettāvatā kho, vāseṭṭha, ayaṁ loko puna vivaṭṭo hot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해와 달의 출현을 시작으로 별자리, 밤낮, 한 달과 보름, 계절과 해까지 시간의 단위들이 하나씩 연쇄적으로 갖추어지는 과정입니다. 이는 앞서 11.2에서 "해도 달도, 밤낮도, 계절도 구별되지 않았다"고 했던 미분화 상태가 정확히 역순으로 채워지는 모습이며, 이로써 세상은 물리적으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다만 사회와 도덕의 분화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묵상
없던 것이 하나씩 자리를 잡아 가며 지금의 질서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가운데 처음부터 있지 않았던 것이 무엇인지 다시 보이나요? 그 발견이 낯설게 느껴지는지도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그 뭇 삶들은 땅에서 우러난 단맛을 먹으며 그것을 양식으로 삼아 아주 오랜 세월을 지냈느니라. 그런데 그들이 땅에서 우러난 단맛을 먹으며 오래 지낼수록, 그만큼 몸이 점점 거칠어지고 생김새도 서로 달라졌으니, 어떤 이는 잘생기고 어떤 이는 못생기게 되었느니라.
그러자 잘생긴 뭇 삶들이 못생긴 뭇 삶들을 업신여기며 ‘우리가 저들보다 잘생겼다, 저들은 우리보다 못생겼다’고 하였느니라.”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rasapathaviṁ paribhuñjantā tambhakkhā tadāhār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aṭṭhaṁsu. Yathā yathā kho te, vāseṭṭha, sattā rasapathaviṁ paribhuñjantā tambhakkhā tadāhār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aṭṭhaṁsu tathā tathā tesaṁ sattānaṁ rasapathaviṁ paribhuñjantānaṁ kharattañceva kāyasmiṁ okkami, vaṇṇavevaṇṇatā ca paññāyittha. Ekidaṁ sattā vaṇṇavanto honti, ekidaṁ sattā dubbaṇṇā. Tattha ye te sattā vaṇṇavanto, te dubbaṇṇe satte atimaññanti: ‘mayametehi vaṇṇavantatarā, amhehete dubbaṇṇatarā’t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갈애로 시작된 변화가 몸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오래 먹을수록 몸이 거칠어지고 외모가 갈라지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잘생김"과 "못생김"이라는 우열의 구분이 등장하고, 곧바로 업신여김으로 이어집니다. 원문에서 "외모"를 가리키는 말(vaṇṇa)은 뒤에서 "계급"을 가리키는 바로 그 낱말이기도 합니다. 겉모습의 우열을 가리던 이 말이 훗날 신분의 우열을 가리는 말로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대목은 뒤에 나올 계급 차별의 원형을 미리 보여 줍니다.
묵상
겉모습의 작은 차이가 우열을 가르는 잣대로 쓰이는 것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나 자신도 그런 잣대를 무심코 써 본 적이 있는지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될 수 있어요.
“그들이 외모를 두고 서로를 업신여기는 교만에 빠지자, 그 교만을 조건으로 땅에서 우러난 단맛이 사라졌느니라. 단맛이 사라지자 그들은 모여서 탄식하였느니라. ‘아, 그 맛이여, 아, 그 맛이여.’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맛있는 것을 얻으면 ‘아, 이 맛이여, 아, 이 맛이여’라고 말하나니, 이는 그저 저 옛 태초의 말을 따라 할 뿐, 그 참뜻은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Tesaṁ vaṇṇātimānapaccayā mānātimānajātikānaṁ rasapathavī antaradhāyi. Rasāya pathaviyā antarahitāya sannipatiṁsu. Sannipatitvā anutthuniṁsu: ‘aho rasaṁ, aho rasan’ti. Tadetarahipi manussā kañcideva surasaṁ labhitvā evamāhaṁsu: ‘aho rasaṁ, aho rasan’ti. Tadeva porāṇaṁ aggaññaṁ akkharaṁ anusaranti, na tvevassa atthaṁ ājānant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외모를 둘러싼 교만이 낳은 첫 번째 상실입니다. 뭇 삶들의 자만이 원인이 되어 그토록 매혹적이던 단맛이 통째로 사라지고, 그들은 모여서 탄식합니다. 이 경은 이 탄식의 말("아, 그 맛이여")이 오늘날 사람들이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하는 말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밝히며, 사람들이 그 유래는 모른 채 옛말만 흉내 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어원 설명은 이 경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되는 서술 방식입니다.
묵상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쓰는 말 가운데, 사실은 오래된 사연이 숨어 있는 말이 있을까요? 그 유래를 알고 나면 그 말이 다르게 들릴 수도 있겠지요. 지금 떠오르는 말이 있다면 잠시 머물러 보아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