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세타여, 땅에서 우러난 단맛이 사라지자 그 뭇 삶들에게 땅버섯이 나타났으니,
마치 버섯처럼 그렇게 나타났느니라.
그것은 빛깔을 갖추고 향기를 갖추고 맛을 갖추었으니,
마치 잘 정제된 버터나 응유처럼 그런 빛깔이었고,
마치 티 없는 야생 꿀처럼 그런 맛이었느니라.”
4. Bhūmipappaṭakapātubhāva Atha kho tesaṁ, vāseṭṭha, sattānaṁ rasāya pathaviyā antarahitāya bhūmipappaṭako pāturahosi. Seyyathāpi nāma ahicchattako; evameva pāturahosi. So ahosi vaṇṇasampanno gandhasampanno rasasampanno, seyyathāpi nāma sampannaṁ vā sappi sampannaṁ vā navanītaṁ evaṁvaṇṇo ahosi. Seyyathāpi nāma khuddamadhuṁ aneḷakaṁ; evamassādo ahos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땅에서 우러난 단맛이 사라진 뒤, 그 자리를 대신하는 두 번째 양식으로 땅버섯이 나타납니다. 앞서 단맛을 묘사한 것과 똑같이 빛깔·향기·맛을 갖춘 것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이 경 전체에서 되풀이되는 서술 방식입니다. 새로운 양식이 나타날 때마다 이전 것과 같은 표현으로 매혹적임을 강조한 뒤, 그것에 의존하면서 다시 타락이 반복되는 구조이며, 이 반복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교훈입니다.
묵상
무언가를 잃은 자리에 다른 것이 채워졌던 경험이 있나요? 그 새로운 것이 이전 것과 얼마나 닮아 있었는지, 아니면 전혀 달랐는지, 지금은 그 자리를 어떻게 느끼는지도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그 뭇 삶들은 땅버섯을 먹기 시작했느니라. 그것을 양식으로 삼아 아주 오랜 세월을 지냈는데, 그렇게 먹을수록 몸이 더욱더 거칠어지고 생김새도 서로 달라졌으니, 어떤 이는 잘생기고 어떤 이는 못생기게 되었느니라.
잘생긴 뭇 삶들이 못생긴 뭇 삶들을 업신여기며 ‘우리가 저들보다 잘생겼다, 저들은 우리보다 못생겼다’고 하였느니라. 그들이 그렇게 외모를 두고 교만에 빠지자, 그 교만을 조건으로 땅버섯이 사라졌느니라.”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bhūmipappaṭakaṁ upakkamiṁsu paribhuñjituṁ. Te taṁ paribhuñjantā tambhakkhā tadāhār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aṭṭhaṁsu. Yathā yathā kho te, vāseṭṭha, sattā bhūmipappaṭakaṁ paribhuñjantā tambhakkhā tadāhār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aṭṭhaṁsu tathā tathā tesaṁ sattānaṁ bhiyyoso mattāya kharattañceva kāyasmiṁ okkami, vaṇṇavevaṇṇatā ca paññāyittha. Ekidaṁ sattā vaṇṇavanto honti, ekidaṁ sattā dubbaṇṇā. Tattha ye te sattā vaṇṇavanto, te dubbaṇṇe satte atimaññanti: ‘mayametehi vaṇṇavantatarā, amhehete dubbaṇṇatarā’ti. Tesaṁ vaṇṇātimānapaccayā mānātimānajātikānaṁ bhūmipappaṭako antaradhāy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땅에서 우러난 단맛이 사라졌던 것과 똑같은 순서, 곧 오래 먹음, 몸이 거칠어짐, 외모의 우열, 업신여김, 교만, 소멸이 땅버섯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같은 실수가 다른 양식을 두고 다시 벌어지는 것을 보여 주어, 이것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뭇 삶에게 반복되는 성향임을 드러내며, 다음 카드에서는 세 번째 양식을 두고 또 한 번 똑같은 일이 되풀이됩니다.
묵상
같은 실수를 형태만 바꾸어 되풀이한 적이 있나요? 그 되풀이를 알아차린 순간 무엇이 보였는지, 그 뒤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여전히 되풀이되는 부분이 있는지도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땅버섯이 사라지자 쪼개지는 열매가 나타났으니, 마치 대나무 열매처럼 그렇게 나타났느니라. 그것은 빛깔을 갖추고 향기를 갖추고 맛을 갖추었으니, 마치 잘 정제된 버터나 응유처럼 그런 빛깔이었고, 마치 티 없는 야생 꿀처럼 그런 맛이었느니라.
그 뭇 삶들은 쪼개지는 열매를 먹기 시작했느니라.”
5. Padālatāpātubhāva Bhūmipappaṭake antarahite padālatā pāturahosi, seyyathāpi nāma kalambukā; evameva pāturahosi. Sā ahosi vaṇṇasampannā gandhasampannā rasasampannā, seyyathāpi nāma sampannaṁ vā sappi sampannaṁ vā navanītaṁ evaṁvaṇṇā ahosi. Seyyathāpi nāma khuddamadhuṁ aneḷakaṁ; evamassādā ahosi.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padālataṁ upakkamiṁsu paribhuñjituṁ.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땅버섯에 이어 세 번째 양식인 "쪼개지는 열매"가 나타납니다. 이번에도 앞서와 똑같은 표현으로 그 매혹을 그리는데, 이렇게 세 차례 같은 패턴이 되풀이되면서 독자는 이 열매 역시 곧 같은 운명을 맞으리라는 것을 예상하게 됩니다. 원문의 "5. 쪼개지는 열매가 나타나다"라는 소제목을 그대로 옮겼으며, 다음 카드에서 예상대로 같은 결말, 곧 교만과 소멸이 되풀이됩니다.
묵상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이미 짐작하면서도 같은 패턴에 다시 들어서는 순간이 있지요. 그런 순간을 알아차렸을 때 멈출 수 있었나요, 아니면 그대로 흘러갔나요? 지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면 잠시 머물러 보아도 좋아요.
“그것을 양식으로 삼아 아주 오랜 세월을 지냈는데, 그렇게 먹을수록 몸이 더욱더 거칠어지고 생김새도 서로 달라졌으니, 어떤 이는 잘생기고 어떤 이는 못생기게 되었느니라.
잘생긴 뭇 삶들이 못생긴 뭇 삶들을 업신여기며 ‘우리가 저들보다 잘생겼다, 저들은 우리보다 못생겼다’고 하였느니라. 그들이 그렇게 외모를 두고 교만에 빠지자, 그 교만을 조건으로 쪼개지는 열매가 사라졌느니라.”
Te taṁ paribhuñjantā tambhakkhā tadāhār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aṭṭhaṁsu. Yathā yathā kho te, vāseṭṭha, sattā padālataṁ paribhuñjantā tambhakkhā tadāhār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aṭṭhaṁsu tathā tathā tesaṁ sattānaṁ bhiyyoso mattāya kharattañceva kāyasmiṁ okkami, vaṇṇavevaṇṇatā ca paññāyittha. Ekidaṁ sattā vaṇṇavanto honti, ekidaṁ sattā dubbaṇṇā. Tattha ye te sattā vaṇṇavanto, te dubbaṇṇe satte atimaññanti: ‘mayametehi vaṇṇavantatarā, amhehete dubbaṇṇatarā’ti. Tesaṁ vaṇṇātimānapaccayā mānātimānajātikānaṁ padālatā antaradhāy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세 번째로 되풀이되는 같은 패턴입니다. 오래 먹음, 몸이 거칠어짐, 외모의 우열, 업신여김, 교만, 소멸이라는 순서가 땅에서 우러난 단맛과 땅버섯에 이어 쪼개지는 열매에서도 정확히 되풀이됩니다. 세 번째 반복에 이르러 이 패턴은 이제 뭇 삶에게 깊이 뿌리내린 성향으로 굳어졌음을 보여 주며, 다음 카드에서는 앞서와 다른 새로운 반응, 곧 상실의 탄식이 처음 등장합니다.
묵상
세 번째로 같은 일이 반복될 때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습관임을 알아차리게 되지요. 지금 나에게도 세 번 이상 되풀이된 어떤 패턴이 있나요? 그것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요.
“쪼개지는 열매가 사라지자 그들은 모여서 탄식하였느니라. ‘아, 우리가 잃었구나. 아, 우리에게서 사라졌구나, 그 쪼개지는 열매가.’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어떤 괴로운 일을 당하면 ‘아, 우리가 잃었구나. 아, 우리에게서 사라졌구나’라고 말하나니, 이는 그저 저 옛 태초의 말을 따라 할 뿐, 그 참뜻은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Padālatāya antarahitāya sannipatiṁsu. Sannipatitvā anutthuniṁsu: ‘ahu vata no, ahāyi vata no padālatā’ti. Tadetarahipi manussā kenaci dukkhadhammena phuṭṭhā evamāhaṁsu: ‘ahu vata no, ahāyi vata no’ti. Tadeva porāṇaṁ aggaññaṁ akkharaṁ anusaranti, na tvevassa atthaṁ ājānant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쪼개지는 열매가 사라지자 뭇 삶들의 탄식이 이번에는 "잃음"을 뜻하는 말로 나옵니다. 앞서 땅에서 우러난 단맛을 잃었을 때는 "그 맛이여"라며 그리워했다면, 이번에는 "잃었구나"라며 상실 자체를 슬퍼합니다. 이 경은 이 말 또한 오늘날 사람들이 괴로운 일을 당했을 때 하는 말과 뿌리가 같다고 밝히며, 그 유래를 모른 채 옛말만 흉내 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잃었을 때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말이 있나요?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 몰라도, 그 순간의 마음만은 진짜였다는 것을 알아차려 보아도 좋아요. 지금 그 말을 다시 떠올리면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