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세타여, 쪼개지는 열매가 사라지자 그 뭇 삶들에게 갈지 않아도 여무는 벼가 나타났으니, 겨도 없고 뉘도 없이 깨끗하고 향기로우며 낟알만 고왔느니라. 저녁밥으로 거두어 오면 아침이면 다시 여물어 있었고, 아침밥으로 거두어 오면 저녁이면 다시 여물어 있어, 거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느니라.
그 뭇 삶들은 이 갈지 않아도 여무는 벼를 먹으며 그것을 양식으로 삼아 아주 오랜 세월을 지냈느니라.”
6. Akaṭṭhapākasālipātubhāva Atha kho tesaṁ, vāseṭṭha, sattānaṁ padālatāya antarahitāya akaṭṭhapāko sāli pāturahosi akaṇo athuso suddho sugandho taṇḍulapphalo. Yaṁ taṁ sāyaṁ sāyamāsāya āharanti, pāto taṁ hoti pakkaṁ paṭivirūḷhaṁ. Yaṁ taṁ pāto pātarāsāya āharanti, sāyaṁ taṁ hoti pakkaṁ paṭivirūḷhaṁ; nāpadānaṁ paññāyati.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akaṭṭhapākaṁ sāliṁ paribhuñjantā tambhakkhā tadāhār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aṭṭhaṁsu.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쪼개지는 열매에 이어 네 번째 양식인 벼가 나타납니다. 겨도 뉘도 없이 깨끗한 데다, 거두어 온 자리에서 하루 만에 다시 여물어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는 묘사는 앞의 세 양식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애쓸 필요 없는 상태를 그립니다. 원문의 "6. 갈지 않아도 여무는 벼가 나타나다"라는 소제목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 안락함이 뒤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가 이어지는 여러 절의 주제입니다.
묵상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 있었나요? 그런 여유로움이 계속될 것이라 여겼던 순간을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지금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그런데 그 뭇 삶들이 갈지 않아도 여무는 벼를 먹으며 그것을 양식으로 오래 지낼수록, 그만큼 몸이 더욱더 거칠어지고 생김새도 서로 달라졌으니, 여자에게는 여자의 특징이, 남자에게는 남자의 특징이 나타났느니라. 여자는 남자를 지나치게 오래 바라보고 남자도 여자를 그리하였느니라.
그렇게 서로를 지나치게 오래 바라보는 사이 탐욕이 일어났고, 몸에는 애타는 열기가 스며들었느니라.”
7. Itthipurisaliṅgapātubhāva Yathā yathā kho te, vāseṭṭha, sattā akaṭṭhapākaṁ sāliṁ paribhuñjantā tambhakkhā tadāhār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aṭṭhaṁsu tathā tathā tesaṁ sattānaṁ bhiyyoso mattāya kharattañceva kāyasmiṁ okkami, vaṇṇavevaṇṇatā ca paññāyittha, itthiyā ca itthiliṅgaṁ pāturahosi purisassa ca purisaliṅgaṁ. Itthī ca purisaṁ ativelaṁ upanijjhāyati puriso ca itthiṁ. Tesaṁ ativelaṁ aññamaññaṁ upanijjhāyataṁ sārāgo udapādi, pariḷāho kāyasmiṁ okkam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벼를 먹으며 몸이 거칠어지는 것은 앞서와 같은 패턴이지만, 이번에는 외모의 우열이 아니라 남녀의 신체적 차이가 처음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전환점을 이룹니다. 원문의 "7. 남녀의 특징이 나타나다"라는 소제목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다 탐욕과 열기가 이는 과정은 다음 절의 성적 결합으로 곧바로 이어지며, 이 경에서 성별의 구별과 성적 욕망이 함께 등장하는 자리입니다.
묵상
몸의 변화나 새로운 감정이 낯설게 다가왔던 때를 기억하나요? 그런 낯섦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는지, 아니면 혼자 삭이며 지냈는지도 천천히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그들은 그 열기로 인해 성적으로 결합하였느니라. 그때 다른 뭇 삶들이 그렇게 결합하는 이들을 보고서,
어떤 이는 흙을 던지고 어떤 이는 재를 던지고 어떤 이는 쇠똥을 던지며 ‘없어져라,
부정한 것아. 없어져라, 부정한 것아. 어찌 뭇 삶이 뭇 삶에게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하였느니라.”
Te pariḷāhapaccayā methunaṁ dhammaṁ paṭiseviṁsu. Ye kho pana te, vāseṭṭha, tena samayena sattā passanti methunaṁ dhammaṁ paṭisevante, aññe paṁsuṁ khipanti, aññe seṭṭhiṁ khipanti, aññe gomayaṁ khipanti: ‘nassa asuci, nassa asucī’ti. ‘Kathañhi nāma satto sattassa evarūpaṁ karissatī’t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남녀의 첫 성적 결합이 당시 사회에서는 부정한 것으로 여겨져 거센 비난을 받았음을 보여 줍니다. 흙과 재와 쇠똥을 던지며 "부정한 것"이라 외치는 반응은 지금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지만, 이는 이 경이 그리는 사회 변화가 결코 매끄럽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훗날 사회 전체가 받아들이는 일이 처음에는 이렇게 거센 거부를 겪었다는 점이 다음 카드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지금은 자연스러운 일이 예전에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그 비난이 지금 기준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오늘날에도 어떤 지방에서는 신부를 데려갈 때 어떤 이는 흙을 던지고 어떤 이는 재를 던지고 어떤 이는 쇠똥을 던지나니,
이는 그저 저 옛 태초의 말을 따라 할 뿐, 그 참뜻은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Tadetarahipi manussā ekaccesu janapadesu vadhuyā nibbuyhamānāya aññe paṁsuṁ khipanti, aññe seṭṭhiṁ khipanti, aññe gomayaṁ khipanti. Tadeva porāṇaṁ aggaññaṁ akkharaṁ anusaranti, na tvevassa atthaṁ ājānant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앞 카드에서 성적 결합을 부정하다고 비난하며 흙과 재와 쇠똥을 던졌던 관습이, 오늘날 일부 지방의 결혼 풍습(신부에게 흙이나 재를 던지는 것)으로 흔적을 남겼다고 밝힙니다. 한때 지탄받던 일이 다음 절에서는 사회 전체가 받아들이는 일로 바뀌는데, 이 변화의 속도와 방향이 이 경이 그리는 사회 변화의 한 특징이며, 옛 관습의 흔적이 뜻도 모른 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묵상
한 시대에 손가락질받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러운 일로 바뀌는 경우를 본 적이 있나요? 그 변화가 무엇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