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나누다

벼가 상해 가는 것을 보고 밭을 나누기로 하지만, 곧바로 도둑질과 매질이 뒤따르는 자리

“바세타여, 그 뭇 삶들은 모여서 탄식하였느니라. ‘아, 나쁜 것들이 뭇 삶들 사이에 나타났구나. 우리는 예전에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먹으며,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며, 영광에 머물러 아주 오랜 세월을 그렇게 지냈는데.’”

9. Sālivibhāga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sannipatiṁsu, sannipatitvā anutthuniṁsu: ‘pāpakā vata, bho, dhammā sattesu pātubhūtā. Mayañhi pubbe manomayā ahumhā pītibhakkhā sayaṁpabhā antalikkhacarā subhaṭṭhāyino, ciraṁ dīghamaddhānaṁ aṭṭhamhā.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벼농사가 망가진 것을 본 뭇 삶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처지 전체를 되돌아보며 탄식하는 자리입니다. "예전에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기쁨을 먹으며 스스로 빛나던" 최초의 상태(10.3, 10.6)를 스스로 떠올리는 이 대목부터, 이야기의 시점이 세존의 서술에서 뭇 삶 자신의 목소리로 바뀝니다. 다음 카드에서는 그 뒤로 벌어진 모든 일을 자신들의 입으로 처음부터 되짚는 긴 회고가 이어집니다.

묵상

지금의 상황이 힘겨울 때, 예전에는 더 단순하고 편안했던 시절을 그리워한 적이 있나요? 그 그리움이 지금 무엇을 알려 주는지, 그 시절로 정말 돌아가고 싶은지도 잠시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에게 땅에서 우러난 단맛이 물에 엉겼다… (우리의 나쁘고 해로운 것들 때문에 그 단맛이 사라지고, 땅버섯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쪼개지는 열매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마침내 갈지 않아도 여무는 벼가 나타났다.) …우리는 갈지 않아도 여무는 벼를 먹으며 그것을 양식으로 삼아 아주 오랜 세월을 지냈다…”

Tesaṁ no amhākaṁ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rasapathavī udakasmiṁ samatani. … Te mayaṁ akaṭṭhapākaṁ sāliṁ paribhuñjantā tambhakkhā tadāhār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aṭṭhamhā.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뭇 삶들이 앞서 10장에서 16장까지 세존께서 들려주신 이야기 전체, 곧 땅에서 우러난 단맛부터 땅버섯, 쪼개지는 열매, 갈지 않아도 여무는 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건을 이번에는 1인칭 "우리"로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합니다. 원문은 앞서 나온 문장들을 인칭만 바꾸어 스물두 개의 절에 걸쳐 그대로 되풀이하므로, 이 카드에서는 그 회고 전체를 요약해 한 문단으로 옮기고 세부 문장은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앞서 나온 사건과 순서가 정확히 같다는 점, 그리고 이번에는 원인을 "우리의 나쁘고 해로운 것들" 때문이라고 스스로 밝힌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는 뭇 삶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것입니다.

묵상

지나온 일을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탓"이라는 말로 다시 이야기해 본 적이 있나요? 그렇게 다시 말해 보면 이전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 있는지, 그 말이 자신을 탓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도 느껴 보아도 좋아요.

“…우리의 나쁘고 해로운 것들 때문에 이제 낟알에 겨가 덮이고 뉘도 덮였으며, 베어 낸 자리는 다시 여물지 않아 거둔 흔적이 남게 되었고, 벼는 무더기무더기로 무리 지어 서게 되었느니라. 우리가 차라리 벼를 나누어 경계를 세우면 어떨까.’ 바세타여, 그리하여 그 뭇 삶들은 벼를 나누고 경계를 세웠느니라.”

Tesaṁ no pāpakānaṁyeva akusalānaṁ dhammānaṁ pātubhāvā kaṇopi taṇḍulaṁ pariyonandhi, thusopi taṇḍulaṁ pariyonandhi, lūnampi nappaṭivirūḷhaṁ, apadānaṁ paññāyittha, saṇḍasaṇḍā sālayo ṭhitā. Yannūna mayaṁ sāliṁ vibhajeyyāma, mariyādaṁ ṭhapeyyāmā’ti. Atha kho te, vāseṭṭha, sattā sāliṁ vibhajiṁsu, mariyādaṁ ṭhapesuṁ.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긴 회고를 마친 뭇 삶들이 마침내 내린 결론입니다. 벼가 저절로 넉넉히 자라던 시절이 끝났으니, 이제 남은 것을 나누고 경계를 세워 각자의 몫을 정하자는 것입니다. 사유 재산과 소유의 경계라는 개념이 이 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자리이며, 이는 좋은 뜻에서 나온 합의였지만 바로 다음 절에서 그 경계를 넘는 도둑질로 이어지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던 합의가 오히려 새로운 문제의 씨앗이 되는 역설을 보여 줍니다.

묵상

자원이 부족해지면 나누는 방식을 새로 정해야 할 때가 있지요. 그렇게 정한 경계가 나중에 오히려 다툼의 씨앗이 된 경험이 있나요? 처음 정할 때 무엇을 더 살폈더라면 좋았을지 천천히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그때 성급한 성질의 어떤 뭇 삶이 자기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 않은 채로 가져다 먹었느니라.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말하였느니라. ‘그대는 나쁜 짓을 하였다, 벗이여. 자기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 않은 채로 가져다 먹다니.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 벗이여.’ ‘그리하겠습니다, 여러분.’ 그 뭇 삶은 그들에게 그렇게 대답하였느니라.”

Atha kho, vāseṭṭha, aññataro satto lolajātiko sakaṁ bhāgaṁ parirakkhanto aññataraṁ bhāgaṁ adinnaṁ ādiyitvā paribhuñji. Tamenaṁ aggahesuṁ, gahetvā etadavocuṁ: ‘pāpakaṁ vata, bho satta, karosi, yatra hi nāma sakaṁ bhāgaṁ parirakkhanto aññataraṁ bhāgaṁ adinnaṁ ādiyitvā paribhuñjasi. Māssu, bho satta, punapi evarūpamakāsī’ti. ‘Evaṁ, bho’ti kho, vāseṭṭha, so satto tesaṁ sattānaṁ paccassos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경계를 세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도둑질이 벌어집니다. 앞서 첫 갈애(11.9)를 낸 존재도 "성급한 성질"이었다는 같은 표현이 여기서 되풀이되어, 도둑질 또한 갈애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임을 암시합니다. 사람들은 아직 벌을 주지 않고 말로 타이르며 다짐만 받는데, 이 관용이 다음 절에서 세 번째 반복 뒤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면서 처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묵상

누군가 잘못을 했을 때 처음에는 말로 타이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 관용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관용과 방치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지도 천천히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그런데 그 뭇 삶은 두 번째에도 … 세 번째에도 자기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 않은 채로 가져다 먹었느니라.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다시 말하였느니라. ‘그대는 나쁜 짓을 하였다, 벗이여. 자기 몫은 지키면서 남의 몫을 주지 않은 채로 가져다 먹다니.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 벗이여.’”

Dutiyampi kho, vāseṭṭha, so satto …pe… … tatiyampi kho, vāseṭṭha, so satto sakaṁ bhāgaṁ parirakkhanto aññataraṁ bhāgaṁ adinnaṁ ādiyitvā paribhuñji. Tamenaṁ aggahesuṁ, gahetvā etadavocuṁ: ‘pāpakaṁ vata, bho satta, karosi, yatra hi nāma sakaṁ bhāgaṁ parirakkhanto aññataraṁ bhāgaṁ adinnaṁ ādiyitvā paribhuñjasi. Māssu, bho satta, punapi evarūpamakāsī’t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같은 존재가 두 번째, 세 번째로 도둑질을 되풀이합니다. 원문은 두 번째 반복을 "…pe…"로 줄이고 세 번째부터 다시 온전한 문장으로 서술하므로, 이 카드도 그 표시를 그대로 살렸습니다. 두 번은 말로 타일렀지만 세 번째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자, 말로 하는 타이름의 한계가 뚜렷이 드러나고, 다음 절에서는 마침내 말이 아니라 매질이 등장하며 처벌의 수위가 한 단계 높아집니다.

묵상

타이르는 말만으로는 멈추지 않는 행동을 본 적이 있나요? 그럴 때 다음 단계로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끼셨는지, 그 판단이 쉽지 않았다면 무엇이 가장 망설여졌는지도 천천히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그러자 사람들은 어떤 이는 주먹으로, 어떤 이는 돌로, 어떤 이는 몽둥이로 그를 때렸느니라. 바세타여, 바로 이날부터 도둑질이 나타났고, 비난이 나타났고, 거짓말이 나타났고, 몽둥이를 드는 일이 나타났느니라.”

Aññe pāṇinā pahariṁsu, aññe leḍḍunā pahariṁsu, aññe daṇḍena pahariṁsu. Tadagge kho, vāseṭṭha, adinnādānaṁ paññāyati, garahā paññāyati, musāvādo paññāyati, daṇḍādānaṁ paññāyati.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말로 타이르던 것이 마침내 물리적 처벌로 바뀌는 순간이며, 이 절의 마지막 문장이 이 대목 전체의 결론입니다. 도둑질·비난·거짓말·몽둥이질, 이 네 가지가 "바로 이날부터" 나타났다는 표현은 이것들이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생겨난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인간 사회의 문제들이 하나의 사건에서 연쇄적으로 파생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 네 가지 문제가 다음 절에서 "재판관"을 세우는 계기가 됩니다.

묵상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어떤 갈등의 해결 방식이, 사실은 특정한 사건에서 비롯되어 굳어진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나요? 그 방식이 지금도 최선인지 다시 물어보아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