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세타여, 왕족도 몸으로 나쁜 짓을 하고 말로 나쁜 짓을 하고 마음으로 나쁜 짓을 하며 삿된 견해를 지니고 삿된 견해에 따른 행위를 받아들이면,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에 태어나느니라.
바라문도, 평민도, 천민도, 사문도 마찬가지니라.”
14. Duccaritādikathā Khattiyopi kho, vāseṭṭha, kāyena duccaritaṁ caritvā vācāya duccaritaṁ caritvā manasā duccaritaṁ caritvā micchādiṭṭhiko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o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ahetu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왕족·바라문·평민·천민·사문이라는 다섯 무리의 유래를 모두 밝힌 뒤, 이제 그 유래와 무관하게 적용되는 원리로 넘어갑니다. 원문의 "14. 나쁜 행위에 대한 이야기"라는 소제목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몸·말·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와 삿된 견해가 어느 무리에서 나왔든 똑같이 나쁜 곳에 태어나는 과보로 이어진다는 것이 핵심이며, 원문은 왕족의 경우를 온전히 서술한 뒤 나머지 넷은 "…pe…"로 줄여 같은 말을 되풀이합니다.
묵상
어떤 결과가 그 사람의 출신이나 배경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람이 실제로 한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것이, 지금 나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그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순간도 있을까요?
“바세타여, 왕족도 몸으로 좋은 일을 하고 말로 좋은 일을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며 바른 견해를 지니고 바른 견해에 따른 행위를 받아들이면,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나느니라.
바라문도, 평민도, 천민도, 사문도 마찬가지니라.”
Khattiyopi kho, vāseṭṭha, kāyena sucaritaṁ caritvā vācāya sucaritaṁ caritvā manasā sucaritaṁ caritvā sammādiṭṭhiko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o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ahetu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앞 카드와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자리입니다. 몸·말·마음으로 짓는 좋은 행위와 바른 견해가 다섯 무리 모두에서 똑같이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나는 과보로 이어집니다. 지옥으로 이끄는 조건과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이 구조가 업의 원리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나쁜 행위(앞 카드)와 좋은 행위(이 카드)가 나란히 놓이면서, 다음 카드의 "행위가 뒤섞인 경우"로 이어집니다.
묵상
좋은 결과도 나쁜 결과와 똑같이 태생이 아니라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지금의 노력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 노력을 앞으로 어떻게 이어가고 싶은지도 헤아려 보아도 좋아요.
“바세타여, 왕족도 몸으로 두 가지를 행하고 말로 두 가지를 행하고 마음으로 두 가지를 행하며 뒤섞인 견해를 지니고 뒤섞인 견해에 따른 행위를 받아들이면,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겪게 되느니라.
바라문도, 평민도, 천민도, 사문도 마찬가지니라.”
Khattiyopi kho, vāseṭṭha, kāyena dvayakārī, vācāya dvayakārī, manasā dvayakārī, vimissadiṭṭhiko vimissadiṭṭhikammasamādāno vimissadiṭṭhikammasamādānahetu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khadukkhappaṭisaṁvedī hoti. …
디가 니까야 DN 27 세상의 기원경 (Aggaññasutta) 배경
나쁜 행위와 좋은 행위에 이어 세 번째 경우, 곧 둘이 뒤섞인 행위를 다룹니다. 실제 삶에서는 순전히 나쁘거나 순전히 좋은 경우보다 이렇게 뒤섞인 경우가 더 흔하다는 점에서, 이 카드는 앞의 두 극단적 사례보다 오히려 더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이로써 다섯 무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세 가지 경우(나쁨·좋음·뒤섞임)가 완성되고, 다음 절부터는 이 뒤섞임을 넘어서는 길이 제시됩니다.
묵상
완전히 좋지도 완전히 나쁘지도 않은, 뒤섞인 행위들로 이루어진 자신의 하루를 떠올려 보면 어떤가요? 그 뒤섞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무엇이 시작될 수 있을까요? 애써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