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것을 본 것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본 것을 생각하고, 본 것에서 생각하고, 본 것으로부터 생각하고,
‘본 것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본 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diṭṭhato sañjānāti; diṭṭhaṁ diṭṭhato saññatvā diṭṭhaṁ maññati, diṭṭhasmiṁ maññati, diṭṭhato maññati, diṭṭhaṁ meti maññati, diṭṭh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무색의 경지들을 마친 뒤, 이 편부터는 하늘 세계나 깊은 선정이 아니라 누구나 매 순간 겪는 감각의 영역으로 내려옵니다. "본 것"은 눈으로 본 모든 것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멀고 특별한 대상에서 시작한 이 경이 이제 일상의 가장 가까운 경험으로 돌아오는 것은, 문제의 뿌리가 특별한 경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봄에도 똑같이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묵상
방금 눈에 들어온 것 하나를 떠올려 보면, 그것을 보는 것과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 사이에 아주 짧은 틈이 있었을까요? 답이 없다고 느껴져도 그대로 괜찮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들은 것을 들은 것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들은 것을 생각하고, 들은 것에서 생각하고, 들은 것으로부터 생각하고,
‘들은 것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들은 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utaṁ sutato sañjānāti; sutaṁ sutato saññatvā sutaṁ maññati, sutasmiṁ maññati, sutato maññati, sutaṁ meti maññati, sut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본 것에 이어 들은 것, 곧 귀로 들은 모든 것으로 넘어갑니다. 전통적으로 "본 것·들은 것·느낀 것·안 것"은 감각으로 알려지는 모든 경험을 남김없이 아우르는 네 갈래로 함께 묶여 쓰입니다. 이 경은 그 넷을 하나씩 따로 짚어, 어느 감각의 문을 통해 들어오든 인식에서 생각으로, 다시 '내 것'으로 번지는 흐름이 똑같음을 보입니다. 다음 편에서 같은 흐름이 다른 대상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귀에 들려온 소리 하나가 마음에 오래 남아 계속 생각하게 된 적이 있으신가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느낀 것을 느낀 것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느낀 것을 생각하고, 느낀 것에서 생각하고, 느낀 것으로부터 생각하고,
‘느낀 것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느낀 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Mutaṁ mutato sañjānāti; mutaṁ mutato saññatvā mutaṁ maññati, mutasmiṁ maññati, mutato maññati, mutaṁ meti maññati, mut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들은 것에 이어 느낀 것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느낀 것"은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닿아 느낀 것을 모두 아우르는 말입니다. 본 것·들은 것에 이어 세 번째로 같은 짜임이 되풀이되면서, 다섯 가지 몸의 감각 가운데 어느 것을 통해서든 똑같은 흐름이 일어난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입니다. 대상만 바뀔 뿐 다섯 단계의 짜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묵상
냄새나 맛, 몸에 닿는 느낌 가운데 유독 '좋다' 또는 '싫다'는 생각이 빨리 따라붙는 감각이 있으신가요?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안 것을 안 것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안 것을 생각하고, 안 것에서 생각하고, 안 것으로부터 생각하고,
‘안 것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안 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Viññātaṁ viññātato sañjānāti; viññātaṁ viññātato saññatvā viññātaṁ maññati, viññātasmiṁ maññati, viññātato maññati, viññātaṁ meti maññati, viññāt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본 것·들은 것·느낀 것에 이어 마음으로 안 것으로 넘어가며,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가 마무리됩니다. "안 것"은 다섯 가지 몸의 감각을 거치지 않고 마음으로 곧바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기억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눈·귀·코·혀·몸의 다섯 감각에 마음까지 더해짐으로써, 사람이 세상을 알아 가는 여섯 통로 전부가 이 흐름에서 예외가 아님이 확인됩니다. 다음 편에서 같은 흐름이 다른 대상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몸의 감각을 거치지 않고 마음속에 곧바로 떠오른 생각에도, 똑같이 '내 것'이라는 무게가 실릴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답이 없다고 느껴져도 그대로 괜찮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됨을 하나됨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하나됨을 생각하고, 하나됨에서 생각하고, 하나됨으로부터 생각하고,
‘하나됨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하나됨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Ekattaṁ ekattato sañjānāti; ekattaṁ ekattato saññatvā ekattaṁ maññati, ekattasmiṁ maññati, ekattato maññati, ekattaṁ meti maññati, ekatt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것들을 마친 뒤, 이 편부터는 감각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이 세상을 묶어 보는 방식, 곧 개념의 갈래로 넘어갑니다. "하나됨"은 여러 선정에서 마음이 온갖 것을 하나로 통합해 보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이런 추상적인 관념조차 똑같이 인식되고 생각되고 내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 이 편의 요점입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입니다.
묵상
여러 가지가 하나로 통합된 것 같은 느낌, 이를테면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조차 붙잡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럿됨을 여럿됨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여럿됨을 생각하고, 여럿됨에서 생각하고, 여럿됨으로부터 생각하고,
‘여럿됨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여럿됨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ānattaṁ nānattato sañjānāti; nānattaṁ nānattato saññatvā nānattaṁ maññati, nānattasmiṁ maññati, nānattato maññati, nānattaṁ meti maññati, nānatt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하나됨과 정확히 짝을 이루는 개념인 여럿됨으로 넘어갑니다. 온갖 것을 하나로 보는 관념과 온갖 것을 서로 다르게 나누어 보는 관념, 이 서로 반대되는 두 관념이 나란히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어느 쪽으로 세상을 보든 - 모두를 하나로 보든 낱낱이 다르게 보든 - 그 봄 자체가 다시 붙잡음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대상만 바뀔 뿐 다섯 단계의 짜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묵상
세상을 '다 다르다'고 보는 시각과 '결국 하나'라고 보는 시각, 둘 다 나름의 매력이 있으면서도 둘 다 붙잡힐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오시나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모든 것에서 생각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생각하고,
‘모든 것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모든 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abbaṁ sabbato sañjānāti; sabbaṁ sabbato saññatvā sabbaṁ maññati, sabbasmiṁ maññati, sabbato maññati, sabbaṁ meti maññati, sabb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하나됨·여럿됨에 이어, 이 모두를 아우르는 가장 넓은 개념인 '모든 것'으로 넘어갑니다. 지금까지 다룬 스물세 갈래 하나하나가 사실은 이 '모든 것' 안에 포함되는 낱낱의 예시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넓은 이 개념마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다음 편의 마지막 갈래인 열반만이 유일하게 남게 됩니다. 다음 편에서 같은 흐름이 다른 대상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모든 것'이라는 말 자체를 붙잡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도 결국 하나의 생각이라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