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1

인용된 가르침 60구절

이 경을 13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들어가는 말 - 모든 것의 근본을 가르치리라 1구절

세존께서 웃깟타의 살나무 숲에서 비구들에게 모든 것의 근본에 관한 법문을 예고하십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느니라. 한때 세존께서 웃깟타의 수바가 숲, 살나무 아래에 계셨느니라. 그곳에서 세존께서 수행자들을 부르셨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세존이시여’라고 수행자들은 대답하였느니라.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모든 것의 근본에 관한 가르침을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수행자들은 대답하였느니라.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ukkaṭṭhāyaṁ viharati subhagavane sālarājamūl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sabbadhammamūlapariyāyaṁ vo, bhikkhave, desessāmi. Taṁ suṇātha, sādhukaṁ manasi karotha, bhāsissāmī”ti. “Evaṁ,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이 경의 첫머리로, 세존께서 웃깟타의 살나무 아래에서 수행자들을 부르시고 앞으로 설할 법문을 미리 알리시는 대목입니다. "모든 것의 근본에 관한 법문"이라는 예고는 이 경 전체가 다룰 주제, 곧 인식이 땅에서 열반까지 스물네 갈래를 두고 어떻게 갈라지는지를 미리 알려 줍니다. 부르심과 대답이 두 번 되풀이되는 것은 니까야에서 중요한 법문을 시작할 때 흔히 쓰이는 격식으로, 듣는 이의 주의를 온전히 모으기 위함입니다. 이 예고 뒤로 여덟 겹의 되풀이되는 가르침이 시작됩니다.

묵상

누군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미리 알리면, 그 말을 듣기 전부터 마음이 다르게 준비되는 것을 느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금 이 경을 읽는 마음도 그렇게 한번 가다듬어 보시겠어요?

2 아직 배우지 못한 이는 땅·물·불·바람을 내 것이라 여긴다 4구절

배우지 못한 범부가 땅·물·불·바람을 인식한 뒤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자기 것으로 여기는 과정을 보입니다.

‘수행자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뵙지 못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서투르며 그에 이끌리지 않고, 참사람들을 뵙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서투르며 그에 이끌리지 않아, 땅을 땅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땅을 생각하고, 땅에서 생각하고, 땅으로부터 생각하고, ‘땅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땅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Idha,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ariyānaṁ adassāvī ariyadhammassa akovido ariyadhamme avinīto, sappurisānaṁ adassāvī sappurisadhammassa akovido sappurisadhamme avinīto— pathaviṁ pathavito sañ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saññatvā pathaviṁ maññati, pathaviyā maññati, pathavito maññati, pathaviṁ meti maññati, pathavi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이 경의 본론이 시작되는 첫 편으로, 배우지 못한 범부를 규정하는 여섯 겹의 부정(성자·참사람을 뵙지 못함, 그 가르침에 서투름, 그에 이끌리지 않음)이 여기서 딱 한 번 나온 뒤, 이어지는 스물세 갈래에서는 되풀이되지 않고 생략됩니다. "인식하다(sañjānāti)"에서 "생각하다(maññati)"로 넘어가는 움직임이 핵심입니다 -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놓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생각을 보태는 순간 문제가 시작됩니다. "내 것"이라는 생각과 "기뻐함"이 그 생각의 마지막 두 단계입니다.

묵상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본 뒤에, 곧바로 '이건 내 것이다' 혹은 '이게 좋다'는 생각이 따라붙는 순간을 알아차려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물을 물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물을 생각하고, 물에서 생각하고, 물로부터 생각하고, ‘물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물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paṁ āpato sañjānāti; āpaṁ āpato saññatvā āpaṁ maññati, āpasmiṁ maññati, āpato maññati, āpaṁ meti maññati, āp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앞 편과 똑같은 짜임이 물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앞 편에서 밝힌 범부를 규정하는 여섯 겹의 부정은 여기서부터 생략되지만, 같은 범부를 두고 하는 말임은 변함없습니다. 인식(사실 그대로 앎)에서 생각(보태어 헤아림)으로, 다시 '내 것'이라는 생각과 기뻐함으로 이어지는 다섯 단계가 땅에 이어 두 번째로 되풀이됩니다. 이 경은 이런 식으로 같은 형식을 스물네 갈래에 걸쳐 되풀이하며, 그 대상만 바뀌어 갑니다.

묵상

물처럼 흔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도 '내 것'이라는 생각이 슬며시 따라붙을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서두르지 않고 한번 천천히 떠올려 보셔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불을 불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불을 생각하고, 불에서 생각하고, 불로부터 생각하고, ‘불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불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Tejaṁ tejato sañjānāti; tejaṁ tejato saññatvā tejaṁ maññati, tejasmiṁ maññati, tejato maññati, tejaṁ meti maññati, tej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땅과 물에 이어 불에도 같은 다섯 단계가 되풀이됩니다. 이 경은 예로부터 세상을 이루는 네 가지 요소로 꼽혀 온 땅·물·불·바람을 첫머리에 나란히 놓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가장 근본적이라 여기던 물질의 갈래에서부터 인식이 어떻게 생각으로 번지는지를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다음 편의 바람으로 네 가지 요소가 마무리됩니다. 다음 편에서 같은 흐름이 다른 대상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뜨겁거나 강렬한 것을 마주했을 때, 그것에 대한 생각이 유독 빨리 자리 잡는다고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그 빠르기 자체를 판단 없이 가만히 지켜보셔도 좋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바람을 바람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바람을 생각하고, 바람에서 생각하고, 바람으로부터 생각하고, ‘바람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바람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Vāyaṁ vāyato sañjānāti; vāyaṁ vāyato saññatvā vāyaṁ maññati, vāyasmiṁ maññati, vāyato maññati, vāyaṁ meti maññati, vāy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땅·물·불에 이어 바람으로 네 가지 요소에 대한 설명이 마무리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마저 인식되는 즉시 생각의 대상이 되고 '내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이 다섯 단계의 흐름이 대상의 성질과 무관하게 똑같이 작동함을 보여 줍니다. 다음 편부터는 물질의 요소를 벗어나 존재들과 신들의 갈래로 넘어갑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입니다.

묵상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도 '내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오늘 한 번 떠올려 보시겠어요? 답을 찾지 못해도 그대로 괜찮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3 아직 배우지 못한 이가 자기 것으로 여기는 존재와 신들 8구절

존재들과 여러 하늘 존재들에 이르기까지, 범부가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자기 것으로 여기는 여덟 갈래를 보입니다.

존재들을 존재들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존재들을 생각하고, 존재들에서 생각하고, 존재들로부터 생각하고, ‘존재들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존재들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Bhūte bhūtato sañjānāti; bhūte bhūtato saññatvā bhūte maññati, bhūtesu maññati, bhūtato maññati, bhūte meti maññati, bhūte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땅·물·불·바람이라는 네 가지 물질의 요소를 마친 뒤, 이 편부터는 살아 있는 존재들과 하늘 존재들의 갈래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존재들"은 특정한 무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것들 전반을 가리키는 넓은 말입니다. 같은 다섯 단계(인식-생각-내 것-기뻐함-까닭)가 이번에는 물질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들을 향해 되풀이되는데, 이는 자기 것으로 여기는 마음이 무생물과 생물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작동함을 보여 줍니다.

묵상

다른 생명들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 어떤 판단이나 감정을 얹어 보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시나요? 오늘 하루 한 번쯤 가만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은 그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신들을 신들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신들을 생각하고, 신들에서 생각하고, 신들로부터 생각하고, ‘신들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신들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Deve devato sañjānāti; deve devato saññatvā deve maññati, devesu maññati, devato maññati, deve meti maññati, deve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존재들에 이어 신들(하늘 세계의 존재들)로 넘어갑니다. 고대 인도의 우주관에서 신들은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고 큰 힘을 지닌 존재로 여겨졌지만, 이 경은 그런 신들조차 인식되는 순간 똑같이 생각의 대상이 되고 '내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봅니다. 다음 세 편에서는 이 신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이름난 존재들(빠자빠띠·범천)과 하늘 세계의 단계들(광음천·변정천·광과천)로 하나씩 좁혀 들어가며, 대상이 좁혀질수록 애착의 결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함께 드러납니다.

묵상

크고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존재나 지위 앞에서도, 그것을 향한 마음이 결국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답이 없다고 느껴져도 그대로 괜찮습니다.

빠자빠띠를 빠자빠띠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빠자빠띠를 생각하고, 빠자빠띠에서 생각하고, 빠자빠띠로부터 생각하고, ‘빠자빠띠는 내 것’이라 생각하며, 빠자빠띠를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Pajāpatiṁ pajāpatito sañjānāti; pajāpatiṁ pajāpatito saññatvā pajāpatiṁ maññati, pajāpatismiṁ maññati, pajāpatito maññati, pajāpatiṁ meti maññati, pajāpati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신들 가운데서도 이름이 밝혀진 첫 번째 존재, 빠자빠띠로 넘어갑니다. 빠자빠띠는 고대 인도 우주관에서 여러 존재를 주관한다고 여겨지던 하늘 존재의 이름입니다. 일반적인 신들에서 이렇게 이름난 특정한 하늘 존재로 좁혀지는 것은, 대상이 구체적이고 특별할수록 그것을 향한 애착도 더 강해질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보다 한층 더 존귀하게 여겨지던 범천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묵상

이름이 알려진 특별한 존재나 자리일수록, 그것에 대한 마음이 더 강하게 붙잡히는 것 같으신가요? 그렇다면 그 강도의 차이를 오늘 한번 가만히 느껴 보시겠어요?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범천을 범천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범천을 생각하고, 범천에서 생각하고, 범천으로부터 생각하고, ‘범천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범천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Brahmaṁ brahmato sañjānāti; brahmaṁ brahmato saññatvā brahmaṁ maññati, brahmasmiṁ maññati, brahmato maññati, brahmaṁ meti maññati, brahm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빠자빠띠에 이어 범천으로 넘어갑니다. 범천은 고대 인도 우주관에서 세상을 만들었다고 여겨질 만큼 존귀한 하늘 존재였으며, 당시 사람들에게는 궁극에 가까운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경은 바로 그런 최고의 존재조차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인식되는 순간 생각이 따라붙고 '내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땅이나 물과 똑같습니다. 다음 세 편에서는 범천이 머무는 하늘 세계의 단계들로 하나씩 이어집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가장 존귀하고 완전하게 느껴지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인식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셔도 괜찮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좋습니다.

광음천을 광음천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광음천을 생각하고, 광음천에서 생각하고, 광음천으로부터 생각하고, ‘광음천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광음천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bhassare ābhassarato sañjānāti; ābhassare ābhassarato saññatvā ābhassare maññati, ābhassaresu maññati, ābhassarato maññati, ābhassare meti maññati, ābhassare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범천에 이어, 몸에서 빛이 흘러나온다고 하는 하늘 세계인 광음천으로 넘어갑니다. 불교 우주관에서 광음천은 범천보다 더 높은 선정의 경지에 상응하는 하늘 세계로 여겨집니다. 세상이 무너질 때 살아남은 존재들이 이 하늘에 다시 태어난다는 전승도 있을 만큼 특별하게 여겨지는 곳이지만, 이 경의 판정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상만 바뀔 뿐 다섯 단계의 짜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묵상

더 높고 특별하다고 알려진 경지일수록, 그곳에 이르고 싶은 마음 자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이르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조급하게 몰아세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변정천을 변정천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변정천을 생각하고, 변정천에서 생각하고, 변정천으로부터 생각하고, ‘변정천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변정천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ubhakiṇhe subhakiṇhato sañjānāti; subhakiṇhe subhakiṇhato saññatvā subhakiṇhe maññati, subhakiṇhesu maññati, subhakiṇhato maññati, subhakiṇhe meti maññati, subhakiṇhe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광음천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두루 청정하다고 하는 하늘 세계인 변정천으로 넘어갑니다. 이 경은 하늘 세계의 단계를 하나씩 밟아 올라가며 같은 판정을 되풀이하는데, 이렇게 단계를 촘촘히 나누어 보이는 것은 아무리 청정하고 높은 경지라도 예외가 없음을 하나하나 확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다음 편에서 같은 흐름이 다른 대상으로 이어집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입니다.

묵상

'두루 청정하다'는 말이 주는 느낌과, 그 청정함마저 붙잡으려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사이에 어떤 거리가 있을까요?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광과천을 광과천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광과천을 생각하고, 광과천에서 생각하고, 광과천으로부터 생각하고, ‘광과천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광과천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Vehapphale vehapphalato sañjānāti; vehapphale vehapphalato saññatvā vehapphale maññati, vehapphalesu maññati, vehapphalato maññati, vehapphale meti maññati, vehapphale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불교 우주관에서 물질 세계 가운데 가장 높은 하늘로 꼽히는, 넓은 결실이 있다는 광과천으로 넘어갑니다. 땅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오면서 대상은 점점 미묘하고 고귀해졌지만, 다섯 단계의 짜임은 처음 그대로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목록에서 가장 뜻이 분명치 않은 존재인 '정복자'로 넘어갑니다. 대상만 바뀔 뿐 다섯 단계의 짜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음 편에서 같은 흐름이 다른 대상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가장 좋은 결실을 낳는다고 여겨지는 상태조차 아직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시나요? 실망스러움과 안도감이 함께 있어도 괜찮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정복자를 정복자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정복자를 생각하고, 정복자에서 생각하고, 정복자로부터 생각하고, ‘정복자는 내 것’이라 생각하며, 정복자를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Abhibhuṁ abhibhuto sañjānāti; abhibhuṁ abhibhuto saññatvā abhibhuṁ maññati, abhibhusmiṁ maññati, abhibhuto maññati, abhibhuṁ meti maññati, abhibhu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정복자(아비부)'로 옮긴 이 대목은 전통적으로도 정확한 정체가 분명치 않은 자리입니다. 문자 그대로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자'라는 뜻이며, 다른 경에서는 신통력으로 범천의 세계까지 이르렀다는 한 존자의 이름으로도 나옵니다. 정확히 누구를 가리키든, 이 목록에서 하는 역할은 같습니다 - 압도적이고 특별한 자기 이미지조차 다르지 않은 인식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신들의 갈래가 마무리되고, 다음 편부터는 네 가지 무색의 경지로 넘어갑니다.

묵상

스스로를 '남들보다 낫다' 혹은 '모든 것을 넘어섰다'고 여기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다면, 그 마음도 가만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탓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4 모습 없는 네 경지마저 내 것이라 여기는 마음 4구절

무한한 허공부터 지각도 아니고 지각 아님도 아닌 경지까지, 범부가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자기 것으로 여기는 과정을 보입니다.

무한한 허공의 경지를 무한한 허공의 경지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에서 생각하고, 그것으로부터 생각하고, ‘무한한 허공의 경지는 내 것’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kāsānañcāyatanaṁ ākāsānañcāyatanato sañjānāti; ākāsānañcāyatanaṁ ākāsānañcāyatanato saññatvā ākāsānañcāyatanaṁ maññati, ākāsānañcāyatanasmiṁ maññati, ākāsānañcāyatanato maññati, ākāsānañcāyatanaṁ meti maññati, ākāsānañcāyatan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물질 세계의 하늘들을 마친 뒤, 이 편부터는 물질을 아예 벗어난 네 가지 무색의 경지로 넘어갑니다. 무한한 허공의 경지는 깊은 선정을 통해 도달하는, 물질에 대한 지각을 완전히 넘어선 경지입니다. 앞서 다룬 물질 세계의 신들보다 훨씬 미묘한 이 경지조차 똑같은 다섯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이 경이 스물네 갈래를 이렇게까지 촘촘히 나누어 보이는 이유입니다.

묵상

아주 광활하고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상태에도 '내 것'이라는 생각이 스밀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오늘은 그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답이 없다고 느껴져도 그대로 괜찮습니다.

무한한 의식의 경지를 무한한 의식의 경지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에서 생각하고, 그것으로부터 생각하고, ‘무한한 의식의 경지는 내 것’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Viññāṇañcāyatanaṁ viññāṇañcāyatanato sañjānāti; viññāṇañcāyatanaṁ viññāṇañcāyatanato saññatvā viññāṇañcāyatanaṁ maññati, viññāṇañcāyatanasmiṁ maññati, viññāṇañcāyatanato maññati, viññāṇañcāyatanaṁ meti maññati, viññāṇañcāyatan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무한한 허공의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야 이르는 무한한 의식의 경지로 넘어갑니다. 대상이 허공에서 의식 그 자체로 바뀌었을 뿐, 인식하고 생각하고 내 것으로 여기고 기뻐하는 다섯 단계는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의식 그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이 경지마저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무엇을 붙잡든 붙잡는 마음의 움직임 자체가 문제의 뿌리임을 암시합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입니다.

묵상

마음 그 자체가 넓게 열려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그것을 붙잡고 싶어지는 마음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 보셨나요?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좋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아무것도 없는 경지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에서 생각하고, 그것으로부터 생각하고, ‘아무것도 없는 경지는 내 것’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kiñcaññāyatanaṁ ākiñcaññāyatanato sañjānāti; ākiñcaññāyatanaṁ ākiñcaññāyatanato saññatvā ākiñcaññāyatanaṁ maññati, ākiñcaññāyatanasmiṁ maññati, ākiñcaññāyatanato maññati, ākiñcaññāyatanaṁ meti maññati, ākiñcaññāyatan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무한한 의식의 경지를 넘어선, 아무것도 없다고 지각하는 경지로 넘어갑니다. 얼핏 '아무것도 없다'는 지각이야말로 더 붙잡을 것이 없는 상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경은 바로 그 지각조차 인식하고 생각하고 내 것으로 여기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짚습니다. 텅 빈 지각과 실제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을 이 편이 보여 줍니다. 대상만 바뀔 뿐 다섯 단계의 짜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묵상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조차 하나의 대상이 되어 붙잡힐 수 있다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떠신가요?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를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에서 생각하고, 그것으로부터 생각하고, ‘그 경지는 내 것’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to sañjānā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to saññatv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mañña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miṁ mañña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to mañña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meti mañña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네 가지 무색의 경지 가운데 가장 미묘한, 지각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경지로 마무리됩니다. 불교 전통에서 인정하는 가장 높은 선정의 경지이지만, 이 경의 판정은 땅을 다룬 첫 편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로써 물질 세계와 무색의 세계를 통틀어 열여덟 갈래가 모두 같은 판정을 받았고, 다음 편부터는 감각을 통해 알려지는 것들과 개념적인 갈래들로 넘어갑니다.

묵상

가장 미묘하고 규정하기 어려운 상태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지금 마음에 어떤 안도감이나 막막함을 주시나요?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5 본 것·들은 것·느낀 것·안 것, 그리고 하나됨·여럿됨·모든 것 7구절

감각을 통해 알려지는 것들과 하나됨·여럿됨·모든 것이라는 개념까지, 범부가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는 일곱 갈래를 보입니다.

본 것을 본 것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본 것을 생각하고, 본 것에서 생각하고, 본 것으로부터 생각하고, ‘본 것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본 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diṭṭhato sañjānāti; diṭṭhaṁ diṭṭhato saññatvā diṭṭhaṁ maññati, diṭṭhasmiṁ maññati, diṭṭhato maññati, diṭṭhaṁ meti maññati, diṭṭh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무색의 경지들을 마친 뒤, 이 편부터는 하늘 세계나 깊은 선정이 아니라 누구나 매 순간 겪는 감각의 영역으로 내려옵니다. "본 것"은 눈으로 본 모든 것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멀고 특별한 대상에서 시작한 이 경이 이제 일상의 가장 가까운 경험으로 돌아오는 것은, 문제의 뿌리가 특별한 경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봄에도 똑같이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묵상

방금 눈에 들어온 것 하나를 떠올려 보면, 그것을 보는 것과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 사이에 아주 짧은 틈이 있었을까요? 답이 없다고 느껴져도 그대로 괜찮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들은 것을 들은 것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들은 것을 생각하고, 들은 것에서 생각하고, 들은 것으로부터 생각하고, ‘들은 것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들은 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utaṁ sutato sañjānāti; sutaṁ sutato saññatvā sutaṁ maññati, sutasmiṁ maññati, sutato maññati, sutaṁ meti maññati, sut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본 것에 이어 들은 것, 곧 귀로 들은 모든 것으로 넘어갑니다. 전통적으로 "본 것·들은 것·느낀 것·안 것"은 감각으로 알려지는 모든 경험을 남김없이 아우르는 네 갈래로 함께 묶여 쓰입니다. 이 경은 그 넷을 하나씩 따로 짚어, 어느 감각의 문을 통해 들어오든 인식에서 생각으로, 다시 '내 것'으로 번지는 흐름이 똑같음을 보입니다. 다음 편에서 같은 흐름이 다른 대상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귀에 들려온 소리 하나가 마음에 오래 남아 계속 생각하게 된 적이 있으신가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느낀 것을 느낀 것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느낀 것을 생각하고, 느낀 것에서 생각하고, 느낀 것으로부터 생각하고, ‘느낀 것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느낀 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Mutaṁ mutato sañjānāti; mutaṁ mutato saññatvā mutaṁ maññati, mutasmiṁ maññati, mutato maññati, mutaṁ meti maññati, mut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들은 것에 이어 느낀 것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느낀 것"은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닿아 느낀 것을 모두 아우르는 말입니다. 본 것·들은 것에 이어 세 번째로 같은 짜임이 되풀이되면서, 다섯 가지 몸의 감각 가운데 어느 것을 통해서든 똑같은 흐름이 일어난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입니다. 대상만 바뀔 뿐 다섯 단계의 짜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묵상

냄새나 맛, 몸에 닿는 느낌 가운데 유독 '좋다' 또는 '싫다'는 생각이 빨리 따라붙는 감각이 있으신가요?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안 것을 안 것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안 것을 생각하고, 안 것에서 생각하고, 안 것으로부터 생각하고, ‘안 것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안 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Viññātaṁ viññātato sañjānāti; viññātaṁ viññātato saññatvā viññātaṁ maññati, viññātasmiṁ maññati, viññātato maññati, viññātaṁ meti maññati, viññāt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본 것·들은 것·느낀 것에 이어 마음으로 안 것으로 넘어가며,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가 마무리됩니다. "안 것"은 다섯 가지 몸의 감각을 거치지 않고 마음으로 곧바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기억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눈·귀·코·혀·몸의 다섯 감각에 마음까지 더해짐으로써, 사람이 세상을 알아 가는 여섯 통로 전부가 이 흐름에서 예외가 아님이 확인됩니다. 다음 편에서 같은 흐름이 다른 대상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몸의 감각을 거치지 않고 마음속에 곧바로 떠오른 생각에도, 똑같이 '내 것'이라는 무게가 실릴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답이 없다고 느껴져도 그대로 괜찮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됨을 하나됨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하나됨을 생각하고, 하나됨에서 생각하고, 하나됨으로부터 생각하고, ‘하나됨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하나됨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Ekattaṁ ekattato sañjānāti; ekattaṁ ekattato saññatvā ekattaṁ maññati, ekattasmiṁ maññati, ekattato maññati, ekattaṁ meti maññati, ekatt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것들을 마친 뒤, 이 편부터는 감각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이 세상을 묶어 보는 방식, 곧 개념의 갈래로 넘어갑니다. "하나됨"은 여러 선정에서 마음이 온갖 것을 하나로 통합해 보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이런 추상적인 관념조차 똑같이 인식되고 생각되고 내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 이 편의 요점입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입니다.

묵상

여러 가지가 하나로 통합된 것 같은 느낌, 이를테면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조차 붙잡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럿됨을 여럿됨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여럿됨을 생각하고, 여럿됨에서 생각하고, 여럿됨으로부터 생각하고, ‘여럿됨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여럿됨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ānattaṁ nānattato sañjānāti; nānattaṁ nānattato saññatvā nānattaṁ maññati, nānattasmiṁ maññati, nānattato maññati, nānattaṁ meti maññati, nānatt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하나됨과 정확히 짝을 이루는 개념인 여럿됨으로 넘어갑니다. 온갖 것을 하나로 보는 관념과 온갖 것을 서로 다르게 나누어 보는 관념, 이 서로 반대되는 두 관념이 나란히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어느 쪽으로 세상을 보든 - 모두를 하나로 보든 낱낱이 다르게 보든 - 그 봄 자체가 다시 붙잡음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대상만 바뀔 뿐 다섯 단계의 짜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묵상

세상을 '다 다르다'고 보는 시각과 '결국 하나'라고 보는 시각, 둘 다 나름의 매력이 있으면서도 둘 다 붙잡힐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오시나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모든 것에서 생각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생각하고, ‘모든 것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모든 것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abbaṁ sabbato sañjānāti; sabbaṁ sabbato saññatvā sabbaṁ maññati, sabbasmiṁ maññati, sabbato maññati, sabbaṁ meti maññati, sabb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하나됨·여럿됨에 이어, 이 모두를 아우르는 가장 넓은 개념인 '모든 것'으로 넘어갑니다. 지금까지 다룬 스물세 갈래 하나하나가 사실은 이 '모든 것' 안에 포함되는 낱낱의 예시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넓은 이 개념마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다음 편의 마지막 갈래인 열반만이 유일하게 남게 됩니다. 다음 편에서 같은 흐름이 다른 대상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모든 것'이라는 말 자체를 붙잡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도 결국 하나의 생각이라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6 아직 배우지 못한 이는 열반마저 내 것이라 여긴다 1구절

범부는 스물세 갈래를 지나 마지막으로 열반마저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자기 것으로 여깁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열반을 생각하고, 열반에서 생각하고, 열반으로부터 생각하고, ‘열반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열반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sañ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saññatvā nibbānaṁ maññati, nibbānasmiṁ maññati, nibbānato maññati, nibbānaṁ meti maññati, nibbān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땅에서 시작한 스물네 갈래의 마지막으로, 다름 아닌 열반이 놓입니다. 수행의 궁극이라 불리는 열반마저 범부에게는 그저 하나의 인식 대상이 되어 생각이 따라붙고 '내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 이 경 전체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점입니다.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같은 이유가 스물네 번째에도 똑같이 놓입니다. 이것이 범부를 기준으로 한 '첫 번째 방식'이며, 다음 편부터는 아직 배우는 중인 수행자를 기준으로 같은 스물네 갈래가 다시 펼쳐집니다.

묵상

가장 궁극적이라고 불리는 것조차 붙잡으려는 마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이상하게 들리시나요 아니면 어쩐지 이해가 되시나요? 답이 없다고 느껴져도 그대로 괜찮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7 아직 배우는 이는 땅을 직접 알아도 - 수행자의 스물네 갈래 5구절

위없는 평안을 얻고자 힘쓰는, 아직 배우는 이는 같은 스물네 갈래를 직접 알면서도 생각으로 번지지 않게 하라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위없는 평안을 얻고자 힘쓰며 머무는, 아직 배우는 이인 수행자, 그 수행자도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알고서 땅을 생각하지 말고, 땅에서 생각하지 말고,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말고,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땅을 기뻐하지 말지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Yopi so, bhikkhave, bhikkhu sekkho appattamānaso anuttaraṁ yogakkhemaṁ patthayamāno viharati, sopi pathaviṁ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mā maññi, pathaviyā mā maññi, pathavito mā maññi, pathaviṁ meti mā maññi, pathaviṁ mābhinandi. Taṁ kissa hetu? ‘Pariññeyy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범부를 기준으로 한 첫 번째 방식이 끝나고, 이제 아직 배우는 이(유학)를 기준으로 같은 스물네 갈래가 다시 펼쳐지는 두 번째 방식이 시작됩니다. "아직 배우는 이"란 수다원부터 아라한이 되기 바로 전 단계까지, 아직 닦을 것이 남은 이를 가리킵니다. 동사가 범부의 '인식하다'에서 '직접 알다'로 바뀌고, 뒤이어 오는 말도 '생각하며 기뻐한다'는 서술이 아니라 '생각하지 말고 기뻐하지 말라'는 금지로 바뀝니다. 아는 힘은 범부보다 깊어졌지만, 아직은 스스로 다짐하고 경계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뜻입니다.

묵상

무언가를 전보다 더 깊이 알게 되었을 때도, '이제부터 생각을 보태지 말아야지' 하고 스스로 다짐해야 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그 다짐이 얼마나 이어졌는지도 가만히 떠올려 보셔도 좋습니다.

물도 물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물을 물이라고 직접 알고서 물을 생각하지 말고, 물에서 생각하지 말고, 물로부터 생각하지 말고, ‘물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물을 기뻐하지 말지니라. 불도, 바람도, 존재들도, 신들도, 빠자빠띠도, 범천도, 광음천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paṁ …pe… tejaṁ … vāyaṁ … bhūte … deve … pajāpatiṁ … brahmaṁ … ābhassare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원문 스스로 되풀이를 줄이는 첫 대목입니다. 땅에서 이미 온전한 형식(직접 알고, 생각하지 말고, 기뻐하지 말라는 금지, 그리고 까닭)을 밝혔으므로, 물부터 광음천까지 여덟 갈래는 원문에서 낱말 하나와 줄임표(…pe…, …)만으로 처리됩니다. 이 편집자가 만든 생략이 아니라 원문 자체의 표기이며, 이 여덟 갈래 각각에 앞 편과 똑같은 문장 전체가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도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같은 말을 여덟 번 다시 듣지 않아도 이미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배움이 깊어졌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지금 그 느낌이 실제로 있는지 한번 가만히 확인해 보시겠어요? 없어도 괜찮습니다.

변정천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변정천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알고서 변정천을 생각하지 말고, 변정천에서 생각하지 말고, 변정천으로부터 생각하지 말고, ‘변정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변정천을 기뻐하지 말지니라. 광과천도, 정복자도, 무한한 허공의 경지도, 무한한 의식의 경지도,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ubhakiṇhe … vehapphale … abhibhuṁ … ākāsānañcāyatanaṁ … viññāṇañcāyatanaṁ … ākiñcaññāyatanaṁ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앞 편에 이어 하늘 세계의 나머지 단계와 정복자, 그리고 네 가지 무색의 경지까지 일곱 갈래가 같은 방식으로 줄여져 이어집니다. 가장 높다고 하는 선정의 경지들마저 땅과 똑같은 한 문장으로 처리되는 것은, 이 스물네 갈래 사이에 실제로는 아무런 위계가 없다는 것 - 어느 것이든 똑같이 직접 알고, 생각하지 말고, 기뻐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가장 높다고 여겨지는 경지조차 땅과 똑같이 취급된다는 것이, 지금 마음에 어떤 느낌을 주시나요? 서열을 매기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있었다면, 그것도 판단 없이 가만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본 것도 본 것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본 것을 본 것이라고 직접 알고서 본 것을 생각하지 말고, 본 것에서 생각하지 말고, 본 것으로부터 생각하지 말고, ‘본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본 것을 기뻐하지 말지니라. 들은 것도, 느낀 것도, 안 것도, 하나됨도, 여럿됨도, 모든 것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 sutaṁ … mutaṁ … viññātaṁ … ekattaṁ … nānattaṁ … sabb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와 개념적인 세 갈래까지, 나머지 일곱 갈래가 이 편에서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로써 땅부터 '모든 것'까지 스물세 갈래 모두가 아직 배우는 이를 기준으로 다루어졌고, 다음 편의 열반만이 남습니다. 일상의 감각(본 것·들은 것·느낀 것·안 것)과 가장 미묘한 개념(하나됨·여럿됨·모든 것)이 같은 한 줄로 나란히 놓이는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묵상

일상의 감각과 가장 추상적인 개념이 결국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진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둘 사이에 위아래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 줄 수도 있습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알고서 열반을 생각하지 말고, 열반에서 생각하지 말고, 열반으로부터 생각하지 말고,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열반을 기뻐하지 말지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abhi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ṁ mā maññi, nibbānasmiṁ mā maññi, nibbānato mā maññi, nibbānaṁ meti mā maññi, nibbānaṁ mābhinandi. Taṁ kissa hetu? ‘Pariññeyy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아직 배우는 이를 기준으로 한 두 번째 방식의 마지막 갈래, 열반입니다. 범부는 열반을 인식하고 생각하며 기뻐하였지만, 아직 배우는 이는 열반을 직접 알면서도 생각하지 말고 기뻐하지 말라는 금지를 받습니다. 아는 능력은 범부보다 훨씬 깊어졌으나, 그 앎을 다시 붙잡음으로 되돌리지 않도록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 자리에 아직 있다는 뜻입니다. 다음 편부터는 번뇌를 다한 이를 기준으로 세 번째 방식이 시작됩니다.

묵상

열반처럼 궁극적인 것마저 '아직은 붙잡지 말라'는 다짐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 수행의 길이 얼마나 섬세한지를 보여 주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8 완전히 알았기에 땅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다 5구절

아라한이 되어 번뇌를 다한 이는 같은 스물네 갈래를 직접 알면서도, 이미 완전히 알았기에 더 이상 생각으로 번지지 않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아라한이 되어 번뇌를 다하고, 청정한 삶을 살았으며, 할 일을 다 하였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목표를 이루었고, 존재의 족쇄를 없앴으며, 바른 지혜로 해탈한 수행자, 그 수행자도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땅을 생각하지 않으며, 땅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땅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Yopi so, bhikkhave, bhikkhu arahaṁ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ṁyojano sammadaññāvimutto, sopi pathaviṁ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ṁ meti na maññati, pathavi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아직 배우는 이를 기준으로 한 두 번째 방식이 끝나고, 이제 번뇌를 다한 이(아라한)를 기준으로 한 세 번째 방식이 시작됩니다. 아라한을 가리키는 이 일곱 겹의 표현(번뇌를 다함·청정한 삶·할 일을 다 함·짐을 내려놓음·목표를 이룸·족쇄를 없앰·바른 지혜로 해탈함)은 니까야 전체에서 아라한을 묘사할 때 정형구로 쓰이는 말입니다. 아직 배우는 이는 '생각하지 말라'는 금지를 받았지만, 아라한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있는 그대로의 서술로 바뀝니다. 까닭도 '완전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서 '완전히 알았기 때문'으로, 앞으로의 과제가 아니라 이미 이룬 사실이 됩니다.

묵상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고 느끼는 것과 이미 다 이루었다고 느끼는 것, 그 둘 사이의 마음가짐 차이를 떠올려 보면 어떠신가요? 지금 어느 쪽에 가까운지도 가만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물도 물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물을 생각하지 않으며, 물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물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물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불도, 바람도, 존재들도, 신들도, 빠자빠띠도, 범천도, 광음천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paṁ …pe… tejaṁ … vāyaṁ … bhūte … deve … pajāpatiṁ … brahmaṁ … ābhassare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번뇌를 다한 이를 기준으로 한 이 세 번째 방식에서도, 땅에서 이미 온전한 형식을 밝혔으므로 물부터 광음천까지 여덟 갈래는 원문 자체의 표기로 낱말과 줄임표만 남습니다. 아직 배우는 이를 다룬 앞 방식과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줄어드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 경이 여덟 겹 전체에 걸쳐 하나의 정해진 틀을 정확히 지키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생각하지 말라'는 금지가 '생각하지 않는다'는 서술로 바뀐 점은 다릅니다.

묵상

같은 틀이 여러 번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서, 지금 그 규칙성 자체에서 어떤 안정감이나 지루함이 느껴지시나요? 둘 다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으니 그대로 받아들이셔도 좋습니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변정천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변정천을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광과천도, 정복자도, 무한한 허공의 경지도, 무한한 의식의 경지도,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ubhakiṇhe … vehapphale … abhibhuṁ … ākāsānañcāyatanaṁ … viññāṇañcāyatanaṁ … ākiñcaññāyatanaṁ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앞 편에 이어 하늘 세계의 나머지 단계와 정복자, 네 가지 무색의 경지까지 일곱 갈래가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번뇌를 다한 이에게는 이런 높은 선정의 경지들마저 이미 완전히 알려진 것이어서, 굳이 다시 생각을 보탤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억누르거나 참는 것이 아니라, 다 알았기에 저절로 그렇게 되는 상태임을 뜻하며, 앞서 다룬 여덟 가지 선정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묵상

무언가를 억지로 참는 것과 이미 다 알아서 저절로 놓아지는 것, 이 둘의 차이를 실제로 느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직 그런 경험이 뚜렷하지 않다면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본 것도 본 것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들은 것도, 느낀 것도, 안 것도, 하나됨도, 여럿됨도, 모든 것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 sutaṁ … mutaṁ … viññātaṁ … ekattaṁ … nānattaṁ … sabb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와 개념적인 세 갈래까지, 나머지 일곱 갈래가 이 편에서 마무리됩니다. 이로써 번뇌를 다한 이를 기준으로 스물세 갈래가 모두 다루어졌고, 다음 편의 열반만이 남습니다. 일상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감각조차 아라한에게는 더 이상 생각을 보태는 계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목록이 실제로 뜻하는 바입니다. 가장 높은 경지와 가장 흔한 감각이 여기서 같은 자리에 놓입니다.

묵상

지금 눈앞에 보이거나 들리는 것에 아무 생각도 보태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둔다면, 어떤 느낌일지 잠깐 상상해 보시겠어요? 잘 안 되어도 괜찮으니 가볍게 시도해 보셔도 좋습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abhi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ṁ na maññati, nibbānasmiṁ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ṁ meti na maññati, nibbāna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번뇌를 다한 이를 기준으로 한 세 번째 방식의 마지막 갈래, 열반입니다. 아라한은 열반을 직접 알면서도 생각을 보태거나 '내 것'으로 여기거나 기뻐하지 않는데, 이는 열반에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이미 완전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부터는 같은 아라한을 기준으로 하되, 그 까닭을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소멸이라는 더 구체적인 말로 풀어내는 네 번째 방식이 이어집니다.

묵상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것 앞에서는 더 이상 애써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 지금 어떤 홀가분함으로 다가오시나요? 아직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도 그대로 괜찮습니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9 탐욕이 다했기에 땅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다 5구절

번뇌를 다한 이가 스물네 갈래를 생각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까닭을, 이번에는 탐욕이 다하고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라는 구체적인 말로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아라한이 되어 번뇌를 다하고, 청정한 삶을 살았으며 할 일을 다 하였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목표를 이루었고 족쇄를 없앴으며 바른 지혜로 해탈한 수행자, 그 수행자도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땅을 생각하지 않으며, 땅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땅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Yopi so, bhikkhave, bhikkhu arahaṁ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ṁyojano sammadaññā vimutto, sopi pathaviṁ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ṁ meti na maññati, pathavi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Khayā rāgassa, vītarāgattā.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번뇌를 다한 이를 기준으로 한 세 번째 방식에 이어, 같은 아라한을 기준으로 하되 까닭을 더 구체적으로 밝히는 네 번째 방식이 시작됩니다. 아라한을 가리키는 일곱 겹의 표현이 그대로 되풀이된 뒤, 앞서는 '완전히 알았기 때문'이라던 까닭이 이번에는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으로 구체화됩니다. 이는 앞선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안다는 것이 실제로는 탐욕의 소멸을 뜻한다는 것을 풀어서 밝히는 것입니다. 다음 두 방식에서는 성냄과 어리석음의 소멸이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무언가를 완전히 안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탐욕이 사라진다는 것이 사실은 같은 일일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지금 당장 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물도 물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물을 생각하지 않으며, 물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물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물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불도, 바람도, 존재들도, 신들도, 빠자빠띠도, 범천도, 광음천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paṁ …pe… tejaṁ … vāyaṁ … bhūte … deve … pajāpatiṁ … brahmaṁ … ābhassare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이 네 번째 방식에서도 물부터 광음천까지 여덟 갈래가 원문 자체의 줄임표로 압축됩니다. 앞선 두 방식과 자리는 똑같지만, 맺음말이 '완전히 알았기 때문'에서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으로 바뀌어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 경은 이렇게 형식은 그대로 두고 까닭만 정밀하게 갈아 끼우는 방식으로, 같은 진리를 여러 각도에서 비춥니다. 뒤이어 하늘 세계의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묵상

같은 사실을 다른 말로 다시 들을 때,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지금 당장 답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변정천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변정천을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광과천도, 정복자도, 무한한 허공의 경지도, 무한한 의식의 경지도,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ubhakiṇhe … vehapphale … abhibhuṁ … ākāsānañcāyatanaṁ … viññāṇañcāyatanaṁ … ākiñcaññāyatanaṁ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하늘 세계의 나머지 단계와 정복자, 네 가지 무색의 경지까지 일곱 갈래가 이어집니다. 가장 미묘한 선정의 경지에 대해서도 탐욕이 다했기 때문이라는 같은 까닭이 적용되는 것은, 아무리 고요한 경지라도 그것을 향한 탐욕이 남아 있다면 여전히 붙잡음이 일어날 수 있음을 거꾸로 보여 줍니다. 이는 다음 편의 감각 갈래에서도 똑같이 확인됩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묵상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 자체를 은근히 탐내는 마음이 있었는지, 오늘 한번 가만히 살펴보시겠어요? 있다면 있는 그대로 인정해 보셔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본 것도 본 것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들은 것도, 느낀 것도, 안 것도, 하나됨도, 여럿됨도, 모든 것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 sutaṁ … mutaṁ … viññātaṁ … ekattaṁ … nānattaṁ … sabb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와 개념적인 세 갈래로 네 번째 방식의 스물세 갈래가 마무리됩니다. 다음 편의 열반만이 남았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일상의 순간마다 탐욕이 낄 자리가 없다는 것은, 수행이 특별한 때가 아니라 매 순간의 감각 속에서 이루어짐을 보여 줍니다. 다음 편에서 이 네 번째 방식의 마지막 갈래, 열반이 이어집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묵상

지금 이 순간의 감각에 탐욕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는지, 판단하지 않고 그저 살펴보면 어떨까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abhi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ṁ na maññati, nibbānasmiṁ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ṁ meti na maññati, nibbāna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Khayā rāgassa, vītarāgattā.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네 번째 방식의 마지막 갈래, 열반입니다. 아라한이 열반을 생각으로 붙잡지 않는 것은 열반에 대한 탐욕마저 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편의 요점입니다. 다음 편부터는 같은 틀을 그대로 두고 까닭만 성냄의 소멸로 바꾼 다섯 번째 방식이 이어지며, 탐욕·성냄·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해로운 뿌리를 하나씩 짚어 나가는 흐름이 계속됩니다. 세 가지 해로운 뿌리 가운데 첫째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묵상

열반에 대한 탐욕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지금 이상하게 들리시나요 아니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다가오시나요? 어느 쪽이든 그대로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10 성냄이 다했기에 땅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다 5구절

번뇌를 다한 이가 스물네 갈래를 생각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까닭을, 이번에는 성냄이 다하고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라는 말로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아라한이 되어 번뇌를 다하고, 청정한 삶을 살았으며 할 일을 다 하였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목표를 이루었고 족쇄를 없앴으며 바른 지혜로 해탈한 수행자, 그 수행자도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땅을 생각하지 않으며, 땅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땅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하여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Yopi so, bhikkhave, bhikkhu arahaṁ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ṁyojano sammadaññāvimutto, sopi pathaviṁ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ṁ meti na maññati, pathavi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Khayā dosassa, vītadosattā.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탐욕의 소멸을 까닭으로 든 네 번째 방식에 이어, 같은 아라한을 기준으로 하되 까닭을 성냄의 소멸로 바꾼 다섯 번째 방식이 시작됩니다. 아라한을 가리키는 일곱 겹의 표현과 땅을 직접 알고도 생각을 보태지 않는다는 서술은 그대로이지만, 맺음말만 '탐욕이 다하여'에서 '성냄이 다하여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으로 바뀝니다. 탐욕이 무언가를 향해 끌리는 마음이라면, 성냄은 무언가를 밀어내는 마음입니다. 이 경은 이렇게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뿌리를 나란히 짚어 나갑니다.

묵상

무언가에 끌리는 마음과 무언가를 밀어내는 마음, 이 둘이 사실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둘 다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작일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물도 물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물을 생각하지 않으며, 물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물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물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불도, 바람도, 존재들도, 신들도, 빠자빠띠도, 범천도, 광음천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하여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paṁ …pe… tejaṁ … vāyaṁ … bhūte … deve … pajāpatiṁ … brahmaṁ … ābhassare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이 다섯 번째 방식에서도 물부터 광음천까지 여덟 갈래가 원문 자체의 줄임표로 압축됩니다. 밀어내는 마음인 성냄이 다했다는 것은, 이 여덟 갈래 가운데 어느 것에도 거부감이나 혐오가 남아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탐욕의 소멸이 다가가려는 마음이 사라짐을 뜻했다면, 성냄의 소멸은 밀쳐 내려는 마음이 사라짐을 뜻합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좋아하는 마음뿐 아니라 싫어하는 마음도 결국 그 대상에 매여 있다는 것을, 오늘 한번 가만히 떠올려 보시겠어요? 둘 다 자연스러운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변정천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변정천을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광과천도, 정복자도, 무한한 허공의 경지도, 무한한 의식의 경지도,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하여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ubhakiṇhe … vehapphale … abhibhuṁ … ākāsānañcāyatanaṁ … viññāṇañcāyatanaṁ … ākiñcaññāyatanaṁ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하늘 세계의 나머지 단계와 정복자, 네 가지 무색의 경지까지 일곱 갈래가 이어집니다. 이런 높고 미묘한 경지에도 성냄이 낄 자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뜻밖으로 들릴 수 있지만, 원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때의 조바심이나 실망도 넓게 보면 성냄의 한 갈래입니다. 그런 마음마저 없다는 것이 이 편의 요점입니다. 앞선 방식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원하는 상태에 이르지 못했을 때 밀려오는 조바심이나 실망을 알아차려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 마음도 판단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면 어떨까요?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본 것도 본 것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들은 것도, 느낀 것도, 안 것도, 하나됨도, 여럿됨도, 모든 것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하여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 sutaṁ … mutaṁ … viññātaṁ … ekattaṁ … nānattaṁ … sabb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와 개념적인 세 갈래로 다섯 번째 방식의 스물세 갈래가 마무리됩니다. 다음 편의 열반만이 남았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매 순간마다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성냄의 소멸이 특별한 상황에서만 시험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매 순간에 걸쳐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오늘 하루 마주친 것들 가운데 은근히 밀쳐 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면, 그 마음을 지금 판단 없이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성냄이 다하여 성냄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abhi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ṁ na maññati, nibbānasmiṁ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ṁ meti na maññati, nibbāna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Khayā dosassa, vītadosattā.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다섯 번째 방식의 마지막 갈래, 열반입니다. 탐욕과 마찬가지로 성냄 또한 열반 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 이 편의 요점입니다. 세 가지 해로운 뿌리 가운데 이제 둘이 짚어졌고, 다음 편부터는 마지막 남은 뿌리인 어리석음의 소멸을 까닭으로 드는 여섯 번째 방식이 이어지며, 아라한을 기준으로 한 네 개의 방식이 완결됩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탐욕도 성냄도 남지 않은 자리에는 무엇이 있을 것 같으신가요? 지금 당장 답하지 못해도, 그저 궁금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11 어리석음이 다하여 - 세 가지 뿌리가 모두 끝난 자리 5구절

번뇌를 다한 이가 스물네 갈래를 생각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마지막 까닭, 어리석음이 다하고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아라한이 되어 번뇌를 다하고, 청정한 삶을 살았으며 할 일을 다 하였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목표를 이루었고 족쇄를 없앴으며 바른 지혜로 해탈한 수행자, 그 수행자도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땅을 생각하지 않으며, 땅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땅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Yopi so, bhikkhave, bhikkhu arahaṁ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ṁyojano sammadaññāvimutto, sopi pathaviṁ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ṁ meti na maññati, pathavi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Khayā mohassa, vītamohattā.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탐욕과 성냄의 소멸에 이어, 세 가지 해로운 뿌리 가운데 마지막인 어리석음의 소멸을 까닭으로 드는 여섯 번째 방식이 시작됩니다. 탐욕이 끌림이고 성냄이 밀쳐 냄이라면, 어리석음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 자체를 가리킵니다. 이 경 첫머리에서 범부가 땅을 '인식'한 뒤 '생각'으로 번지던 그 흐름 전체가, 사실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것이 이 대목에서 은연중에 드러납니다. 아라한에게는 이 어리석음마저 남지 않았습니다.

묵상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해서 생긴 오해가 나중에야 풀렸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때와 지금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가만히 떠올려 보시겠어요?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물도 물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물을 생각하지 않으며, 물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물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물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불도, 바람도, 존재들도, 신들도, 빠자빠띠도, 범천도, 광음천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paṁ …pe… tejaṁ … vāyaṁ … bhūte … deve … pajāpatiṁ … brahmaṁ … ābhassare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이 여섯 번째 방식에서도 물부터 광음천까지 여덟 갈래가 원문 자체의 줄임표로 압축됩니다. 어리석음이 다했다는 것은 이 여덟 갈래 하나하나를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본다는 뜻입니다. 탐욕도 성냄도 없이 본다 해도 보는 방식 자체가 흐려져 있다면 여전히 문제가 남는데, 이 마지막 뿌리의 소멸이 바로 그 봄 자체의 왜곡을 없앱니다. 앞선 방식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 없이 보아도, 그것을 보는 방식 자체가 흐려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변정천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변정천을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광과천도, 정복자도, 무한한 허공의 경지도, 무한한 의식의 경지도,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ubhakiṇhe … vehapphale … abhibhuṁ … ākāsānañcāyatanaṁ … viññāṇañcāyatanaṁ … ākiñcaññāyatanaṁ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하늘 세계의 나머지 단계와 정복자, 네 가지 무색의 경지까지 일곱 갈래가 이어집니다. 깊은 선정의 경지일수록 그것을 궁극의 깨달음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그런 착각이야말로 어리석음의 한 형태입니다. 이 일곱 갈래에서도 그런 착각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 이 편의 요점입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고요하고 특별한 경험을 곧바로 '깨달음'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 마음을 가만히 되짚어 보시겠어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본 것도 본 것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들은 것도, 느낀 것도, 안 것도, 하나됨도, 여럿됨도, 모든 것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 sutaṁ … mutaṁ … viññātaṁ … ekattaṁ … nānattaṁ … sabb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와 개념적인 세 갈래로 여섯 번째 방식의 스물세 갈래가 마무리됩니다. 다음 편의 열반만이 남았습니다. 이로써 아라한을 기준으로 한 세 방식(완전히 앎,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이 모두 갖추어지며, 있는 그대로 보는 힘이 일상의 모든 감각과 개념에 빠짐없이 미친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잠깐 상상해 보시겠어요? 잘 그려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abhi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ṁ na maññati, nibbānasmiṁ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ṁ meti na maññati, nibbāna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Khayā mohassa, vītamohattā.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여섯 번째 방식의 마지막 갈래이자, 아라한을 기준으로 한 네 방식 전체의 마지막 갈래인 열반입니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해로운 뿌리가 모두 다한 자리에서 열반마저 생각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아라한을 넘어 여래를 기준으로 한 일곱 번째 방식이 시작되며, 이 경의 가장 깊은 결론을 향해 나아갑니다. 앞선 방식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세 가지 뿌리가 모두 끝난 자리를 상상해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상상이 잘 되지 않아도, 그 방향을 향해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12 여래께서도 땅을 직접 아시니 -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 5구절

아라한을 넘어 여래를 기준으로, 같은 스물네 갈래가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에 생각으로 번지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여래께서도, 수행자들이여, 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신 분으로서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땅을 생각하지 않으며, 땅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땅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이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Tathāgatopi, bhikkhave, arahaṁ sammāsambuddho pathaviṁ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ṁ meti na maññati, pathavi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Pariññātantaṁ tathāga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아라한을 기준으로 한 네 방식이 모두 끝나고, 이제 여래를 기준으로 한 일곱 번째 방식이 시작됩니다. 여래를 가리키는 표현은 아라한의 일곱 겹 표현보다 훨씬 짧게 '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신 분'으로 줄어드는데, 이는 여래가 아라한이 지닌 모든 성취를 이미 포함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까닭도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으로 바뀌어, 이 앎이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여래 자신의 깨달음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묵상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앎과 스스로 직접 깨달아 얻은 앎, 이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시나요? 지금 당장 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물도 물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물을 생각하지 않으며, 물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물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물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불도, 바람도, 존재들도, 신들도, 빠자빠띠도, 범천도, 광음천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이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paṁ …pe… tejaṁ … vāyaṁ … bhūte … deve … pajāpatiṁ … brahmaṁ … ābhassare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여래를 기준으로 한 이 일곱 번째 방식에서도 물부터 광음천까지 여덟 갈래가 원문 자체의 줄임표로 압축됩니다. 아라한의 방식들이 탐욕·성냄·어리석음이라는 번뇌의 소멸을 까닭으로 들었다면, 여래의 방식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전한 깨달음 그 자체를 까닭으로 듭니다. 형식은 똑같이 되풀이되지만 그 밑에 놓인 근거는 이렇게 한 단계씩 깊어집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묵상

번뇌가 사라진 것과 완전히 깨달은 것, 이 둘이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게 느껴진다면 그 차이가 무엇일지 가만히 떠올려 보시겠어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변정천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변정천을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광과천도, 정복자도, 무한한 허공의 경지도, 무한한 의식의 경지도,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이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ubhakiṇhe … vehapphale … abhibhuṁ … ākāsānañcāyatanaṁ … viññāṇañcāyatanaṁ … ākiñcaññāyatanaṁ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하늘 세계의 나머지 단계와 정복자, 네 가지 무색의 경지까지 일곱 갈래가 이어집니다. 이 스물네 갈래 가운데 가장 높고 미묘하다고 여겨지는 경지들까지도 여래에게는 이미 완전히 알려진 것들이어서, 다시 그것을 향해 생각을 뻗칠 이유가 없습니다. 다음 편에서 감각과 개념의 갈래로 이어집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앞선 방식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이미 완전히 알고 있는 것 앞에서는 더 이상 궁금해하거나 붙잡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 지금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시나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본 것도 본 것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들은 것도, 느낀 것도, 안 것도, 하나됨도, 여럿됨도, 모든 것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이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 sutaṁ … mutaṁ … viññātaṁ … ekattaṁ … nānattaṁ … sabb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와 개념적인 세 갈래로 일곱 번째 방식의 스물세 갈래가 마무리됩니다. 다음 편의 열반만이 남았습니다. 이로써 이 경을 관통해 온 스물네 갈래가 이제 곧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 경의 가장 깊은 결론과 함께 다루어질 준비를 마쳤습니다. 앞선 방식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일상의 감각까지 포함해 모든 것이 완전히 알려졌다는 것이, 지금 어떤 무게로 다가오시나요? 무겁게도 가볍게도 느껴질 수 있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잘 그려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이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abhi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ṁ na maññati, nibbānasmiṁ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ṁ meti na maññati, nibbāna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Pariññātantaṁ tathāga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일곱 번째 방식의 마지막 갈래, 열반입니다. 여래에게는 열반마저 완전히 알려진 것이어서 생각으로 번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음 편, 이 경의 마지막 여덟 번째 방식에서 세존께서는 '완전히 알려졌다'는 이 말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이 경 전체를 관통해 온 '기뻐함'이라는 낱말 하나를 실마리 삼아 마침내 밝히십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묵상

'완전히 알려졌다'는 말 뒤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시나요? 그 예감을 잠시 품은 채 다음 편으로 넘어가 보시겠어요? 잘 그려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13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이니 - 이 경의 결론 5구절

여래를 기준으로 한 마지막 방식에서,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라는 이 경 전체의 결론이 밝혀지고 경이 마무리됩니다.

여래께서도, 수행자들이여,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땅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에서도 그것으로부터도 생각하지 않으며,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이다.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난 것에는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고 아셨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하고 빛바래고 사라지고 버리고 놓아버려 위없이 바르게 깨달았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Tathāgatopi, bhikkhave, arahaṁ sammāsambuddho pathaviṁ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ṁ meti na maññati, pathavi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Nandī dukkhassa mūlan’ti— iti viditvā ‘bhavā jāti bhūtassa jarāmaraṇan’ti. Tasmātiha, bhikkhave, ‘tathāgato sabbaso taṇhānaṁ khayā virāgā nirodhā cāgā paṭinissagg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ddho’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이 경 전체가 향해 온 결론이 마침내 밝혀지는,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방식의 첫 편입니다. 첫머리의 범부는 땅을 인식한 뒤 마지막에 반드시 '기뻐하였다(즐거워하였다)'로 끝났는데, 바로 그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였다는 것이 여기서 밝혀집니다. 즐거워함에서 존재가,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남에서 늙음과 죽음이 이어진다는 것은 열두 연기의 핵심 고리를 가리킵니다. 여래는 이 뿌리를 보았기에 갈애를 다섯 겹의 말(소멸·빛바램·사라짐·버림·놓아버림)로 완전히 끊어 냈고, 그렇게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이 경 전체에서 스물네 갈래마다 되풀이되던 '기뻐하다'라는 한 낱말이, 이렇게 마지막에 이르러 이 경 전체의 열쇠였음이 드러납니다.

묵상

무언가를 즐거워하는 마음 자체가 다시 그것을 붙잡게 만든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즐거움을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그 즐거움 뒤에 무엇이 따라오는지 한번 살펴보자는 뜻으로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물도 물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물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에서도 그것으로부터도 생각하지 않으며, ‘물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느니라. 불도, 바람도, 존재들도, 신들도, 빠자빠띠도, 범천도, 광음천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이다.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난 것에는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고 아셨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하고 빛바래고 사라지고 버리고 놓아버려 위없이 바르게 깨달았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Āpaṁ …pe… tejaṁ … vāyaṁ … bhūte … deve … pajāpatiṁ … brahmaṁ … ābhassare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이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방식에서도 물부터 광음천까지 여덟 갈래가 원문 자체의 줄임표로 압축됩니다. 앞 편에서 밝혀진 결론, 곧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라는 것이 이 여덟 갈래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제 이 경을 관통해 온 스물네 갈래 각각에서, 무엇을 인식하든 그것을 즐거워하는 순간 괴로움의 뿌리가 심긴다는 것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됩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물이나 불처럼 흔한 것을 즐거워하는 마음에도 같은 뿌리가 있다는 것이, 지금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이미 짐작하고 계셨나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변정천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변정천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에서도 그것으로부터도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느니라. 광과천도, 정복자도, 무한한 허공의 경지도, 무한한 의식의 경지도,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이다.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난 것에는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고 아셨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하고 빛바래고 사라지고 버리고 놓아버려 위없이 바르게 깨달았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subhakiṇhe … vehapphale … abhibhuṁ … ākāsānañcāyatanaṁ … viññāṇañcāyatanaṁ … ākiñcaññāyatanaṁ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하늘 세계의 나머지 단계와 정복자, 네 가지 무색의 경지까지 일곱 갈래가 이어집니다. 가장 높은 선정의 경지에서 느끼는 미묘한 즐거움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이 편에서 다시 확인됩니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그 고요함 자체를 은근히 즐거워하는 마음이 남을 수 있는데, 이 경은 그런 미묘한 즐거움까지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고 짚습니다. 앞선 방식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수행이나 명상이 깊어질수록 그 고요함 자체를 은근히 즐기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도 가만히 알아차려 볼 수 있을까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본 것도 본 것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에서도 그것으로부터도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느니라. 들은 것도, 느낀 것도, 안 것도, 하나됨도, 여럿됨도, 모든 것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이다.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난 것에는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고 아셨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하고 빛바래고 사라지고 버리고 놓아버려 위없이 바르게 깨달았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 sutaṁ … mutaṁ … viññātaṁ … ekattaṁ … nānattaṁ … sabb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와 개념적인 세 갈래로 이 경의 마지막 방식, 스물세 갈래가 모두 마무리됩니다. 다음 편의 열반만이 남았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가장 일상적인 순간에서부터 가장 넓은 개념에 이르기까지,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라는 이 경의 결론이 한 번도 빠짐없이 적용된다는 것이 이렇게 확인됩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오늘 하루 가장 소박한 즐거움 하나를 떠올려 보면, 그 즐거움에 살짝 붙어 있는 '더 원하는 마음'이 함께 보이시나요?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잘 그려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알고서 생각하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이다.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난 것에는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고 아셨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하고 빛바래고 사라지고 버리고 놓아버려 위없이 바르게 깨달았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그 수행자들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abhi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ṁ na maññati, nibbānasmiṁ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ṁ meti na maññati, nibbāna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Nandī dukkhassa mūlan’ti— iti viditvā ‘bhavā jāti bhūtassa jarāmaraṇan’ti. Tasmātiha, bhikkhave, ‘tathāgato sabbaso taṇhānaṁ khayā virāgā nirodhā cāgā paṭinissagg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ddho’ti vadāmī”ti. Idamavoca bhagavā. Na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땅에서 시작해 스물네 갈래를 여덟 번 되풀이해 온 이 경의 마지막 갈래, 열반과 경 전체의 맺음말이 한 편에 담겼습니다. 열반조차 즐거워하지 않는 까닭이 앞 편의 땅과 글자 하나 다르지 않게 되풀이되므로, 이 편에서는 그 되풀이를 '생각하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느니라'로 간추리고 자세한 네 겹의 부정은 앞 편(땅을 다룬 편)을 참고하도록 남겨 두었습니다. "그 수행자들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았느니라"라는 문장은 다른 여느 경들이 흔히 '수행자들이 기뻐하며 받들었다'로 끝나는 것과 달리 부정형으로 되어 있는 이 경의 독특한 결말입니다. 지어낸 표현이 아니라 원문 그대로이며, 전통적으로는 이 가르침이 너무나 낯설고 깊어서 수행자들이 곧바로 기뻐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풀이됩니다. 스물네 갈래를 여덟 겹으로 되풀이하며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임을 밝힌 경이, 정작 그 결말에서는 '기뻐하지 않았다'는 말로 끝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묵상

가장 낮은 땅에서 가장 높은 열반까지, 같은 진리가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지금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가르침을 듣고 곧바로 기뻐할 수 없었던 수행자들의 마음이, 지금 이 경을 읽는 마음과 조금은 닮아 있을까요? 이해되지 않아도, 낯설게 느껴져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