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배우지 못한 이는 열반마저 내 것이라 여긴다

범부는 스물세 갈래를 지나 마지막으로 열반마저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자기 것으로 여깁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인식하느니라. 그리 인식하고서 열반을 생각하고, 열반에서 생각하고, 열반으로부터 생각하고, ‘열반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열반을 기뻐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sañ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saññatvā nibbānaṁ maññati, nibbānasmiṁ maññati, nibbānato maññati, nibbānaṁ meti maññati, nibbān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Apariññāt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땅에서 시작한 스물네 갈래의 마지막으로, 다름 아닌 열반이 놓입니다. 수행의 궁극이라 불리는 열반마저 범부에게는 그저 하나의 인식 대상이 되어 생각이 따라붙고 '내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 이 경 전체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점입니다.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같은 이유가 스물네 번째에도 똑같이 놓입니다. 이것이 범부를 기준으로 한 '첫 번째 방식'이며, 다음 편부터는 아직 배우는 중인 수행자를 기준으로 같은 스물네 갈래가 다시 펼쳐집니다.

묵상

가장 궁극적이라고 불리는 것조차 붙잡으려는 마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이상하게 들리시나요 아니면 어쩐지 이해가 되시나요? 답이 없다고 느껴져도 그대로 괜찮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