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배우는 이는 땅을 직접 알아도 - 수행자의 스물네 갈래

위없는 평안을 얻고자 힘쓰는, 아직 배우는 이는 같은 스물네 갈래를 직접 알면서도 생각으로 번지지 않게 하라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위없는 평안을 얻고자 힘쓰며 머무는, 아직 배우는 이인 수행자, 그 수행자도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알고서 땅을 생각하지 말고, 땅에서 생각하지 말고,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말고,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땅을 기뻐하지 말지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Yopi so, bhikkhave, bhikkhu sekkho appattamānaso anuttaraṁ yogakkhemaṁ patthayamāno viharati, sopi pathaviṁ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mā maññi, pathaviyā mā maññi, pathavito mā maññi, pathaviṁ meti mā maññi, pathaviṁ mābhinandi. Taṁ kissa hetu? ‘Pariññeyy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범부를 기준으로 한 첫 번째 방식이 끝나고, 이제 아직 배우는 이(유학)를 기준으로 같은 스물네 갈래가 다시 펼쳐지는 두 번째 방식이 시작됩니다. "아직 배우는 이"란 수다원부터 아라한이 되기 바로 전 단계까지, 아직 닦을 것이 남은 이를 가리킵니다. 동사가 범부의 '인식하다'에서 '직접 알다'로 바뀌고, 뒤이어 오는 말도 '생각하며 기뻐한다'는 서술이 아니라 '생각하지 말고 기뻐하지 말라'는 금지로 바뀝니다. 아는 힘은 범부보다 깊어졌지만, 아직은 스스로 다짐하고 경계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뜻입니다.

묵상

무언가를 전보다 더 깊이 알게 되었을 때도, '이제부터 생각을 보태지 말아야지' 하고 스스로 다짐해야 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그 다짐이 얼마나 이어졌는지도 가만히 떠올려 보셔도 좋습니다.

물도 물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물을 물이라고 직접 알고서 물을 생각하지 말고, 물에서 생각하지 말고, 물로부터 생각하지 말고, ‘물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물을 기뻐하지 말지니라. 불도, 바람도, 존재들도, 신들도, 빠자빠띠도, 범천도, 광음천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paṁ …pe… tejaṁ … vāyaṁ … bhūte … deve … pajāpatiṁ … brahmaṁ … ābhassare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원문 스스로 되풀이를 줄이는 첫 대목입니다. 땅에서 이미 온전한 형식(직접 알고, 생각하지 말고, 기뻐하지 말라는 금지, 그리고 까닭)을 밝혔으므로, 물부터 광음천까지 여덟 갈래는 원문에서 낱말 하나와 줄임표(…pe…, …)만으로 처리됩니다. 이 편집자가 만든 생략이 아니라 원문 자체의 표기이며, 이 여덟 갈래 각각에 앞 편과 똑같은 문장 전체가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도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같은 말을 여덟 번 다시 듣지 않아도 이미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배움이 깊어졌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지금 그 느낌이 실제로 있는지 한번 가만히 확인해 보시겠어요? 없어도 괜찮습니다.

변정천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변정천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알고서 변정천을 생각하지 말고, 변정천에서 생각하지 말고, 변정천으로부터 생각하지 말고, ‘변정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변정천을 기뻐하지 말지니라. 광과천도, 정복자도, 무한한 허공의 경지도, 무한한 의식의 경지도,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ubhakiṇhe … vehapphale … abhibhuṁ … ākāsānañcāyatanaṁ … viññāṇañcāyatanaṁ … ākiñcaññāyatanaṁ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앞 편에 이어 하늘 세계의 나머지 단계와 정복자, 그리고 네 가지 무색의 경지까지 일곱 갈래가 같은 방식으로 줄여져 이어집니다. 가장 높다고 하는 선정의 경지들마저 땅과 똑같은 한 문장으로 처리되는 것은, 이 스물네 갈래 사이에 실제로는 아무런 위계가 없다는 것 - 어느 것이든 똑같이 직접 알고, 생각하지 말고, 기뻐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가장 높다고 여겨지는 경지조차 땅과 똑같이 취급된다는 것이, 지금 마음에 어떤 느낌을 주시나요? 서열을 매기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있었다면, 그것도 판단 없이 가만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본 것도 본 것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본 것을 본 것이라고 직접 알고서 본 것을 생각하지 말고, 본 것에서 생각하지 말고, 본 것으로부터 생각하지 말고, ‘본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본 것을 기뻐하지 말지니라. 들은 것도, 느낀 것도, 안 것도, 하나됨도, 여럿됨도, 모든 것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 sutaṁ … mutaṁ … viññātaṁ … ekattaṁ … nānattaṁ … sabb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와 개념적인 세 갈래까지, 나머지 일곱 갈래가 이 편에서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로써 땅부터 '모든 것'까지 스물세 갈래 모두가 아직 배우는 이를 기준으로 다루어졌고, 다음 편의 열반만이 남습니다. 일상의 감각(본 것·들은 것·느낀 것·안 것)과 가장 미묘한 개념(하나됨·여럿됨·모든 것)이 같은 한 줄로 나란히 놓이는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묵상

일상의 감각과 가장 추상적인 개념이 결국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진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둘 사이에 위아래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 줄 수도 있습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알고서 열반을 생각하지 말고, 열반에서 생각하지 말고, 열반으로부터 생각하지 말고,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열반을 기뻐하지 말지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abhi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ṁ mā maññi, nibbānasmiṁ mā maññi, nibbānato mā maññi, nibbānaṁ meti mā maññi, nibbānaṁ mābhinandi. Taṁ kissa hetu? ‘Pariññeyyaṁ 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아직 배우는 이를 기준으로 한 두 번째 방식의 마지막 갈래, 열반입니다. 범부는 열반을 인식하고 생각하며 기뻐하였지만, 아직 배우는 이는 열반을 직접 알면서도 생각하지 말고 기뻐하지 말라는 금지를 받습니다. 아는 능력은 범부보다 훨씬 깊어졌으나, 그 앎을 다시 붙잡음으로 되돌리지 않도록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 자리에 아직 있다는 뜻입니다. 다음 편부터는 번뇌를 다한 이를 기준으로 세 번째 방식이 시작됩니다.

묵상

열반처럼 궁극적인 것마저 '아직은 붙잡지 말라'는 다짐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 수행의 길이 얼마나 섬세한지를 보여 주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