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아라한이 되어 번뇌를 다하고, 청정한 삶을 살았으며
할 일을 다 하였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목표를 이루었고 족쇄를 없앴으며 바른 지혜로 해탈한 수행자,
그 수행자도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땅을 생각하지 않으며, 땅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땅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Yopi so, bhikkhave, bhikkhu arahaṁ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ṁyojano sammadaññāvimutto, sopi pathaviṁ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ṁ meti na maññati, pathavi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Khayā mohassa, vītamohattā.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탐욕과 성냄의 소멸에 이어, 세 가지 해로운 뿌리 가운데 마지막인 어리석음의 소멸을 까닭으로 드는 여섯 번째 방식이 시작됩니다. 탐욕이 끌림이고 성냄이 밀쳐 냄이라면, 어리석음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 자체를 가리킵니다. 이 경 첫머리에서 범부가 땅을 '인식'한 뒤 '생각'으로 번지던 그 흐름 전체가, 사실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것이 이 대목에서 은연중에 드러납니다. 아라한에게는 이 어리석음마저 남지 않았습니다.
묵상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해서 생긴 오해가 나중에야 풀렸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때와 지금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가만히 떠올려 보시겠어요?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물도 물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물을 생각하지 않으며, 물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물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물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불도, 바람도, 존재들도, 신들도, 빠자빠띠도, 범천도, 광음천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paṁ …pe… tejaṁ … vāyaṁ … bhūte … deve … pajāpatiṁ … brahmaṁ … ābhassare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이 여섯 번째 방식에서도 물부터 광음천까지 여덟 갈래가 원문 자체의 줄임표로 압축됩니다. 어리석음이 다했다는 것은 이 여덟 갈래 하나하나를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본다는 뜻입니다. 탐욕도 성냄도 없이 본다 해도 보는 방식 자체가 흐려져 있다면 여전히 문제가 남는데, 이 마지막 뿌리의 소멸이 바로 그 봄 자체의 왜곡을 없앱니다. 앞선 방식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 없이 보아도, 그것을 보는 방식 자체가 흐려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변정천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변정천을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광과천도, 정복자도, 무한한 허공의 경지도, 무한한 의식의 경지도,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ubhakiṇhe … vehapphale … abhibhuṁ … ākāsānañcāyatanaṁ … viññāṇañcāyatanaṁ … ākiñcaññāyatanaṁ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하늘 세계의 나머지 단계와 정복자, 네 가지 무색의 경지까지 일곱 갈래가 이어집니다. 깊은 선정의 경지일수록 그것을 궁극의 깨달음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그런 착각이야말로 어리석음의 한 형태입니다. 이 일곱 갈래에서도 그런 착각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 이 편의 요점입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고요하고 특별한 경험을 곧바로 '깨달음'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 마음을 가만히 되짚어 보시겠어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본 것도 본 것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들은 것도, 느낀 것도, 안 것도, 하나됨도, 여럿됨도, 모든 것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 sutaṁ … mutaṁ … viññātaṁ … ekattaṁ … nānattaṁ … sabb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와 개념적인 세 갈래로 여섯 번째 방식의 스물세 갈래가 마무리됩니다. 다음 편의 열반만이 남았습니다. 이로써 아라한을 기준으로 한 세 방식(완전히 앎,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이 모두 갖추어지며, 있는 그대로 보는 힘이 일상의 모든 감각과 개념에 빠짐없이 미친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잠깐 상상해 보시겠어요? 잘 그려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abhi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ṁ na maññati, nibbānasmiṁ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ṁ meti na maññati, nibbāna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Khayā mohassa, vītamohattā.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여섯 번째 방식의 마지막 갈래이자, 아라한을 기준으로 한 네 방식 전체의 마지막 갈래인 열반입니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해로운 뿌리가 모두 다한 자리에서 열반마저 생각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아라한을 넘어 여래를 기준으로 한 일곱 번째 방식이 시작되며, 이 경의 가장 깊은 결론을 향해 나아갑니다. 앞선 방식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세 가지 뿌리가 모두 끝난 자리를 상상해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상상이 잘 되지 않아도, 그 방향을 향해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