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께서도 땅을 직접 아시니 -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

아라한을 넘어 여래를 기준으로, 같은 스물네 갈래가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에 생각으로 번지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여래께서도, 수행자들이여, 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신 분으로서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땅을 생각하지 않으며, 땅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땅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이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Tathāgatopi, bhikkhave, arahaṁ sammāsambuddho pathaviṁ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ṁ meti na maññati, pathavi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Pariññātantaṁ tathāga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아라한을 기준으로 한 네 방식이 모두 끝나고, 이제 여래를 기준으로 한 일곱 번째 방식이 시작됩니다. 여래를 가리키는 표현은 아라한의 일곱 겹 표현보다 훨씬 짧게 '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신 분'으로 줄어드는데, 이는 여래가 아라한이 지닌 모든 성취를 이미 포함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까닭도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으로 바뀌어, 이 앎이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여래 자신의 깨달음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묵상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앎과 스스로 직접 깨달아 얻은 앎, 이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시나요? 지금 당장 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물도 물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물을 생각하지 않으며, 물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물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물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불도, 바람도, 존재들도, 신들도, 빠자빠띠도, 범천도, 광음천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이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Āpaṁ …pe… tejaṁ … vāyaṁ … bhūte … deve … pajāpatiṁ … brahmaṁ … ābhassare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여래를 기준으로 한 이 일곱 번째 방식에서도 물부터 광음천까지 여덟 갈래가 원문 자체의 줄임표로 압축됩니다. 아라한의 방식들이 탐욕·성냄·어리석음이라는 번뇌의 소멸을 까닭으로 들었다면, 여래의 방식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전한 깨달음 그 자체를 까닭으로 듭니다. 형식은 똑같이 되풀이되지만 그 밑에 놓인 근거는 이렇게 한 단계씩 깊어집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묵상

번뇌가 사라진 것과 완전히 깨달은 것, 이 둘이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게 느껴진다면 그 차이가 무엇일지 가만히 떠올려 보시겠어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변정천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변정천을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광과천도, 정복자도, 무한한 허공의 경지도, 무한한 의식의 경지도,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이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ubhakiṇhe … vehapphale … abhibhuṁ … ākāsānañcāyatanaṁ … viññāṇañcāyatanaṁ … ākiñcaññāyatanaṁ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하늘 세계의 나머지 단계와 정복자, 네 가지 무색의 경지까지 일곱 갈래가 이어집니다. 이 스물네 갈래 가운데 가장 높고 미묘하다고 여겨지는 경지들까지도 여래에게는 이미 완전히 알려진 것들이어서, 다시 그것을 향해 생각을 뻗칠 이유가 없습니다. 다음 편에서 감각과 개념의 갈래로 이어집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앞선 방식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이미 완전히 알고 있는 것 앞에서는 더 이상 궁금해하거나 붙잡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 지금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시나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본 것도 본 것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들은 것도, 느낀 것도, 안 것도, 하나됨도, 여럿됨도, 모든 것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이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 sutaṁ … mutaṁ … viññātaṁ … ekattaṁ … nānattaṁ … sabb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와 개념적인 세 갈래로 일곱 번째 방식의 스물세 갈래가 마무리됩니다. 다음 편의 열반만이 남았습니다. 이로써 이 경을 관통해 온 스물네 갈래가 이제 곧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 경의 가장 깊은 결론과 함께 다루어질 준비를 마쳤습니다. 앞선 방식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일상의 감각까지 포함해 모든 것이 완전히 알려졌다는 것이, 지금 어떤 무게로 다가오시나요? 무겁게도 가볍게도 느껴질 수 있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잘 그려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열반을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열반을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이 여래에 의해 완전히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abhi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ṁ na maññati, nibbānasmiṁ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ṁ meti na maññati, nibbāna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Pariññātantaṁ tathāgatassā’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일곱 번째 방식의 마지막 갈래, 열반입니다. 여래에게는 열반마저 완전히 알려진 것이어서 생각으로 번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음 편, 이 경의 마지막 여덟 번째 방식에서 세존께서는 '완전히 알려졌다'는 이 말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이 경 전체를 관통해 온 '기뻐함'이라는 낱말 하나를 실마리 삼아 마침내 밝히십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묵상

'완전히 알려졌다'는 말 뒤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시나요? 그 예감을 잠시 품은 채 다음 편으로 넘어가 보시겠어요? 잘 그려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