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께서도, 수행자들이여, 땅을 땅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땅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에서도 그것으로부터도 생각하지 않으며,
‘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이다.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난 것에는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고 아셨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하고 빛바래고 사라지고 버리고 놓아버려
위없이 바르게 깨달았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Tathāgatopi, bhikkhave, arahaṁ sammāsambuddho pathaviṁ pathavito abhijānāti; pathaviṁ pathavito abhiññāya pathaviṁ na maññati, pathaviyā na maññati, pathavito na maññati, pathaviṁ meti na maññati, pathavi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Nandī dukkhassa mūlan’ti— iti viditvā ‘bhavā jāti bhūtassa jarāmaraṇan’ti. Tasmātiha, bhikkhave, ‘tathāgato sabbaso taṇhānaṁ khayā virāgā nirodhā cāgā paṭinissagg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ddho’ti vadām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이 경 전체가 향해 온 결론이 마침내 밝혀지는,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방식의 첫 편입니다. 첫머리의 범부는 땅을 인식한 뒤 마지막에 반드시 '기뻐하였다(즐거워하였다)'로 끝났는데, 바로 그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였다는 것이 여기서 밝혀집니다. 즐거워함에서 존재가,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남에서 늙음과 죽음이 이어진다는 것은 열두 연기의 핵심 고리를 가리킵니다. 여래는 이 뿌리를 보았기에 갈애를 다섯 겹의 말(소멸·빛바램·사라짐·버림·놓아버림)로 완전히 끊어 냈고, 그렇게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이 경 전체에서 스물네 갈래마다 되풀이되던 '기뻐하다'라는 한 낱말이, 이렇게 마지막에 이르러 이 경 전체의 열쇠였음이 드러납니다.
묵상
무언가를 즐거워하는 마음 자체가 다시 그것을 붙잡게 만든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즐거움을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그 즐거움 뒤에 무엇이 따라오는지 한번 살펴보자는 뜻으로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물도 물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물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에서도 그것으로부터도 생각하지 않으며,
‘물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느니라.
불도, 바람도, 존재들도, 신들도, 빠자빠띠도, 범천도, 광음천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이다.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난 것에는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고 아셨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하고 빛바래고 사라지고 버리고 놓아버려
위없이 바르게 깨달았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Āpaṁ …pe… tejaṁ … vāyaṁ … bhūte … deve … pajāpatiṁ … brahmaṁ … ābhassare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이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방식에서도 물부터 광음천까지 여덟 갈래가 원문 자체의 줄임표로 압축됩니다. 앞 편에서 밝혀진 결론, 곧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라는 것이 이 여덟 갈래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제 이 경을 관통해 온 스물네 갈래 각각에서, 무엇을 인식하든 그것을 즐거워하는 순간 괴로움의 뿌리가 심긴다는 것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됩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물이나 불처럼 흔한 것을 즐거워하는 마음에도 같은 뿌리가 있다는 것이, 지금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이미 짐작하고 계셨나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변정천도 변정천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변정천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에서도 그것으로부터도 생각하지 않으며,
‘변정천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느니라.
광과천도, 정복자도, 무한한 허공의 경지도, 무한한 의식의 경지도, 아무것도 없는 경지도,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이다.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난 것에는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고 아셨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하고 빛바래고 사라지고 버리고 놓아버려
위없이 바르게 깨달았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subhakiṇhe … vehapphale … abhibhuṁ … ākāsānañcāyatanaṁ … viññāṇañcāyatanaṁ … ākiñcaññāyatanaṁ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하늘 세계의 나머지 단계와 정복자, 네 가지 무색의 경지까지 일곱 갈래가 이어집니다. 가장 높은 선정의 경지에서 느끼는 미묘한 즐거움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이 편에서 다시 확인됩니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그 고요함 자체를 은근히 즐거워하는 마음이 남을 수 있는데, 이 경은 그런 미묘한 즐거움까지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고 짚습니다. 앞선 방식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수행이나 명상이 깊어질수록 그 고요함 자체를 은근히 즐기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도 가만히 알아차려 볼 수 있을까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셔도 됩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본 것도 본 것이라고 직접 아느니라.
직접 알고서 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에서도 그것으로부터도 생각하지 않으며,
‘본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느니라.
들은 것도, 느낀 것도, 안 것도, 하나됨도, 여럿됨도, 모든 것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이다.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난 것에는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고 아셨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하고 빛바래고 사라지고 버리고 놓아버려
위없이 바르게 깨달았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diṭṭhaṁ … sutaṁ … mutaṁ … viññātaṁ … ekattaṁ … nānattaṁ … sabbaṁ …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감각으로 알려지는 네 갈래와 개념적인 세 갈래로 이 경의 마지막 방식, 스물세 갈래가 모두 마무리됩니다. 다음 편의 열반만이 남았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가장 일상적인 순간에서부터 가장 넓은 개념에 이르기까지,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라는 이 경의 결론이 한 번도 빠짐없이 적용된다는 것이 이렇게 확인됩니다. 다음 편에서 나머지 갈래로 이어집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이 경이 전하려는 핵심을 이룹니다.
묵상
오늘 하루 가장 소박한 즐거움 하나를 떠올려 보면, 그 즐거움에 살짝 붙어 있는 '더 원하는 마음'이 함께 보이시나요?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잘 그려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직접 알고서 생각하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즐거워함이 괴로움의 뿌리이다.
존재에서 태어남이, 태어난 것에는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고 아셨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하고 빛바래고 사라지고 버리고 놓아버려
위없이 바르게 깨달았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그 수행자들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았느니라.
nibbānaṁ nibbānato abhijānāti; nibbānaṁ nibbānato abhiññāya nibbānaṁ na maññati, nibbānasmiṁ na maññati, nibbānato na maññati, nibbānaṁ meti na maññati, nibbānaṁ nābhinandati. Taṁ kissa hetu? ‘Nandī dukkhassa mūlan’ti— iti viditvā ‘bhavā jāti bhūtassa jarāmaraṇan’ti. Tasmātiha, bhikkhave, ‘tathāgato sabbaso taṇhānaṁ khayā virāgā nirodhā cāgā paṭinissagg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ddho’ti vadāmī”ti. Idamavoca bhagavā. Na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맛지마 니까야 MN 1 근본 법문경 (Mūlapariyāyasutta) 배경
땅에서 시작해 스물네 갈래를 여덟 번 되풀이해 온 이 경의 마지막 갈래, 열반과 경 전체의 맺음말이 한 편에 담겼습니다. 열반조차 즐거워하지 않는 까닭이 앞 편의 땅과 글자 하나 다르지 않게 되풀이되므로, 이 편에서는 그 되풀이를 '생각하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느니라'로 간추리고 자세한 네 겹의 부정은 앞 편(땅을 다룬 편)을 참고하도록 남겨 두었습니다. "그 수행자들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았느니라"라는 문장은 다른 여느 경들이 흔히 '수행자들이 기뻐하며 받들었다'로 끝나는 것과 달리 부정형으로 되어 있는 이 경의 독특한 결말입니다. 지어낸 표현이 아니라 원문 그대로이며, 전통적으로는 이 가르침이 너무나 낯설고 깊어서 수행자들이 곧바로 기뻐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풀이됩니다. 스물네 갈래를 여덟 겹으로 되풀이하며 '기뻐함'이 괴로움의 뿌리임을 밝힌 경이, 정작 그 결말에서는 '기뻐하지 않았다'는 말로 끝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묵상
가장 낮은 땅에서 가장 높은 열반까지, 같은 진리가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지금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가르침을 듣고 곧바로 기뻐할 수 없었던 수행자들의 마음이, 지금 이 경을 읽는 마음과 조금은 닮아 있을까요? 이해되지 않아도, 낯설게 느껴져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