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다 불리되 자만은 아닌 것 - 네 가지 무색의 경지

허공부터 지각도 아니고 지각 아님도 아닌 경지까지, 가장 미묘한 선정조차 지워 없앰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쭌다여,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느니라. 여기 어떤 수행자가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어서고 부딪힘의 인식이 사라지며 다양함의 인식을 마음에 두지 않아, ‘허공은 끝이 없다’며 무한한 허공의 경지를 성취하여 머무느니라. 그에게 ‘나는 지워 없앰으로 머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느니라. 그러나 쭌다여,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워 없앰이라 불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고요한 머묾’이라 불리느니라.

Ṭhānaṁ kho panetaṁ, cunda, vijjati yaṁ idhekacco bhikkhu sabbaso rūpasaññānaṁ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ṁ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ṁ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eyya. Tassa evamassa: ‘sallekhena viharāmī’ti. Na kho panete, cunda, ariyassa vinaye sallekhā vuccanti. Santā ete vihārā ariyassa vinaye vuccan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네 가지 무색의 경지 가운데 첫 번째, 무한한 허공의 경지를 다룹니다. 물질에 대한 지각을 완전히 넘어서고 부딪힘과 다양함의 지각마저 내려놓는 세 단계를 거쳐야 이 경지에 이릅니다. 이제부터 닫는 표현이 '지금 여기의 행복한 머묾'에서 '고요한 머묾'으로 바뀌는데, 이는 물질 세계를 아예 벗어난 이 네 경지가 앞의 네 선정과 질적으로 다름을 보여 줍니다. 그럼에도 세존의 판정은 같습니다 - 아무리 물질을 벗어나도 그 자체로는 지워 없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묵상

물질적인 감각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것 같은 고요함을 상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 고요함과 '내 안의 무언가가 실제로 사라졌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 어떠신가요?

쭌다여,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느니라. 여기 어떤 수행자가 무한한 허공의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서 ‘의식은 끝이 없다’며 무한한 의식의 경지를 성취하여 머무느니라. 그에게 ‘나는 지워 없앰으로 머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느니라. 그러나 쭌다여,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워 없앰이라 불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고요한 머묾’이라 불리느니라.

Ṭhānaṁ kho panetaṁ, cunda, vijjati yaṁ idhekacco bhikkhu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ṁ samatikkamma ‘anantaṁ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eyya. Tassa evamassa: ‘sallekhena viharāmī’ti. Na kho panete, cunda, ariyassa vinaye sallekhā vuccanti. Santā ete vihārā ariyassa vinaye vuccan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두 번째 무색의 경지, 무한한 의식의 경지를 다룹니다. 앞선 무한한 허공의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야 이 경지에 이르는데, 이렇게 하나의 경지를 딛고 다음 경지로 넘어가는 짜임이 앞으로도 되풀이됩니다. 이번에는 마음이 허공이 아니라 의식 그 자체를 끝없는 대상으로 삼습니다. 여기서도 같은 교정이 되풀이되는데, 이러한 반복 자체가 아무리 경험이 미묘해져도 그것을 곧바로 해탈로 여기지 않도록 듣는 이를 훈련시키는 구실을 합니다.

묵상

의식이 넓게 열려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 열림 자체를 목표로 삼고 싶어진 적이 있으신가요? 그 열림 뒤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도 함께 가만히, 아주 천천히 살펴보면 어떨까요?

쭌다여,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느니라. 여기 어떤 수행자가 무한한 의식의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서 ‘아무것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성취하여 머무느니라. 그에게 ‘나는 지워 없앰으로 머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느니라. 그러나 쭌다여,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워 없앰이라 불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고요한 머묾’이라 불리느니라.

Ṭhānaṁ kho panetaṁ, cunda, vijjati yaṁ idhekacco bhikkhu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ṁ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eyya. Tassa evamassa: ‘sallekhena viharāmī’ti. Na kho panete, cunda, ariyassa vinaye sallekhā vuccanti. Santā ete vihārā ariyassa vinaye vuccan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세 번째 무색의 경지,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다룹니다. 무한한 의식의 경지마저 넘어서서 어떤 대상도 지각하지 않는 데까지 이릅니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지각이야말로 궁극의 내려놓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경의 기준에서는 이 역시 고요한 머묾일 뿐 지워 없앰은 아닙니다. 이는 지각의 대상이 텅 비어 있는 것과 자아에 대한 견해가 실제로 비워지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임을 짚어 주는 대목입니다.

묵상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조차 하나의 경험이라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떠신가요? 텅 빈 느낌과 실제로 내려놓은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서두르지 말고 함께 천천히 떠올려 보시겠어요?

쭌다여,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느니라. 여기 어떤 수행자가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서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를 성취하여 머무느니라. 그에게 ‘나는 지워 없앰으로 머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느니라. 그러나 쭌다여,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워 없앰이라 불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고요한 머묾’이라 불리느니라.

Ṭhānaṁ kho panetaṁ, cunda, vijjati yaṁ idhekacco bhikkhu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ṁ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eyya. Tassa evamassa: ‘sallekhena viharāmī’ti. Na kho panete, cunda, ariyassa vinaye sallekhā vuccanti. Santā ete vihārā ariyassa vinaye vuccan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여덟 가지 선정 검토의 마지막 편으로, 지각도 아니고 지각 아님도 아닌 가장 미묘한 경지를 다룹니다. 이는 불교 전통에서 인정하는 가장 높은 선정의 경지이지만, 이 경은 이마저도 '고요한 머묾'일 뿐이라고 못박습니다. 이로써 네 가지 선정과 네 가지 무색의 경지, 모두 여덟 가지 경지가 하나같이 지워 없앰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다음 편부터는 지워 없앰이 실제로 무엇인지, 마흔네 가지 항목으로 직접 밝혀집니다.

묵상

가장 미묘하고 고요한 상태조차 아직 목적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지금 마음에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조급해지기보다, 그저 지나가는 하나의 이정표쯤으로 가만히 여겨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