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8

인용된 가르침 33구절

이 경을 10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질문 - 견해에 붙잡히지 않으려면 2구절

마하쭌다 존자가 견해를 버리는 법을 묻고, 세존께서 견해가 일어나는 자리를 보라고 답하십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느니라.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동산에 계셨느니라. 그때 마하쭌다 존자가 저녁 무렵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 세존께 다가가 절하고 한쪽에 앉아 이렇게 여쭈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자아에 관한 주장이나 세계에 관한 주장과 관련된 갖가지 견해가 일어납니다. 수행자가 그 처음을 마음에 새기는 것만으로도 그 견해들의 버림과 놓아버림이 이루어집니까?’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Atha kho āyasmā mahācundo sāyanhasamayaṁ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mahācundo bhagavantaṁ etadavoca: “yā imā, bhante, anekavihitā diṭṭhiyo loke uppajjanti— attavādapaṭisaṁyuttā vā lokavādapaṭisaṁyuttā vā— ādimeva nu kho, bhante, bhikkhuno manasikaroto evametāsaṁ diṭṭhīnaṁ pahānaṁ hoti, evametāsaṁ diṭṭhīnaṁ paṭinissaggo hotī”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이 경의 첫머리로, 마하쭌다 존자가 견해에 관한 질문을 세존께 올리는 장면입니다. "자아에 관한 주장"과 "세계에 관한 주장"은 세상에 떠도는 온갖 견해가 크게 나뉘는 두 갈래를 가리킵니다. "그 처음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란 견해가 생겨나는 출발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뜻합니다. 이 질문은 이 경 전체의 실제 주제를 미리 보여 줍니다. 뒤이어 세존께서는 먼저 이 질문에 직접 답하신 뒤, 고요한 선정에 이른 것을 지워 없앰으로 착각하는 일을 길게 짚으십니다.

묵상

나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 굳게 믿고 있는 생각 하나를 떠올려 보면, 그 생각이 언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짐작이 되시나요? 지금 당장 답이 떠오르지 않아도, 그 생각을 가만히 바라본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쭌다여, 세상에는 자아에 관한 주장이나 세계에 관한 주장과 관련된 갖가지 견해가 일어나는데, 그 견해들이 일어나는 자리, 잠재해 있는 자리, 작용하는 자리를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는 이에게 그 견해들의 버림과 놓아버림이 이루어지느니라.’

“Yā imā, cunda, anekavihitā diṭṭhiyo loke uppajjanti— attavādapaṭisaṁyuttā vā lokavādapaṭisaṁyuttā vā— yattha cetā diṭṭhiyo uppajjanti yattha ca anusenti yattha ca samudācaranti taṁ ‘netaṁ mama, nesohamasmi, na me so attā’ti—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 passato evametāsaṁ diṭṭhīnaṁ pahānaṁ hoti, evametāsaṁ diṭṭhīnaṁ paṭinissagg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앞 편의 질문에 대한 세존의 직접적인 답변으로, 이 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압축된 핵심 가르침입니다. 견해가 "일어나는 자리, 잠재해 있는 자리, 작용하는 자리"라는 세 단계를 짚은 뒤, 그것을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이 아니다,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세 겹의 부정으로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견해의 내용을 하나하나 논박하는 것이 아니라 견해가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기준은 뒤이어 나오는 여덟 가지 선정의 경지들을 판정하는 잣대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묵상

어떤 생각이 '내 것'이라고 느껴질 때, 그 생각이 언제 슬며시 자리 잡았는지 알아차려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 자리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걸음일 수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2 고요함을 지워 없앰으로 착각하지 않기 - 네 가지 선정 4구절

네 가지 선정에 이르러도 그것은 지워 없앰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행복한 머묾일 뿐임을 밝힙니다.

쭌다여,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느니라. 여기 어떤 수행자가 감각적 욕망을 여의고 해로운 것들을 여의어, 사유와 숙고가 있고 여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하여 머무느니라. 그에게 ‘나는 지워 없앰으로 머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느니라. 그러나 쭌다여,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워 없앰이라 불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금 여기의 행복한 머묾’이라 불리느니라.

Ṭhānaṁ kho panetaṁ, cunda, vijjati yaṁ idhekacco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eyya. Tassa evamassa: ‘sallekhena viharāmī’ti. Na kho panete, cunda, ariyassa vinaye sallekhā vuccanti.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 ete ariyassa vinaye vuccan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앞선 문답 뒤에 이어지는 여덟 가지 선정 검토의 첫 번째 편으로, 첫 번째 선정을 다룹니다. "사유와 숙고"와 "여읨에서 생긴 기쁨과 행복"은 첫 번째 선정의 특징이며, 여기서 수행자가 스스로 '지워 없앰으로 머문다'고 여기는 생각이 이 경 전체에서 되풀이되는 잘못된 판단의 첫 사례로 제시됩니다. 선정에 드는 일 자체는 값진 것이지만, 세존께서는 그것을 오직 '지금 여기의 행복한 머묾'이라 부르시며 지워 없앰과 분명히 구분하십니다. 이 구분은 이어지는 일곱 편에서 점점 더 미묘한 경지에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묵상

몸과 마음이 아주 고요하고 편안할 때, 그 평온함 자체가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여긴 적이 있으신가요? 그 편안함과 실제로 달라진 것 사이를 가만히 구별해 보면 어떨까요? 둘 다 소중히 여기셔도 좋습니다.

쭌다여,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느니라. 여기 어떤 수행자가 사유와 숙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여, 사유와 숙고 없이 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하여 머무느니라. 그에게 ‘나는 지워 없앰으로 머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느니라. 그러나 쭌다여,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워 없앰이라 불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금 여기의 행복한 머묾’이라 불리느니라.

Ṭhānaṁ kho panetaṁ, cunda, vijjati yaṁ idhekacco bhikkhu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eyya. Tassa evamassa: ‘sallekhena viharāmī’ti. Na kho panete, cunda, ariyassa vinaye sallekhā vuccanti.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 ete ariyassa vinaye vuccan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두 번째 선정을 다루는 편으로, 앞 편과 같은 짜임이 되풀이됩니다. "사유와 숙고가 가라앉음", "마음이 하나로 모임", "집중에서 생긴 기쁨과 행복"은 첫 번째 선정과 달리 사유와 숙고 없이도 기쁨과 행복이 유지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유가 잦아들고 집중이 더 깊어졌음에도 세존께서는 똑같은 교정을 되풀이하십니다. 이렇게 되풀이되는 교정은 이 경이 의도적으로 쓰는 방식으로, 아무리 고요함이 깊어져도 그 자체로는 지워 없앰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각인시킵니다.

묵상

생각이 잦아들고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이는 순간을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 고요함이 무언가를 없애 준 것인지, 잠시 잊게 해 준 것인지 구별해 보면 어떨까요? 둘 다 소중한 경험일 수 있습니다.

쭌다여,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느니라. 여기 어떤 수행자가 희열이 사라져 평정하게 머물며,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몸으로 행복을 느끼니, 성자들이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일컫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하여 머무느니라. 그에게 ‘나는 지워 없앰으로 머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느니라. 그러나 쭌다여,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워 없앰이라 불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금 여기의 행복한 머묾’이라 불리느니라.

Ṭhānaṁ kho panetaṁ, cunda, vijjati yaṁ idhekacco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eyya,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eyya,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eyya. Tassa evamassa: ‘sallekhena viharāmī’ti. Na kho panete, cunda, ariyassa vinaye sallekhā vuccanti.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 ete ariyassa vinaye vuccan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세 번째 선정을 다루는 편입니다. 앞의 두 선정에서 있던 기쁨마저 사라지고, 몸으로 느끼는 행복과 또렷한 알아차림만 남습니다. "성자들이 일컫는다"는 표현은 이 상태가 수행자들 사이에서도 높이 평가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럼에도 세존께서는 같은 교정을 세 번째로 되풀이하십니다. 즐거움조차 가라앉은 깊은 평정의 상태마저 지워 없앰이 아니라고 짚으심으로써, 경지의 높낮이와 지워 없앰 여부는 서로 다른 잣대임을 거듭 확인시켜 주십니다.

묵상

즐거움조차 가라앉고 그저 평온하기만 한 순간이 있었나요? 그 평온함이 실제로 무언가를 내려놓은 것인지, 그냥 잠잠해진 것인지 한번 구별해 보시겠어요? 둘 다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쭌다여,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느니라. 여기 어떤 수행자가 즐거움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어, 이미 기쁨과 근심이 사라졌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정과 알아차림이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하여 머무느니라. 그에게 ‘나는 지워 없앰으로 머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느니라. 그러나 쭌다여,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워 없앰이라 불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금 여기의 행복한 머묾’이라 불리느니라.

Ṭhānaṁ kho panetaṁ, cunda, vijjati yaṁ idhekacco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ṁ upekkhāsatipārisuddhiṁ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eyya. Tassa evamassa: ‘sallekhena viharāmī’ti. Na kho panete, cunda, ariyassa vinaye sallekhā vuccanti.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 ete ariyassa vinaye vuccan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네 가지 선정 가운데 마지막인 네 번째 선정을 다루며, 이로써 형상 세계의 선정 검토가 마무리됩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모두 사라지고 평정과 알아차림만이 청정하게 남은 상태로, 형상 세계 선정 가운데 가장 깊은 경지입니다. 여기서도 같은 교정이 네 번째로 되풀이됩니다. 다음 편부터는 물질을 아예 벗어난 네 가지 무색의 경지로 넘어가는데, 그때는 '지금 여기의 행복한 머묾' 대신 '고요한 머묾'이라는 다른 표현이 쓰이는 변화가 뒤따릅니다.

묵상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그저 고요하기만 한 상태를 느껴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런 순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궁금해해 보셔도 좋습니다.

3 고요하다 불리되 자만은 아닌 것 - 네 가지 무색의 경지 4구절

허공부터 지각도 아니고 지각 아님도 아닌 경지까지, 가장 미묘한 선정조차 지워 없앰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쭌다여,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느니라. 여기 어떤 수행자가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어서고 부딪힘의 인식이 사라지며 다양함의 인식을 마음에 두지 않아, ‘허공은 끝이 없다’며 무한한 허공의 경지를 성취하여 머무느니라. 그에게 ‘나는 지워 없앰으로 머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느니라. 그러나 쭌다여,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워 없앰이라 불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고요한 머묾’이라 불리느니라.

Ṭhānaṁ kho panetaṁ, cunda, vijjati yaṁ idhekacco bhikkhu sabbaso rūpasaññānaṁ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ṁ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ṁ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eyya. Tassa evamassa: ‘sallekhena viharāmī’ti. Na kho panete, cunda, ariyassa vinaye sallekhā vuccanti. Santā ete vihārā ariyassa vinaye vuccan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네 가지 무색의 경지 가운데 첫 번째, 무한한 허공의 경지를 다룹니다. 물질에 대한 지각을 완전히 넘어서고 부딪힘과 다양함의 지각마저 내려놓는 세 단계를 거쳐야 이 경지에 이릅니다. 이제부터 닫는 표현이 '지금 여기의 행복한 머묾'에서 '고요한 머묾'으로 바뀌는데, 이는 물질 세계를 아예 벗어난 이 네 경지가 앞의 네 선정과 질적으로 다름을 보여 줍니다. 그럼에도 세존의 판정은 같습니다 - 아무리 물질을 벗어나도 그 자체로는 지워 없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묵상

물질적인 감각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것 같은 고요함을 상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 고요함과 '내 안의 무언가가 실제로 사라졌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 어떠신가요?

쭌다여,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느니라. 여기 어떤 수행자가 무한한 허공의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서 ‘의식은 끝이 없다’며 무한한 의식의 경지를 성취하여 머무느니라. 그에게 ‘나는 지워 없앰으로 머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느니라. 그러나 쭌다여,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워 없앰이라 불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고요한 머묾’이라 불리느니라.

Ṭhānaṁ kho panetaṁ, cunda, vijjati yaṁ idhekacco bhikkhu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ṁ samatikkamma ‘anantaṁ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eyya. Tassa evamassa: ‘sallekhena viharāmī’ti. Na kho panete, cunda, ariyassa vinaye sallekhā vuccanti. Santā ete vihārā ariyassa vinaye vuccan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두 번째 무색의 경지, 무한한 의식의 경지를 다룹니다. 앞선 무한한 허공의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야 이 경지에 이르는데, 이렇게 하나의 경지를 딛고 다음 경지로 넘어가는 짜임이 앞으로도 되풀이됩니다. 이번에는 마음이 허공이 아니라 의식 그 자체를 끝없는 대상으로 삼습니다. 여기서도 같은 교정이 되풀이되는데, 이러한 반복 자체가 아무리 경험이 미묘해져도 그것을 곧바로 해탈로 여기지 않도록 듣는 이를 훈련시키는 구실을 합니다.

묵상

의식이 넓게 열려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 열림 자체를 목표로 삼고 싶어진 적이 있으신가요? 그 열림 뒤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도 함께 가만히, 아주 천천히 살펴보면 어떨까요?

쭌다여,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느니라. 여기 어떤 수행자가 무한한 의식의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서 ‘아무것도 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성취하여 머무느니라. 그에게 ‘나는 지워 없앰으로 머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느니라. 그러나 쭌다여,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워 없앰이라 불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고요한 머묾’이라 불리느니라.

Ṭhānaṁ kho panetaṁ, cunda, vijjati yaṁ idhekacco bhikkhu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ṁ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eyya. Tassa evamassa: ‘sallekhena viharāmī’ti. Na kho panete, cunda, ariyassa vinaye sallekhā vuccanti. Santā ete vihārā ariyassa vinaye vuccan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세 번째 무색의 경지,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다룹니다. 무한한 의식의 경지마저 넘어서서 어떤 대상도 지각하지 않는 데까지 이릅니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지각이야말로 궁극의 내려놓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경의 기준에서는 이 역시 고요한 머묾일 뿐 지워 없앰은 아닙니다. 이는 지각의 대상이 텅 비어 있는 것과 자아에 대한 견해가 실제로 비워지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임을 짚어 주는 대목입니다.

묵상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조차 하나의 경험이라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떠신가요? 텅 빈 느낌과 실제로 내려놓은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서두르지 말고 함께 천천히 떠올려 보시겠어요?

쭌다여,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느니라. 여기 어떤 수행자가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완전히 넘어서서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를 성취하여 머무느니라. 그에게 ‘나는 지워 없앰으로 머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느니라. 그러나 쭌다여,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워 없앰이라 불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성자의 율에서 ‘고요한 머묾’이라 불리느니라.

Ṭhānaṁ kho panetaṁ, cunda, vijjati yaṁ idhekacco bhikkhu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ṁ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eyya. Tassa evamassa: ‘sallekhena viharāmī’ti. Na kho panete, cunda, ariyassa vinaye sallekhā vuccanti. Santā ete vihārā ariyassa vinaye vuccan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여덟 가지 선정 검토의 마지막 편으로, 지각도 아니고 지각 아님도 아닌 가장 미묘한 경지를 다룹니다. 이는 불교 전통에서 인정하는 가장 높은 선정의 경지이지만, 이 경은 이마저도 '고요한 머묾'일 뿐이라고 못박습니다. 이로써 네 가지 선정과 네 가지 무색의 경지, 모두 여덟 가지 경지가 하나같이 지워 없앰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다음 편부터는 지워 없앰이 실제로 무엇인지, 마흔네 가지 항목으로 직접 밝혀집니다.

묵상

가장 미묘하고 고요한 상태조차 아직 목적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지금 마음에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조급해지기보다, 그저 지나가는 하나의 이정표쯤으로 가만히 여겨 보면 어떨까요?

4 지워 없앰이란 - 마흔네 가지 7구절

지워 없앰이 실제로 무엇인지, 마흔네 가지 항목을 하나하나 밝힙니다.

쭌다여, 여기서 그대들은 지워 없앰을 행해야 하느니라. ‘남들이 해치는 자가 되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해치지 않는 자가 되리라’ 하며 지워 없앰을 행해야 하느니라.

1. Sallekhapariyāya Idha kho pana vo, cunda, sallekho karaṇīyo. ‘Pare vihiṁsakā bhavissanti, mayamettha avihiṁsak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여덟 가지 경지가 모두 지워 없앰에 미치지 못한다고 밝힌 뒤, 지워 없앰이 실제로 무엇인지 밝히는 이 경의 중심 부분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지워 없앰은 어떤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karaṇīyo)으로 제시됩니다. 이어질 마흔네 항목 모두 '남들이 이렇게 되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저렇게 되리라'는 같은 틀을 따르며, 첫 항목인 '해치지 않음'이 그 틀을 처음 보여 줍니다. 남이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스스로 다짐한다는 점이 이 방식의 핵심입니다.

묵상

누군가 나를 함부로 대하더라도 나만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 다짐이 며칠이나 이어졌는지, 지금은 판단하지 말고 그저 가만히 다시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남들은 살생해도 우리는 살생을 삼가리라, 남들은 도둑질해도 우리는 훔치지 않으리라, 남들은 음행해도 우리는 청정하게 살리라, 남들은 거짓말해도 우리는 거짓을 삼가리라, 남들은 이간질해도 우리는 이간질을 삼가리라, 남들은 거친 말을 해도 우리는 거친 말을 삼가리라, 남들은 잡담해도 우리는 잡담을 삼가리라’ 하며 지워 없앰을 행해야 하느니라.

‘Pare pāṇātipātī bhavissanti, mayamett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adinnādāyī bhavissanti, mayamettha adinnādānā paṭivirat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abrahmacārī bhavissanti, mayamettha brahmacār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usāvādī bhavissanti, mayamettha musāvādā paṭivirat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pisuṇavācā bhavissanti, mayamettha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pharusavācā bhavissanti, mayamettha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samphappalāpī bhavissanti, mayamettha samphappalāpā paṭivirat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앞 편의 틀을 이어받아, 몸으로 짓는 세 가지(살생, 도둑질, 음행)와 말로 짓는 네 가지(거짓말, 이간질, 거친 말, 잡담)를 차례로 다룹니다. 이 일곱 항목은 전통적으로 몸과 말로 짓는 해로운 행위를 이루며, 재가자에게 익숙한 다섯 계율과도 겹칩니다. 각 항목은 '남들이 이렇게 되더라도 우리는 저렇게 되리라'는 같은 틀 안에서 이름만 바뀌어 되풀이되는데, 이는 지워 없앰이 특별한 수행이 아니라 일상의 구체적인 행위 하나하나에서 시작됨을 보여 줍니다.

묵상

이 목록 가운데 오늘 나에게 특히 와닿는 항목이 있나요? 전부를 한꺼번에 다짐하지 않아도, 하나만 붙잡아 보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항목은 천천히, 때가 되면 만나도 괜찮습니다.

‘남들은 탐욕스러워도 우리는 탐욕 없이 살리라, 남들은 악의를 품어도 우리는 악의 없이 살리라, 남들은 그릇된 견해를 지녀도 우리는 바른 견해를 지니리라, 남들은 그릇되게 생각해도 우리는 바르게 생각하리라, 남들은 그릇되게 말해도 우리는 바르게 말하리라, 남들은 그릇되게 행동해도 우리는 바르게 행동하리라, 남들은 그릇된 생계를 살아도 우리는 바른 생계를 살리라’ 하며 지워 없앰을 행해야 하느니라.

‘Pare abhijjhālū bhavissanti, mayamettha anabhijjhāl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byāpannacittā bhavissanti, mayamettha abyāpannacitt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icchādiṭṭhī bhavissanti, mayamettha sammādiṭṭh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icchāsaṅkappā bhavissanti, mayamettha sammāsaṅkapp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icchāvācā bhavissanti, mayamettha sammāvāc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icchākammantā bhavissanti, mayamettha sammākammant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icchāājīvā bhavissanti, mayamettha sammāājīv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앞 편의 일곱 항목에 이어 탐욕과 악의를 다룬 뒤, 여덟 가지 바른 길의 앞쪽 다섯 가지(바른 견해·생각·말·행동·생계)를 그 반대 항과 나란히 놓습니다. 목록이 여기서 조용히 일상의 계율에서 여덟 가지 바른 길 자체로 옮겨 갑니다. 이는 지워 없앰이 계율과 동떨어진 별도의 수행이 아니라, 바른 길 그 자체를 남들이 어떻게 하든 스스로 다짐하는 방식으로 다시 말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그릇된'과 '바른'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긴장되나요, 아니면 방향을 알려 주는 것 같아 안심이 되나요? 둘 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니, 어느 쪽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요?

‘남들은 그릇되게 노력해도 우리는 바르게 노력하리라, 남들은 그릇되게 알아차려도 우리는 바르게 알아차리리라, 남들은 그릇되게 집중해도 우리는 바르게 집중하리라, 남들은 그릇된 앎을 지녀도 우리는 바른 앎을 지니리라, 남들은 그릇된 해탈에 머물러도 우리는 바른 해탈에 머물리라, 남들은 혼침과 졸음에 빠져도 우리는 그것을 벗어나리라, 남들은 들떠 있어도 우리는 들뜨지 않으리라’ 하며 지워 없앰을 행해야 하느니라.

‘Pare micchāvāyāmā bhavissanti, mayamettha sammāvāyām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icchāsatī bhavissanti, mayamettha sammāsat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icchāsamādhi bhavissanti, mayamettha sammāsamādh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icchāñāṇī bhavissanti, mayamettha sammāñāṇ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icchāvimuttī bhavissanti, mayamettha sammāvimutt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thinamiddhapariyuṭṭhitā bhavissanti, mayamettha vigatathinamiddh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uddhatā bhavissanti, mayamettha anuddhat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여덟 가지 바른 길의 나머지 세 가지(바른 노력·알아차림·집중)에 바른 앎과 바른 해탈을 더해 마무리한 뒤, 다섯 장애 가운데 혼침과 졸음, 들뜸으로 넘어갑니다. 탐욕과 악의는 이미 앞 편에서 다루었으므로, 다섯 장애의 나머지가 여기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목록이 계율과 여덟 가지 바른 길, 다섯 장애 사이를 별다른 표시 없이 넘나드는 것은, 지워 없앰이 수행의 어느 한 갈래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마음이 흐릿하게 가라앉거나 반대로 들떠서 안절부절못했던 때를 떠올려 보면, 그 사이 어딘가에 고요히 깨어 있는 자리가 있었을까요? 오늘은 그 자리를 잠깐이라도 가만히 찾아보셔도 좋습니다.

‘남들은 의심에 머물러도 우리는 의심을 건너리라, 남들은 화를 내어도 우리는 화내지 않으리라, 남들은 원한을 품어도 우리는 원한을 품지 않으리라, 남들은 남을 업신여겨도 우리는 업신여기지 않으리라, 남들은 대항하며 다투어도 우리는 대항하지 않으리라, 남들은 질투해도 우리는 질투하지 않으리라, 남들은 인색해도 우리는 인색하지 않으리라’ 하며 지워 없앰을 행해야 하느니라.

‘Pare vicikicchī bhavissanti, mayamettha tiṇṇavicikicch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kodhanā bhavissanti, mayamettha akkodhan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upanāhī bhavissanti, mayamettha anupanāh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akkhī bhavissanti, mayamettha amakkh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paḷāsī bhavissanti, mayamettha apaḷās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issukī bhavissanti, mayamettha anissuk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accharī bhavissanti, mayamettha amacchar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의심으로 다섯 장애를 마무리한 뒤, 분노와 원한, 업신여김, 대항하며 다툼, 질투, 인색이라는 여섯 가지 대인관계의 결점으로 넘어갑니다. 이 여섯은 명상 중에 일어나는 장애라기보다, 다른 사람을 마주할 때 드러나는 마음의 습관들입니다. 목록이 여기서부터 홀로 앉아 있을 때의 마음가짐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지워 없앰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도 똑같이 요구됨을 보여 줍니다.

묵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겨루고 싶은 마음이 슬쩍 올라올 때, 그 마음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무언가 달라지는 것 같으신가요? 애써 없애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알아차림 자체가 이미 실천입니다.

‘남들은 속임수를 써도 우리는 속임수를 쓰지 않으리라, 남들은 기만해도 우리는 기만하지 않으리라, 남들은 완고해도 우리는 완고하지 않으리라, 남들은 지나치게 자만해도 우리는 자만하지 않으리라, 남들은 충고를 듣지 않아도 우리는 충고를 잘 받아들이리라, 남들은 나쁜 벗을 두어도 우리는 좋은 벗을 두리라, 남들은 방일해도 우리는 방일하지 않으리라’ 하며 지워 없앰을 행해야 하느니라.

‘Pare saṭhā bhavissanti, mayamettha asaṭh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āyāvī bhavissanti, mayamettha amāyāv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thaddhā bhavissanti, mayamettha atthaddh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atimānī bhavissanti, mayamettha anatimān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dubbacā bhavissanti, mayamettha suvac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pāpamittā bhavissanti, mayamettha kalyāṇamitt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pamattā bhavissanti, mayamettha appamatt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속임수와 기만, 완고함과 자만이라는 정직·유연함의 문제를 다룬 뒤, 충고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벗을 사귀는 문제로 넘어갑니다. "충고를 잘 받아들임"과 "좋은 벗"이 나란히 놓인 것은, 자기를 다스리는 일이 홀로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열려 있는 태도와 함께 간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 항목인 방일하지 않음은 다음에 이어지는 뒤쪽 항목들, 곧 안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들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묵상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건넸을 때, 곧바로 방어하고 싶었던 적과 정말 귀 기울여 들었던 적,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 보시겠어요? 둘 다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발견입니다.

‘남들은 믿음이 없어도 우리는 믿음을 지니리라, 남들은 부끄러움이 없어도 우리는 부끄러움을 지니리라, 남들은 두려움을 몰라도 우리는 도덕적 두려움을 지니리라, 남들은 적게 배워도 우리는 많이 배우리라, 남들은 게을러도 우리는 부지런히 힘쓰리라, 남들은 알아차림을 놓쳐도 우리는 굳게 세우리라, 남들은 지혜가 모자라도 우리는 지혜를 갖추리라, 남들은 견해에 집착해 놓지 못해도 우리는 집착 없이 잘 놓아버리리라’ 하며 지워 없앰을 행해야 하느니라.

‘Pare assaddhā bhavissanti, mayamettha saddh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ahirikā bhavissanti, mayamettha hiriman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anottāpī bhavissanti, mayamettha ottāp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appassutā bhavissanti, mayamettha bahussut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kusītā bhavissanti, mayamettha āraddhavīriy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muṭṭhassatī bhavissanti, mayamettha upaṭṭhitassat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duppaññā bhavissanti, mayamettha paññāsampannā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Pare sandiṭṭhiparāmāsī ādhānaggāhī duppaṭinissaggī bhavissanti, mayamettha asandiṭṭhiparāmāsī anādhānaggāhī suppaṭinissaggī bhavissāmā’ti sallekho karaṇīyo.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마흔네 항목의 마지막 편으로, 믿음·부끄러움·도덕적 두려움·배움·정진·알아차림·지혜라는 안으로 갖추어야 할 일곱 자질을 다룬 뒤, 맨 마지막 항목에서 다시 '견해'로 돌아갑니다. 이 마지막 항목은 이 경의 맨 처음, 쭌다가 물었던 바로 그 질문(견해를 어떻게 버리는가)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계율, 여덟 가지 바른 길, 다섯 장애, 대인관계의 결점, 안으로 갖출 자질까지 마흔네 가지 모두가 결국 이 하나, 견해를 굳게 붙들지 않고 놓아버리는 데로 모인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내가 오래 붙들어 온 생각 하나를 떠올려 보면, 그것을 꼭 붙들고 있다는 느낌과 필요할 때 내려놓을 수 있다는 느낌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지금은 그 차이를 느껴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5 마음만 일으켜도 - 마음을 일으키는 방식 1구절

마흔네 가지 항목을 실제 행동에 앞서 마음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쭌다여, 나는 유익한 것에 마음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라 말하나니, 몸과 말로 행함이야 말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남들이 해쳐도 우리는 해치지 않으리라’며 마음을 일으켜야 하며, ‘남들이 살생해도 우리는 삼가리라’며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 (나머지 마흔두 가지도 이와 같이 마음을 일으켜야 하며) … ‘남들이 견해를 굳게 붙들어도 우리는 잘 놓아버리리라’며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2. Cittupapādapariyāya Cittuppādampi kho ahaṁ, cunda, kusalesu dhammesu bahukāraṁ vadāmi, ko pana vādo kāyena vācāya anuvidhīyanāsu. Tasmātiha, cunda, ‘pare vihiṁsakā bhavissanti, mayamettha avihiṁsakā bhavissāmā’ti cittaṁ uppādetabbaṁ. ‘Pare pāṇātipātī bhavissanti, mayamett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ā bhavissāmā’ti cittaṁ uppādetabbaṁ …pe… ‘pare sandiṭṭhiparāmāsī ādhānaggāhī duppaṭinissaggī bhavissanti, mayamettha asandiṭṭhiparāmāsī anādhānaggāhī suppaṭinissaggī bhavissāmā’ti cittaṁ uppāde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마흔네 항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로 행하는 방식으로 다룬 앞 절에 이어, 이번에는 같은 마흔네 항목을 '마음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이미 값지다는 관점에서 다시 다룹니다. 원문은 이미 앞에서 목록을 온전히 폈으므로 여기서는 첫 항목과 마지막 항목만 온전히 들고 나머지는 '…pe…'로 줄이는데, 이 줄임은 원문 자체의 것이며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라는 말은, 아직 몸과 말로 옮기지 못했어도 그런 마음을 낸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마음속으로 '이번엔 다르게 해봐야지' 하고 정한 것만으로 이미 무엇이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든 적 있으신가요? 아직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어도, 그 마음을 낸 것만으로 괜찮습니다.

6 돌아가는 방식 - 험한 길을 피하는 지름길 5구절

마흔네 가지 항목을 험한 길과 평탄한 길의 비유로 다시 설합니다.

쭌다여, 비유하면 험한 길이 있으면 그것을 피해 돌아갈 평탄한 다른 길이 있는 것과 같고, 험한 나루터가 있으면 그것을 피해 돌아갈 평탄한 다른 나루터가 있는 것과 같으니라.

3. Parikkamanapariyāya Seyyathāpi, cunda, visamo maggo assa, tassa añño samo maggo parikkamanāya; seyyathā vā pana, cunda, visamaṁ titthaṁ assa, tassa aññaṁ samaṁ titthaṁ parikkamanāya;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다섯 가지 방식 가운데 세 번째, 돌아가는 방식이 두 가지 비유로 시작됩니다. 험한 길과 평탄한 길, 험한 나루터와 평탄한 나루터라는 짝을 이룬 두 비유가 나란히 놓여, 같은 뜻을 두 번 확인시킵니다. 이 절의 이름인 '돌아가는 방식'(parikkamana)은 문자 그대로 '피해 돌아감'을 뜻하며, 다음 두 편에서 마흔네 항목 전체에 이 비유가 적용됩니다.

묵상

가로막힌 길 앞에서 돌아갈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안도감을 떠올려 보면 어떤가요? 마음의 거친 습관에도 그런 다른 길이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지금 당장 찾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쭌다여, 바로 이와 같이 해치는 사람에게는 해치지 않음이, 살생하는 사람에게는 삼감이, 도둑질하는 사람에게는 삼감이, 음행하는 사람에게는 청정한 삶이, 거짓말하는 사람에게는 삼감이, 이간질하는 사람에게는 삼감이, 거친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삼감이, 잡담하는 사람에게는 삼감이, 탐욕스러운 사람에게는 탐욕 없음이, 악의를 품은 사람에게는 악의 없음이 돌아가는 길이 되느니라.

evameva kho, cunda, vihiṁsakassa purisapuggalassa avihiṁsā hoti parikkamanāya, pāṇātipātissa purisapuggalassa pāṇātipātā veramaṇī hoti parikkamanāya, adinnādāyissa purisapuggalassa adinnādānā veramaṇī hoti parikkamanāya, abrahmacārissa purisapuggalassa abrahmacariyā veramaṇī hoti parikkamanāya, musāvādissa purisapuggalassa musāvādā veramaṇī hoti parikkamanāya, pisuṇavācassa purisapuggalassa pisuṇāya vācāya veramaṇī hoti parikkamanāya, pharusavācassa purisapuggalassa pharusāya vācāya veramaṇī hoti parikkamanāya, samphappalāpissa purisapuggalassa samphappalāpā veramaṇī hoti parikkamanāya, abhijjhālussa purisapuggalassa anabhijjhā hoti parikkamanāya, byāpannacittassa purisapuggalassa abyāpādo hoti parikkamanāya.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앞 편의 두 비유를 마흔네 항목 가운데 처음 열 가지에 적용합니다. 이 열 가지는 지워 없앰의 방식(첫 절)에서 이미 다룬 것과 같은 항목이지만, 이번에는 '우리는 이리 되리라'는 다짐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는 이것이 있다'는 객관적 서술로 바뀝니다. 원문에서 이 열 항목은 쉼표로 이어진 하나의 긴 문장으로 되어 있어, 이 편 전체가 하나의 원문 키에서 나온 것입니다.

묵상

습관적으로 해오던 행동에 사실은 다른 길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이 있었나요? 그 다른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드시나요? 서두르지 않고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그릇된 견해에는 바른 견해가, 그릇되게 생각함에는 바른 생각이, 그릇되게 말함에는 바른 말이, 그릇되게 행동함에는 바른 행동이, 그릇된 생계에는 바른 생계가, 그릇되게 노력함에는 바른 노력이, 그릇되게 알아차림에는 바른 알아차림이, 그릇되게 집중함에는 바른 집중이, 그릇된 앎에는 바른 앎이, 그릇된 해탈에는 바른 해탈이 돌아가는 길이 되느니라.

Micchādiṭṭhissa purisapuggalassa sammādiṭṭhi hoti parikkamanāya, micchāsaṅkappassa purisapuggalassa sammāsaṅkappo hoti parikkamanāya, micchāvācassa purisapuggalassa sammāvācā hoti parikkamanāya, micchākammantassa purisapuggalassa sammākammanto hoti parikkamanāya, micchāājīvassa purisapuggalassa sammāājīvo hoti parikkamanāya, micchāvāyāmassa purisapuggalassa sammāvāyāmo hoti parikkamanāya, micchāsatissa purisapuggalassa sammāsati hoti parikkamanāya, micchāsamādhissa purisapuggalassa sammāsamādhi hoti parikkamanāya, micchāñāṇissa purisapuggalassa sammāñāṇaṁ hoti parikkamanāya, micchāvimuttissa purisapuggalassa sammāvimutti hoti parikkamanāya.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돌아가는 길의 비유를 여덟 가지 바른 길 전체와 바른 앎, 바른 해탈까지 열 가지에 적용합니다. 앞 편과 마찬가지로 원문에서 이 열 항목 역시 하나의 긴 문장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여덟 가지 바른 길 전체를 그릇된 길에 대한 '돌아가는 길'로 규정하는 것은, 바른 길이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긋난 자리마다 마련된 우회로임을 보여 줍니다. 앞 편의 열 가지와 합쳐 스무 가지가 이렇게 밝혀졌습니다.

묵상

여덟 가지 바른 길이라는 말을 들으면 멀고 높게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지금 당장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갈림길처럼 느껴지시나요? 오늘은 그 가운데 하나만 가만히 떠올려 보아도 충분합니다.

혼침과 졸음에서 벗어남이, 들뜨지 않음이, 의심을 건넘이 돌아가는 길이 되며, 분노와 원한과 업신여김과 대항하며 다툼과 질투와 인색과 속임수와 기만과 완고함에도 저마다 그렇지 않음이 돌아가는 길이 되느니라.

Thinamiddhapariyuṭṭhitassa purisapuggalassa vigatathinamiddhatā hoti parikkamanāya, uddhatassa purisapuggalassa anuddhaccaṁ hoti parikkamanāya, vicikicchissa purisapuggalassa tiṇṇavicikicchatā hoti parikkamanāya, kodhanassa purisapuggalassa akkodho hoti parikkamanāya, upanāhissa purisapuggalassa anupanāho hoti parikkamanāya, makkhissa purisapuggalassa amakkho hoti parikkamanāya, paḷāsissa purisapuggalassa apaḷāso hoti parikkamanāya, issukissa purisapuggalassa anissukitā hoti parikkamanāya, maccharissa purisapuggalassa amacchariyaṁ hoti parikkamanāya, saṭhassa purisapuggalassa asāṭheyyaṁ hoti parikkamanāya, māyāvissa purisapuggalassa amāyā hoti parikkamanāya, thaddhassa purisapuggalassa atthaddhiyaṁ hoti parikkamanāya, …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돌아가는 길의 비유를 나머지 스물네 항목에 적용하는 대목이 원문에서 하나의 긴 문장으로 이어져 있어, 읽기 편하도록 두 편으로 나누었습니다. 이 편은 그 앞쪽 절반, 곧 다섯 장애의 나머지(혼침과 졸음·들뜸·의심)와 분노·원한·업신여김·대항하며 다툼·질투·인색·속임수·기만·완고함까지 열두 항목을 다룹니다. 명상 중의 장애에서 시작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드러나는 결점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뒤쪽 열두 항목은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마음이 흐릿하게 가라앉거나 들뜨거나 의심에 붙잡힐 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화나 원한을 품을 때, 이 둘이 서로 다른 문제처럼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 같으신가요? 지금 당장 답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지나친 자만에는 자만하지 않음이, 충고를 듣지 않음에는 잘 받아들임이, 나쁜 벗에는 좋은 벗이, 방일에는 부지런함이, 믿음 없음에는 믿음이,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음에는 그 둘이, 배움이 적음에는 많이 배움이, 게으름에는 정진이, 알아차림을 놓침에는 굳게 섬이, 지혜가 모자람에는 갖춤이, 그리고 견해에 집착해 놓지 못함에는 집착 없이 잘 놓아버림이 돌아가는 길이 되느니라.

… atimānissa purisapuggalassa anatimāno hoti parikkamanāya, dubbacassa purisapuggalassa sovacassatā hoti parikkamanāya, pāpamittassa purisapuggalassa kalyāṇamittatā hoti parikkamanāya, pamattassa purisapuggalassa appamādo hoti parikkamanāya, assaddhassa purisapuggalassa saddhā hoti parikkamanāya, ahirikassa purisapuggalassa hirī hoti parikkamanāya, anottāpissa purisapuggalassa ottappaṁ hoti parikkamanāya, appassutassa purisapuggalassa bāhusaccaṁ hoti parikkamanāya, kusītassa purisapuggalassa vīriyārambho hoti parikkamanāya, muṭṭhassatissa purisapuggalassa upaṭṭhitassatitā hoti parikkamanāya, duppaññassa purisapuggalassa paññāsampadā hoti parikkamanāya, sandiṭṭhiparāmāsiādhānaggāhiduppaṭinissaggissa purisapuggalassa asandiṭṭhiparāmāsianādhānaggāhisuppaṭinissaggitā hoti parikkamanāya.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바로 앞 편에서 시작된 하나의 긴 문장(원문 mn8:14.5)이 여기서 이어집니다. 앞 편이 다섯 장애와 대인관계의 결점 앞부분을 다루었다면, 이 편은 완고함 이후의 나머지 - 지나친 자만, 충고를 받아들이는 태도, 벗을 사귀는 문제, 방일, 그리고 믿음·부끄러움·도덕적 두려움·배움·정진·알아차림·지혜라는 안으로 갖출 일곱 자질까지 담습니다. 마지막 항목인 견해에 대한 집착은 이 경의 맨 처음, 쭌다가 물었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며 이 긴 문장 전체를 마무리합니다.

묵상

안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들과 마지막의 '견해를 놓아버림'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인 것을 보면서, 지금 나에게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만 떠올려도 충분합니다.

7 오르는 방식 - 아래로 향함과 위로 향함 1구절

해로운 것은 아래로, 유익한 것은 위로 향하게 한다는 비유로 마흔네 가지를 다시 설합니다.

쭌다여, 비유하면 해로운 것들은 모두 아래로 향하게 하고 유익한 것들은 모두 위로 향하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바로 이와 같이, 해치는 사람에게는 해치지 않음이, 살생하는 사람에게는 삼감이 위로 향하게 하나니 … (나머지 마흔두 가지도 같은 방식으로) … 견해에 집착해 놓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집착 없이 잘 놓아버림이 위로 향하게 하느니라.

4. Uparibhāgapariyāya Seyyathāpi, cunda, ye keci akusalā dhammā sabbe te adhobhāgaṅgamanīyā, ye keci kusalā dhammā sabbe te uparibhāgaṅgamanīyā; evameva kho, cunda, vihiṁsakassa purisapuggalassa avihiṁsā hoti uparibhāgāya, pāṇātipātissa purisapuggalassa pāṇātipātā veramaṇī hoti uparibhāgāya …pe… sandiṭṭhiparāmāsiādhānaggāhiduppaṭinissaggissa purisapuggalassa asandiṭṭhiparāmāsianādhānaggāhisuppaṭinissaggitā hoti uparibhāgāya.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다섯 가지 방식 가운데 네 번째로, 돌아가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이미 목록이 두 번 온전히 나왔으므로 원문 스스로 첫 항목과 마지막 항목만 들고 나머지는 '…pe…'로 줄입니다. "아래로 향하게 함"과 "위로 향하게 함"이라는 수직의 비유는 앞서의 '돌아가는 길'이라는 수평의 비유와 짝을 이루며, 해로운 것과 유익한 것이 사람을 각각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줍니다.

묵상

오늘 한 일 가운데 마음을 아래로 가라앉힌 것과 위로 끌어올린 것이 있다면, 각각 무엇이었을지 떠올려 보시겠어요? 어느 하나만으로 오늘 하루 전체를 서둘러 판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8 열반에 이르는 방식 - 나를 먼저 다스려야 1구절

진흙탕에 빠진 자가 남을 건질 수 없듯, 스스로 다스려야 남도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쭌다여, 스스로 진흙탕에 빠진 자가 빠진 남을 건져 냄은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나 스스로 빠지지 않은 자가 남을 건져 냄은 있을 수 있느니라. 스스로 다스려지지 않고 길들지 않고 열반에 이르지 못한 자가 남을 다스리고 길들이고 열반에 이르게 함은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나 스스로 다스려지고 길들고 열반에 이른 자가 남을 다스리고 길들이고 열반에 이르게 함은 있을 수 있느니라.

5. Parinibbānapariyāya So vata, cunda, attanā palipapalipanno paraṁ palipapalipannaṁ uddharissatīti netaṁ ṭhānaṁ vijjati. So vata, cunda, attanā apalipapalipanno paraṁ palipapalipannaṁ uddharissatīti ṭhānametaṁ vijjati. So vata, cunda, attanā adanto avinīto aparinibbuto paraṁ damessati vinessati parinibbāpessatīti netaṁ ṭhānaṁ vijjati. So vata, cunda, attanā danto vinīto parinibbuto paraṁ damessati vinessati parinibbāpessatīti ṭhānametaṁ vijja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다섯 가지 방식의 마지막인 열반에 이르는 방식이 두 쌍의 비유로 시작됩니다. 진흙탕에 빠짐이라는 구체적인 비유와 다스려짐·열반에 이름이라는 추상적인 서술이 나란히 놓여 같은 뜻을 두 번 확인시킵니다. 마흔네 항목이 다시 온전히 나오기 직전에 놓인 이 대목은, 남을 돕는 일이 반드시 자신을 다스리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이 경 전체를 관통하는, 스스로를 먼저 살피라는 요청이기도 합니다.

묵상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앞서 정작 나 자신은 그대로인 채로 남에게 조언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그때와 지금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서두르지 말고 함께 아주 천천히 떠올려 보시겠어요?

9 마흔네 가지가 열반으로 6구절

마흔네 가지 항목이 낱낱이 열반으로 이끄는 길임을 세 번째로 밝힙니다.

쭌다여, 바로 이와 같이 해침에는 해치지 않음이, 살생에는 삼감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도둑질에는 삼감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음행에는 청정한 삶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거짓말에는 삼감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이간질에는 삼감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거친 말에는 삼감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잡담에는 삼감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탐욕에는 탐욕 없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악의에는 악의 없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Evameva kho, cunda, vihiṁsakassa purisapuggalassa avihiṁsā hoti parinibbānāya, pāṇātipātissa purisapuggalassa pāṇātipātā veramaṇī hoti parinibbānāya. Adinnādāyissa purisapuggalassa adinnādānā veramaṇī hoti parinibbānāya. Abrahmacārissa purisapuggalassa abrahmacariyā veramaṇī hoti parinibbānāya. Musāvādissa purisapuggalassa musāvādā veramaṇī hoti parinibbānāya. Pisuṇavācassa purisapuggalassa pisuṇāya vācāya veramaṇī hoti parinibbānāya. Pharusavācassa purisapuggalassa pharusāya vācāya veramaṇī hoti parinibbānāya. Samphappalāpissa purisapuggalassa samphappalāpā veramaṇī hoti parinibbānāya. Abhijjhālussa purisapuggalassa anabhijjhā hoti parinibbānāya. Byāpannacittassa purisapuggalassa abyāpādo hoti parinibbānāya.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다섯 가지 방식 가운데 마지막, 열반에 이르는 방식이 마흔네 항목의 처음 열 가지에 적용되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앞서 '돌아가는 길'이나 '위로 향함'이라 불리던 것이 여기서는 곧바로 '열반'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편에서부터는 원문이 각 항목을 다시 낱낱의 완결된 문장으로 적어, 이 목록 전체가 이 경 안에서 세 번째로 온전히 되풀이됩니다. 지워 없앰의 방식에서 다짐으로 시작된 같은 항목이 이제 목적지의 이름을 얻습니다.

묵상

'열반으로 이끈다'는 말이 크고 멀게 느껴지신다면, 오늘 삼간 것 하나만이라도 그 방향으로 한 걸음이었다고 여겨 보면 어떨까요? 걸음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방향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그릇된 견해를 지닌 사람에게는 바른 견해가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그릇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바른 생각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그릇되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바른 말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그릇되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바른 행동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그릇된 생계를 사는 사람에게는 바른 생계가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그릇되게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바른 노력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그릇되게 알아차리는 사람에게는 바른 알아차림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Micchādiṭṭhissa purisapuggalassa sammādiṭṭhi hoti parinibbānāya. Micchāsaṅkappassa purisapuggalassa sammāsaṅkappo hoti parinibbānāya. Micchāvācassa purisapuggalassa sammāvācā hoti parinibbānāya. Micchākammantassa purisapuggalassa sammākammanto hoti parinibbānāya. Micchāājīvassa purisapuggalassa sammāājīvo hoti parinibbānāya. Micchāvāyāmassa purisapuggalassa sammāvāyāmo hoti parinibbānāya. Micchāsatissa purisapuggalassa sammāsati hoti parinibbānāya.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여덟 가지 바른 길의 앞 일곱 가지를 다루는 편입니다. 같은 항목을 지워 없앰의 방식, 돌아가는 방식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등장인데, 그때마다 '우리는 되리라'는 다짐, '돌아가는 길이 된다'는 서술, 그리고 이제 '열반으로 이끈다'는 선언으로 표현이 달라집니다. 이 되풀이 자체가, 같은 실천이 다짐으로도 서술로도 궁극의 목적지로도 성립함을 보여 주는 가르침입니다.

묵상

같은 여덟 가지 길을 벌써 세 번째 다른 각도로 만나고 있어요. 이번에는 그 가운데 어떤 항목이 가장 익숙하게 다가오나요? 매번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그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셔도 좋습니다.

그릇되게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바른 집중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그릇된 앎을 지닌 사람에게는 바른 앎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그릇된 해탈에 머무는 사람에게는 바른 해탈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혼침과 졸음에 빠진 사람에게는 그것을 벗어남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들뜬 사람에게는 들뜨지 않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의심을 건넘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화내는 사람에게는 화내지 않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Micchāsamādhissa purisapuggalassa sammāsamādhi hoti parinibbānāya. Micchāñāṇissa purisapuggalassa sammāñāṇaṁ hoti parinibbānāya. Micchāvimuttissa purisapuggalassa sammāvimutti hoti parinibbānāya. Thinamiddhapariyuṭṭhitassa purisapuggalassa vigatathinamiddhatā hoti parinibbānāya. Uddhatassa purisapuggalassa anuddhaccaṁ hoti parinibbānāya. Vicikicchissa purisapuggalassa tiṇṇavicikicchatā hoti parinibbānāya. Kodhanassa purisapuggalassa akkodho hoti parinibbānāya.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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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집중과 바른 앎, 바른 해탈로 열 가지 길을 마무리한 뒤, 다섯 장애의 나머지(혼침과 졸음, 들뜸, 의심)와 대인관계 결점의 첫째인 분노로 넘어갑니다. 길의 완성을 나타내는 항목들과 명상 중의 장애, 관계 속의 결점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은, 열반에 이르는 길이 어느 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수행 중의 경험과 일상의 감정이 같은 목록 안에 나란히 놓여 있는 셈입니다.

묵상

의심이나 들뜸처럼 마음을 흔드는 상태가 찾아올 때, 그것을 없애야 할 문제가 아니라 지나가는 날씨처럼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날씨는 언젠가 지나간다는 것도 함께 떠올려 보시겠어요?

원한을 품은 사람에게는 원한 없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에게는 업신여기지 않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대항하며 다투는 사람에게는 다투지 않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질투하는 사람에게는 질투 없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인색한 사람에게는 인색하지 않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속이는 사람에게는 속이지 않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기만하는 사람에게는 기만하지 않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Upanāhissa purisapuggalassa anupanāho hoti parinibbānāya. Makkhissa purisapuggalassa amakkho hoti parinibbānāya. Paḷāsissa purisapuggalassa apaḷāso hoti parinibbānāya. Issukissa purisapuggalassa anissukitā hoti parinibbānāya. Maccharissa purisapuggalassa amacchariyaṁ hoti parinibbānāya. Saṭhassa purisapuggalassa asāṭheyyaṁ hoti parinibbānāya. Māyāvissa purisapuggalassa amāyā hoti parinibbānāya.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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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과 업신여김, 대항하며 다툼, 질투, 인색, 속임수, 기만이라는 대인관계 결점들이 계속됩니다. 이 항목들이 계율이나 선정의 항목들과 나란히 열반의 길로 꼽히는 것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가 결코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라 해탈로 가는 길의 본줄기임을 보여 줍니다. 혼자만의 수행으로는 다 채울 수 없는 자리를 이 항목들이 짚어 주며, 이는 앞선 지워 없앰의 방식에서도 같은 순서로 이미 나왔던 항목들입니다.

묵상

다른 사람에게 앙심을 품거나 얕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 것 같으신가요? 지금 당장 답하지 않아도, 그저 그 물음을 마음에 품어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괜찮습니다.

완고한 사람에게는 완고하지 않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지나치게 자만하는 사람에게는 자만하지 않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충고를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잘 받아들임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나쁜 벗을 둔 사람에게는 좋은 벗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방일한 사람에게는 부지런함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Thaddhassa purisapuggalassa atthaddhiyaṁ hoti parinibbānāya. Atimānissa purisapuggalassa anatimāno hoti parinibbānāya. Dubbacassa purisapuggalassa sovacassatā hoti parinibbānāya. Pāpamittassa purisapuggalassa kalyāṇamittatā hoti parinibbānāya. Pamattassa purisapuggalassa appamādo hoti parinibbānāya. Assaddhassa purisapuggalassa saddhā hoti parinibbānāya. Ahirikassa purisapuggalassa hirī hoti parinibbānāya.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완고함과 자만, 충고를 거부하는 태도, 나쁜 벗, 방일이라는 결점을 다룬 뒤, 안으로 갖출 자질인 믿음과 부끄러움으로 넘어갑니다. "좋은 벗"이 열반의 길로 꼽히는 것은 지워 없앰의 방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길이 홀로 걷는 길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완고함과 자만이 나쁜 벗·방일과 나란히 놓인 것도 눈여겨볼 만하며, 다음 편에서 마지막 다섯 항목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곁에 두는 사람들이 나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 오늘 한번 가만히 짚어 보시겠어요? 답을 서두르지 않고, 오늘 하루쯤 천천히 마음속에서 가만히 지켜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덕적 두려움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적게 배운 사람에게는 많이 배움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게으른 사람에게는 부지런한 정진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알아차림을 놓친 사람에게는 굳게 선 알아차림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지혜가 모자란 사람에게는 지혜를 갖춤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견해에 집착해 굳게 붙들고 놓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집착 없이 잘 놓아버림이 열반으로 이끄느니라.

Anottāpissa purisapuggalassa ottappaṁ hoti parinibbānāya. Appassutassa purisapuggalassa bāhusaccaṁ hoti parinibbānāya. Kusītassa purisapuggalassa vīriyārambho hoti parinibbānāya. Muṭṭhassatissa purisapuggalassa upaṭṭhitassatitā hoti parinibbānāya. Duppaññassa purisapuggalassa paññāsampadā hoti parinibbānāya. Sandiṭṭhiparāmāsiādhānaggāhiduppaṭinissaggissa purisapuggalassa asandiṭṭhiparāmāsianādhānaggāhisuppaṭinissaggitā hoti parinibbānāya.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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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두려움, 배움, 정진, 알아차림, 지혜라는 마지막 다섯 자질을 다룬 뒤, 마흔네 항목 전체가 이 경 안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다시 견해를 놓아버림에서 끝을 맺습니다. 계율, 여덟 가지 바른 길, 다섯 장애, 대인관계, 안으로 갖출 자질까지 모두 훑은 이 목록이 매번 견해의 문제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나머지 모든 항목이 결국 이 하나를 위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마흔네 가지를 세 번이나 되짚어 온 이 목록이 결국 '집착을 놓아버림'으로 끝난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처음 이 경을 만났을 때와 지금이 조금이라도 다르게 느껴지시나요?

10 다섯 가지 방식을 마치며 2구절

다섯 가지 방식을 요약하고, 나무 밑에서 선정을 닦으라는 마지막 가르침으로 경을 맺습니다.

쭌다여, 이와 같이 나는 지워 없앰의 방식을 가르쳤고, 마음을 일으키는 방식을 가르쳤으며, 돌아가는 방식을 가르쳤고, 오르는 방식을 가르쳤으며, 열반에 이르는 방식을 가르쳤느니라. 쭌다여, 제자들의 이익을 바라고 가엾이 여겨 연민으로써 스승이 해야 할 일을 나는 그대들에게 이미 하였느니라. 쭌다여, 여기 나무 밑들이 있고 여기 빈 방들이 있으니 선정을 닦으라, 게으름하지 말라, 나중에 후회하는 자가 되지 말라 - 이것이 우리의 가르침이니라.

Iti kho, cunda, desito mayā sallekhapariyāyo, desito cittuppādapariyāyo, desito parikkamanapariyāyo, desito uparibhāgapariyāyo, desito parinibbānapariyāyo. Yaṁ kho, cunda, satthārā karaṇīyaṁ sāvakānaṁ hitesinā anukampakena anukampaṁ upādāya, kataṁ vo taṁ mayā. Etāni, cunda, rukkhamūlāni, etāni suññāgārāni, jhāyatha, cunda, mā pamādattha, mā pacchāvippaṭisārino ahuvattha—ayaṁ kho amhākaṁ anusāsanī”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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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방식을 모두 가르친 뒤, 세존께서 직접 요약하시고 마지막 당부를 남기시는 편입니다. "스승이 해야 할 일을 이미 하였다"는 말씀은 더 이상 가르침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며, 이제 남은 것은 실제로 앉아서 닦는 일뿐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나무 밑"과 "빈 방"은 홀로 앉아 선정을 닦는 전통적인 자리를 가리킵니다. 다섯 번이나 되풀이된 마흔네 항목의 가르침이 결국 이 한 문장, 지금 가서 닦으라는 당부로 귀결됩니다.

묵상

배운 것을 실제로 해보지 않아 나중에야 아쉬워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지금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크지 않아도, 오늘 안에 할 수 있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마하쭌다 존자는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느니라. 마흔네 가지 항목이 설해졌고 다섯 가지 방식이 가르쳐졌으니 지워 없앰이라 이름하는 이 경은 바다처럼 깊으니라.

Idamavoca bhagavā. Attamano āyasmā mahācu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īti. Catuttālīsapadā vuttā, sandhayo pañca desitā; Sallekho nāma suttanto, gambhīro sāgarūpamoti.

맛지마 니까야 MN 8 지워 없앰경 (Sallekhasutta)

배경

이 경의 마지막 편으로, 마하쭌다 존자가 기뻐하며 받든 장면에 이어 경 전체를 요약하는 게송으로 끝을 맺습니다. 게송이 "마흔네 가지"와 "다섯 가지 방식"이라는 숫자를 직접 짚는 것은, 옛 암송자들이 스스로 이 경의 짜임을 그렇게 세었다는 증거입니다. "바다처럼 깊다"는 표현은 깊은 가르침에 흔히 붙는 찬탄의 관용구입니다. 원문 끝에는 경의 제목과 순서를 적은 표시가 더 있으나, 이는 편집자의 표시이지 본문이 아니므로 인용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묵상

이 경 전체를 마흔네 가지, 다섯 가지 방식으로 다시 헤아려 보면, 그 가운데 오늘 하루 곁에 두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만 골라도 충분하고, 아직 고르지 못했어도 그대로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