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의식, 의식’이라고 말하나니, 어떻게 해서 의식이라고 말합니까?” “벗이여, ‘의식하고 의식한다’고 해서 의식이라고 말하나니, 무엇을 의식합니까? 즐거움도 의식하고, 괴로움도 의식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도 의식하나니, 이렇게 의식한다고 해서 의식이라고 말합니다.”
“‘Viññāṇaṁ viññāṇan’ti, āvuso, vuccati. Kittāvatā nu kho, āvuso, viññāṇanti vuccatī”ti? “‘Vijānāti vijānātī’ti kho, āvuso, tasmā viññāṇanti vuccati. Kiñca vijānāti? Sukhantipi vijānāti, dukkhantipi vijānāti, adukkhamasukhantipi vijānāti. ‘Vijānāti vijānātī’ti kho, āvuso, tasmā viññāṇanti vucc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43 교리문답 큰경 (Mahāvedallasutta)배경
지혜롭지 못함과 지혜로움을 가른 뒤, 마하꼿티따는 이제 자리를 옮겨 의식 자체를 묻습니다. 사리뿟따는 앞서와 같은 틀로 답하되, 이번 동사는 “의식한다(vijānāti)”입니다. 의식이 의식하는 대상은 즐거움과 괴로움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라는 세 가지 느낌의 결입니다. 이 정의는 뒤이어 나올 “느낌”의 정의와 겹쳐 보이는데, 바로 그 겹침이 다음 문답, 곧 지혜와 의식이 실제로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물음을 낳습니다.
묵상
즐겁다, 괴롭다, 그저 그렇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을 하루 중 얼마나 자주 느끼나요? 그 앎에 이름을 붙이거나 판단을 더하기 전, 그저 알아채기만 하는 순간이 있나요? 판단이 먼저 따라붙어도 괜찮으니 그저 알아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