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지혜와 의식, 이 두 가지는 섞여 있습니까, 따로 있습니까? 이 두 가지를 하나하나 가려내어 그 다름을 말할 수 있습니까?” “벗이여, 지혜와 의식, 이 두 가지는 섞여 있지 따로 있지 않나니, 이 두 가지를 하나하나 가려내어 그 다름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무릇 꿰뚫어 아는 것을 곧 의식하고, 의식하는 것을 곧 꿰뚫어 아나니,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섞여 있지 따로 있지 않아 가려내어 그 다름을 말할 수 없습니다.”
“Yā cāvuso, paññā yañca viññāṇaṁ— ime dhammā saṁsaṭṭhā udāhu visaṁsaṭṭhā? Labbhā ca panimesaṁ dhammānaṁ vinibbhujitvā vinibbhujitvā nānākaraṇaṁ paññāpetun”ti? “Yā cāvuso, paññā yañca viññāṇaṁ— ime dhammā saṁsaṭṭhā, no visaṁsaṭṭhā. Na ca labbhā imesaṁ dhammānaṁ vinibbhujitvā vinibbhujitvā nānākaraṇaṁ paññāpetuṁ. Yaṁ hāvuso, pajānāti taṁ vijānāti, yaṁ vijānāti taṁ pajānāti. Tasmā ime dhammā saṁsaṭṭhā, no visaṁsaṭṭhā. Na ca labbhā imesaṁ dhammānaṁ vinibbhujitvā vinibbhujitvā nānākaraṇaṁ paññāpetun”ti.
맛지마 니까야 MN 43 교리문답 큰경 (Mahāvedallasutta)배경
앞서 지혜와 의식을 각각 정의한 뒤, 마하꼿티따는 이 둘의 관계를 묻습니다. 사리뿟따의 답은 단호합니다. 둘은 뒤섞여 있어 실제 경험 속에서 하나하나 떼어내 이것과 저것이 다르다고 가려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 “꿰뚫어 아는 것을 곧 의식하고, 의식하는 것을 곧 꿰뚫어 안다”는 한 문장을 듭니다. 이는 지혜와 의식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마음이 번갈아 켜지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의 앎 안에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다음 물음은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다르냐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아는 것과 의식하는 것을 따로 떼어 느껴 볼 수 있나요? 둘이 뒤섞여 있어 가려낼 수 없다는 말이, 억지로 나누려 했던 경험과 비교해 어떻게 다가오나요? 나뉘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