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과 인식과 의식이 함께 있다

느낌과 인식과 의식도 서로 뒤섞여 있어 갈라낼 수 없다고 밝힙니다.

“벗이여, 느낌과 인식과 의식, 이 세 가지는 섞여 있습니까, 따로 있습니까? 이 세 가지를 하나하나 가려내어 그 다름을 말할 수 있습니까?” “벗이여, 느낌과 인식과 의식, 이 세 가지는 섞여 있지 따로 있지 않나니, 이 세 가지를 하나하나 가려내어 그 다름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무릇 느끼는 것을 곧 인식하고, 인식하는 것을 곧 의식하나니, 그러므로 이 세 가지는 섞여 있지 따로 있지 않아 가려내어 그 다름을 말할 수 없습니다.”

“Yā cāvuso, vedanā yā ca saññā yañca viññāṇaṁ— ime dhammā saṁsaṭṭhā udāhu visaṁsaṭṭhā? Labbhā ca panimesaṁ dhammānaṁ vinibbhujitvā vinibbhujitvā nānākaraṇaṁ paññāpetun”ti? “Yā cāvuso, vedanā yā ca saññā yañca viññāṇaṁ— ime dhammā saṁsaṭṭhā, no visaṁsaṭṭhā. Na ca labbhā imesaṁ dhammānaṁ vinibbhujitvā vinibbhujitvā nānākaraṇaṁ paññāpetuṁ. Yaṁ hāvuso, vedeti taṁ sañjānāti, yaṁ sañjānāti taṁ vijānāti. Tasmā ime dhammā saṁsaṭṭhā no visaṁsaṭṭhā. Na ca labbhā imesaṁ dhammānaṁ vinibbhujitvā vinibbhujitvā nānākaraṇaṁ paññāpetun”ti.

맛지마 니까야 MN 43 교리문답 큰경 (Mahāvedallasutta)

배경

앞서 지혜와 의식 두 가지를 두고 물었던 것과 같은 물음을, 이번에는 느낌과 인식과 의식 세 가지로 넓혀 묻습니다. 답의 틀도 똑같습니다. 셋은 뒤섞여 있어 가려낼 수 없으며, 그 근거로 “느끼는 것을 곧 인식하고, 인식하는 것을 곧 의식한다”는 사슬을 듭니다. 이는 하나의 경험 속에서 느낌과 인식과 의식이 순서대로 켜지는 것이 아니라 한데 얽혀 함께 일어남을 보여 주며, 지혜와 의식의 관계에서 다룬 것과 같은 통찰을 세 가지로 확장합니다.

묵상

하나의 경험 안에 느낌과 인식과 의식이 함께 있다는 말을, 지금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 하나에 대입해 볼 수 있나요? 굳이 억지로 나누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뒤섞여 있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