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바른 견해가 생기는 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까?”
“벗이여, 바른 견해가 생기는 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나니,
다른 이의 말과 이치에 맞는 생각입니다.
벗이여, 이 두 가지가 바른 견해가 생기는 조건입니다.”
“Kati panāvuso, paccayā sammādiṭṭhiyā uppādāyā”ti? “Dve kho, āvuso, paccayā sammādiṭṭhiyā uppādāya— parato ca ghoso, yoniso ca manasikāro. Ime kho, āvuso, dve paccayā sammādiṭṭhiyā uppādāyā”ti.
맛지마 니까야 MN 43 교리문답 큰경 (Mahāvedallasutta) 배경
화제는 이제 바른 견해로 옮겨 갑니다. 사리뿟따는 바른 견해가 저절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조건에서 생긴다고 밝힙니다. 하나는 “다른 이의 말”, 곧 바른 가르침을 들려주는 외부의 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이치에 맞는 생각”, 곧 들은 것을 스스로 곱씹어 헤아리는 내면의 작업입니다. 바깥에서 오는 것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이 둘이 함께 있어야 바른 견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묵상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바른 생각 하나를 떠올려 보면, 그것은 누구의 말에서 왔고 어떤 헤아림을 거쳐 내 것이 되었나요? 둘 중 하나가 부족했던 적도 있었나요? 둘 다 잘 갖추어졌다고 느껴져도 좋아요.
“벗이여, 몇 가지 요소가 뒷받침할 때
바른 견해는 마음의 해탈이라는 결실과 이익을 낳고,
지혜의 해탈이라는 결실과 이익을 낳습니까?”
“벗이여, 다섯 가지 요소가 뒷받침할 때 그러하나니,
곧 계행이 뒷받침하고, 배움이 뒷받침하고,
토론이 뒷받침하고, 고요함이 뒷받침하고,
꿰뚫어 봄이 뒷받침할 때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뒷받침할 때 바른 견해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이라는 결실과 이익을 낳습니다.”
“Katihi panāvuso, aṅgehi anuggahitā sammādiṭṭhi cetovimuttiphalā ca hoti cetovimuttiphalānisaṁsā ca, paññāvimuttiphalā ca hoti paññāvimuttiphalānisaṁsā cā”ti? “Pañcahi kho, āvuso, aṅgehi anuggahitā sammādiṭṭhi cetovimuttiphalā ca hoti cetovimuttiphalānisaṁsā ca, paññāvimuttiphalā ca hoti paññāvimuttiphalānisaṁsā ca. Idhāvuso, sammādiṭṭhi sīlānuggahitā ca hoti, sutānuggahitā ca hoti, sākacchānuggahitā ca hoti, samathānuggahitā ca hoti, vipassanānuggahitā ca hoti. Imehi kho, āvuso, pañcahaṅgehi anuggahitā sammādiṭṭhi cetovimuttiphalā ca hoti cetovimuttiphalānisaṁsā ca, paññāvimuttiphalā ca hoti paññāvimuttiphalānisaṁsā cā”ti.
맛지마 니까야 MN 43 교리문답 큰경 (Mahāvedallasutta) 배경
앞 편에서 바른 견해가 생기는 조건을 밝혔다면, 이 편은 그 바른 견해가 결실을 맺으려면 무엇이 뒷받침해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계행과 배움과 토론과 고요함(사마타)과 꿰뚫어 봄(위빳사나)이라는 다섯 요소입니다. 계행과 배움과 토론이 바른 견해의 바탕을 다진다면, 고요함과 꿰뚫어 봄은 그것을 실제 체험으로 무르익게 합니다. 이 다섯이 함께할 때 바른 견해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이라는 결실로 이어집니다.
묵상
계행과 배움과 토론과 고요함과 꿰뚫어 봄, 이 다섯 가운데 지금 내 삶에 가장 든든히 있는 것은 무엇이고, 가장 손이 덜 간 것은 무엇인가요? 다섯 모두를 갖추지 않았다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