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감각 기능과 마음

서로 다른 영역을 지닌 다섯 감각 기능이 결국 무엇에 의지하는지를 밝힙니다.

“벗이여, 눈의 기능·귀의 기능·코의 기능·혀의 기능·몸의 기능, 이 다섯 감각 기능은 저마다 다른 대상과 영역을 지녀 서로의 대상과 영역을 경험하지 못하나니, 이들은 무엇에 의지하며, 무엇이 그 대상과 영역을 경험합니까?” (사리뿟따는 같은 말로 다섯 감각 기능을 되짚은 뒤 이렇게 답하였느니라.) “이 다섯 감각 기능은 마노에 의지하며, 마노가 그 대상과 영역을 경험합니다.”

“Pañcimāni, āvuso, indriyāni nānāvisayāni nānāgocarāni, na aññamaññassa gocaravisayaṁ paccanubhonti, seyyathidaṁ— cakkhundriyaṁ, sotindriyaṁ, ghānindriyaṁ, jivhindriyaṁ, kāyindriyaṁ. Imesaṁ kho, āvuso, pañcannaṁ indriyānaṁ nānāvisayānaṁ nānāgocarānaṁ, na aññamaññassa gocaravisayaṁ paccanubhontānaṁ, kiṁ paṭisaraṇaṁ, ko ca nesaṁ gocaravisayaṁ paccanubhotī”ti? “Pañcimāni, āvuso, indriyāni nānāvisayāni nānāgocarāni, na aññamaññassa gocaravisayaṁ paccanubhonti, seyyathidaṁ— cakkhundriyaṁ, sotindriyaṁ, ghānindriyaṁ, jivhindriyaṁ, kāyindriyaṁ. Imesaṁ kho, āvuso, pañcannaṁ indriyānaṁ nānāvisayānaṁ nānāgocarānaṁ, na aññamaññassa gocaravisayaṁ paccanubhontānaṁ, mano paṭisaraṇaṁ, mano ca nesaṁ gocaravisayaṁ paccanubhotī”ti.

맛지마 니까야 MN 43 교리문답 큰경 (Mahāvedallasutta)

배경

화제가 다시 바뀌어, 이번에는 다섯 감각 기능을 다룹니다. 마하꼿티따는 눈·귀·코·혀·몸이 저마다 다른 대상과 영역을 지녀 서로의 것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한 뒤, 그렇다면 이 다섯이 무엇에 의지하며 무엇이 그 각각의 영역을 경험하는지 묻습니다. 원문에서 사리뿟따는 같은 물음을 한 번 더 되짚은 뒤에 답하는데, 이 편에서는 그 되풀이를 생략하고 답만 옮겼습니다. 답은 “마노(뜻, 의근)”입니다. 눈이 색을, 귀가 소리를 경험하듯 저마다 다른 영역에 갇혀 있는 다섯 감각을 하나로 모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마노라는 것입니다.

묵상

지금 이 순간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이 하나의 경험으로 합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적이 있나요? 그 합쳐짐이 일어나는 자리를 마음이라 부른다면, 지금 그 자리를 느껴 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