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과 온기는 서로 기대어 있다

다섯 감각 기능이 목숨에 기대고 목숨은 온기에, 온기는 다시 목숨에 기댄다는 역설을 등불의 비유로 풀어냅니다.

“눈의 기능·귀의 기능·코의 기능·혀의 기능·몸의 기능, 이 다섯 감각 기능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뭅니까?” (같은 말로 되짚은 뒤 답하였느니라.) “이 다섯 감각 기능은 목숨에 의지하여 머뭅니다.” “그러면 목숨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뭅니까?” “목숨은 온기에 의지하여 머뭅니다.” “그러면 온기는 무엇에 의지하여 머뭅니까?” “온기는 목숨에 의지하여 머뭅니다.”

“Pañcimāni, āvuso, indriyāni, seyyathidaṁ— cakkhundriyaṁ, sotindriyaṁ, ghānindriyaṁ, jivhindriyaṁ, kāyindriyaṁ. Imāni kho, āvuso, pañcindriyāni kiṁ paṭicca tiṭṭhantī”ti? “Pañcimāni, āvuso, indriyāni, seyyathidaṁ— cakkhundriyaṁ, sotindriyaṁ, ghānindriyaṁ, jivhindriyaṁ, kāyindriyaṁ. Imāni kho, āvuso, pañcindriyāni āyuṁ paṭicca tiṭṭhantī”ti. “Āyu panāvuso, kiṁ paṭicca tiṭṭhatī”ti? “Āyu usmaṁ paṭicca tiṭṭhatī”ti. “Usmā panāvuso, kiṁ paṭicca tiṭṭhatī”ti? “Usmā āyuṁ paṭicca tiṭṭh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43 교리문답 큰경 (Mahāvedallasutta)

배경

앞 편에서 다섯 감각이 마노에 의지한다고 밝힌 데 이어, 이번에는 그 감각들이 무엇에 의지하여 계속 작동하는지를 더 깊이 캐묻습니다. 답은 목숨(āyu)이며, 목숨은 다시 온기(usmā)에 의지하고, 그런데 온기는 다시 목숨에 의지한다고 합니다. 목숨이 온기에 기대는데 온기가 다시 목숨에 기댄다는 이 대답은 얼핏 앞뒤가 도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겉보기 순환이 다음 편에서 마하꼿티따의 되물음을 낳고, 그다음 편의 비유로 풀립니다.

묵상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어서 무엇이 먼저인지 가리기 어려운 관계를 삶에서 본 적이 있나요? 굳이 하나를 먼저라고 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도 있을까요? 답을 굳이 정하지 않아도 관계는 여전히 이어질 수 있어요.

“벗이여, 나는 지금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이렇게 알아들었나니, ‘목숨은 온기에 의지하여 머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또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이렇게도 알아들었나니, ‘온기는 목숨에 의지하여 머문다’는 것입니다. 벗이여, 그렇다면 이 말의 뜻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Idāneva kho mayaṁ, āvuso, āyasmato sāriputtassa bhāsitaṁ evaṁ ājānāma: ‘āyu usmaṁ paṭicca tiṭṭhatī’ti. Idāneva pana mayaṁ, āvuso, āyasmato sāriputtassa bhāsitaṁ evaṁ ājānāma: ‘usmā āyuṁ paṭicca tiṭṭhatī’ti. Yathā kathaṁ panāvuso, imassa bhāsitassa attho daṭṭhabbo”ti?

맛지마 니까야 MN 43 교리문답 큰경 (Mahāvedallasutta)

배경

마하꼿티따는 사리뿟따의 답에서 앞뒤가 도는 것처럼 들리는 대목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짚어 되묻습니다. 목숨이 온기에 기댄다고 했다가 곧이어 온기가 목숨에 기댄다고 했으니, 이 말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논리적 흠을 찾아 상대를 곤란하게 하려는 물음이 아니라, 서로 기대는 관계를 어떻게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파고드는 물음입니다. 사리뿟따는 이 물음에 비유로 답합니다.

묵상

누군가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들렸을 때, 곧바로 틀렸다고 여기기보다 그 말의 뜻을 다시 물어본 적이 있나요? 그렇게 물었을 때 오히려 더 깊은 이해에 닿았던 경험이 있나요?

“그렇다면 벗이여, 그대에게 비유를 들겠으니, 비유를 들으면 슬기로운 이들 가운데는 말의 뜻을 알아듣는 이도 있습니다. 벗이여, 마치 기름 등불이 타오를 때 불꽃에 의지하여 빛이 나타나고, 빛에 의지하여 불꽃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벗이여, 목숨은 온기에 의지하여 머물고, 온기는 목숨에 의지하여 머뭅니다.”

“Tena hāvuso, upamaṁ te karissāmi; upamāyapidhekacce viññū purisā bhāsitassa atthaṁ ājānanti. Seyyathāpi, āvuso, telappadīpassa jhāyato acciṁ paṭicca ābhā paññāyati, ābhaṁ paṭicca acci paññāyati; evameva kho, āvuso, āyu usmaṁ paṭicca tiṭṭhati, usmā āyuṁ paṭicca tiṭṭh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43 교리문답 큰경 (Mahāvedallasutta)

배경

사리뿟따는 기름 등불의 비유로 앞선 순환을 풀어냅니다. 타오르는 등불에서 불꽃과 빛은 어느 하나가 먼저이고 다른 하나가 나중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있어야 서로가 드러나는 관계입니다. 불꽃에 의지해 빛이 나타나고 빛에 의지해 불꽃이 나타난다는 말은 논리적 모순이 아니라, 두 가지가 동시에 서로를 성립시키는 관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목숨과 온기도 이와 같아서, 어느 한쪽을 근원으로 놓고 다른 쪽을 파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호 의존의 관계임을 이 비유가 보여 줍니다.

묵상

등불의 불꽃과 빛처럼, 어느 것이 먼저라고 말할 수 없이 함께 있어야만 성립하는 관계가 내 삶에도 있나요? 그런 관계를 굳이 순서를 매겨 설명하려 했던 적은 없었나요? 비유가 완전히 들어맞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