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을 이루는 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까?”
“벗이여, 두 가지 조건이 있나니,
온갖 표상에 마음을 두지 않음과
표상 없는 세계에 마음을 둠입니다.
이 두 가지가 그것을 이루는 조건입니다.”
“Kati panāvuso, paccayā animittāya cetovimuttiyā samāpattiyā”ti? “Dve kho, āvuso, paccayā animittāya cetovimuttiyā samāpattiyā— sabbanimittānañca amanasikāro, animittāya ca dhātuyā manasikāro. Ime kho, āvuso, dve paccayā animittāya cetovimuttiyā samāpattiyā”ti.
맛지마 니까야 MN 43 교리문답 큰경 (Mahāvedallasutta) 배경
네 번째 선정을 밝힌 데 이어, 이번에는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이라는 또 다른 갈래를 다룹니다. 표상이란 마음에 떠오르는 온갖 모습과 이미지를 말하며, 이 해탈은 그 모든 표상에 마음을 두지 않고 표상 없는 세계로 마음을 향하는 데서 옵니다. 그것을 처음 이루는 데 필요한 조건은 두 가지, 곧 온갖 표상에 마음을 두지 않음과 표상 없는 세계에 마음을 둠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룬 뒤 그 안에 머무는 데 필요한 조건이 이어집니다.
묵상
표상, 곧 마음에 떠오르는 온갖 모습과 이미지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 어떻게 느껴지나요? 상상하기 어려워도 괜찮아요. 상상이 흐릿해도 괜찮으니 잠시 머물러 보세요. 천천히 떠올려 봐도 괜찮아요.
“벗이여, 그렇다면 그 안에 머무는 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까?”
“벗이여, 세 가지 조건이 있나니,
온갖 표상에 마음을 두지 않음과
표상 없는 세계에 마음을 둠과
앞서 마음을 그렇게 이끌어 둠이니,
이 세 가지가 그 안에 머무는 조건입니다.”
“Kati panāvuso, paccayā animittāya cetovimuttiyā ṭhitiyā”ti? “Tayo kho, āvuso, paccayā animittāya cetovimuttiyā ṭhitiyā— sabbanimittānañca amanasikāro, animittāya ca dhātuyā manasikāro, pubbe ca abhisaṅkhāro. Ime kho, āvuso, tayo paccayā animittāya cetovimuttiyā ṭhitiyā”ti.
맛지마 니까야 MN 43 교리문답 큰경 (Mahāvedallasutta) 배경
앞 편에서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을 이루는 두 조건을 밝힌 데 이어, 이번에는 그 안에 계속 머무는 데 필요한 조건을 묻습니다. 답은 세 가지로, 이룸의 두 조건에 “앞서 마음을 그렇게 이끌어 둠”이라는 조건이 더해집니다. 순간적으로 이르는 것과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 다른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이 하나의 추가된 조건이 보여 줍니다. 이 편은 다음 편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한 매듭입니다.
묵상
어떤 상태에 한 번 이르는 것과 그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삶에서 이르기는 했지만 머물기는 아직 서툰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직 이르지 못한 상태도, 이미 서툰 머묾도 모두 괜찮아요.
“벗이여, 그렇다면 그 안에서 나오는 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까?”
“벗이여, 두 가지 조건이 있나니,
온갖 표상에 마음을 둠과
표상 없는 세계에 마음을 두지 않음이니,
이 두 가지가 그 안에서 나오는 조건입니다.”
“벗이여, 한량없는 마음의 해탈과
아무것도 없다는 마음의 해탈과
비어 있다는 마음의 해탈과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 이것들은
뜻도 다르고 표현도 다른 것입니까,
아니면 뜻은 하나이고 표현만 다른 것입니까?”
“Kati panāvuso, paccayā animittāya cetovimuttiyā vuṭṭhānāyā”ti? “Dve kho, āvuso, paccayā animittāya cetovimuttiyā vuṭṭhānāya— sabbanimittānañca manasikāro, animittāya ca dhātuyā amanasikāro. Ime kho, āvuso, dve paccayā animittāya cetovimuttiyā vuṭṭhānāyā”ti. “Yā cāyaṁ, āvuso, appamāṇā cetovimutti, yā ca ākiñcaññā cetovimutti, yā ca suññatā cetovimutti, yā ca animittā cetovimutti—ime dhammā nānātthā ceva nānābyañjanā ca udāhu ekatthā byañjanameva nānan”ti?
맛지마 니까야 MN 43 교리문답 큰경 (Mahāvedallasutta) 배경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에서 나오는 조건까지 밝힌 뒤, 마하꼿티따는 이제 시야를 넓혀 새로운 물음을 던집니다. 지금까지 나온 표상 없는 해탈에 더해, 한량없는 해탈과 아무것도 없다는 해탈과 비어 있다는 해탈까지 네 가지 마음의 해탈을 한자리에 놓고, 이들이 정말 서로 다른 것인지 아니면 같은 것을 다르게 부르는 것인지를 묻습니다. 이 물음이 다음 편들에서 이어지는 이 경의 마지막 큰 주제, 곧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해탈들의 관계를 여는 문이 됩니다.
묵상
같은 것을 두고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 마치 다른 것처럼 여겼던 경험이 있나요? 이름이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실체까지 다른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어떤 예가 떠오르나요? 예가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