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와 같이 들었느니라.
한때 세존께서는 꼬살라 지방을 유행하시며 큰 수행자 승가와 함께
꼬살라의 바라문 마을인 살라에 이르셨느니라.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kosalesu cārikaṁ caramāno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sālā nāma kosalānaṁ brāhmaṇagāmo tadavasar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경의 도입부로, 세존께서 꼬살라 지방을 유행하시다가 살라라는 바라문 마을에 도착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경의 제목인 '확실한 가르침(아빤나까)'은 이 마을의 장자들에게 주어지는 가르침을 가리키는데, 뒤이어 그들이 아직 믿을 만한 스승을 정하지 못했다는 사정이 밝혀지면서 왜 이런 가르침이 필요한지 드러납니다. 큰 승가와 함께 오셨다는 짧은 언급도, 뒤에서 장자들이 그 소문을 듣고 몰려오는 장면의 배경이 됩니다.
묵상
여러 갈래의 생각과 조언 가운데 무엇을 따라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적이 있나요? 그런 때 기댈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기준 하나를 떠올려 본다면 무엇일까요? 답을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살라의 바라문 장자들이 들었으니
‘사꺄족 출신으로 사꺄 가문에서 출가한 수행자 고따마가
꼬살라를 유행하다가 큰 수행자 승가와 함께 살라에 이르렀다.
그 고따마 존자에게는 이런 좋은 명성이 자자하다.’
Assosuṁ kho sāleyyakā brāhmaṇagahapatikā: “samaṇo khalu bho gotamo sakyaputto sakyakulā pabbajito kosalesu cārikaṁ caramāno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sālaṁ anuppatto. Taṁ kho pana bhavantaṁ gotamaṁ evaṁ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살라의 장자들에게 세존의 소문이 먼저 전해지는 대목입니다. '사꺄족 출신으로 사꺄 가문에서 출가했다'는 구절은 세존께서 왕족 가문을 스스로 떠나 출가하셨다는 사실을 짧게 환기하며, 뒤이어 그 명성의 구체적인 내용이 이어질 것을 예고합니다. 명성이 먼저 도착하고 사람이 뒤따르는 이 구조는 여러 경에서 스승을 처음 소개할 때 쓰는 전형적인 도입입니다. 다음 구절에서 그 좋은 명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어집니다.
묵상
누군가에 대한 좋은 평판을 먼저 듣고 나서 실제로 만나 보고 싶어진 경험이 있나요? 그 평판과 실제로 만났을 때의 느낌이 같았는지 다시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둘 사이의 간격도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어요.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이며
앎과 실천을 갖추었으며 잘 가신 분이며 세상을 아는 분이며
위없는 분이며 길들일 사람을 이끄는 분이며 신과 인간의 스승이며
깨달은 분이며 세존이시다’라 하였고,
‘itipi so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장자들이 들은 명성의 구체적인 내용이 시작되는 대목으로, 여러 경에서 그대로 되풀이되는 아홉 가지 덕(여래십호 가운데 아홉)의 정형구가 온전히 등장합니다. 아라한, 완전히 깨달은 분에서 시작해 세존까지 이어지는 이 호칭들은 이 경만이 아니라 여러 경의 도입부에서 세존을 소개할 때 똑같이 쓰이는 표준 문구입니다. 하나하나가 독립된 칭호이면서도 함께 묶여 한 사람의 온전함을 그립니다.
묵상
누군가를 온전히 신뢰하게 만든 것이 그 사람의 말인가요, 아니면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인가요? 오늘 내가 누군가를 소개한다면 어떤 말을 가장 먼저 꺼낼까요? 여러 낱말 가운데 하나만 골라도 괜찮습니다.
그분은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하고 수행자와 바라문과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뛰어난 앎으로
실현하시고 남에게 알리시며,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뜻과 표현을 갖춘 가르침을 설하시고
완전하고 청정한 삶을 밝히시니,
이러한 아라한을 뵙는 것이 참으로 좋다 하였느니라.
So imaṁ lokaṁ sadevakaṁ samārakaṁ sabrahmakaṁ sassamaṇabrāhmaṇiṁ pajaṁ sadevamanussaṁ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So dhammaṁ deseti ādikalyāṇaṁ majjhekalyāṇaṁ pariyosānakalyāṇaṁ sātthaṁ sabyañjanaṁ, kevalaparipuṇṇaṁ parisuddhaṁ brahmacariyaṁ pakāseti. Sādhu kho pana tathārūpānaṁ arahataṁ dassanaṁ hotī”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아홉 가지 덕에 이어, 그 덕이 실제로 어떻게 드러나는지가 이어집니다. 세상을 스스로 알아 남에게 전한다는 구절과, 가르침이 처음과 중간과 끝이 좋다는 구절은 세존의 앎이 혼자만의 깨달음에 머물지 않고 가르침으로 흘러나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이를 뵙는 것이 좋다는 마지막 문장은 장자들이 곧이어 실제로 찾아가는 행동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다리가 됩니다.
묵상
말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만남 자체가 좋았던 경험이 있나요? 오늘 그런 사람을 한 명 떠올려 본다면 누구인가요? 그 사람을 왜 만나고 싶은지도 함께 물어보면 어떨까요?
살라의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께 다가가
어떤 이는 절하고, 어떤 이는 인사를 나누고, 어떤 이는 합장하고,
어떤 이는 이름과 성씨를 아뢰고, 어떤 이는 잠자코 한쪽에 앉았느니라.
한쪽에 앉은 이들에게 세존께서 말씀하시니
‘장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믿음을 굳건히 둘 만한
마음에 드는 스승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희에게는 믿음을 굳건히 둘 만한
마음에 드는 스승이 없습니다.’
Atha kho sāleyyakā brāhmaṇagahapatik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appekacce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Appekacce bhagavatā saddhiṁ sammodiṁsu;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Appekacce yena bhagavā tenañjaliṁ paṇām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Appekacce bhagavato santike nāmagottaṁ sāv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Appekacce tuṇhībhūtā ekamantaṁ nisīdiṁsu. Ekamantaṁ nisinne kho sāleyyake brāhmaṇagahapatike bhagavā etadavoca: “atthi pana vo, gahapatayo, koci manāpo satthā yasmiṁ vo ākāravatī saddhā paṭiladdhā”ti? “Natthi kho no, bhante, koci manāpo satthā yasmiṁ no ākāravatī saddhā paṭiladdhā”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장자들이 세존께 다가가는 방식이 다섯 가지로 나열되는데, 이는 처음 만나는 이에게 예를 표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관용적 묘사입니다. 자리에 앉은 뒤 세존께서 던지신 첫 물음, 곧 믿을 만한 스승이 있는가는 이 경 전체의 출발점입니다. 장자들이 없다고 순순히 인정하는 데서, 뒤이어 나올 확실한 가르침이 왜 그들에게 필요한지가 곧바로 드러납니다.
묵상
지금 내가 온전히 믿고 따르는 가르침이나 기준이 있나요? 만약 없다면, 그 빈자리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될 수 있을까요? 없다고 답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어요.
‘장자들이여, 마음에 드는 스승을 얻지 못하였다면
이 확실한 가르침을 받아들여 실천해야 하느니라.
장자들이여, 확실한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여 실천하면
그것이 그대들에게 오래도록 이익과 행복이 되리라.
장자들이여, 그러면 확실한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Manāpaṁ vo, gahapatayo, satthāraṁ alabhantehi ayaṁ apaṇṇako dhammo samādāya vattitabbo. Apaṇṇako hi, gahapatayo, dhammo samatto samādinno, so vo bhavissati dīgharattaṁ hitāya sukhāya. Katamo ca, gahapatayo, apaṇṇako dhammo?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세존께서 장자들의 빈자리, 곧 믿을 스승이 없다는 사정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대안을 제시하십니다. '확실한 가르침(아빤나까)'이라는 이름은 도박에서 결코 지지 않는 확실한 패를 가리키는 말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경에서는 어느 쪽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을 때에도 손해 볼 일 없는 태도를 뜻합니다. 뒤이어 이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다섯 가지 주제에 걸쳐 펼쳐집니다.
묵상
확신이 서지 않는 문제 앞에서, 어느 쪽이든 후회를 줄일 수 있는 선택을 찾아본 적이 있나요? 지금 판단하기 어려운 물음이 있다면, 그런 확실한 쪽이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다음 대목에서 그 답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