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가 있다는 데 서다

저 세상이 있다는 견해와 없다는 견해를 견주어, 어느 쪽을 택해도 손해가 없는 확실한 자리를 밝힙니다.

장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바라문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으니 ‘보시에도 의미가 없고 제사에도 의미가 없고 공양에도 의미가 없으며, 선행과 악행의 결과와 과보도 없고,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으며,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도 없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뛰어난 앎으로 실현하여 알리는 바르게 이르고 바르게 실천한 수행자·바라문도 세상에 없다’라 하느니라.

Santi, gahapatayo,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tthi dinnaṁ, natthi yiṭṭhaṁ, natthi hutaṁ; natthi sukatadukkaṭānaṁ kammānaṁ phalaṁ vipāko, natthi ayaṁ loko, natthi paro loko; natthi mātā, natthi pitā; natthi sattā opapātikā; natthi loke samaṇabrāhmaṇā sammaggatā sammā paṭipannā ye imañca lokaṁ parañca lokaṁ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확실한 가르침의 첫 주제로, 도덕과 인과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허무주의적 견해가 제시됩니다. 보시와 제사부터 부모의 존재, 자연발생적 중생, 깨달은 수행자의 존재까지 일곱 가지를 한꺼번에 부정하는 이 주장은, 뒤에 이어질 다섯 가지 주제(내세·행위·원인·형상 없는 경지·소멸) 가운데 첫째인 저 세상이 있는가를 다루는 실마리입니다. 다음 구절에서 이와 정반대되는 주장이 곧바로 이어집니다.

묵상

선한 행동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나요? 지금 내가 어떤 행동에 의미를 두고 있다면, 그 의미는 결과를 확인해서가 아니라 다른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장자들이여, 그 수행자·바라문들 가운데는 정반대로 주장하는 이들도 있어 이렇게 말하느니라. ‘보시에도 의미가 있고 제사에도 의미가 있고 공양에도 의미가 있으며, 선행과 악행의 결과와 과보도 있고,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으며,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홀연히 태어나는 중생도 있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뛰어난 앎으로 실현하여 알리는 바르게 이르고 바르게 실천한 수행자·바라문도 세상에 있다.’

Tesaṁyeva kho, gahapatayo, samaṇabrāhmaṇānaṁ eke samaṇabrāhmaṇā ujuvipaccanīkavādā. Te evamāhaṁsu: ‘atthi dinnaṁ, atthi yiṭṭhaṁ, atthi hutaṁ; atthi sukatadukkaṭānaṁ kammānaṁ phalaṁ vipāko; atthi ayaṁ loko, atthi paro loko; atthi mātā, atthi pitā; atthi sattā opapātikā; atthi loke samaṇabrāhmaṇā sammaggatā sammā paṭipannā ye imañca lokaṁ parañca lokaṁ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앞서 나온 허무주의 주장과 정반대로, 도덕과 인과를 온전히 긍정하는 견해가 그대로 대구를 이루어 제시됩니다. 부정하던 일곱 가지를 하나하나 긍정으로 뒤집는 이 대구는 이후 사이클마다 되풀이되는 이 경의 기본 틀입니다. 두 주장은 낱말 하나까지 정확히 대칭을 이루어, 어느 한쪽도 상대보다 더 정교하거나 허술하지 않습니다. 다음 구절에서 세존께서 이 두 주장을 나란히 놓고 장자들에게 확인을 구하십니다.

묵상

완전히 반대되는 두 주장을 동시에 마주했을 때,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하기 전에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이 순간에는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고 잠시 지켜보아도 괜찮을까요?

장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수행자·바라문들은 서로 정반대로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ṁ kiṁ maññatha, gahapatayo: ‘nanume samaṇabrāhmaṇā aññamaññassa ujuvipaccanīkavādā’”ti? “Evaṁ, bhante”.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세존께서는 어느 쪽이 옳은지 곧바로 판정하지 않으시고, 먼저 두 주장이 서로 정면으로 모순된다는 사실에 장자들의 동의를 구하십니다. 짧은 물음과 짧은 대답이지만, 이 동의가 다음 구절부터 이어지는 여덟 겹의 분석 전체의 출발점이 됩니다. 판단에 앞서 사실관계부터 함께 확인하는 이 순서는 이 경에서 되풀이되는 대화 방식으로, 성급한 결론보다 확인을 앞세우는 세존의 태도를 보여 줍니다.

묵상

누군가와 의견이 갈릴 때, 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무엇이 서로 다른지부터 짚어 본 적이 있나요? 오늘 그런 확인의 순서를 한번 시도해 볼 수 있을까요? 서두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결이 달라질 수 있어요.

장자들이여, 그 가운데 보시에도 의미가 없다는 등으로 주장하는 수행자·바라문들에게는 이런 일이 예상되니, 몸·말·뜻으로 짓는 선행이라는 세 가지 능숙한 것을 멀리하고, 몸·말·뜻으로 짓는 악행이라는 세 가지 능숙하지 못한 것을 받아들여 행하리라는 것이니라. 어떤 까닭인가? 그 수행자·바라문들은 능숙하지 못한 것들의 재난과 허물과 오염을 보지 못하고, 능숙한 것들의 벗어남이 주는 이익과 깨끗해짐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Tatra, gahapatayo,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tthi dinnaṁ, natthi yiṭṭhaṁ …pe… ye imañca lokaṁ parañca lokaṁ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ntī’ti tesametaṁ pāṭikaṅkhaṁ—yamidaṁ kāyasucaritaṁ, vacīsucaritaṁ, manosucaritaṁ—ime tayo kusale dhamme abhinivajjetvā yamidaṁ kāyaduccaritaṁ, vacīduccaritaṁ, manoduccaritaṁ—ime tayo akusale dhamme samādāya vattissanti. Taṁ kissa hetu? Na h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passanti akusalānaṁ dhammānaṁ ādīnavaṁ okāraṁ saṅkilesaṁ, kusalānaṁ dhammānaṁ nekkhamme ānisaṁsaṁ vodānapakkha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허무주의 견해를 지닌 이들에게 실제로 어떤 결과가 따를지 세존께서 예측하십니다.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선행과 악행이라는 익숙한 틀로 결론을 내리시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애초에 악행의 재난과 선행의 이익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도덕적 실패를 의지의 나약함이 아니라 봄, 곧 견해의 문제로 짚는 것으로, 뒤이어 이 견해가 구체적으로 어떤 해로운 결과들을 낳는지 여덟 갈래로 분석됩니다.

묵상

어떤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 스스로 판단이 서지 않을 때, 결과를 미리 보지 못해 망설였던 경험이 있나요? 지금 내가 놓치고 있을지 모르는 결과가 있다면, 그것을 무엇으로 가늠해 볼 수 있을까요?

실제로 저 세상이 있는데도 ‘저 세상은 없다’는 견해를 지니면 그것이 그릇된 견해이며, 실제로 저 세상이 있는데도 ‘저 세상은 없다’고 사유하면 그것이 그릇된 사유이며, 실제로 저 세상이 있는데도 ‘저 세상은 없다’고 말하면 그것이 그릇된 말이며, 실제로 저 세상이 있는데도 ‘저 세상은 없다’고 하여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것이 되느니라.

Santaṁyeva pana paraṁ lokaṁ ‘natthi paro loko’ tissa diṭṭhi hoti; sāssa hoti micchādiṭṭhi. Santaṁyeva kho pana paraṁ lokaṁ ‘natthi paro loko’ti saṅkappeti; svāssa hoti micchāsaṅkappo. Santaṁyeva kho pana paraṁ lokaṁ ‘natthi paro loko’ti vācaṁ bhāsati; sāssa hoti micchāvācā. Santaṁyeva kho pana paraṁ lokaṁ ‘natthi paro loko’ti āha; ye te arahanto paralokaviduno tesamayaṁ paccanīkaṁ karo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허무주의 견해가 왜 그릇된 것인지, 세존께서 네 겹으로 짚어 나가십니다. 견해·사유·말·성자들과의 관계라는 네 층위 모두에서 저 세상은 없다는 같은 문장이 그대로 되풀이되는데, 이는 하나의 그릇된 견해가 마음가짐과 말과 관계 전체에 걸쳐 파급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실제로 저 세상이 있는데도라는 전제는 세존께서 이미 그 존재를 사실로 두고 논의를 시작하신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묵상

한 가지 그릇된 생각이 말과 행동, 사람과의 관계에까지 번져 간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지금 마음에 걸리는 생각 하나가 있다면, 그것이 어디까지 번져 있는지 가만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실제로 저 세상이 있는데도 ‘저 세상은 없다’고 남을 설득하면 바르지 못한 가르침을 설득하는 것이 되며, 그로써 자신을 높이고 남을 헐뜯게 되니, 이렇게 좋은 계행은 버려지고 나쁜 계행이 자리 잡게 되느니라. 이 그릇된 견해와 사유와 말과 성자들에 대한 반대와 바르지 못한 가르침의 설득과 자신을 높이고 남을 헐뜯음, 이렇게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하여 이 많은 나쁘고 능숙하지 못한 것들이 생겨나느니라.

Santaṁyeva kho pana paraṁ lokaṁ ‘natthi paro loko’ti paraṁ saññāpeti; sāssa hoti asaddhammasaññatti. Tāya ca pana asaddhammasaññattiyā attānukkaṁseti, paraṁ vambheti. Iti pubbeva kho panassa susīlyaṁ pahīnaṁ hoti, dussīlyaṁ paccupaṭṭhitaṁ— ayañca micchādiṭṭhi micchāsaṅkappo micchāvācā ariyānaṁ paccanīkatā asaddhammasaññatti attukkaṁsanā paravambhanā. Evamassime aneke pāpakā akusalā dhammā sambhavanti micchādiṭṭhipaccay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앞선 네 겹에 이어, 그릇된 견해가 남을 설득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그 설득이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는 태도로, 마침내 계행의 뒤바뀜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세 단계가 제시됩니다. 마지막 문장은 앞서 나온 여섯 가지, 곧 그릇된 견해·사유·말·반대·설득·자만을 모두 되짚으며, 이 모든 것이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고 못박습니다. 하나의 견해가 원인이 되어 여러 갈래의 해로움이 뒤따른다는 연쇄가 이 대목의 핵심입니다.

묵상

내 생각이 옳다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 애쓰다가,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우쭐해진 적이 있나요? 그 우쭐함이 어디서 왔는지 잠시 돌아볼 수 있을까요? 설득의 열기가 식은 뒤에 다시 보면 다르게 보일까요?

장자들이여, 거기서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살피느니라. ‘만약 저 세상이 없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진 뒤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킨 것이 될 것이요, 만약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니라. 저 세상이 없다는 그 말이 설령 진실이라 하여도, 이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이미 슬기로운 이들에게 비난받으니 계행이 나쁘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 허무주의자라는 것이니라.’

Tatra, gahapatayo,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sace kho natthi paro loko evamayaṁ bhavaṁ purisapuggalo kāyassa bhedā sotthimattānaṁ karissati; sace kho atthi paro loko, evamayaṁ bhavaṁ purisapuggalo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issati. Kāmaṁ kho pana māhu paro loko, hotu nesaṁ bhavataṁ samaṇabrāhmaṇānaṁ saccaṁ vacanaṁ; atha ca panāyaṁ bhavaṁ purisapuggalo diṭṭheva dhamme viññūnaṁ gārayho—dussīlo purisapuggalo micchādiṭṭhi natthikavādo’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허무주의 견해를 실제로 택했을 때 벌어질 두 가지 경우를 슬기로운 사람이 미리 헤아려 봅니다. 저 세상이 없다면 그저 무사할 뿐이지만, 있다면 나쁜 곳에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설령 그 견해가 맞다 하더라도 지금 이 삶에서 이미 계행이 나쁜 사람으로 비난받는다는 사실을 덧붙이십니다. 결과가 갈리기 전부터 이미 손해가 시작된다는 것이 이 대목의 요지입니다.

묵상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금 당장 잃는 것이 있는 선택을 해 본 적이 있나요? 미래의 불확실함과는 별개로, 지금 이 순간에 치르는 대가를 먼저 살펴본다면 무엇이 보일까요? 그 대가를 알고도 같은 선택을 할지 자문해 볼 수 있을까요?

그러나 만약 저 세상이 실제로 있다면 이 사람에게는 양쪽 모두에서 지는 패가 되니, 곧 지금 여기에서 슬기로운 이들에게 비난받는 것과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이니라. 이렇게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여 실천한 까닭에 한쪽으로만 치우쳐 서서 능숙한 자리를 놓쳐 버리느니라.

Sace kho attheva paro loko, evaṁ imassa bhoto purisapuggalassa ubhayattha kaliggaho— yañca diṭṭheva dhamme viññūnaṁ gārayho, yañc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issati. Evamassāyaṁ apaṇṇako dhammo dussamatto samādinno, ekaṁsaṁ pharitvā tiṭṭhati, riñcati kusalaṁ ṭhāna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저 세상이 실제로 있을 경우의 결과가 확정되며 이 첫 사이클의 결론이 내려집니다. 양쪽 모두에서 지는 패라는 표현은 이 경 전체를 관통하는 도박의 비유로, 지금 이 삶에서의 비난과 죽은 뒤의 나쁜 곳이라는 두 가지 손실이 겹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문장의 확실한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였다는 평가는, 이 견해가 한쪽의 이익만 바라보고 다른 쪽의 위험을 놓친 도박이었음을 분명히 합니다.

묵상

한 가지 선택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 그 판단이 틀렸을 때를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내가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다면, 다른 쪽의 가능성도 잠깐 열어 둘 수 있을까요? 열어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됩니다.

장자들이여, 보시에도 의미가 있다는 등으로 주장하는 수행자·바라문들에게는 이런 일이 예상되니, 몸·말·뜻으로 짓는 악행이라는 세 가지 능숙하지 못한 것을 멀리하고, 몸·말·뜻으로 짓는 선행이라는 세 가지 능숙한 것을 받아들여 행하리라는 것이니라. 어떤 까닭인가? 그 수행자·바라문들은 능숙하지 못한 것들의 재난과 허물과 오염을 보고, 능숙한 것들의 벗어남이 주는 이익과 깨끗해짐도 보기 때문이니라.

Tatra, gahapatayo,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tthi dinnaṁ …pe… ye imañca lokaṁ parañca lokaṁ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ntī’ti tesametaṁ pāṭikaṅkhaṁ—yamidaṁ kāyaduccaritaṁ, vacīduccaritaṁ, manoduccaritaṁ—ime tayo akusale dhamme abhinivajjetvā yamidaṁ kāyasucaritaṁ, vacīsucaritaṁ, manosucaritaṁ—ime tayo kusale dhamme samādāya vattissanti. Taṁ kissa hetu? Passanti h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ānaṁ dhammānaṁ ādīnavaṁ okāraṁ saṅkilesaṁ, kusalānaṁ dhammānaṁ nekkhamme ānisaṁsaṁ vodānapakkha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허무주의 견해를 다룬 앞의 대목과 정확히 대구를 이루어, 이번에는 도덕과 인과를 긍정하는 이들에게 예상되는 결과가 제시됩니다. 문장 구조는 앞서와 똑같이 몸과 말과 뜻의 선행과 악행을 다루지만, 방향이 정반대로 뒤집혀 있습니다. 이들이 선행을 택하는 까닭 역시 의지가 아니라 봄, 곧 견해에 있다는 것이 앞과 동일하게 강조되는데, 이는 이 경이 도덕적 실천을 결국 무엇을 보는가의 문제로 다루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어떤 행동의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미리 또렷이 본 뒤에 마음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기울었던 경험이 있나요? 지금 내가 미루고 있는 좋은 행동이 있다면, 그 결과를 더 또렷이 그려 보면 어떨까요?

실제로 저 세상이 있으니 ‘저 세상이 있다’는 견해를 지니면 그것이 바른 견해이며, 실제로 저 세상이 있으니 ‘저 세상이 있다’고 사유하면 그것이 바른 사유이며, 실제로 저 세상이 있으니 ‘저 세상이 있다’고 말하면 그것이 바른 말이며, 실제로 저 세상이 있으니 ‘저 세상이 있다’고 하여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지 않는 것이 되느니라.

Santaṁyeva kho pana paraṁ lokaṁ ‘atthi paro loko’ tissa diṭṭhi hoti; sāssa hoti sammādiṭṭhi. Santaṁyeva kho pana paraṁ lokaṁ ‘atthi paro loko’ti saṅkappeti; svāssa hoti sammāsaṅkappo. Santaṁyeva kho pana paraṁ lokaṁ ‘atthi paro loko’ti vācaṁ bhāsati; sāssa hoti sammāvācā. Santaṁyeva kho pana paraṁ lokaṁ ‘atthi paro loko’ti āha; ye te arahanto paralokaviduno tesamayaṁ na paccanīkaṁ karo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앞서 그릇된 견해를 네 겹으로 짚었던 것과 똑같은 틀로, 이번에는 바른 견해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보입니다. 견해·사유·말·성자들과의 관계라는 같은 네 층위에서 저 세상이 있다는 문장이 그대로 반복되는데, 부정하던 자리마다 긍정이 들어서는 이 대구는 앞뒤 두 대목을 나란히 놓고 읽을 때 그 구조가 더 뚜렷이 드러납니다. 다음 구절에서 이 바른 견해가 어떻게 남에게까지 이어지는지가 마저 밝혀집니다.

묵상

바르다고 믿는 생각 하나가 말과 태도에까지 자연스럽게 스며든 경험이 있나요? 지금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실제로 말과 행동에서도 한결같은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그 한결같음을 오늘 하나만 확인해 볼까요?

실제로 저 세상이 있으니 ‘저 세상이 있다’고 남을 설득하면 바른 가르침을 설득하는 것이 되며, 그로써 자신을 높이지도 남을 헐뜯지도 않게 되니, 이렇게 나쁜 계행은 버려지고 좋은 계행이 자리 잡게 되느니라. 이 바른 견해와 사유와 말과 성자들에 대한 반대 없음과 바른 가르침의 설득과 자신을 높이지 않고 남을 헐뜯지 않음, 이렇게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하여 이 많은 능숙한 것들이 생겨나느니라.

Santaṁyeva kho pana paraṁ lokaṁ ‘atthi paro loko’ti paraṁ saññāpeti; sāssa hoti saddhammasaññatti. Tāya ca pana saddhammasaññattiyā nevattānukkaṁseti, na paraṁ vambheti. Iti pubbeva kho panassa dussīlyaṁ pahīnaṁ hoti, susīlyaṁ paccupaṭṭhitaṁ— ayañca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ariyānaṁ apaccanīkatā saddhammasaññatti anattukkaṁsanā aparavambhanā. Evamassime aneke kusalā dhammā sambhavanti sammādiṭṭhipaccay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바른 견해가 남을 설득하는 데까지 이어지고, 그 설득이 자만이나 폄훼 없이 이루어지며, 마침내 계행이 좋은 쪽으로 자리 잡는 마지막 세 단계가 완성됩니다. 마지막 문장은 앞의 여섯 가지를 모두 되짚어, 이 모두가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고 못박는데, 이는 앞서 허무주의 견해를 다룬 대목의 결론과 글자 하나까지 대구를 이루는 문장입니다. 하나의 바른 견해가 원인이 되어 여러 갈래의 이로움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묵상

바른 생각이 자만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으로 이어졌던 경험이 있나요? 지금 내가 확신하는 것 하나가, 나를 높이는 대신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그 확신을 남과 나누는 방식도 함께 살펴볼까요?

장자들이여, 거기서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살피느니라. ‘만약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니라. 저 세상이 없다는 그 수행자·바라문들의 말이 설령 진실이라 하여도, 이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이미 슬기로운 이들에게 칭찬받으니 계행이 좋고 바른 견해를 지녀 있음을 주장하는 이라는 것이니라.’

Tatra, gahapatayo,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sace kho atthi paro loko, evamayaṁ bhavaṁ purisapuggalo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issati. Kāmaṁ kho pana māhu paro loko, hotu nesaṁ bhavataṁ samaṇabrāhmaṇānaṁ saccaṁ vacanaṁ; atha ca panāyaṁ bhavaṁ purisapuggalo diṭṭheva dhamme viññūnaṁ pāsaṁso—sīlavā purisapuggalo sammādiṭṭhi atthikavādo’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긍정하는 견해를 택했을 때의 결과가 앞의 부정적 사이클과 정확히 대칭을 이루며 제시됩니다. 저 세상이 있다면 좋은 곳에 태어나고, 없다 해도 지금 이 삶에서 이미 칭찬받는다는 것이니, 앞서 나온 손실의 논리가 여기서는 그대로 이익의 논리로 뒤집힙니다. 지금 이 삶에서의 칭찬과 죽은 뒤의 좋은 곳이라는 두 가지가 나란히 놓이는 것도 앞 대목과 정확히 대칭을 이룹니다. 다음 구절에서 이 이익이 양쪽 모두에서 확정되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어느 쪽이 일어나도 손해 볼 일 없는 선택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내 앞에 있는 선택지 가운데, 그런 확실한 쪽이 있는지 한번 찾아볼 수 있을까요? 찾다 보면 뜻밖의 것이 눈에 들어올지도 몰라요.

만약 저 세상이 실제로 있다면 이 사람에게는 양쪽 모두에서 이기는 패가 되니, 곧 지금 여기에서 슬기로운 이들에게 칭찬받는 것과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니라. 이렇게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실천한 까닭에 양쪽 모두에 걸쳐 서서 능숙하지 못한 자리를 놓쳐 버리느니라.

Sace kho attheva paro loko, evaṁ imassa bhoto purisapuggalassa ubhayattha kaṭaggaho— yañca diṭṭheva dhamme viññūnaṁ pāsaṁso, yañc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issati. Evamassāyaṁ apaṇṇako dhammo susamatto samādinno ubhayaṁsaṁ pharitvā tiṭṭhati, riñcati akusalaṁ ṭhāna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저 세상이 실제로 있을 경우까지 확정되며 첫째 주제인 내세에 관한 사이클이 마무리됩니다. 앞서 나온 양쪽 모두에서 지는 패가 여기서는 양쪽 모두에서 이기는 패로 완전히 뒤집혀, 이 다섯 마디 사이클(주장-반박-예상되는 결과-여덟 겹 분석-도박의 셈)이 하나의 완결된 논증임을 보여 줍니다. 다음 대목에서 이 틀 그대로 둘째 주제인 행위의 효력으로 넘어갑니다.

묵상

손해 볼 일이 없다고 확신했던 선택이 실제로 두 가지 다 좋은 결과로 이어졌던 경험이 있나요? 그런 선택을 할 때 나는 무엇을 가장 먼저 따져 보았나요? 그 기준을 지금 다른 선택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