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바라문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으니
‘중생이 오염되는 데는 원인도 조건도 없으니
원인도 조건도 없이 중생은 오염되며,
중생이 청정해지는 데도 원인도 조건도 없으니
원인도 조건도 없이 중생은 청정해진다’라 하느니라.
Santi, gahapatayo,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tthi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ṁ saṅkilesāya; ahetū ap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i. Natthi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ṁ visuddhiyā; ahetū appaccayā sattā visujjhan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확실한 가르침의 셋째 주제로, 도덕적 원인과 결과의 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견해가 제시됩니다. 중생이 오염되고 청정해지는 데에 아무 원인도 조건도 없다는 이 주장은, 앞서 다룬 저 세상과 행위의 효력을 넘어 이제는 그 둘을 잇는 인과의 사슬 자체를 끊어 버립니다. 오염과 청정을 나란히 부정하는 이 두 문장은 다음 구절에서 인간의 힘과 노력까지 부정하는 더 급진적인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내 마음이 오염되거나 맑아지는 데 아무 원인이 없다고 한다면, 지금 내가 애쓰는 일들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 물음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을 오늘 한번 찾아볼 수 있을까요?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힘도 없고 정진도 없고 인간의 기력도 노력도 없으니,
모든 중생과 모든 생명과 모든 존재와 모든 영혼은
자재함도 힘도 정진도 없이 운명과 우연과 본성에 따라 정해져
여섯 갈래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겪는다’라 하느니라.
Natthi balaṁ, natthi vīriyaṁ, natthi purisathāmo, natthi purisaparakkamo; sabbe sattā sabbe pāṇā sabbe bhūtā sabbe jīvā avasā abalā avīriyā niyatisaṅgatibhāvapariṇatā chasvevābhijātīsu sukhadukkhaṁ paṭisaṁvede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앞선 인과 부정에 이어, 이번에는 인간의 힘과 노력 자체를 부정하는 더 급진적인 주장으로 나아갑니다. 모든 중생이 운명·우연·본성이라는 세 가지 힘에 의해 이미 정해진 대로 여섯 갈래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겪을 뿐이라는 이 견해는 결정론이라 부를 만한 입장입니다.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이 주장이야말로 이 경이 겨냥하는 다섯 물음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묵상
내 노력과 상관없이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그런 느낌이 들 때, 그래도 오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 작은 선택 하나가 생각보다 큰 뜻을 지닐 수 있어요.
장자들이여, 그 수행자·바라문들 가운데는 정반대로 주장하는 이들도 있어 이렇게 말하느니라.
‘중생이 오염되는 데는 원인과 조건이 있으니
원인과 조건이 있어 중생은 오염되며,
중생이 청정해지는 데도 원인과 조건이 있으니
원인과 조건이 있어 중생은 청정해진다’라 하느니라.
Tesaṁyeva kho, gahapatayo, samaṇabrāhmaṇānaṁ eke samaṇabrāhmaṇā ujuvipaccanīkavādā. Te evamāhaṁsu: ‘atthi hetu, atthi paccayo sattānaṁ saṅkilesāya;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i. Atthi hetu, atthi paccayo sattānaṁ visuddhiyā; sahetū sappaccayā sattā visujjhan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인과를 부정하는 견해와 정반대로, 중생의 오염과 청정에는 분명한 원인과 조건이 있다는 견해가 그대로 대구를 이루어 제시됩니다. 부정하던 자리마다 긍정이 들어서는 이 구조는 앞의 두 사이클과 똑같은 틀이며, 오염과 청정 둘 다에 원인이 있다고 못박는 것도 앞 문단과 정확히 대칭을 이룹니다. 다음 구절에서 힘과 노력에 관한 주장까지 마저 뒤집혀 긍정하는 견해가 완성됩니다.
묵상
내 마음이 맑아지는 데 분명한 원인과 조건이 있다고 믿을 때, 그 믿음이 오늘 내 행동에 어떤 차이를 만드나요? 지금 내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기대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그 원인을 오늘 한 번 더 믿어 볼 수 있을까요?
‘힘도 있고 정진도 있고 인간의 기력도 노력도 있으니,
모든 중생과 모든 생명과 모든 존재와 모든 영혼이
자재함도 힘도 정진도 없이 운명과 우연과 본성에 따라 정해져
여섯 갈래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라 하느니라.
장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수행자·바라문들은 서로 정반대로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Atthi balaṁ, atthi vīriyaṁ, atthi purisathāmo, atthi purisaparakkamo; na sabbe sattā sabbe pāṇā sabbe bhūtā sabbe jīvā avasā abalā avīriyā niyatisaṅgatibhāvapariṇatā chasvevābhijātīsu sukhadukkhaṁ paṭisaṁvedentī’ti. Taṁ kiṁ maññatha, gahapatayo, nanume samaṇabrāhmaṇā aññamaññassa ujuvipaccanīkavādā”ti? “Evaṁ, bhante”.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결정론을 뒤집는 마지막 절반과, 세존께서 다시 확인을 구하시는 절차가 이어집니다. 힘과 노력이 실제로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중생이 운명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긍정하는 견해가 완성됩니다. 셋째 주제에서도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이 확인 절차는 판단에 앞서 사실관계부터 짚는 이 경의 일관된 태도를 보여 주며, 다음 대목부터 이 두 견해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는지가 이어집니다.
묵상
노력이 헛되지 않다고 믿을 때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고 느낄 때, 같은 하루도 다르게 살아지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 그 믿음의 차이를 실제로 느껴 볼 수 있을까요? 작은 실험 삼아 하루만 지켜보아도 좋겠습니다.
장자들이여, 이렇게 주장하는 수행자·바라문들을 보면
‘중생이 오염되는 데도 청정해지는 데도 원인도 조건도 없으며,
힘도 없고 정진도 없고 인간의 기력도 노력도 없으니,
모든 중생과 모든 생명과 모든 존재와 모든 영혼은
자재함도 힘도 정진도 없이 운명과 우연과 본성에 따라 정해져
여섯 갈래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겪는다’라 하니,
“Tatra, gahapatayo,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tthi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ṁ saṅkilesāya; ahetū ap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i. Natthi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ṁ visuddhiyā; ahetū appaccayā sattā visujjhanti. Natthi balaṁ, natthi vīriyaṁ, natthi purisathāmo, natthi purisaparakkamo; sabbe sattā sabbe pāṇā sabbe bhūtā sabbe jīvā avasā abalā avīriyā niyatisaṅgatibhāvapariṇatā chasvevābhijātīsu sukhadukkhaṁ paṭisaṁvede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원인 부정론자들에게 예상되는 결과를 말씀하시기 전에, 세존께서 그 견해 전체를 다시 한번 온전히 불러오십니다. 앞의 두 사이클과 달리 이번에는 원문 자체의 생략 표시 없이 오염과 청정, 힘과 노력에 관한 견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완전히 되풀이됩니다. 이렇게 사이클마다 생략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도 원문을 꼼꼼히 볼 때만 드러나는 특징이며, 다음 구절에서 이 견해에 예상되는 결과가 이어집니다.
묵상
이미 들은 주장을 다시 온전히 들으니 처음과는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나요? 두 번째로 들을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반복이 때로는 새로운 발견의 문이 되기도 해요.
이 수행자·바라문들에게는 몸으로 짓는 선행과 말로 짓는 선행과 뜻으로 짓는 선행,
이 세 가지 능숙한 것은 멀리하고, 몸으로 짓는 악행과 말로 짓는 악행과 뜻으로 짓는 악행,
이 세 가지 능숙하지 못한 것을 받아들여 행할 것이 예상되느니라.
어떤 까닭인가? 그들은 능숙하지 못한 것들의 재난과 허물과 오염을 보지 못하고,
능숙한 것들의 벗어남이 주는 이익과 깨끗해짐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tesametaṁ pāṭikaṅkhaṁ—yamidaṁ kāyasucaritaṁ, vacīsucaritaṁ, manosucaritaṁ—ime tayo kusale dhamme abhinivajjetvā yamidaṁ kāyaduccaritaṁ, vacīduccaritaṁ, manoduccaritaṁ—ime tayo akusale dhamme samādāya vattissanti. Taṁ kissa hetu? Na h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passanti akusalānaṁ dhammānaṁ ādīnavaṁ okāraṁ saṅkilesaṁ, kusalānaṁ dhammānaṁ nekkhamme ānisaṁsaṁ vodānapakkha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원인 부정론을 지닌 이들에게 실제로 어떤 결과가 따를지 세존께서 예측하십니다. 앞선 두 사이클과 글자 하나 다르지 않은 문장으로, 몸과 말과 뜻의 선행과 악행이라는 틀과 그 까닭이 다시 제시됩니다. 대상이 되는 견해는 저 세상에서 행위의 효력으로, 다시 원인의 문제로 계속 바뀌어도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구조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으며, 다음 대목에서 이 견해가 왜 그릇된 것인지 여덟 겹으로 분석됩니다.
묵상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결과가 있다면, 그것을 보지 못해서인가요, 아니면 보고도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요? 이 물음을 세 번째로 다시 마주하니 어떤 느낌이 드나요? 매번 같은 물음이라도 답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어요.
실제로 원인이 있는데도 ‘원인이 없다’는 견해를 지니면 그것이 그릇된 견해이며,
실제로 원인이 있는데도 ‘원인이 없다’고 사유하면 그것이 그릇된 사유이며,
실제로 원인이 있는데도 ‘원인이 없다’고 말하면 그것이 그릇된 말이며,
실제로 원인이 있는데도 ‘원인이 없다’고 하여
원인을 가르치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것이 되느니라.
Santaṁyeva kho pana hetuṁ ‘natthi hetū’ tissa diṭṭhi hoti; sāssa hoti micchādiṭṭhi. Santaṁyeva kho pana hetuṁ ‘natthi hetū’ti saṅkappeti; svāssa hoti micchāsaṅkappo. Santaṁyeva kho pana hetuṁ ‘natthi hetū’ti vācaṁ bhāsati; sāssa hoti micchāvācā. Santaṁyeva kho pana hetuṁ ‘natthi hetū’ti āha; ye te arahanto hetuvādā tesamayaṁ paccanīkaṁ karo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원인 부정론이 왜 그릇된 것인지, 앞선 두 사이클과 똑같은 네 겹의 틀로 짚어 나갑니다. 대상이 행위의 효력에서 원인으로 바뀌었을 뿐, 견해·사유·말·성자들과의 관계라는 네 층위와 그 논리는 완전히 동일합니다. 다섯 가지 주제 가운데 셋째에서도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이 틀은, 이 경이 내용이 아니라 형식, 곧 근거 없이 단정하는 태도 자체를 겨냥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묵상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원인이 없다고 단정 지은 적이 있나요? 찾지 못함과 없음을 구별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그 구별이 오늘 하나의 판단을 늦추어 줄 수 있을까요?
실제로 원인이 있는데도 ‘원인이 없다’고 남을 설득하면
바르지 못한 가르침을 설득하는 것이 되며,
그로써 자신을 높이고 남을 헐뜯게 되니,
이렇게 좋은 계행은 버려지고 나쁜 계행이 자리 잡게 되느니라.
이 그릇된 견해와 사유와 말과 성자들에 대한 반대와
바르지 못한 가르침의 설득과 자신을 높이고 남을 헐뜯음,
이렇게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하여 이 많은 나쁘고 능숙하지 못한 것들이 생겨나느니라.
Santaṁyeva kho pana hetuṁ ‘natthi hetū’ti paraṁ saññāpeti; sāssa hoti asaddhammasaññatti. Tāya ca pana asaddhammasaññattiyā attānukkaṁseti, paraṁ vambheti. Iti pubbeva kho panassa susīlyaṁ pahīnaṁ hoti, dussīlyaṁ paccupaṭṭhitaṁ— ayañca micchādiṭṭhi micchāsaṅkappo micchāvācā ariyānaṁ paccanīkatā asaddhammasaññatti attānukkaṁsanā paravambhanā. Evamassime aneke pāpakā akusalā dhammā sambhavanti micchādiṭṭhipaccay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여덟 겹 분석의 나머지 절반이 마무리되며, 이번에도 앞선 두 사이클의 결론 문장과 정확히 같은 구조로 끝맺습니다. 그릇된 견해 하나가 사유·말·관계·설득·자만을 거쳐 계행 전체를 무너뜨리는 이 연쇄가 세 번째로 되풀이되는데, 대상만 바뀔 뿐 그 구조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 경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이 견해를 실제로 택했을 때 벌어질 두 가지 경우가 헤아려집니다.
묵상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노력 자체를 놓아 버린 적이 있나요?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다르게 해 보고 싶나요? 지금이라도 그 걸음을 다시 떼어 볼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장자들이여, 거기서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살피느니라.
‘만약 원인이 없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진 뒤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킨 것이 될 것이요,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니라.
원인이 없다는 그 말이 설령 진실이라 하여도,
이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이미 슬기로운 이들에게 비난받으니
계행이 나쁘고 원인을 부정하는 그릇된 견해를 지녔다는 것이니라.’
Tatra, gahapatayo,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sace kho natthi hetu, evamayaṁ bhavaṁ purisapuggalo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otthimattānaṁ karissati; sace kho atthi hetu, evamayaṁ bhavaṁ purisapuggalo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issati. Kāmaṁ kho pana māhu hetu, hotu nesaṁ bhavataṁ samaṇabrāhmaṇānaṁ saccaṁ vacanaṁ; atha ca panāyaṁ bhavaṁ purisapuggalo diṭṭheva dhamme viññūnaṁ gārayho—dussīlo purisapuggalo micchādiṭṭhi ahetukavādo’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원인 부정론을 실제로 택했을 때 벌어질 두 가지 경우를 슬기로운 사람이 미리 헤아려 봅니다. 앞선 두 사이클과 똑같은 틀로, 원인이 없다면 무사할 뿐이지만 있다면 나쁜 곳에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여기서도 그치지 않으시고, 설령 그 견해가 맞다 하더라도 지금 이 삶에서 이미 계행이 나쁜 사람으로 비난받는다는 사실을 덧붙이십니다. 이 도박의 셈이 세 번째 주제에서도 조금도 다르지 않게 되풀이됩니다.
묵상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금 당장 잃는 것이 있는 선택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이 순간에 치르는 대가를 먼저 살펴본다면 무엇이 보일까요? 그 대가를 알고도 같은 선택을 할지 자문해 볼 수 있을까요?
그러나 만약 원인이 실제로 있다면
이 사람에게는 양쪽 모두에서 지는 패가 되니,
곧 지금 여기에서 슬기로운 이들에게 비난받는 것과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이니라.
이렇게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여 실천한 까닭에
한쪽으로만 치우쳐 서서 능숙한 자리를 놓쳐 버리느니라.
Sace kho attheva hetu, evaṁ imassa bhoto purisapuggalassa ubhayattha kaliggaho— yañca diṭṭheva dhamme viññūnaṁ gārayho, yañc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issati. Evamassāyaṁ apaṇṇako dhammo dussamatto samādinno, ekaṁsaṁ pharitvā tiṭṭhati, riñcati kusalaṁ ṭhāna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원인이 실제로 있을 경우의 결과가 확정되며 이 사이클의 결론이 내려집니다. 양쪽 모두에서 지는 패라는 표현이 세 번째로 되풀이되며, 지금 이 삶에서의 비난과 죽은 뒤의 나쁜 곳이라는 두 가지 손실이 겹친다는 뜻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합니다. 확실한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였다는 이 평가는 원인 부정론이 결국 손해뿐인 도박이었음을 확인해 주며, 다음 대목에서 원인을 긍정하는 견해가 왜 옳은지 분석됩니다.
묵상
원인이 없다고 믿고 노력을 놓아 버렸다가, 뒤늦게 그 노력이 필요했음을 깨달은 경험이 있나요? 지금이라면 그 깨달음을 어떻게 살려 볼 수 있을까요? 늦었다고 느껴져도 오늘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장자들이여, 이렇게 주장하는 수행자·바라문들을 보면
‘중생이 오염되는 데도 청정해지는 데도 원인과 조건이 있으며,
힘도 있고 정진도 있고 인간의 기력도 노력도 있으니,
모든 중생과 모든 생명과 모든 존재와 모든 영혼이
자재함도 힘도 정진도 없이 운명과 우연과 본성에 따라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라 하니,
Tatra, gahapatayo,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tthi hetu, atthi paccayo sattānaṁ saṅkilesāya;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i. Atthi hetu, atthi paccayo sattānaṁ visuddhiyā; sahetū sappaccayā sattā visujjhanti. Atthi balaṁ, atthi vīriyaṁ, atthi purisathāmo, atthi purisaparakkamo; na sabbe sattā sabbe pāṇā sabbe bhūtā sabbe jīvā avasā abalā avīriyā niyatisaṅgatibhāvapariṇatā chasvevābhijātīsu sukhadukkhaṁ paṭisaṁvede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이번에는 원인을 긍정하는 견해가 다시 불려 나오는데, 여기서도 부정론과 마찬가지로 앞서 나온 내용이 생략 없이 완전히 되풀이됩니다. 오염과 청정의 원인, 힘과 노력의 존재, 운명론의 부정까지 세 겹의 주장이 고스란히 다시 세워지고, 다음 구절에서 이 견해를 지닌 이들에게 예상되는 결과가 이어집니다. 부정과 긍정이 사이클마다 같은 방식으로 온전히 되풀이되는 것도 이 경의 논증이 임의적이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내 노력에 힘이 있다고 믿는 것과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 것,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이 지금 내 하루를 더 낫게 만들어 줄까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 믿음을 시험해 볼 수 있을까요?
이 수행자·바라문들에게는 몸으로 짓는 악행과 말로 짓는 악행과 뜻으로 짓는 악행,
이 세 가지 능숙하지 못한 것은 멀리하고, 몸으로 짓는 선행과 말로 짓는 선행과 뜻으로 짓는 선행,
이 세 가지 능숙한 것을 받아들여 행할 것이 예상되느니라.
어떤 까닭인가? 그들은 능숙하지 못한 것들의 재난과 허물과 오염을 보고,
능숙한 것들의 벗어남이 주는 이익과 깨끗해짐도 보기 때문이니라.
tesametaṁ pāṭikaṅkhaṁ—yamidaṁ kāyaduccaritaṁ, vacīduccaritaṁ, manoduccaritaṁ—ime tayo akusale dhamme abhinivajjetvā yamidaṁ kāyasucaritaṁ, vacīsucaritaṁ, manosucaritaṁ—ime tayo kusale dhamme samādāya vattissanti. Taṁ kissa hetu? Passanti h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kusalānaṁ dhammānaṁ ādīnavaṁ okāraṁ saṅkilesaṁ, kusalānaṁ dhammānaṁ nekkhamme ānisaṁsaṁ vodānapakkha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원인을 긍정하는 이들에게 예상되는 결과와 그 까닭이 함께 제시됩니다. 앞선 두 사이클과 똑같이 몸과 말과 뜻의 선행과 악행이라는 틀로 결론이 내려지고, 결과를 보는가 보지 못하는가라는 이 경의 일관된 기준이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이 기준이 다섯 가지 주제 가운데 세 번째까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이어져 온 셈입니다. 다음 대목에서 이 바른 견해가 왜 옳은지 여덟 겹으로 분석됩니다.
묵상
결과를 또렷이 본 뒤에 마음이 자연스럽게 좋은 쪽으로 기울었던 경험이 있나요? 오늘 내가 미루고 있는 행동 하나의 결과를 미리 그려 본다면 어떤 장면이 떠오를까요? 그 장면이 오늘의 발걸음을 조금 앞당겨 줄 수 있을까요?
실제로 원인이 있으니 ‘원인이 있다’는 견해를 지니면 그것이 바른 견해이며,
실제로 원인이 있으니 ‘원인이 있다’고 사유하면 그것이 바른 사유이며,
실제로 원인이 있으니 ‘원인이 있다’고 말하면 그것이 바른 말이며,
실제로 원인이 있으니 ‘원인이 있다’고 하여
원인을 가르치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지 않는 것이 되느니라.
Santaṁyeva kho pana hetuṁ ‘atthi hetū’ tissa diṭṭhi hoti; sāssa hoti sammādiṭṭhi. Santaṁyeva kho pana hetuṁ ‘atthi hetū’ti saṅkappeti; svāssa hoti sammāsaṅkappo. Santaṁyeva kho pana hetuṁ ‘atthi hetū’ti vācaṁ bhāsati; sāssa hoti sammāvācā. Santaṁyeva kho pana hetuṁ ‘atthi hetū’ti āha, ye te arahanto hetuvādā tesamayaṁ na paccanīkaṁ karo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바른 견해의 네 겹 분석이 원인이라는 주제로 다시 한번 펼쳐집니다. 저 세상과 행위의 효력에 이어 원인에서도, 실제로 있는 것을 있다고 보는 것이 바른 견해의 출발점이라는 원리가 세 번째로 확인됩니다. 견해·사유·말·성자들과의 관계라는 같은 네 층위가 대상만 바꾸어 세 번째로 되풀이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다음 구절에서 이 바른 견해가 남을 설득하는 데까지 이어지는 나머지 절반이 마저 밝혀집니다.
묵상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것을 실제로 확인한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확인이 지금 내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그 영향을 오늘 하나만 짚어 보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실제로 원인이 있으니 ‘원인이 있다’고 남을 설득하면
바른 가르침을 설득하는 것이 되며,
그로써 자신을 높이지도 남을 헐뜯지도 않게 되니,
이렇게 나쁜 계행은 버려지고 좋은 계행이 자리 잡게 되느니라.
이 바른 견해와 사유와 말과 성자들에 대한 반대 없음과
바른 가르침의 설득과 자신을 높이지 않고 남을 헐뜯지 않음,
이렇게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하여 이 많은 능숙한 것들이 생겨나느니라.
Santaṁyeva kho pana hetuṁ ‘atthi hetū’ti paraṁ saññāpeti; sāssa hoti saddhammasaññatti. Tāya ca pana saddhammasaññattiyā nevattānukkaṁseti, na paraṁ vambheti. Iti pubbeva kho panassa dussīlyaṁ pahīnaṁ hoti, susīlyaṁ paccupaṭṭhitaṁ— ayañca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ariyānaṁ apaccanīkatā saddhammasaññatti anattukkaṁsanā aparavambhanā. Evamassime aneke kusalā dhammā sambhavanti sammādiṭṭhipaccay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바른 견해의 여덟 겹 분석이 완성되며 셋째 주제의 긍정적 결론이 마무리됩니다. 그릇된 견해가 낳는 연쇄와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이 문장은, 원인을 믿는 바른 견해 하나가 계행 전체를 좋은 쪽으로 이끈다는 것을 세 번째로 보여 줍니다. 저 세상과 행위의 효력과 원인이라는 세 주제 모두에서 이 결론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됩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슬기로운 사람의 도박 셈이 원인이라는 주제로 마지막으로 펼쳐집니다.
묵상
바른 견해가 자신을 높이는 대신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 저 세상과 행위의 효력과 원인이라는 세 번의 되풀이를 통해 이제 뚜렷해졌나요? 오늘 그 가운데 하나를 실제로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장자들이여, 거기서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살피느니라.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니라.
원인이 없다는 그 말이 설령 진실이라 하여도,
이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이미 슬기로운 이들에게 칭찬받으니
계행이 좋고 원인을 주장하는 바른 견해를 지녔다는 것이니라.’
Tatra, gahapatayo,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sace kho atthi hetu, evamayaṁ bhavaṁ purisapuggalo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issati. Kāmaṁ kho pana māhu hetu, hotu nesaṁ bhavataṁ samaṇabrāhmaṇānaṁ saccaṁ vacanaṁ; atha ca panāyaṁ bhavaṁ purisapuggalo diṭṭheva dhamme viññūnaṁ pāsaṁso—sīlavā purisapuggalo sammādiṭṭhi hetuvādo’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긍정하는 견해를 택했을 때의 결과가 앞의 부정적 사이클과 정확히 대칭을 이루며 제시됩니다. 원인이 있다면 좋은 곳에 태어나고, 없다 해도 지금 이 삶에서 이미 칭찬받는다는 것이니, 앞서 나온 손실의 논리가 여기서는 그대로 이익의 논리로 뒤집힙니다. 지금 이 삶에서의 칭찬과 죽은 뒤의 좋은 곳이라는 두 가지가 나란히 놓이는 것도 앞 대목과 정확히 대칭을 이룹니다. 다음 구절에서 이 이익이 양쪽 모두에서 확정되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원인이 있다고 믿는 것과 없다고 믿는 것 가운데, 지금 내 노력에 더 힘을 실어 주는 쪽은 어느 쪽인가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 믿음을 시험해 보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결과를 미리 정하지 않고 그저 지켜볼 수 있을까요?
만약 원인이 실제로 있다면 이 사람에게는
양쪽 모두에서 이기는 패가 되니,
곧 지금 여기에서 슬기로운 이들에게 칭찬받는 것과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니라.
이렇게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실천한 까닭에
양쪽 모두에 걸쳐 서서 능숙하지 못한 자리를 놓쳐 버리느니라.
Sace kho atthi hetu, evaṁ imassa bhoto purisapuggalassa ubhayattha kaṭaggaho— yañca diṭṭheva dhamme viññūnaṁ pāsaṁso, yañc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issati. Evamassāyaṁ apaṇṇako dhammo susamatto samādinno, ubhayaṁsaṁ pharitvā tiṭṭhati, riñcati akusalaṁ ṭhāna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원인이 실제로 있을 경우까지 확정되며 셋째 주제인 원인에 관한 사이클이 마무리됩니다. 지금까지 세 가지 주제, 곧 내세와 행위의 효력과 원인이 모두 같은 다섯 마디 구조로 다루어졌다는 것이 이로써 완전히 확인됩니다. 다음 대목부터는 형상 없는 경지와 존재의 소멸이라는 나머지 두 주제로 넘어가는데, 그 논증 방식은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띠기 시작합니다.
묵상
세 번이나 되풀이된 이 도박의 셈을 지금 나의 어떤 고민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손해가 없는 자리를 오늘 하나 찾아본다면 무엇이 보일까요? 그 자리를 찾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