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 없는 경지가 있다는 데 서다

형상 없는 경지가 있는지 없는지 몸소 알지 못해도, 판단을 미룬 채 손해 없는 길을 찾는 법을 밝힙니다.

장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바라문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으니 ‘형상 없는 경지는 어디에도 전혀 없다’라 하느니라.

Santi, gahapatayo,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tthi sabbaso āruppā’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확실한 가르침의 넷째 주제로, 명상 수행이 이를 수 있는 형상 없는 경지가 실제로 있는지를 다룹니다. 앞선 세 주제와 달리 이 주제는 도덕적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수행으로 도달하는 경지의 유무를 묻는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릅니다. 짧은 한 문장으로 된 이 견해는 뒤에 이어질 정반대 주장과 대구를 이루기 위한 발판이며, 두 주장 모두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확인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묵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경지나 상태가 정말 있는지 없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나요? 그 궁금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오늘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답을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장자들이여, 그 수행자·바라문들 가운데는 정반대로 주장하는 이들도 있어 이렇게 말하느니라. ‘형상 없는 경지는 어디에나 전혀 남김없이 있다’라 하느니라. 장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수행자·바라문들은 서로 정반대로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Tesaṁyeva kho, gahapatayo, samaṇabrāhmaṇānaṁ eke samaṇabrāhmaṇā ujuvipaccanīkavādā. Te evamāhaṁsu: ‘atthi sabbaso āruppā’ti. Taṁ kiṁ maññatha, gahapatayo, nanume samaṇabrāhmaṇā aññamaññassa ujuvipaccanīkavādā”ti? “Evaṁ, bhante”.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형상 없는 경지가 전혀 없다는 견해와 정반대로, 완전히 있다는 견해가 그대로 대구를 이루어 제시됩니다. 앞선 세 주제와 마찬가지로 두 극단이 정면으로 맞서고, 세존께서 다시 장자들에게 그 모순을 확인하십니다. 그런데 다음 구절부터는 앞의 세 주제와 전혀 다른 방식의 논증이 펼쳐지는데, 몸과 말과 뜻의 선행·악행이라는 틀 대신 슬기로운 사람의 정직한 인정에서 출발합니다. 이 전환은 형상 없는 경지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 한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두고 두 사람이 정반대로 단언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그럴 때 나는 어느 쪽 손을 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나요? 어느 쪽도 들지 않는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볼까요?

장자들이여, 거기서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살피느니라. ‘형상 없는 경지가 전혀 없다고 말하는 수행자·바라문들이 있으나 이는 내가 보지 못한 것이요, 형상 없는 경지가 남김없이 있다고 말하는 수행자·바라문들도 있으나 이 또한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알지도 보지도 못한 채 한쪽만을 붙들어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 말하는 것은 나에게 옳지 않으리라.’

“Tatra, gahapatayo,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tthi sabbaso āruppā’ti, idaṁ me adiṭṭhaṁ; y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tthi sabbaso āruppā’ti, idaṁ me aviditaṁ. Ahañceva kho pana ajānanto apassanto ekaṁsena ādāya vohareyya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na metaṁ assa patirūpa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앞선 세 주제와 달리, 여기서는 세존께서 몸과 말과 뜻의 선행·악행이라는 틀을 쓰지 않으십니다. 대신 슬기로운 사람이 자신이 보지도 알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논증이 시작됩니다. 겪어 보지 못한 것을 두고 어느 한쪽을 단정하지 않는 이 태도는, 앞서 다룬 세 주제의 확신에 찬 어조와 뚜렷이 대비되며, 정직한 모름이야말로 다음에 이어질 지혜로운 선택의 출발점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잘 모르는 것을 두고 성급하게 한쪽 편을 들었다가 뒤늦게 후회한 적이 있나요? 지금 판단을 미루어도 괜찮은 물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미루는 것도 하나의 성숙한 선택일 수 있어요.

‘형상 없는 경지가 전혀 없다고 말하는 수행자·바라문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나는 형상을 지니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신들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 확실한 자리가 될 것이요, 형상 없는 경지가 남김없이 있다고 말하는 수행자·바라문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나는 형상 없이 인식으로 이루어진 신들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 확실한 자리가 될 것이니라.’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tthi sabbaso āruppā’ti, sace tesaṁ bhavataṁ samaṇabrāhmaṇānaṁ saccaṁ vacanaṁ, ṭhānametaṁ vijjati— ye te devā rūpino manomayā, apaṇṇakaṁ me tatrūpapatti bhavissati. Ye pana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tthi sabbaso āruppā’ti, sace tesaṁ bhavataṁ samaṇabrāhmaṇānaṁ saccaṁ vacanaṁ, ṭhānametaṁ vijjati— ye te devā arūpino saññāmayā, apaṇṇakaṁ me tatrūpapatti bhavissa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판단을 유보한 슬기로운 사람이 그럼에도 자신에게 유리한 확실한 자리를 찾아냅니다. 어느 쪽 주장이 옳든, 그 주장을 따라 명상을 닦으면 그에 맞는 신들 가운데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견해를 두고 다투는 대신, 두 견해 모두에서 손해 보지 않는 실천을 택하는 이 경의 핵심 전략을 형상 없는 경지라는 주제에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앞선 세 주제의 도박 셈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지혜입니다.

묵상

어느 쪽이 맞는지 몰라도 두 경우 모두에 대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본 적이 있나요? 지금 확신이 서지 않는 일 앞에서, 그런 길이 있을지 한번 찾아볼 수 있을까요? 찾다 보면 뜻밖의 여유가 생길지도 몰라요.

형상을 이유로 몽둥이를 들고 칼을 들며 다투고 싸우고 언쟁하고 서로 헐뜯고 이간질하고 거짓말하는 일들이 보이나 형상 없는 곳에는 이런 일이 전혀 없느니라. 이렇게 살펴서 그는 오직 형상에 대한 싫어하여 떠남과 사라짐과 소멸을 향해 나아가느니라.

Dissanti kho pana rūpādhikaraṇaṁ 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ṁtuvaṁpesuññamusāvādā. ‘Natthi kho panetaṁ sabbaso arūpe’ti. So iti paṭisaṅkhāya rūpānaṁyev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형상 없는 경지를 둘러싼 논증의 마지막 매듭으로, 세존께서 형상과 다툼을 연결지으십니다. 몽둥이와 칼, 이간질과 거짓말이 모두 형상을 두고 벌어지는 일이라는 관찰은, 앞서 나온 판단 유보나 확실한 자리 찾기를 넘어 실제 수행의 방향, 곧 형상에서 멀어지는 쪽을 가리킵니다. 넷째 주제는 이렇게 도덕적 옳고 그름이 아니라 수행의 방향 제시로 마무리되며, 다음 대목에서 다섯째이자 마지막 주제인 존재의 소멸로 넘어갑니다.

묵상

가진 것이나 보이는 것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그런 다툼에서 한 걸음 물러나면 무엇이 더 잘 보일까요? 오늘 그 물러섬을 아주 잠깐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