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완전한 소멸이 있다는 데 서다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 있는지 없는지 몸소 알지 못해도, 그 견해가 마음을 탐욕 쪽으로 이끄는지 놓음 쪽으로 이끄는지로 가늠하는 법을 밝힙니다.

장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바라문들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으니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란 어디에도 전혀 없다’라 하느니라.

Santi, gahapatayo,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tthi sabbaso bhavanirodho’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확실한 가르침의 다섯째이자 마지막 주제로, 존재가 완전히 소멸하는 경지, 곧 열반이 실제로 있는지를 다룹니다. 앞선 형상 없는 경지와 마찬가지로 이 주제도 도덕적 선악이 아니라 수행이 이를 수 있는 경지의 유무를 묻습니다. 다음 구절에서 이와 정반대되는 주장이 이어지며, 이 경 전체의 마지막 사이클이 시작됩니다. 다섯 가지 주제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 이렇게 마지막 자리에 놓입니다.

묵상

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상태가 정말 있을지 궁금했던 적이 있나요? 그 물음을 지금 당장 풀지 못해도 괜찮다고 느껴 볼 수 있을까요? 풀리지 않은 채로 두어도 삶은 계속되고, 오늘 하루도 그 나름의 자리를 지닙니다.

장자들이여, 그 수행자·바라문들 가운데는 정반대로 주장하는 이들도 있어 이렇게 말하느니라.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란 어디에나 전혀 남김없이 있다’라 하느니라. 장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수행자·바라문들은 서로 정반대로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Tesaṁyeva kho, gahapatayo, samaṇabrāhmaṇānaṁ eke samaṇabrāhmaṇā ujuvipaccanīkavādā. Te evamāhaṁsu: ‘atthi sabbaso bhavanirodho’ti. Taṁ kiṁ maññatha, gahapatayo, nanume samaṇabrāhmaṇā aññamaññassa ujuvipaccanīkavādā”ti? “Evaṁ, bhante”.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존재의 소멸이 전혀 없다는 견해와 정반대로, 완전히 있다는 견해가 그대로 대구를 이루어 제시됩니다. 형상 없는 경지를 다룬 넷째 주제와 똑같은 틀로 두 극단이 맞서고, 세존께서 다시 확인을 구하십니다. 다음 대목에서도 넷째 주제와 같은 방식으로, 몸과 말과 뜻의 틀 대신 슬기로운 사람의 정직한 인정에서 논증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마지막 두 주제는 나란히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집니다.

묵상

완전한 소멸이나 궁극의 평화 같은 것을 두고, 있다 없다를 성급히 정하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그 물음을 열어 둔 채로 지내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열어 둔 채로도 지금 이 순간은 그대로 있습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살피느니라.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란 전혀 없다고 말하는 수행자·바라문들이 있으나 이는 내가 보지 못한 것이요,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란 남김없이 있다고 말하는 수행자·바라문들도 있으나 이 또한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알지도 보지도 못한 채 한쪽만을 붙들어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헛되다’라 말하는 것은 나에게 옳지 않으리라.’

“Tatra, gahapatayo,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tthi sabbaso bhavanirodho’ti, idaṁ me adiṭṭhaṁ; y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tthi sabbaso bhavanirodho’ti, idaṁ me aviditaṁ. Ahañceva kho pana ajānanto apassanto ekaṁsena ādāya vohareyya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na metaṁ assa patirūpaṁ.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형상 없는 경지를 다룰 때와 똑같이,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이 보지도 알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라는, 이 경에서 가장 근본적이라 할 물음 앞에서도 성급한 단정을 피하는 이 태도는 다섯 가지 주제 전체를 관통하는 이 경의 정신을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겪지 않은 것을 겪은 척하지 않는 이 정직함이 다음 구절의 확실한 셈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궁극의 물음 앞에서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정직한 태도로 느껴질 때가 있나요? 지금 나에게 그런 모름을 인정해도 괜찮은 물음이 있을까요? 인정한 뒤에 오는 마음의 여유도 함께 느껴 볼까요?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란 전혀 없다고 말하는 수행자·바라문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나는 형상 없이 인식으로 이루어진 신들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 확실한 자리가 될 것이요,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란 남김없이 있다고 말하는 수행자·바라문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나는 바로 이 삶에서 완전히 소멸에 들 것이니라.’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tthi sabbaso bhavanirodho’ti, sace tesaṁ bhavataṁ samaṇabrāhmaṇānaṁ saccaṁ vacanaṁ, ṭhānametaṁ vijjati— ye te devā arūpino saññāmayā apaṇṇakaṁ me tatrūpapatti bhavissati. Ye pana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tthi sabbaso bhavanirodho’ti, sace tesaṁ bhavataṁ samaṇabrāhmaṇānaṁ saccaṁ vacanaṁ, ṭhānametaṁ vijjati— yaṁ diṭṭheva dhamme parinibbāyissām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판단을 유보한 슬기로운 사람이 이번에도 자신에게 유리한 확실한 자리를 찾아냅니다. 소멸이 없다면 형상 없는 신들 가운데 태어나고, 있다면 이 삶에서 바로 완전한 소멸에 이른다는 것이니, 어느 쪽이든 손해가 없습니다. 앞선 형상 없는 경지의 논증과 같은 틀이지만, 이번에는 최종 목적지가 열반 그 자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며, 다음 구절에서 두 견해를 가늠하는 마지막 기준이 이어집니다.

묵상

어느 쪽이 진실이든 내가 나아갈 방향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그 사실이 지금 마음을 어떻게 편하게 해 줄까요? 오늘 그 편안함을 잠시 느껴 볼 수 있을까요? 서두르지 않아도 길은 이미 놓여 있어요.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란 전혀 없다고 말하는 수행자·바라문들의 그 견해는 탐욕과 속박과 즐김과 집착과 집착에 가까우며,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란 남김없이 있다고 말하는 수행자·바라문들의 그 견해는 탐욕 없음과 속박 없음과 즐기지 않음과 집착 없음과 집착 없음에 가까우니라. 이렇게 살펴서 그는 오직 존재에 대한 싫어하여 떠남과 사라짐과 소멸을 향해 나아가느니라.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natthi sabbaso bhavanirodho’ti, tesamayaṁ diṭṭhi sārāgāya santike, saṁyogāya santike, abhinandanāya santike, ajjhosānāya santike, upādānāya santike. Ye pana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atthi sabbaso bhavanirodho’ti, tesamayaṁ diṭṭhi asārāgāya santike, asaṁyogāya santike, anabhinandanāya santike, anajjhosānāya santike, anupādānāya santiketi. So iti paṭisaṅkhāya bhavānaṁyev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이 경의 마지막 논증으로, 세존께서 두 견해를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 견해가 마음을 어디로 이끄는지로 평가하십니다. 소멸을 부정하는 견해는 탐욕과 집착 쪽으로, 긍정하는 견해는 탐욕 없음과 집착 없음 쪽으로 기운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형상 없는 경지를 다룬 넷째 주제의 결론과 거의 같은 말로 존재 자체에 대한 싫어함과 소멸을 향한 나아감을 가리키며, 다섯 가지 주제 전체의 논증을 마무리 짓습니다.

묵상

어떤 믿음이 나를 더 붙잡는 쪽으로 이끄는지, 아니면 더 놓아주는 쪽으로 이끄는지 돌아본 적이 있나요?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생각 하나가 나를 어느 쪽으로 이끌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