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들이여, 세상에는 이 네 부류의 사람이 있어 존재하니 무엇이 넷인가?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이로서 자신을 괴롭히는 수행에 전념하며,
여기 어떤 사람은 남을 괴롭히는 이로서 남을 괴롭히는 수행에 전념하며,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는 이로서
자신과 남을 괴롭히는 수행에 전념하느니라.
Cattārome, gahapatayo, puggalā santo saṁvijjamānā lokasmiṁ. Katame cattār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attantapo hoti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parantapo hoti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attantapo ca hoti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parantapo c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확실한 가르침이 마무리된 뒤, 세존께서 화제를 바꾸어 세상에 있는 네 부류의 사람을 소개하십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이, 남을 괴롭히는 이, 둘 다 괴롭히는 이라는 세 부류가 먼저 제시되는데, 이는 앞선 다섯 주제의 견해 다툼과는 달리 실제 삶의 방식을 놓고 벌이는 분류입니다. 다음 구절에서 넷째 부류가 이어지며 네 갈래의 목록이 완성되고, 이어서 각 부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하나씩 풀이됩니다.
묵상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한 적이 있나요? 그 방식이 정말 필요했는지 오늘 한번 돌아볼 수 있을까요? 다른 길이 있었을지도 함께 생각해 볼까요?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도 괴롭히지 않고 남도 괴롭히지 않는 이로서
자신과 남을 괴롭히지 않는 데 전념하니,
그는 자신도 괴롭히지 않고 남도 괴롭히지 않아
지금 여기에서 바라는 것이 없고 꺼지고 서늘해져
행복을 경험하며 범천처럼 지내느니라.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nevattantapo hoti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ṁ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넷째이자 마지막 부류가 제시되며 네 사람의 목록이 완성됩니다. 앞의 세 부류가 모두 누군가를 괴롭히는 데 전념하는 것과 달리, 이 넷째 부류만이 아무도 괴롭히지 않으면서 지금 이 삶에서 이미 행복하다고 묘사됩니다. 바라는 것이 없고 꺼지고 서늘해진다는 표현은 열반을 가리키는 관용구로, 수행의 목표가 고행이나 억압이 아니라 이런 서늘한 평온임을 미리 보여 줍니다.
묵상
괴롭히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상태를 경험해 본 적이 있나요?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그 조건을 오늘 다시 마련해 볼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장자들이여, 그러면 자신을 괴롭히는 이로서 자신을 괴롭히는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이란 누구인가?
여기 어떤 사람은 옷을 입지 않고 관습을 따르지 않으며 손으로 핥아 먹는 등…
이렇게 여러 방식으로 몸을 태우고 괴롭히는 수행에 전념하며 지내니,
장자들이여, 이런 사람을 자신을 괴롭히는 이로서
자신을 괴롭히는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Katamo ca, gahapatayo, puggalo attantapo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acelako hoti muttācāro hatthāpalekhano …pe… iti evarūpaṁ anekavihitaṁ kāyassa ātāpanaparitāpanānuyogamanuyutto viharati. Ayaṁ vuccati, gahapatayo, puggalo attantapo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네 부류 가운데 첫째, 자신을 괴롭히는 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설명됩니다. 원문은 옷을 입지 않고 손으로 핥아 먹는 등 극단적인 고행의 목록을 '…뻬…'로 줄이는데, 이 목록은 다른 여러 경에 온전히 실려 있는 유명한 고행자의 모습입니다. 부처님 당시 실제로 있었던 여러 극단적 자기 고행의 관습을 가리키며, 이런 고행이 몸을 태우고 괴롭히는 데 그친다고 짧게 정리됩니다.
묵상
몸을 힘들게 하는 것이 마음을 맑게 하는 길이라 여긴 적이 있나요? 그 둘이 정말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지 오늘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몸과 마음을 다르게 대하는 길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볼까요?
장자들이여, 그러면 남을 괴롭히는 이로서 남을 괴롭히는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이란 누구인가?
여기 어떤 사람은 양 잡는 자, 돼지 잡는 자…
또는 그 밖에 어떤 잔인한 생업에 종사하는 자이니,
장자들이여, 이런 사람을 남을 괴롭히는 이로서
남을 괴롭히는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Katamo ca, gahapatayo, puggalo parantapo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orabbhiko hoti sūkariko …pe… ye vā panaññepi keci kurūrakammantā. Ayaṁ vuccati, gahapatayo, puggalo parantapo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둘째 부류인 남을 괴롭히는 이가 설명되는데, 앞서 자신을 괴롭히는 고행자와 달리 이번에는 생업 자체가 다른 생명을 해치는 일인 사람들을 예로 듭니다. 양이나 돼지를 잡는 일부터 그 밖의 잔인한 생업까지 원문은 목록의 앞뒤만 남기고 가운데를 줄였습니다. 수행이 아니라 직업이 이 부류를 정의한다는 점이 첫째 부류와 다른 점이며, 셋째 부류에서는 이 둘이 한 사람 안에서 겹칩니다.
묵상
누군가를 해치는 일이 생계와 얽혀 있을 때, 그 일을 그만두기가 왜 더 어려울까요? 지금 내가 하는 일 가운데 다시 살펴보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작은 부분부터 바꾸어 볼 수 있을까요?
장자들이여, 그러면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는 이로서
자신과 남을 괴롭히는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이란 누구인가?
여기 어떤 사람은 관정을 받은 끄샤뜨리야 왕이나…
그 종들과 심부름꾼과 일꾼들은 매와 두려움에 시달려
눈물 젖은 얼굴로 울면서 일을 하니,
장자들이여, 이런 사람을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는 이라 하느니라.
Katamo ca, gahapatayo, puggalo attantapo ca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parantapo c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rājā vā hoti khattiyo muddhāvasitto …pe… tepi daṇḍatajjitā bhayatajjitā assumukhā rudamānā parikammāni karonti. Ayaṁ vuccati, gahapatayo, puggalo attantapo ca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parantapo c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셋째 부류로 제시되는 인물은 다름 아닌 왕입니다. 자신은 제사를 위해 스스로 고행에 가까운 절제를 행하면서, 동시에 그 제사를 준비하는 종들과 일꾼들을 매와 두려움으로 몰아붙여 눈물로 일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기 고행과 타인 학대가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이 모습은 종교적 헌신이 다른 이의 고통을 가릴 수 있음을 보여 주며, 지위가 높을수록 그 그늘도 커질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묵상
누군가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 주변 사람에게는 가혹했던 경우를 본 적이 있나요? 그 둘이 실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느껴지나요? 그 뿌리가 무엇일지 오늘 한번 짚어 볼 수 있을까요?
장자들이여, 그러면 자신도 괴롭히지 않고 남도 괴롭히지도 않는 이로서
자신과 남을 괴롭히지 않는 데 전념하여
지금 여기에서 바라는 것이 없고 꺼지고 서늘해져
행복을 경험하며 범천처럼 지내는 사람이란 누구인가?
Katamo ca, gahapatayo, puggalo nevattantapo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ṁ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앞선 세 부류와 똑같은 질문 형식으로, 이번에는 넷째 부류인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앞의 세 부류처럼 짧게 끝나지 않고, 다음 대목에서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 계행을 갖추고 선정을 닦아 마침내 번뇌를 다하기까지의 온 과정으로 길게 펼쳐집니다. 이는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 삶이 그만큼 온전한 수행의 결실임을 보여 주며, 이 경의 마지막 큰 단락으로 이어지는 문턱이 됩니다.
묵상
괴롭히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삶이 있다면, 그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 내가 그런 삶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일까요? 거창한 결심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하나만 떠올려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