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들이여, 이 넷째 사람이란 누구인가?
여기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
아라한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이 되느니라…
Idha, gahapatayo, tathāgato loke uppajjati arahaṁ sammāsambuddho … pe…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넷째 부류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이 마침내 시작됩니다. 원문은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신다는 짧은 문장 뒤에 '…뻬…'라는 생략 표시를 두어, 가르침을 들은 이가 믿음을 얻어 출가하고 계행과 감각의 단속과 절제된 식사와 깨어 있음과 알아차림과 홀로 있음을 차례로 갖추는 긴 이야기 전체를 건너뜁니다. 이 정형구는 여러 경에서 이미 자세히 설해진 것이라 여기서는 도착점만 가리키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묵상
긴 이야기를 다 듣지 않아도 그 결말을 짐작할 수 있을 때가 있나요? 지금 내가 이미 알고 있어서 굳이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생략이 오히려 신뢰의 표시일 수 있어요.
그는 마음을 오염시키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이 다섯 장애를 버리고,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것들에서 벗어나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며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무느니라.
생각의 일으킴과 이어 감이 가라앉아 … 두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물고,
희열이 사그라들어 … 세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물며,
행복도 버리고 … 네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무느니라.
so ime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pe… tatiyaṁ jhānaṁ …pe…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생략된 긴 이야기 끝에 이야기가 다시 이어져, 다섯 장애를 버린 마음이 네 단계의 선정으로 깊어지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문구는 가나까 목갈라나경(MN 107)을 비롯한 여러 경에서 이미 살펴본 것과 같은 표준 정형구로, 원문 역시 첫 번째 선정만 온전히 풀어 쓰고 나머지는 '…뻬…'와 '…'로 도착점만 표시합니다. 생각이 가라앉고 기쁨이 사그라들고 마침내 행복마저 내려놓는 이 흐름이 다음 대목의 세 가지 밝은 앎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됩니다.
묵상
생각이 가라앉고 기쁨이 사그라들고 마침내 행복마저 내려놓는 흐름을 실제로 겪어 본 적이 있나요? 그 흐름이 잃음이 아니라 더 깊어짐이라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오늘 그 결을 잠깐이라도 느껴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이렇게 삼매에 든 마음이 깨끗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쉽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게 되었을 때,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니,
한 생, 두 생…이렇게 모습과 자세한 내용을 갖추어
여러 지난 삶을 기억하느니라.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pe…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선정을 마친 마음이 세 가지 밝은 앎 가운데 첫째로 나아가는 대목입니다. 깨끗하고 밝고 흠 없다는 여덟 가지 수식어로 삼매에 든 마음의 상태를 그린 뒤, 그 마음을 지난 삶에 대한 기억으로 돌립니다. 한 생, 두 생으로 시작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까지 이어지는 이 기억은 원문에서 '…뻬…'로 줄여져 있으며, 다음 구절에서는 둘째 밝은 앎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지금의 나를 만든 오래전 경험 하나를 떠올려 본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그 기억이 지금 나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요? 붙잡지 않고 그저 살펴보는 마음으로 대해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이렇게 삼매에 든 마음으로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니,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어 가고 태어나는 것을 보아
천하고 고귀하며 아름답고 추하며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
업에 따라 나아가는 중생들을 그대로 아느니라.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ṁ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p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둘째 밝은 앎으로, 신성한 눈을 통해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앎입니다. 좋고 나쁨, 아름답고 추함 같은 여러 대비를 나열한 뒤 원문은 '…뻬…'로 나머지를 줄이고, 결론으로 중생이 자신의 업에 따라 나아간다는 것을 안다고 맺습니다. 이는 앞서 다섯째 주제, 곧 존재의 소멸에서 판단을 유보했던 물음에 대해 이제 직접 본 자만이 답할 수 있음을 보여 주며, 다음 구절에서 셋째이자 마지막 밝은 앎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앞으로의 나에게 어떤 씨앗이 될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그 상상이 오늘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씨앗 하나를 오늘 다르게 심어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이렇게 삼매에 든 마음으로
번뇌를 다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니,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를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아느니라.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pe…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셋째이자 마지막 밝은 앎으로, 네 가지 진리의 정형구가 괴로움에 대해서도 번뇌에 대해서도 각각 되풀이됩니다. 원문은 이 잘 알려진 정형구를 '…뻬…'로 크게 줄이는데, 이는 사성제가 다른 여러 경에서 이미 자세히 설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앎이야말로 확실한 가르침 전체가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지점이며, 다음 구절에서 이 앎이 실제로 낳는 결실, 곧 해탈이 이어집니다.
묵상
괴로움의 원인을 있는 그대로 본 순간이 있었다면, 그 봄이 무엇을 바꾸어 놓았나요? 지금 내가 있는 그대로 보고 싶은 것 하나는 무엇인가요?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이루어질 수 있어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에게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고,
존재하려는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고, 무명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니,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있어
‘태어남은 다하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을 다 마쳐 다시는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라고 아느니라.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번뇌가 다하는 앎의 결실이 마침내 완성됩니다. 감각적 욕망·존재하려는 갈망·무명이라는 세 가지 번뇌에서 마음이 풀려나고, 풀려났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이 마지막 앎이 곧 아라한과입니다. 확실한 가르침의 다섯 주제, 네 부류의 사람, 점진적인 길이라는 이 경의 모든 논증이 이 한 문장으로 수렴되니, 다음 구절에서 이 사람이 마침내 넷째 부류로 불리는 것으로 이 긴 대답이 마무리됩니다.
묵상
완전히 자유로워진 순간을 직접 알아차린 경험이 있나요? 크든 작든, 무언가에서 풀려났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던 때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 앎이 어떻게 왔는지도 함께 살펴볼까요?
장자들이여, 이런 사람을 자신도 괴롭히지 않고 남도 괴롭히지 않는 이로서
자신과 남을 괴롭히지 않는 데 전념하여
지금 여기에서 바라는 것이 없고 꺼지고 서늘해져
행복을 경험하며 범천처럼 지내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Ayaṁ vuccati, gahapatayo, puggalo nevattantapo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ṁ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60 확실한 가르침경 (Apaṇṇakasutta) 배경
네 부류의 사람 가운데 마지막,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 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이 마무리됩니다. 이 정의는 앞서 예고되었던 문장 그대로 되풀이되는데, 그 사이에 들어선 계행부터 번뇌의 소멸까지 이르는 온 여정이 이 짧은 결론의 실제 내용임이 이제 밝혀집니다. 짧게 예고되었던 말과 그 사이를 채운 긴 여정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 경 전체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다음 대목에서 장자들이 이 모든 가르침에 응답하며 경이 마무리됩니다.
묵상
긴 여정 끝에 처음 들었던 말이 다르게 다가온 경험이 있나요? 오늘 이 이야기를 듣기 전과 후, 나에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변화를 말로 옮겨 보면 어떤 문장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