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견해를 저울에 달다

모든 것이 좋다는 견해, 아무것도 안 좋다는 견해, 절충하는 견해를 차례로 평가합니다.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나는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Santaggivessan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bbaṁ me khamatī’ti; santaggivessan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bbaṁ me nakkhamatī’ti; santaggivessan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ekaccaṁ me khamati, ekaccaṁ me nakkham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부처님은 사람들이 내세우는 생각을 셋으로 나누어 살피기 시작합니다. 모두 받아들이는 생각,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생각, 일부만 받아들이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수행자는 부처님의 제자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당시 여러 가르침을 따르며 살던 수행자들과 바라문들이 대화의 대상입니다. 같은 문장을 세 번 되풀이하는 까닭은 세 입장을 같은 자리에 놓고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하나를 미리 정답으로 고르지 않고, 각각이 마음의 얽매임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이어서 살펴봅니다.

묵상

이 세 말 가운데 지금의 내 생각과 가장 가까운 말이 있나요? 꼭 하나를 고를 필요는 없어요. 서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무엇을 받아들일 만하다고 느끼는지, 최근에 있었던 한 장면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나는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그것은 탐냄에 가깝고, 얽매임에 가깝고, 즐거워함에 가깝고, 매달림에 가깝고, 붙잡고 놓지 않는 마음(우빠다나)에 가깝다.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탐냄에서 멀고, 얽매임에서 멀고, 즐거워함에서 멀고, 매달림에서 멀고, 붙잡고 놓지 않는 마음에서 멀다.”

Tatraggivessan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bbaṁ me khamatī’ti tesamayaṁ diṭṭhi sārāgāya santike, saññogāya santike, abhinandanāya santike, ajjhosānāya santike, upādānāya santike; tatraggivessan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bbaṁ me nakkhamatī’ti tesamayaṁ diṭṭhi asārāgāya santike, asaññogāya santike, anabhinandanāya santike, anajjhosānāya santike, anupādānāya santike”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앞에서 나눈 세 생각 가운데 처음 두 가지를 견주는 대목입니다.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생각에는 탐냄과 얽매임이 가깝고,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생각은 그 반대쪽에 놓입니다. 무엇을 즐기고 거기에 매달리며 끝내 놓지 않으려 하는지, 다섯 표현이 마음의 여러 모습을 짚습니다. 다만 어떤 생각이 탐내는 마음에서 멀다는 것과, 그 생각을 끝까지 고집해도 좋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이 차이가 뒤의 대화에서 드러납니다. 먼저 디가나카는 지금의 설명을 자기 생각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입니다.

묵상

누군가 내 생각의 좋은 점을 짚어 주면 그 생각을 더 꼭 붙들게 되기도 해요. 최근에 들은 말 가운데 그런 말이 있었나요? 그 말이 내 생각 전체를 인정한 것인지, 한 부분을 짚어 준 것인지 천천히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이 말을 듣고,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하던 디가나카가 부처님께 말했다. “고따마님은 제 생각을 칭찬해 주십니다. 고따마님은 제 생각을 크게 칭찬해 주십니다.”

Evaṁ vutte, dīghanakho paribbājako bhagavantaṁ etadavoca: “ukkaṁseti me bhavaṁ gotamo diṭṭhigataṁ, samukkaṁseti me bhavaṁ gotamo diṭṭhigatan”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디가나카는 자신의 생각이 탐내거나 매달리는 마음에서 멀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이 자기 생각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합니다. 같은 말을 거듭하며 두 번째에는 뜻을 더 강하게 드러냅니다. 앞의 설명이 각 생각과 얽매임 사이의 거리를 짚었다면, 디가나카의 대답은 그 가운데 자신의 생각으로 초점을 좁힙니다. 부처님은 여기서 대화를 끝내지 않고 세 번째 생각으로 설명을 이어 갑니다. 그 뒤에는 셋 가운데 어떤 생각을 굳게 붙들더라도 나머지 두 사람과 다투게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대화를 듣다가 ‘내 생각이 맞다는 말이구나’ 하고 반가웠던 순간이 있나요? 그때 상대가 이어서 한 말도 기억나나요? 지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면, 반가웠던 한마디와 그 뒤의 말을 함께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쪽의 생각은 탐냄에 가깝고, 얽매임에 가깝고, 즐거워함에 가깝고, 매달림에 가깝고, 붙잡고 놓지 않는 마음에 가깝다.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쪽의 생각은 탐냄에서 멀고, 얽매임에서 멀고, 즐거워함에서 멀고, 매달림에서 멀고, 붙잡고 놓지 않는 마음에서 멀다.”

“Tatraggivessan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ekaccaṁ me khamati, ekaccaṁ me nakkhamatī’ti. Yā hi tesaṁ khamati sāyaṁ diṭṭhi sārāgāya santike, saññogāya santike, abhinandanāya santike, ajjhosānāya santike, upādānāya santike; yā hi tesaṁ nakkhamati sāyaṁ diṭṭhi asārāgāya santike, asaññogāya santike, anabhinandanāya santike, anajjhosānāya santike, anupādānāya santike.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디가나카의 말에 이어, 부처님은 아직 살피지 않은 세 번째 생각을 다룹니다.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받아들이는 쪽과 받아들이지 않는 쪽을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양쪽에 같은 다섯 항목을 적용하므로, 일부만 받아들이는 생각이 저절로 얽매임을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대목이 앞의 세 생각을 모두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에는 세 생각 각각을 굳게 붙들었을 때 어떤 다툼이 생기는지로 물음이 옮겨 갑니다.

묵상

한 생각에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함께 있을 때가 있지요.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어느 부분에서 마음이 가까워지고 어느 부분에서 멀어지는지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당장 옳고 그름을 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