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74

인용된 가르침 24구절

이 경을 6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 3구절

유행자 디가나카가 회의적인 선언을 내놓고, 세존이 그 자기모순을 되묻습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에 있는 멧돼지굴에 머무셨다.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하던 디가나카가 부처님을 찾아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눈 뒤,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말했다. “고따마님, 제 생각(딧티)은 이렇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rājagahe viharati gijjhakūṭe pabbate sūkarakhatāyaṁ. Atha kho dīghanakho paribbājak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o kho dīghanakho paribbājako bhagavantaṁ etadavoca: “ahañhi, bho gotama, evaṁvādī evaṁdiṭṭhi: ‘sabbaṁ me nakkham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디가나카가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서 대화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받아들인다’는 말은 음식이나 경치가 마음에 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엇을 옳다고 여기고 따를 수 있는지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디가나카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그 말 자체도 그가 내세운 하나의 생각입니다. 이어지는 물음은 바로 이 생각에도 같은 태도를 적용하는지 살핍니다. 처음부터 그를 틀린 사람으로 정해 놓기보다, 자신이 한 말과 그 말을 붙드는 태도를 함께 들여다보는 흐름입니다.

묵상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에서 눈에 들어오는 낱말이 있나요? 혹시 최근에 ‘다’, ‘아무것도’, ‘언제나’처럼 범위를 넓혀 말한 적이 있다면, 그때 정말 그만큼 넓은 뜻으로 말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악기웨사나여,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그 생각도 그대는 받아들이지 않는가?” “고따마님, 제가 이 생각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Yāpi kho te esā, aggivessana, diṭṭhi: ‘sabbaṁ me nakkhamatī’ti, esāpi te diṭṭhi nakkhamatī”ti? “Esā ce me, bho gotama, diṭṭhi khameyya, taṁpassa tādisameva, taṁpassa tādisamevā”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부처님은 디가나카를 악기웨사나라고 부르며 그의 말에 되묻습니다.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는지 묻는 것입니다. 디가나카는 그 생각을 받아들여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두 번 답합니다. 이제 물음은 세상에 옳은 생각이 있는지에서, 자신이 내세운 생각을 어떻게 대하는지로 옮겨 갑니다. 어떤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 말만은 붙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같은 대답을 한 뒤에도 생각을 계속 붙드는 사람과 실제로 놓는 사람을 나누어 살핍니다.

묵상

자신이 한 말을 다시 되돌려 받으면 바로 답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최근에 그런 물음을 들은 적이 있나요? 있다면 지금은 답을 정하려 하지 않고, 그 물음이 내 말의 어느 부분을 짚었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악기웨사나여,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아주 많다. ‘달라질 것은 없다.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생각은 버리지 않고 다른 생각까지 붙잡는다. 악기웨사나여, 이런 사람은 세상에 아주 드물다. ‘달라질 것은 없다.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한 뒤, 자기 생각을 버리고 다른 생각도 붙잡지 않는다.”

“Ato kho te, aggivessana, bahū hi bahutarā lokasmiṁ ye evamāhaṁsu: ‘taṁpassa tādisameva, taṁpassa tādisamevā’ti. Te tañceva diṭṭhiṁ nappajahanti aññañca diṭṭhiṁ upādiyanti. Ato kho te, aggivessana, tanū hi tanutarā lokasmiṁ ye evamāhaṁsu: ‘taṁpassa tādisameva, taṁpassa tādisamevā’ti. Te tañceva diṭṭhiṁ pajahanti aññañca diṭṭhiṁ na upādiyan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바로 앞에서 디가나카가 한 대답을 받아, 말 이후에 무엇이 달라지는지 살피는 대목입니다. 두 경우에 나오는 대답은 같습니다. 차이는 자기 생각을 계속 붙드는지, 그것을 놓고도 또 다른 생각을 붙잡지는 않는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놓는다는 말은 한 생각을 더 마음에 드는 생각으로 바꾸는 일과 다릅니다. 경문은 같은 대답과 부름말을 두 차례 되풀이해 두 태도를 나란히 보여 줍니다. 다음에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생각 세 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핍니다.

묵상

생각을 바꿨다고 말하면서도 예전 생각을 놓지 못한 때가 있었나요? 있다면 당시의 결론을 다시 판정하기보다, 어떤 말을 들을 때 그 생각을 더 꼭 붙들게 되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떠오르는 일이 없어도 괜찮아요.

2 세 가지 견해를 저울에 달다 4구절

모든 것이 좋다는 견해, 아무것도 안 좋다는 견해, 절충하는 견해를 차례로 평가합니다.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나는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Santaggivessan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bbaṁ me khamatī’ti; santaggivessan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bbaṁ me nakkhamatī’ti; santaggivessana,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ekaccaṁ me khamati, ekaccaṁ me nakkham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부처님은 사람들이 내세우는 생각을 셋으로 나누어 살피기 시작합니다. 모두 받아들이는 생각,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생각, 일부만 받아들이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수행자는 부처님의 제자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당시 여러 가르침을 따르며 살던 수행자들과 바라문들이 대화의 대상입니다. 같은 문장을 세 번 되풀이하는 까닭은 세 입장을 같은 자리에 놓고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하나를 미리 정답으로 고르지 않고, 각각이 마음의 얽매임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이어서 살펴봅니다.

묵상

이 세 말 가운데 지금의 내 생각과 가장 가까운 말이 있나요? 꼭 하나를 고를 필요는 없어요. 서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무엇을 받아들일 만하다고 느끼는지, 최근에 있었던 한 장면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나는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그것은 탐냄에 가깝고, 얽매임에 가깝고, 즐거워함에 가깝고, 매달림에 가깝고, 붙잡고 놓지 않는 마음(우빠다나)에 가깝다.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탐냄에서 멀고, 얽매임에서 멀고, 즐거워함에서 멀고, 매달림에서 멀고, 붙잡고 놓지 않는 마음에서 멀다.”

Tatraggivessan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bbaṁ me khamatī’ti tesamayaṁ diṭṭhi sārāgāya santike, saññogāya santike, abhinandanāya santike, ajjhosānāya santike, upādānāya santike; tatraggivessan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bbaṁ me nakkhamatī’ti tesamayaṁ diṭṭhi asārāgāya santike, asaññogāya santike, anabhinandanāya santike, anajjhosānāya santike, anupādānāya santike”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앞에서 나눈 세 생각 가운데 처음 두 가지를 견주는 대목입니다.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생각에는 탐냄과 얽매임이 가깝고,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생각은 그 반대쪽에 놓입니다. 무엇을 즐기고 거기에 매달리며 끝내 놓지 않으려 하는지, 다섯 표현이 마음의 여러 모습을 짚습니다. 다만 어떤 생각이 탐내는 마음에서 멀다는 것과, 그 생각을 끝까지 고집해도 좋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이 차이가 뒤의 대화에서 드러납니다. 먼저 디가나카는 지금의 설명을 자기 생각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입니다.

묵상

누군가 내 생각의 좋은 점을 짚어 주면 그 생각을 더 꼭 붙들게 되기도 해요. 최근에 들은 말 가운데 그런 말이 있었나요? 그 말이 내 생각 전체를 인정한 것인지, 한 부분을 짚어 준 것인지 천천히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이 말을 듣고,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하던 디가나카가 부처님께 말했다. “고따마님은 제 생각을 칭찬해 주십니다. 고따마님은 제 생각을 크게 칭찬해 주십니다.”

Evaṁ vutte, dīghanakho paribbājako bhagavantaṁ etadavoca: “ukkaṁseti me bhavaṁ gotamo diṭṭhigataṁ, samukkaṁseti me bhavaṁ gotamo diṭṭhigatan”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디가나카는 자신의 생각이 탐내거나 매달리는 마음에서 멀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이 자기 생각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합니다. 같은 말을 거듭하며 두 번째에는 뜻을 더 강하게 드러냅니다. 앞의 설명이 각 생각과 얽매임 사이의 거리를 짚었다면, 디가나카의 대답은 그 가운데 자신의 생각으로 초점을 좁힙니다. 부처님은 여기서 대화를 끝내지 않고 세 번째 생각으로 설명을 이어 갑니다. 그 뒤에는 셋 가운데 어떤 생각을 굳게 붙들더라도 나머지 두 사람과 다투게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대화를 듣다가 ‘내 생각이 맞다는 말이구나’ 하고 반가웠던 순간이 있나요? 그때 상대가 이어서 한 말도 기억나나요? 지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면, 반가웠던 한마디와 그 뒤의 말을 함께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쪽의 생각은 탐냄에 가깝고, 얽매임에 가깝고, 즐거워함에 가깝고, 매달림에 가깝고, 붙잡고 놓지 않는 마음에 가깝다.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쪽의 생각은 탐냄에서 멀고, 얽매임에서 멀고, 즐거워함에서 멀고, 매달림에서 멀고, 붙잡고 놓지 않는 마음에서 멀다.”

“Tatraggivessan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ekaccaṁ me khamati, ekaccaṁ me nakkhamatī’ti. Yā hi tesaṁ khamati sāyaṁ diṭṭhi sārāgāya santike, saññogāya santike, abhinandanāya santike, ajjhosānāya santike, upādānāya santike; yā hi tesaṁ nakkhamati sāyaṁ diṭṭhi asārāgāya santike, asaññogāya santike, anabhinandanāya santike, anajjhosānāya santike, anupādānāya santike.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디가나카의 말에 이어, 부처님은 아직 살피지 않은 세 번째 생각을 다룹니다.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받아들이는 쪽과 받아들이지 않는 쪽을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양쪽에 같은 다섯 항목을 적용하므로, 일부만 받아들이는 생각이 저절로 얽매임을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대목이 앞의 세 생각을 모두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에는 세 생각 각각을 굳게 붙들었을 때 어떤 다툼이 생기는지로 물음이 옮겨 갑니다.

묵상

한 생각에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함께 있을 때가 있지요.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어느 부분에서 마음이 가까워지고 어느 부분에서 멀어지는지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당장 옳고 그름을 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3 우겨 붙들면 다툼이 인다 6구절

어느 견해든 굳게 붙들고 우기면 다른 두 견해와 다투게 되고, 다툼은 논쟁과 괴로움과 해침으로 번집니다.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나는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그들 가운데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돌아본다. ‘나는 무엇이든 받아들인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생각을 굳게 붙잡고, 이것만 옳고 나머지는 다 헛되다고 우긴다면 두 사람과 다투게 될 것이다.’”

Tatraggivessan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bbaṁ me khamatī’ti tattha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yā kho me ayaṁ diṭṭhi— sabbaṁ me khamatīti, imañce ahaṁ diṭṭhiṁ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eyya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dvīhi me assa viggaho—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세 생각을 마음의 얽매임과 견준 데 이어, 이번에는 그 생각을 굳게 붙들었을 때 생기는 일을 살핍니다. 먼저 무엇이든 받아들인다는 사람이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말하는 사람은 부처님이지만, 작은따옴표 안은 그 사람이 자기 마음을 살피는 말입니다. 여기서 가정하는 것은 단순히 생각을 갖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만 옳고 나머지는 모두 헛되다고 우기는 일입니다. 그때 누구와 부딪히게 되는지는 바로 다음 대목에서 밝혀집니다. 생각의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붙드는 태도도 살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묵상

‘이것만 옳다’는 말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최근에 내가 비슷하게 말한 순간이 떠오른다면, 그때 무엇을 꼭 지키고 싶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잘못을 찾아내려 하기보다 그 순간의 말 한마디를 돌아보아도 괜찮아요.

“‘한 사람은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수행자나 바라문이다. 다른 사람은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수행자나 바라문이다. 나는 둘과 다투게 된다. 다툼은 말싸움으로, 말싸움은 괴로움으로, 괴로움은 해침으로 이어진다.’ 그는 자신에게 생길 다툼과 말싸움, 괴로움과 해침을 보고 그 생각을 버린다. 다른 생각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 그 생각들을 버리고, 이렇게 그 생각들을 내려놓는다.”

yo cāyaṁ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ṁvādī evaṁdiṭṭhi—sabbaṁ me nakkhamatīti, yo cāyaṁ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ṁvādī evaṁdiṭṭhi—ekaccaṁ me khamati, ekaccaṁ me nakkhamatīti— imehi assa dvīhi viggaho. Iti viggahe sati vivādo, vivāde sati vighāto, vighāte sati vihesā’. Iti so viggahañca vivādañca vighātañca vihesañca attani sampassamāno tañceva diṭṭhiṁ pajahati aññañca diṭṭhiṁ na upādiyati. Evametāsaṁ diṭṭhīnaṁ pahānaṁ hoti, evametāsaṁ diṭṭhīnaṁ paṭinissagg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무엇이든 받아들인다는 사람이 누구와 부딪힐지 살피는 대목입니다. 상대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과 일부만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다툼은 말싸움으로, 말싸움은 괴로움으로, 괴로움은 해침으로 이어집니다. 경문은 그 흐름을 자신에게 비추어 본 뒤 생각을 놓는다고 말합니다. 남을 탓하며 더 강한 생각으로 맞서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생각을 새로 붙잡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어야 이 돌아봄이 매듭지어집니다. 같은 살핌이 남은 두 생각에도 이어집니다.

묵상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말의 내용보다 다투는 일 자체에 빠진 적이 있나요? 그때 대화가 달라지기 시작한 한마디가 기억나나요? 잘잘못을 가르기 전에, 그 한마디 뒤에 내 마음이 어땠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돌아본다.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생각을 굳게 붙잡고, 이것만 옳고 나머지는 다 헛되다고 우긴다면 두 사람과 다투게 될 것이다.’”

Tatraggivessan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sabbaṁ me nakkhamatī’ti tattha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yā kho me ayaṁ diṭṭhi— sabbaṁ me nakkhamatīti, imañce ahaṁ diṭṭhiṁ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eyya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dvīhi me assa viggaho—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이번에는 디가나카가 처음 내세운 생각을 같은 방식으로 살핍니다.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생각이 탐내는 마음에서 멀다고 했더라도, 그것을 유일하게 옳은 생각으로 붙들면 다툼은 남습니다. 앞의 사례에서 바뀐 것은 사람이 내세우는 생각입니다. 굳게 붙들고 우기는 조건과 두 사람에게 맞서게 된다는 결과는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이를 통해 첫 평가가 곧 이 생각을 끝까지 고집해도 좋다는 허락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그가 맞설 두 사람이 누구인지 나옵니다.

묵상

‘나는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아’라는 말이 필요했던 때가 있나요? 그때 상대의 말을 거절하는 것과 내 생각만 옳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어떻게 달랐나요? 떠오르는 한 대화에서 그 차이를 살펴볼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은 무엇이든 받아들인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수행자나 바라문이다. 또 한 사람은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수행자나 바라문이다. 나는 이 둘과 다투게 된다. 다툼은 말싸움으로, 말싸움은 괴로움으로, 괴로움은 해침으로 이어진다.’ 그는 자신에게 생길 다툼과 말싸움, 괴로움과 해침을 보고 그 생각을 버린다. 다른 생각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 그 생각들을 버리고, 이렇게 그 생각들을 내려놓는다.”

yo cāyaṁ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ṁvādī evaṁdiṭṭhi—sabbaṁ me khamatīti, yo cāyaṁ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ṁvādī evaṁdiṭṭhi—ekaccaṁ me khamati ekaccaṁ me nakkhamatīti— imehi assa dvīhi viggaho. Iti viggahe sati vivādo, vivāde sati vighāto, vighāte sati vihesā’. Iti so viggahañca vivādañca vighātañca vihesañca attani sampassamāno tañceva diṭṭhiṁ pajahati aññañca diṭṭhiṁ na upādiyati. Evametāsaṁ diṭṭhīnaṁ pahānaṁ hoti, evametāsaṁ diṭṭhīnaṁ paṭinissagg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의 돌아봄이 끝나는 대목입니다. 이번에 맞서는 상대는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사람과 일부만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상대는 바뀌어도 다툼에서 해침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앞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모두 거절하는 태도도, 그것을 굳게 붙들면 다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기서는 그 위험을 남에게서만 찾지 않고 자신에게 비추어 봅니다. 이어서 자기 생각을 버리고 다른 생각도 붙잡지 않는다는 같은 말로 마칩니다. 이것이 경 앞부분의 드문 사람에 대한 설명과 이어집니다.

묵상

누군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 사람과 계속 다투고 싶은 마음까지 함께 생긴 적이 있나요? 최근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면,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대화를 멈출 수 있었을지 조용히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악기웨사나여, 어떤 수행자와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나는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돌아본다. ‘나는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생각을 굳게 붙잡고, 이것만 옳고 나머지는 다 헛되다고 우긴다면 두 사람과 다투게 될 것이다.’”

Tatraggivessan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ṁvādino evaṁdiṭṭhino: ‘ekaccaṁ me khamati, ekaccaṁ me nakkhamatī’ti tattha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yā kho me ayaṁ diṭṭhi— ekaccaṁ me khamati, ekaccaṁ me nakkhamatīti, imañce ahaṁ diṭṭhiṁ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eyyaṁ—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dvīhi me assa viggaho—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일부는 받아들이고 일부는 받아들이지 않는 세 번째 생각도 살펴봅니다. 양쪽을 나누어 본다는 이유만으로 앞의 두 경우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생각만 옳다고 굳게 붙들면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과 맞서게 됩니다. 앞의 두 사례와 같은 돌아봄이 여기에서도 되풀이되는 까닭입니다. 셋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생각을 고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무엇을 골라도 거기에 매달릴 수 있음을 살핍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이 사람도 다툼이 자신에게 무엇을 가져올지 보고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묵상

여러 쪽의 말을 듣고 나름대로 가려 받아들인 생각이 있나요? 그 생각을 누군가 다르게 볼 때 어떤 말이 먼저 나오나요? 지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면, 설명하려는 마음과 꼭 이기려는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은 무엇이든 받아들인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수행자나 바라문이다. 또 한 사람은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수행자나 바라문이다. 나는 이 둘과 다투게 된다. 다툼은 말싸움으로, 말싸움은 괴로움으로, 괴로움은 해침으로 이어진다.’ 그는 자신에게 생길 다툼과 말싸움, 괴로움과 해침을 보고 그 생각을 버린다. 다른 생각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 그 생각들을 버리고, 이렇게 그 생각들을 내려놓는다.”

yo cāyaṁ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ṁvādī evaṁdiṭṭhi—sabbaṁ me khamatīti, yo cāyaṁ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ṁvādī evaṁdiṭṭhi—sabbaṁ me nakkhamatīti— imehi assa dvīhi viggaho. Iti viggahe sati vivādo, vivāde sati vighāto, vighāte sati vihesā’. Iti so viggahañca vivādañca vighātañca vihesañca attani sampassamāno tañceva diṭṭhiṁ pajahati aññañca diṭṭhiṁ na upādiyati. Evametāsaṁ diṭṭhīnaṁ pahānaṁ hoti, evametāsaṁ diṭṭhīnaṁ paṭinissagg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일부만 받아들이는 사람까지 살피면서 세 생각에 대한 검토가 끝납니다. 그 사람이 맞설 상대는 모두 받아들이는 사람과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상대는 달라져도 다툼에서 해침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같습니다. 생각을 버린 다음 다른 생각도 붙잡지 않는다는 맺음말 또한 되풀이됩니다. 이 반복은 어느 쪽이 이길지 고르는 자리에서 독자의 눈을 돌립니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붙들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살피게 합니다. 이어지는 대화에서는 몸과 느낌을 붙드는 마음으로 눈을 돌립니다.

묵상

양쪽 말을 다 듣고 판단했다고 느끼는 때에도 마음이 팽팽해질 수 있지요. 그런 대화가 떠오르나요? 내 판단을 설명하던 말 가운데 꼭 지켜야 한다고 느꼈던 한마디가 있다면, 지금 다시 읽을 때는 어떻게 들리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4 이 몸을 있는 그대로 2구절

몸을 열한 가지로 관찰하여 몸에 대한 욕망과 애착을 내려놓는 가르침입니다.

“악기웨사나여, 이 몸은 모습을 갖추고 네 가지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에게서 생겨나 밥과 죽으로 자랐다. 늘 변하며, 쓸리고 닳고, 부서지고 흩어지기 마련이다. 이 몸을 덧없이 변하는 것(아니짜), 괴로운 것, 병, 종기, 박힌 화살, 괴로움을 안기는 것, 아픔, 내 것이 아닌 것, 부서져 사라지는 것, 텅 빈 것, 나라고 할 수 없는 것(아낫따)으로 보아야 한다.”

Ayaṁ kho panaggivessana,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ṁsanadhammo, aniccato dukkhato rogato gaṇḍato sallato aghato ābādhato parato palokato suññato anattato samanupassitabbo.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생각을 붙들 때 생기는 다툼을 살핀 뒤, 이제 몸으로 눈을 돌립니다. 이 몸은 부모와 먹을거리에 기대어 생겨나고 자라며, 그대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네 가지 바탕은 몸을 이루는 흙·물·불·바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뒤의 열한 표현은 몸을 오래 붙들어 둘 수 있는 나로 여기는 태도를 살피게 합니다. 병이나 화살 같은 비유는 몸을 해치라는 지시가 아닙니다. 다음 대목은 이처럼 보는 일이 몸을 탐내고 거기에 매이는 마음을 놓는 데 이어진다고 밝힙니다.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묵상

몸이 조금 전과도 달라진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손의 온기나 앉은 자세처럼 지금 편하게 살필 수 있는 한 가지에서 그 변화를 느껴 볼 수 있을까요? 몸을 살피는 일이 부담스럽다면 이 대목은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어떤 사람이 이 몸을 덧없이 변하는 것, 괴로운 것, 병, 종기, 박힌 화살, 괴로움을 안기는 것, 아픔, 내 것이 아닌 것, 부서져 사라지는 것, 텅 빈 것, 나라고 할 수 없는 것으로 살펴본다. 그러면 그 사람은 몸을 탐내는 마음과 몸에 달라붙는 마음, 몸에 끌려다니는 마음을 놓게 된다.”

Tassimaṁ kāyaṁ aniccato dukkhato rogato gaṇḍato sallato aghato ābādhato parato palokato suññato anattato samanupassato yo kāyasmiṁ kāyachando kāyasneho kāyanvayatā sā pahīya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몸을 살피는 열한 표현이 앞 대목에 이어 다시 나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보았을 때 놓게 되는 마음으로 설명이 이어집니다. 몸을 탐내고 거기에 달라붙거나 끌려다니는 모습이 나란히 놓입니다. 몸이 부모와 먹을거리에 기대어 생겨났고 계속 변한다는 사실은, 그것을 오래 붙들 수 있는 나로 여기는 생각과 맞물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살핌은 몸을 바라보는 방식과 몸에 매이는 마음을 함께 돌아보게 합니다. 바로 뒤에서는 몸에 이어 즐겁고 괴롭고 어느 쪽도 아닌 느낌을 살핍니다.

묵상

몸을 돌봐야겠다는 마음과 몸이 늘 같아야 한다는 바람은 서로 어떻게 느껴지나요? 지금 편하게 떠올릴 수 있는 작은 바람이 있다면 살펴볼 수 있을까요? 두 마음이 잘 구별되지 않거나 오늘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괜찮아요.

5 세 가지 느낌, 그리고 놓아 버림 5구절

즐겁고 괴롭고 덤덤한 느낌이 모두 무상함을 보아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보입니다.

“악기웨사나여, 느낌(웨다나)은 세 가지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악기웨사나여,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에는 괴로운 느낌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느끼지 않는다. 그때에는 즐거운 느낌만 느낀다.”

Tisso kho imā, aggivessana, vedanā— sukhā vedanā, dukkhā vedanā, adukkhamasukhā vedanā. Yasmiṁ, aggivessana, samaye sukhaṁ vedanaṁ vedeti, neva tasmiṁ samaye dukkhaṁ vedanaṁ vedeti, na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eti; sukhaṁyeva tasmiṁ samaye vedanaṁ vede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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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한 설명에서 느낌으로 넘어가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느낌은 어떤 일을 두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 전체가 아니라, 즐겁거나 괴롭거나 어느 쪽도 아닌 느낌을 가리킵니다. 먼저 세 갈래를 밝히고 즐거운 느낌이 있을 때를 살핍니다. 같은 틀은 이어지는 괴로운 느낌과 어느 쪽도 아닌 느낌에도 적용됩니다. 복잡한 일상 감정을 단순한 틀에 억지로 맞추라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경의 흐름은 경험을 구별해 보고, 그 느낌이 계속 머무를 수 있는지 살피는 데로 이어집니다.

묵상

지금 손끝이나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감각 하나가 있나요? 그 느낌이 편안한지, 불편한지, 어느 쪽이라고 하기 어려운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전체 기분을 정리하려 하지 않고 한 느낌만 잠깐 알아보아도 괜찮아요.

“악기웨사나여,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에는 즐거운 느낌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느끼지 않는다. 그때에는 괴로운 느낌만 느낀다. 악기웨사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에는 즐거운 느낌도 괴로운 느낌도 느끼지 않는다. 그때에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만 느낀다.”

Yasmiṁ, aggivessana, samaye dukkhaṁ vedanaṁ vedeti, neva tasmiṁ samaye sukhaṁ vedanaṁ vedeti, na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eti; dukkhaṁyeva tasmiṁ samaye vedanaṁ vedeti. Yasmiṁ, aggivessana, samaye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eti, neva tasmiṁ samaye sukhaṁ vedanaṁ vedeti, na dukkhaṁ vedanaṁ vedeti; adukkhamasukhaṁyeva tasmiṁ samaye vedanaṁ ved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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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느낌을 살핀 데 이어 나머지 두 느낌을 같은 방식으로 살핍니다. 각각의 경우에 다른 두 느낌을 부정하고, 그때 느끼는 것을 다시 또렷하게 짚습니다. 이 되풀이를 통해 즐거운 느낌만 따로 고르지 않고 세 경우를 모두 살피게 됩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말은 아무 경험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느낌의 한 갈래입니다. 이 설명으로 독자가 실제로 겪는 복잡한 감정이 잘못됐다고 판정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세 느낌이 모두 변하고 사라진다는 점을 살핍니다.

묵상

특별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감각은 쉽게 지나치게 되지요. 지금 그런 감각이 한 가지 느껴지나요? 있다면 억지로 좋거나 나쁜 쪽에 넣지 않고 잠시 살펴볼 수 있을까요?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는 답도 괜찮아요.

“악기웨사나여, 즐거운 느낌도 늘 변한다. 조건이 빚어낸 것이며, 조건에 기대어 생겨난다. 다하고, 사라지고, 사그라들고, 멎기 마련이다. 악기웨사나여, 괴로운 느낌도 늘 변한다. 조건이 빚어낸 것이며, 조건에 기대어 생겨난다. 다하고, 사라지고, 사그라들고, 멎기 마련이다. 악기웨사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늘 변한다. 조건이 빚어낸 것이며, 조건에 기대어 생겨난다. 다하고, 사라지고, 사그라들고, 멎기 마련이다.”

Sukhāpi kho, aggivessana, vedan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dukkhāpi kho, aggivessana, vedan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adukkhamasukhāpi kho, aggivessana, vedan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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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느낌을 하나씩 구별한 뒤, 이번에는 셋이 모두 어떤 성질을 지니는지 살핍니다. 느낌은 혼자 생겨나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갖춰져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경문은 이 설명을 세 번 되풀이해 어느 느낌도 예외로 두지 않습니다. 즐거운 느낌이라고 오래 붙들 수 있는 것도, 괴로운 느낌이라고 영원히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 말로 지금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거나 곧 끝날 것이라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은 이 변화를 보고 느낌에 매인 마음이 어떻게 풀리는지 설명합니다.

묵상

조금 전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 사이에 작은 차이가 있나요? 이어지는 듯 보이는 느낌도 세기나 자리, 온기가 달라졌을 수 있어요. 지금 편하게 살필 수 있는 느낌 하나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악기웨사나여, 잘 배운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보고, 즐거운 느낌에서 마음이 떠나고, 괴로운 느낌에서 마음이 떠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서 마음이 떠난다. 마음이 떠나면 탐내는 마음이 가라앉고, 탐내는 마음이 가라앉으면 매임에서 풀려난다. 풀려나면 자신이 풀려났음을 안다. 그는 이렇게 안다. ‘태어남은 끝났다. 몸과 마음을 맑게 닦는 삶을 다 살았다. 해야 할 일을 마쳤다. 더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Evaṁ passaṁ, aggivessana, sutavā ariyasāvako sukhāyapi vedanāya nibbindati, dukkhāyapi vedanāya nibbindati, adukkhamasukhāyapi vedanāya nibbindati; nibbindaṁ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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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느낌이 모두 변하고 사라짐을 본 뒤, 그 느낌에 매인 마음이 풀리는 흐름입니다. ‘마음이 떠난다’는 말은 계속 붙들 만한 것으로 여기던 마음이 돌아선다는 뜻입니다. 즐거운 느낌만이 아니라 괴로운 느낌과 어느 쪽도 아닌 느낌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뒤에서는 탐내는 마음이 가라앉고, 풀려나며, 풀려났음을 아는 순서가 이어집니다. 마지막 네 문장은 잠깐 마음이 편해졌다는 말보다 훨씬 깊은 마침을 가리킵니다. 닦아야 할 삶을 다 살고 다시 태어남이 끝났음을 스스로 아는 대목입니다.

묵상

예전에는 계속 마음이 끌렸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작은 일이 있나요? 있다면 무엇을 억지로 밀어냈는지보다, 그 일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경험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악기웨사나여, 이렇게 마음이 풀려난 수행자는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 누구와도 말싸움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쓰는 말로 이야기하되, 그 말에 매달리지 않는다.”

Evaṁ vimuttacitto kho, aggivessana, bhikkhu na kenaci saṁvadati, na kenaci vivadati, yañca loke vuttaṁ tena voharati, aparāmasan”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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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설명을 맺는 대목입니다. 앞에서는 세 생각 가운데 하나를 붙들면 나머지 둘과 다투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마음이 풀려난 사람이 누구의 편을 들어 맞서지도, 누구와 말싸움을 벌이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쓰는 말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말은 쓰되 거기에 매달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핀 생각과 몸과 느낌은 서로 다른 대상이지만, 그것을 붙드는 마음을 놓는다는 흐름은 이어집니다. 이 맺음말 뒤에는 그 설명을 듣던 두 사람에게 일어난 변화가 나옵니다.

묵상

같은 말을 쓰더라도 그 말에 꼭 매달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대화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어요. 오늘 나눈 대화에서 굳이 누가 옳은지 가르지 않아도 말이 통했던 순간이 있나요? 그때 어떤 점이 편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6 부채를 부치던 사리뿟따 4구절

곁에서 듣기만 하던 사리뿟따가 해탈하고, 디가나카는 진리의 눈을 얻어 재가 신자가 됩니다.

그때 사리뿟따께서는 부처님 뒤에 서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하고 계셨다. 사리뿟따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이것들을 직접 알고서 버리라고 말씀하시는구나. 바른 길을 가신 분(수가따)은 우리에게 이것들을 직접 알고서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구나.’ 사리뿟따께서 이렇게 돌아보시는 동안, 아무것도 붙잡지 않아 마음을 더럽히는 것들(아사와)에서 그분의 마음이 풀려났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sāriputto bhagavato piṭṭhito ṭhito hoti bhagavantaṁ bījayamāno. Atha kho āyasmato sāriputtassa etadahosi: “tesaṁ tesaṁ kira no bhagavā dhammānaṁ abhiññā pahānamāha, tesaṁ tesaṁ kira no sugato dhammānaṁ abhiññā paṭinissaggamāhā”ti. Iti hidaṁ āyasmato sāriputtassa paṭisañcikkhato anupādāya āsavehi cittaṁ vimucc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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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뒤에서 부채질하며 말씀을 듣던 사리뿟따에게로 장면이 옮겨 갑니다. 그는 앞서 다룬 생각과 몸과 느낌을 돌아보며, 직접 알고 놓는다는 점을 되짚습니다. 부처님과 바른 길을 가신 분은 여기서 같은 분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호칭입니다. 두 속말은 알고 버리는 일과 알고 내려놓는 일을 거듭 짚습니다. 그 돌아봄은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붙잡지 않아 마음을 더럽히는 것들에서 마음이 풀려났다고 이어집니다. 다음에는 디가나카에게 일어난 변화가 나옵니다.

묵상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듣다가 내게도 필요한 말이라고 느낀 적이 있나요? 그 말에서 특히 남은 한 구절이 있나요? 지금 떠오른다면 왜 남았는지 답을 서두르기보다, 그 말을 들을 때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한편,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하던 디가나카에게는 티끌 없이 맑고 때 묻지 않은, 이치를 꿰뚫어 보는 눈(담마짝쿠)이 열렸다.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은 모두 사라지기 마련이다.’ 디가나카는 그 이치를 보고, 거기에 이르고, 분명히 알고, 깊이 꿰뚫었다. 의심을 건너고 망설임을 벗어나 자신감을 얻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남에게 기대지 않고 알게 된 그는 부처님께 말을 건넸다.

Dīghanakhassa pana paribbājakassa virajaṁ vītamalaṁ dhammacakkhuṁ udapādi: “yaṁ kiñci samudayadhammaṁ sabbaṁ taṁ nirodhadhamman”ti. Atha kho dīghanakho paribbājako diṭṭhadhammo pattadhammo viditadhammo pariyogāḷhadhammo tiṇṇavicikiccho vigatakathaṅkatho vesārajjappatto aparappaccayo satthusāsane bhagavantaṁ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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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뿟따의 마음이 풀려난 데 이어, 디가나카에게는 이치를 꿰뚫어 보는 눈이 열립니다. 그 눈으로 본 것은 생겨나는 모든 것이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어 보고, 이르고, 알고, 꿰뚫었다는 말이 거듭됩니다. 누군가의 말을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과 스스로 알아 의심을 건너는 것 사이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디가나카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을 알게 됩니다. 뒤이어 그는 자신의 말로 감사와 앞으로의 뜻을 밝힙니다.

묵상

남의 설명으로만 알다가 직접 겪고 조금 더 분명해진 일이 있나요? 그때 설명을 들을 때와는 무엇이 달랐나요? 큰 깨달음을 찾으려 하지 않고, 최근 일상에서 스스로 확인해 본 작은 일 하나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훌륭합니다, 고따마님. 훌륭합니다, 고따마님. 고따마님,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가려진 것을 드러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듯, 눈이 있는 이들이 사물을 보도록 어둠 속에 기름 등불을 들어 주듯, 고따마님은 여러모로 가르침을 밝혀 주셨습니다.”

“abhikkantaṁ, bho gotama, abhikkantaṁ, bho gotama.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ṁ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ṁ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ṁ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 kho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디가나카가 부처님의 설명에 감사하며 네 비유를 듭니다. 엎어진 것, 가려진 것, 길을 잃은 사람, 어둠 속에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서로 다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뒤집고 드러내고 길을 알려 주고 불을 밝히는 일은, 이전에 막혀 있던 것을 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어집니다. 눈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볼 수 없다는 마지막 비유가 이 뜻을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바로 앞에서 디가나카는 스스로 알아 의심을 건넜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는 그 앎에 이르도록 도운 가르침에 감사를 표합니다.

묵상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가려져 있던 것이 보이는 듯했던 적이 있나요? 그때 도움이 된 것은 새로운 사실이었나요, 익숙한 것을 다른 쪽에서 보여 준 말이었나요? 떠오르는 설명이 있다면 특히 잘 와닿았던 한마디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고따마님과 가르침, 수행자들의 모임(상가)을 의지할 곳으로 삼겠습니다. 고따마님,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들을 의지하며, 집에서 살면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으로 저를 받아 주십시오.”

Esāhaṁ bhavantaṁ gotam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Upāsakaṁ maṁ bhavaṁ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ṁ saraṇaṁ gatan”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디가나카는 부처님과 가르침, 수행자들의 모임을 의지할 곳으로 삼겠다고 밝히며 말을 마칩니다. 집을 떠나겠다고 청하는 대신, 집에서 살아가며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으로 받아 달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는 앞으로의 뜻을 스스로 밝히는 말입니다. 맨 처음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사람이 대화를 거쳐 이렇게 답하면서 경의 흐름이 매듭지어집니다. 앞에서 스스로 보고 알아 의심을 건넜다는 설명과 함께 읽으면, 무엇을 의지하겠다는 이 말에 앞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드러납니다.

묵상

누군가의 말이 믿을 만하다고 느껴, 작은 일부터 따라 해 본 적이 있나요? 무엇이 그 말을 믿게 했나요? 지금 의지할 곳을 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직접 살펴보고 선택한 한 가지가 있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