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웨사나여, 느낌(웨다나)은 세 가지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악기웨사나여,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에는 괴로운 느낌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느끼지 않는다. 그때에는 즐거운 느낌만 느낀다.”
Tisso kho imā, aggivessana, vedanā— sukhā vedanā, dukkhā vedanā, adukkhamasukhā vedanā. Yasmiṁ, aggivessana, samaye sukhaṁ vedanaṁ vedeti, neva tasmiṁ samaye dukkhaṁ vedanaṁ vedeti, na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eti; sukhaṁyeva tasmiṁ samaye vedanaṁ vede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몸에 대한 설명에서 느낌으로 넘어가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느낌은 어떤 일을 두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 전체가 아니라, 즐겁거나 괴롭거나 어느 쪽도 아닌 느낌을 가리킵니다. 먼저 세 갈래를 밝히고 즐거운 느낌이 있을 때를 살핍니다. 같은 틀은 이어지는 괴로운 느낌과 어느 쪽도 아닌 느낌에도 적용됩니다. 복잡한 일상 감정을 단순한 틀에 억지로 맞추라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경의 흐름은 경험을 구별해 보고, 그 느낌이 계속 머무를 수 있는지 살피는 데로 이어집니다.
묵상
지금 손끝이나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감각 하나가 있나요? 그 느낌이 편안한지, 불편한지, 어느 쪽이라고 하기 어려운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전체 기분을 정리하려 하지 않고 한 느낌만 잠깐 알아보아도 괜찮아요.
“악기웨사나여,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에는 즐거운 느낌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느끼지 않는다. 그때에는 괴로운 느낌만 느낀다.
악기웨사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에는 즐거운 느낌도 괴로운 느낌도 느끼지 않는다. 그때에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만 느낀다.”
Yasmiṁ, aggivessana, samaye dukkhaṁ vedanaṁ vedeti, neva tasmiṁ samaye sukhaṁ vedanaṁ vedeti, na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eti; dukkhaṁyeva tasmiṁ samaye vedanaṁ vedeti. Yasmiṁ, aggivessana, samaye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eti, neva tasmiṁ samaye sukhaṁ vedanaṁ vedeti, na dukkhaṁ vedanaṁ vedeti; adukkhamasukhaṁyeva tasmiṁ samaye vedanaṁ ved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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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느낌을 살핀 데 이어 나머지 두 느낌을 같은 방식으로 살핍니다. 각각의 경우에 다른 두 느낌을 부정하고, 그때 느끼는 것을 다시 또렷하게 짚습니다. 이 되풀이를 통해 즐거운 느낌만 따로 고르지 않고 세 경우를 모두 살피게 됩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말은 아무 경험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느낌의 한 갈래입니다. 이 설명으로 독자가 실제로 겪는 복잡한 감정이 잘못됐다고 판정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세 느낌이 모두 변하고 사라진다는 점을 살핍니다.
묵상
특별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감각은 쉽게 지나치게 되지요. 지금 그런 감각이 한 가지 느껴지나요? 있다면 억지로 좋거나 나쁜 쪽에 넣지 않고 잠시 살펴볼 수 있을까요?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는 답도 괜찮아요.
“악기웨사나여, 즐거운 느낌도 늘 변한다. 조건이 빚어낸 것이며, 조건에 기대어 생겨난다. 다하고, 사라지고, 사그라들고, 멎기 마련이다.
악기웨사나여, 괴로운 느낌도 늘 변한다. 조건이 빚어낸 것이며, 조건에 기대어 생겨난다. 다하고, 사라지고, 사그라들고, 멎기 마련이다.
악기웨사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늘 변한다. 조건이 빚어낸 것이며, 조건에 기대어 생겨난다. 다하고, 사라지고, 사그라들고, 멎기 마련이다.”
Sukhāpi kho, aggivessana, vedan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dukkhāpi kho, aggivessana, vedan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adukkhamasukhāpi kho, aggivessana, vedan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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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느낌을 하나씩 구별한 뒤, 이번에는 셋이 모두 어떤 성질을 지니는지 살핍니다. 느낌은 혼자 생겨나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갖춰져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경문은 이 설명을 세 번 되풀이해 어느 느낌도 예외로 두지 않습니다. 즐거운 느낌이라고 오래 붙들 수 있는 것도, 괴로운 느낌이라고 영원히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 말로 지금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거나 곧 끝날 것이라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은 이 변화를 보고 느낌에 매인 마음이 어떻게 풀리는지 설명합니다.
묵상
조금 전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 사이에 작은 차이가 있나요? 이어지는 듯 보이는 느낌도 세기나 자리, 온기가 달라졌을 수 있어요. 지금 편하게 살필 수 있는 느낌 하나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악기웨사나여, 잘 배운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보고, 즐거운 느낌에서 마음이 떠나고, 괴로운 느낌에서 마음이 떠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서 마음이 떠난다.
마음이 떠나면 탐내는 마음이 가라앉고, 탐내는 마음이 가라앉으면 매임에서 풀려난다. 풀려나면 자신이 풀려났음을 안다.
그는 이렇게 안다. ‘태어남은 끝났다. 몸과 마음을 맑게 닦는 삶을 다 살았다. 해야 할 일을 마쳤다. 더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Evaṁ passaṁ, aggivessana, sutavā ariyasāvako sukhāyapi vedanāya nibbindati, dukkhāyapi vedanāya nibbindati, adukkhamasukhāyapi vedanāya nibbindati; nibbindaṁ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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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느낌이 모두 변하고 사라짐을 본 뒤, 그 느낌에 매인 마음이 풀리는 흐름입니다. ‘마음이 떠난다’는 말은 계속 붙들 만한 것으로 여기던 마음이 돌아선다는 뜻입니다. 즐거운 느낌만이 아니라 괴로운 느낌과 어느 쪽도 아닌 느낌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뒤에서는 탐내는 마음이 가라앉고, 풀려나며, 풀려났음을 아는 순서가 이어집니다. 마지막 네 문장은 잠깐 마음이 편해졌다는 말보다 훨씬 깊은 마침을 가리킵니다. 닦아야 할 삶을 다 살고 다시 태어남이 끝났음을 스스로 아는 대목입니다.
묵상
예전에는 계속 마음이 끌렸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작은 일이 있나요? 있다면 무엇을 억지로 밀어냈는지보다, 그 일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경험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악기웨사나여, 이렇게 마음이 풀려난 수행자는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 누구와도 말싸움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쓰는 말로 이야기하되, 그 말에 매달리지 않는다.”
Evaṁ vimuttacitto kho, aggivessana, bhikkhu na kenaci saṁvadati, na kenaci vivadati, yañca loke vuttaṁ tena voharati, aparāmas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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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설명을 맺는 대목입니다. 앞에서는 세 생각 가운데 하나를 붙들면 나머지 둘과 다투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마음이 풀려난 사람이 누구의 편을 들어 맞서지도, 누구와 말싸움을 벌이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쓰는 말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말은 쓰되 거기에 매달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핀 생각과 몸과 느낌은 서로 다른 대상이지만, 그것을 붙드는 마음을 놓는다는 흐름은 이어집니다. 이 맺음말 뒤에는 그 설명을 듣던 두 사람에게 일어난 변화가 나옵니다.
묵상
같은 말을 쓰더라도 그 말에 꼭 매달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대화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어요. 오늘 나눈 대화에서 굳이 누가 옳은지 가르지 않아도 말이 통했던 순간이 있나요? 그때 어떤 점이 편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