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사리뿟따께서는 부처님 뒤에 서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하고 계셨다. 사리뿟따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이것들을 직접 알고서 버리라고 말씀하시는구나. 바른 길을 가신 분(수가따)은 우리에게 이것들을 직접 알고서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구나.’
사리뿟따께서 이렇게 돌아보시는 동안, 아무것도 붙잡지 않아 마음을 더럽히는 것들(아사와)에서 그분의 마음이 풀려났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sāriputto bhagavato piṭṭhito ṭhito hoti bhagavantaṁ bījayamāno. Atha kho āyasmato sāriputtassa etadahosi: “tesaṁ tesaṁ kira no bhagavā dhammānaṁ abhiññā pahānamāha, tesaṁ tesaṁ kira no sugato dhammānaṁ abhiññā paṭinissaggamāhā”ti. Iti hidaṁ āyasmato sāriputtassa paṭisañcikkhato anupādāya āsavehi cittaṁ vimucc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부처님 뒤에서 부채질하며 말씀을 듣던 사리뿟따에게로 장면이 옮겨 갑니다. 그는 앞서 다룬 생각과 몸과 느낌을 돌아보며, 직접 알고 놓는다는 점을 되짚습니다. 부처님과 바른 길을 가신 분은 여기서 같은 분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호칭입니다. 두 속말은 알고 버리는 일과 알고 내려놓는 일을 거듭 짚습니다. 그 돌아봄은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붙잡지 않아 마음을 더럽히는 것들에서 마음이 풀려났다고 이어집니다. 다음에는 디가나카에게 일어난 변화가 나옵니다.
묵상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듣다가 내게도 필요한 말이라고 느낀 적이 있나요? 그 말에서 특히 남은 한 구절이 있나요? 지금 떠오른다면 왜 남았는지 답을 서두르기보다, 그 말을 들을 때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한편,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하던 디가나카에게는 티끌 없이 맑고 때 묻지 않은, 이치를 꿰뚫어 보는 눈(담마짝쿠)이 열렸다.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은 모두 사라지기 마련이다.’
디가나카는 그 이치를 보고, 거기에 이르고, 분명히 알고, 깊이 꿰뚫었다. 의심을 건너고 망설임을 벗어나 자신감을 얻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남에게 기대지 않고 알게 된 그는 부처님께 말을 건넸다.
Dīghanakhassa pana paribbājakassa virajaṁ vītamalaṁ dhammacakkhuṁ udapādi: “yaṁ kiñci samudayadhammaṁ sabbaṁ taṁ nirodhadhamman”ti. Atha kho dīghanakho paribbājako diṭṭhadhammo pattadhammo viditadhammo pariyogāḷhadhammo tiṇṇavicikiccho vigatakathaṅkatho vesārajjappatto aparappaccayo satthusāsane bhagavantaṁ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사리뿟따의 마음이 풀려난 데 이어, 디가나카에게는 이치를 꿰뚫어 보는 눈이 열립니다. 그 눈으로 본 것은 생겨나는 모든 것이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어 보고, 이르고, 알고, 꿰뚫었다는 말이 거듭됩니다. 누군가의 말을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과 스스로 알아 의심을 건너는 것 사이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디가나카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을 알게 됩니다. 뒤이어 그는 자신의 말로 감사와 앞으로의 뜻을 밝힙니다.
묵상
남의 설명으로만 알다가 직접 겪고 조금 더 분명해진 일이 있나요? 그때 설명을 들을 때와는 무엇이 달랐나요? 큰 깨달음을 찾으려 하지 않고, 최근 일상에서 스스로 확인해 본 작은 일 하나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훌륭합니다, 고따마님. 훌륭합니다, 고따마님.
고따마님,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가려진 것을 드러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듯, 눈이 있는 이들이 사물을 보도록 어둠 속에 기름 등불을 들어 주듯, 고따마님은 여러모로 가르침을 밝혀 주셨습니다.”
“abhikkantaṁ, bho gotama, abhikkantaṁ, bho gotama.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ṁ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ṁ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ṁ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 kho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디가나카가 부처님의 설명에 감사하며 네 비유를 듭니다. 엎어진 것, 가려진 것, 길을 잃은 사람, 어둠 속에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서로 다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뒤집고 드러내고 길을 알려 주고 불을 밝히는 일은, 이전에 막혀 있던 것을 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어집니다. 눈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볼 수 없다는 마지막 비유가 이 뜻을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바로 앞에서 디가나카는 스스로 알아 의심을 건넜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는 그 앎에 이르도록 도운 가르침에 감사를 표합니다.
묵상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가려져 있던 것이 보이는 듯했던 적이 있나요? 그때 도움이 된 것은 새로운 사실이었나요, 익숙한 것을 다른 쪽에서 보여 준 말이었나요? 떠오르는 설명이 있다면 특히 잘 와닿았던 한마디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고따마님과 가르침, 수행자들의 모임(상가)을 의지할 곳으로 삼겠습니다.
고따마님,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들을 의지하며, 집에서 살면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으로 저를 받아 주십시오.”
Esāhaṁ bhavantaṁ gotam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Upāsakaṁ maṁ bhavaṁ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ṁ saraṇaṁ gatan”ti.
맛지마 니까야 MN 74 디가나카경 (Dīghanakhasutta) 배경
디가나카는 부처님과 가르침, 수행자들의 모임을 의지할 곳으로 삼겠다고 밝히며 말을 마칩니다. 집을 떠나겠다고 청하는 대신, 집에서 살아가며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으로 받아 달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는 앞으로의 뜻을 스스로 밝히는 말입니다. 맨 처음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사람이 대화를 거쳐 이렇게 답하면서 경의 흐름이 매듭지어집니다. 앞에서 스스로 보고 알아 의심을 건넜다는 설명과 함께 읽으면, 무엇을 의지하겠다는 이 말에 앞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드러납니다.
묵상
누군가의 말이 믿을 만하다고 느껴, 작은 일부터 따라 해 본 적이 있나요? 무엇이 그 말을 믿게 했나요? 지금 의지할 곳을 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직접 살펴보고 선택한 한 가지가 있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