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이여, 아직 배우는 중이라 마음의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위없는 유가안온을 바라며 지내는 수행자들에게는
내가 이와 같이 가르치느니라.
그러나 번뇌를 다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참된 이익을 이루고 존재의 족쇄를 다한 아라한들에게는
이 가르침들이 지금 여기의 행복한 머묾과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이어지느니라.
Ye kho te, brāhmaṇa, bhikkhū sekkhā apattamānasā anuttaraṁ yogakkhemaṁ patthayamānā viharanti tesu me ayaṁ evarūpī anusāsanī hoti. Ye pana te bhikkhū arahanto khīṇāsavā vusitavanto katakaraṇīyā ohitabhārā anuppattasadatthā parikkhīṇabhavasaṁyojanā sammadaññāvimuttā tesaṁ ime dhammā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ya ceva saṁvattanti, satisampajaññāya cā”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계행에서 선정까지 이어진 차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세존께서 정리하십니다. 아직 배우는 이(유학)에게는 이것이 앞으로 나아갈 가르침이지만, 이미 번뇌를 다한 아라한에게는 같은 내용이 더 이룰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삶을 편안히 사는 방식 자체가 됩니다. 같은 계행과 선정의 차례가 배우는 이와 다 배운 이에게 서로 다른 뜻을 지닌다는 것이 이 대목의 핵심입니다.
묵상
같은 습관이라도, 그것을 처음 익힐 때와 이미 몸에 익은 뒤에는 다르게 느껴지지 않나요? 지금 내가 애써 지키고 있는 것 가운데, 언젠가는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 있을까요?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나요?
이렇게 말씀하시자 가나까 목갈라나 바라문이 세존께 여쭈었느니라.
‘고따마 존자께서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이끄실 때,
제자들은 모두 궁극의 완성인 열반에 이릅니까,
아니면 어떤 이들은 이르지 못합니까?’
‘바라문이여, 내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내가 이렇게 가르치고 이끌 때 궁극의 완성인 열반에 이르지만,
어떤 이들은 이르지 못하느니라.’
Evaṁ vutte, gaṇakamoggallāno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kiṁ nu kho bhoto gotamassa sāvakā bhotā gotamena evaṁ ovadīyamānā evaṁ anusāsīyamānā sabbe accantaṁ niṭṭhaṁ nibbānaṁ ārādhenti udāhu ekacce nārādhentī”ti? “Appekacce kho, brāhmaṇa, mama sāvakā mayā evaṁ ovadīyamānā evaṁ anusāsīyamānā accantaṁ niṭṭhaṁ nibbānaṁ ārādhenti, ekacce nārādhe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바라문이 던지는 질문이 이 경 전체의 두 번째 전환점입니다. 앞서 차례가 있다는 것은 확인되었으니, 이제는 그 차례를 따른 이들이 모두 같은 곳에 이르는지를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에두르지 않고 어떤 이는 이르고 어떤 이는 이르지 못한다고 곧바로 인정하시는데, 이는 완벽한 성공을 약속하는 가르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음 구절에서 바라문은 바로 이 사실을 근거로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묵상
배운 대로 따랐는데도 원하는 결과에 이르지 못한 경험이 있나요?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인정 쪽이 오히려 다음 걸음을 더 가볍게 해 줄 수도 있어요.
‘고따마 존자시여, 열반도 있고 열반에 이르는 길도 있고
고따마 존자께서 몸소 이끌어 주시는데도,
어째서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이르고 어떤 이는 이르지 못합니까?’
“Ko nu kho, bho gotama, hetu ko paccayo yaṁ tiṭṭhateva nibbānaṁ, tiṭṭhati nibbānagāmī maggo, tiṭṭhati bhavaṁ gotamo samādapetā; atha ca pana bhoto gotamassa sāvakā bhotā gotamena evaṁ ovadīyamānā evaṁ anusāsīyamānā appekacce accantaṁ niṭṭhaṁ nibbānaṁ ārādhenti, ekacce nārādhe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바라문이 앞선 대답을 딛고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열반도 있고 길도 있고 안내자도 있는데 어째서라는 물음은 가르침 자체의 결함을 캐묻는 것이 아니라, 같은 조건에서 결과가 갈리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겨냥합니다. 세 가지 조건, 곧 목적지와 길과 안내자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바라문 스스로 인정한 뒤에 묻는다는 점이 중요한데, 이 물음은 다음 대목에서 세존께서 드시는 길 안내의 비유로 곧장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묵상
같은 조건에서 배웠는데 사람마다 결과가 달랐던 경험을 본 적이 있나요? 그 차이를 가르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다른 곳에서 답을 찾아본다면 어디를 보아야 할까요? 그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걸음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