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107

인용된 가르침 27구절

이 경을 6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회계사가 차례가 있는지 묻다 5구절

회계사 목갈라나가 셈법의 비유를 들어, 이 가르침에도 차례로 배우는 순서가 있는지 세존께 여쭙습니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느니라.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동쪽 숲, 미가라마따 강당에 머무셨느니라. 그때 가나까 목갈라나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와 인사를 나누었으니, 정답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아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느니라.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pubbārāme migāramātupāsāde. Atha kho gaṇakamoggallāno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gaṇakamoggallāno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경의 도입부로, 회계사(가나까)라는 직업을 가진 목갈라나 바라문이 세존을 찾아오는 장면입니다. '가나까'는 셈을 업으로 삼는 이를 가리키는 말로, 뒤이어 그가 셈법의 비유를 들어 수행에 차례가 있는지 묻는 복선이 됩니다. 인사와 정담을 나눈 뒤 한쪽에 앉는 것은 이 시기 인도에서 손님이 주인을 찾아뵙는 정해진 예법으로, 여러 경에서 되풀이되는 도입 형식입니다.

묵상

직업에서 익힌 방식으로 낯선 것을 이해해 보려 한 적이 있나요? 오늘 내가 잘 아는 일의 순서를 빌려, 잘 모르는 것을 헤아려 보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요? 그 그림이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고따마 존자시여, 이 미가라마따 강당에도 마지막 계단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배우고 차례로 행하고 차례로 나아가는 것이 보입니다. 바라문의 경전 암송에도, 궁수의 활쏘기에도, 셈으로 살아가는 저희 회계사의 셈법에도 이와 같이 차례로 배우고 차례로 행하고 차례로 나아가는 것이 보입니다.’

“Seyyathāpi, bho gotama, imassa migāramātupāsādassa dissati anupubbasikkhā anupubbakiriyā anupubbapaṭipadā yadidaṁ— yāva pacchimasopānakaḷevarā; imesampi hi, bho gotama, brāhmaṇānaṁ dissati anupubbasikkhā anupubbakiriyā anupubbapaṭipadā yadidaṁ— ajjhene; imesampi hi, bho gotama, issāsānaṁ dissati anupubbasikkhā anupubbakiriyā anupubbapaṭipadā yadidaṁ— issatthe. Amhākampi hi, bho gotama, gaṇakānaṁ gaṇanājīvānaṁ dissati anupubbasikkhā anupubbakiriyā anupubbapaṭipadā yadidaṁ— saṅkhā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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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회계사 목갈라나가 먼저 자신이 아는 세계에서 예를 끌어옵니다. 건물의 계단, 바라문의 경전 암송, 궁수의 활쏘기, 그리고 자신의 본업인 셈법까지, 네 가지 서로 다른 영역 모두에 '차례로 배우고 차례로 행하고 차례로 나아가는' 뚜렷한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원문은 이 세 낱말(배움·실천·나아감)의 짝을 네 번 그대로 되풀이하는데, 이는 그가 말하려는 핵심이 바로 이 차례에 있음을 강조하는 수사법입니다. 이제 그는 이 넷과 나란히,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같은 차례가 있는지 묻게 됩니다.

묵상

내가 잘 아는 일에는 분명한 순서가 있는데,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는 그런 순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나요? 지금 배우고 있는 것 하나를 떠올려, 그 안에 이미 차례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는 제자를 얻으면 먼저 이렇게 세도록 합니다. ‘하나는 하나, 둘은 둘씩, 셋은 셋씩, 넷은 넷씩, 다섯은 다섯씩, 여섯은 여섯씩, 일곱은 일곱씩, 여덟은 여덟씩, 아홉은 아홉씩, 열은 열씩’이라고 하게 합니다. 저희는 백까지도 세게 하고 그보다 더 나아가게도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도 이와 같이 차례로 배우고 차례로 행하고 차례로 나아가는 것을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Mayañhi, bho gotama, antevāsiṁ labhitvā paṭhamaṁ evaṁ gaṇāpema: ‘ekaṁ ekakaṁ, dve dukā, tīṇi tikā, cattāri catukkā, pañca pañcakā, cha chakkā, satta sattakā, aṭṭha aṭṭhakā, nava navakā, dasa dasakā’ti; satampi mayaṁ, bho gotama, gaṇāpema, bhiyyopi gaṇāpema. Sakkā nu kho, bho gotama, imasmimpi dhammavinaye evameva anupubbasikkhā anupubbakiriyā anupubbapaṭipadā paññapetu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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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목갈라나가 자신의 본업인 셈법 교육의 실제 방법을 구체적으로 들어 보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백까지 늘려 가는 이 셈법은 반드시 앞 단계를 익혀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뚜렷한 순서를 보여 줍니다. 이렇게 자신의 전문 분야를 자세히 설명한 뒤에야 비로소 핵심 질문, 곧 이 가르침과 계율에도 이런 차례가 있는가를 던집니다. 앞서 든 네 가지 비유가 모두 이 한 질문을 향해 쌓여 온 것임이 이 대목에서 분명해집니다.

묵상

무언가를 배울 때 가장 작은 단위부터 하나씩 늘려 간 경험이 있나요? 지금 내가 마음을 돌보는 일에서도, 가장 작은 걸음이 무엇일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백까지 세는 일도 하나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기억해 볼까요?

‘바라문이여,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도 차례로 배우고 차례로 행하고 차례로 나아가는 것을 알려 줄 수 있느니라. 바라문이여, 마치 능숙한 조련사가 좋은 혈통의 말을 얻으면 먼저 재갈을 물리는 일부터 익히게 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듯, 여래도 훈련받을 만한 사람을 얻으면 먼저 이렇게 이끄느니라.

“Sakkā, brāhmaṇa, imasmimpi dhammavinaye anupubbasikkhā anupubbakiriyā anupubbapaṭipadā paññapetuṁ. Seyyathāpi, brāhmaṇa, dakkho assadammako bhaddaṁ assājānīyaṁ labhitvā paṭhameneva mukhādhāne kāraṇaṁ kāreti, atha uttariṁ kāraṇaṁ kāreti; evameva kho, brāhmaṇa, tathāgato purisadammaṁ labhitvā paṭhamaṁ evaṁ vin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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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세존께서 회계사의 물음에 가능하다고 답하신 뒤, 말 조련사의 비유로 그 차례의 첫걸음을 보이십니다. 능숙한 조련사가 재갈부터 익히게 하듯, 여래도 계행부터 갖추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사람을 길들여야 할 대상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다듬을 만한 바탕(혈통)이 있는 존재를 정성껏 순서대로 이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다음 구절에서 그 첫 단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어집니다.

묵상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누군가 나를 다그치기보다 차근차근 이끌어 주었던 경험이 있나요? 그런 이끎이 나에게 어떤 안정감을 주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지금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이끎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오라, 수행자여, 계행을 갖추어라.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며 살고 바른 행실과 행동 범위를 갖추어 작은 허물에도 두려움을 보고, 받아 지닌 학습 계율을 배우라’라고 하느니라.

‘ehi tvaṁ, bhikkhu, sīlavā hohi, pātimokkhasaṁvarasaṁvuto viharāhi ācāragocarasampanno aṇumattesu vajjesu bhayadassāvī, samādāya sikkhassu sikkhāpades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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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여래가 훈련받을 만한 사람에게 건네는 첫 지시가 그대로 인용됩니다. 계목의 단속, 바른 행실과 행동 범위, 작은 허물에도 두려움을 봄, 이 세 가지는 이후 여러 경에서 계행을 정의할 때 되풀이되는 표준 문구입니다. 큰 깨달음이나 신통이 아니라 몸에 익힐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규범에서 차례가 시작된다는 점이, 회계사가 던진 물음, 즉 셈법처럼 작은 단위부터 시작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첫 대답이 됩니다.

묵상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가장 기초가 되는 습관 하나를 먼저 다졌던 경험이 있나요? 지금 나에게 그 재갈에 해당하는, 가장 먼저 다져야 할 작은 습관은 무엇일까요?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2 차례로 이끄는 길 9구절

계행에서 시작해 감각의 단속, 절제된 식사, 깨어 있음, 알아차림, 홀로 있음을 거쳐 선정에 이르는 차례를 하나씩 밝힙니다.

바라문이여, 수행자가 계행을 갖추면 여래는 그를 다시 이렇게 이끄느니라. ‘오라, 수행자여, 감각의 문을 지켜라. 눈으로 형상을 보아도 전체 모습과 세부 특징을 붙잡지 말라. 눈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이라는 해롭고 능숙하지 못한 상태가 밀려들 것이니, 단속을 위해 힘쓰고 눈의 기능을 지키고 단속하라’라고 하느니라.

Yato kho, brāhmaṇa, bhikkhu sīlavā hoti, pātimokkhasaṁvarasaṁvuto viharati ācāragocarasampanno aṇumattesu vajjesu bhayadassāvī, samādāya sikkhati sikkhāpadesu, tamenaṁ tathāgato uttariṁ vineti: ‘ehi tvaṁ, bhikkhu, indriyesu guttadvāro hohi, cakkhunā rūpaṁ disvā mā nimittaggāhī hohi mānubyañjanaggāhī. Yatvādhikaraṇamenaṁ cakkhundriyaṁ asaṁvutaṁ viharantaṁ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ṁ tassa saṁvarāya paṭipajjāhi; rakkhāhi cakkhundriyaṁ, cakkhundriye saṁvaraṁ āpajjā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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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계행을 갖춘 수행자를 여래가 두 번째 단계로 이끄는 대목입니다. 감각의 문을 지킨다는 것은 감각을 억누르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는 순간에 그 대상의 전체 인상과 세부 특징에 끌려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눈의 예시로 이 원리를 먼저 온전히 제시한 뒤, 다음 구절에서 나머지 감각 기관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됨을 보입니다. 탐욕과 근심이 밀려든다는 표현은 단속하지 않는 것이 적극적인 잘못이 아니라 방치의 결과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무언가를 보거나 들을 때, 첫인상에 곧바로 끌려가 버렸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그 순간과 지금 사이에 아주 짧게라도 멈추는 틈을 넣어 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그 틈은 억누름이 아니라 여유일 수 있어요.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보고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 마음으로 현상을 알아도 모습과 특징을 붙잡지 말라. 마음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이라는 해롭고 능숙하지 못한 상태가 밀려들 것이니, 단속을 위해 힘쓰고 마음의 기능을 지키고 단속하라’라고 하느니라.

Sotena saddaṁ sutvā …pe… ghānena gandhaṁ ghāyitvā …pe… jivhāya rasaṁ sāyitvā …pe… kāyena phoṭṭhabbaṁ phusitvā …pe… manasā dhammaṁ viññāya mā nimittaggāhī hohi mānubyañjanaggāhī. Yatvādhikaraṇamenaṁ manindriyaṁ asaṁvutaṁ viharantaṁ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ṁ tassa saṁvarāya paṭipajjāhi; rakkhāhi manindriyaṁ, manindriye saṁvaraṁ āpajjāh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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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앞서 눈에서 보인 것과 똑같은 원리가 귀·코·혀·몸을 거쳐 마음에까지 이어집니다. 원문은 귀·코·혀·몸 넷에서는 '…뻬…'라는 자체 생략 표시로 눈에서 이미 나온 문장을 되풀이하지 않고, 여섯째 감각의 문인 마음에서만 다시 온전히 풀어 씁니다. 이렇게 마음을 여섯 감각 기관 가운데 하나로 나란히 놓는 것은, 생각과 판단도 눈이나 귀처럼 단속할 수 있는 하나의 문이라는 관점을 보여 줍니다.

묵상

눈이나 귀만이 아니라 생각 자체도 하나의 문이라고 여겨 본 적이 있나요? 오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밀려들 때, 그 문 앞에서 잠시 멈추어 볼 수 있을까요?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임을 기억해 볼까요?

바라문이여, 수행자가 감각의 문을 지키면 여래는 그를 다시 이렇게 이끄느니라. ‘오라, 수행자여,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알라. 지혜롭게 살펴 음식을 먹되 즐기거나 취하거나 꾸미거나 치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 몸을 지탱하고 유지해 해로움을 그치며 청정한 삶을 돕기 위해서다. 이렇게 예전의 괴로운 느낌을 물리치고 새로운 괴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으리니, 나에게 살아갈 힘과 허물없음과 편안한 머묾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느니라.

Yato kho, brāhmaṇa, bhikkhu indriyesu guttadvāro hoti, tamenaṁ tathāgato uttariṁ vineti: ‘ehi tvaṁ, bhikkhu, bhojane mattaññū hohi. Paṭisaṅkhā yoniso āhāraṁ āhāreyyāsi— neva davāya na madāya na maṇḍanāya na vibhūsanāya, yāvadeva imassa kāyassa ṭhitiyā yāpanāya vihiṁsūparatiyā brahmacariyānuggahāya—iti purāṇañca vedanaṁ paṭihaṅkhāmi, navañca vedanaṁ na uppādessāmi, yātrā ca me bhavissati anavajjatā ca phāsuvihāro c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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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감각의 문을 지키는 단계 다음으로, 먹는 일 자체를 살피는 세 번째 단계가 이어집니다. 음식을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살펴 먹으라는 것이며, 즐거움·취함·꾸밈·치장이라는 네 가지 그릇된 동기를 걸러 내고 몸을 지탱하는 데에만 쓰라고 가르칩니다. 예전의 괴로운 느낌을 물리치고 새 괴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구절은 배고픔의 괴로움도 과식의 괴로움도 만들지 않는 가운데 지점을 가리킵니다. 다른 경들에서도 되풀이되는 이 정형구는 수행자의 몸을 도구로도 짐으로도 대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묵상

음식을 먹을 때 그 목적을 잠시 떠올려 본 적이 있나요? 오늘 한 끼만이라도, 무엇을 위해 먹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즐거움을 아예 없애자는 뜻이 아니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요.

바라문이여, 수행자가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알면 여래는 그를 다시 이렇게 이끄느니라. ‘오라, 수행자여, 깨어 있음에 전념하며 지내라. 낮과 밤의 첫 시각에는 경행과 좌선으로 장애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밤의 가운데 시각에는 오른편으로 사자 자세를 취해 발 위에 발을 포개 눕고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아 일어날 때를 마음에 두며, 밤의 마지막 시각에는 일어나 다시 경행과 좌선으로 마음을 깨끗이 하라’라고 하느니라.

Yato kho, brāhmaṇa, bhikkhu bhojane mattaññū hoti, tamenaṁ tathāgato uttariṁ vineti: ‘ehi tvaṁ, bhikkhu, jāgariyaṁ anuyutto viharāhi, divasaṁ caṅkamena nisajjāya āvaraṇīyehi dhammehi cittaṁ parisodhehi, rattiyā paṭhamaṁ yāmaṁ caṅkamena nisajjāya āvaraṇīyehi dhammehi cittaṁ parisodhehi, rattiyā majjhimaṁ yāma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ṁ kappeyyāsi pāde pādaṁ accādhāya sato sampajāno uṭṭhānasaññaṁ manasikaritvā, rattiyā pacchimaṁ yāmaṁ paccuṭṭhāya caṅkamena nisajjāya āvaraṇīyehi dhammehi cittaṁ parisodheh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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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제 하루와 밤을 어떻게 쓸지가 가르침의 대상이 됩니다. 낮 시간과 밤의 첫째·마지막 시각은 걷고 앉는 수행으로 채우고, 오직 밤의 가운데 시각만 사자처럼 눕는 짧은 휴식을 허용합니다. 오른쪽으로 눕고 발을 포갠 자세, 알아차림을 놓지 않고 일어날 때를 마음에 두는 태도는 잠마저 수행의 연장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이 깨어 있음에 대한 전념은 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밤 안에서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짜인 하루 전체의 리듬입니다.

묵상

잠들기 전이나 눈뜬 직후, 마음이 가장 쉽게 흐트러지는 순간이 언제인가요? 그 순간에 아주 짧게라도 마음을 가다듬는 습관 하나를 놓아 볼 수 있을까요? 잠 자체를 줄이자는 뜻이 아니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요.

바라문이여, 수행자가 깨어 있음에 전념하면 여래는 그를 다시 이렇게 이끄느니라. ‘오라, 수행자여,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추어라. 나아가고 물러날 때 분명히 알며 행하고, 앞과 옆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며 행하고, 팔다리를 굽히고 펼 때도, 겹가사와 발우와 가사를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며 행하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며 행하고, 가고 서고 앉고 자고 깨고 말하고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알며 행하라’라고 하느니라.

Yato kho, brāhmaṇa, bhikkhu jāgariyaṁ anuyutto hoti, tamenaṁ tathāgato uttariṁ vineti: ‘ehi tvaṁ, bhikkhu,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hi,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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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깨어 있음의 다음 단계로, 몸의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까지 분명한 앎을 두는 훈련이 이어집니다. 걷고 보고 굽히고 먹고 배설하고 눕고 말하는, 하루 동안 누구나 하는 평범한 동작들을 낱낱이 나열한 것이 특징인데, 이는 수행이 특별한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동작에 걸쳐 있음을 보여 줍니다. 분명한 앎은 그 동작을 무심코 하지 않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묵상

밥을 먹거나 걷는 동안, 정작 그 순간에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었던 적이 있나요? 오늘 아주 사소한 동작 하나만 골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해 보면 어떨까요? 그 하나로도 충분한 시작이 됩니다.

바라문이여, 수행자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추면 여래는 그를 다시 이렇게 이끄느니라. ‘오라, 수행자여, 외딴 거처를 찾아라. 숲, 나무 아래, 산, 골짜기, 산굴, 묘지, 숲속 빈터, 트인 곳, 짚더미 가운데 하나를 찾으라’라고 하느니라.

Yato kho, brāhmaṇa, bhikkhu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ti, tamenaṁ tathāgato uttariṁ vineti: ‘ehi tvaṁ, bhikkhu, vivittaṁ senāsanaṁ bhajāhi araññaṁ rukkhamūlaṁ pabbataṁ kandaraṁ giriguhaṁ susānaṁ vanapatthaṁ abbhokāsaṁ palālapuñjan’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 다음으로, 이제 머무는 자리 자체를 바꾸라는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아홉 가지 장소를 나열하는데, 사람이 드물거나 아예 없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는 앞서 익힌 감각 단속과 알아차림을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상 속에서 시험하는 단계가 아니라, 방해가 적은 자리에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한 준비입니다. 다음 구절에서 수행자가 실제로 이 가운데 한 곳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일부러 찾아가는 나만의 자리가 있나요? 오늘 하루 중 짧게라도 그런 자리를 마련해 볼 수 있을까요? 꼭 멀리 갈 필요는 없을 거예요. 방 한구석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는 숲, 나무 아래, 산, 골짜기, 산굴, 묘지, 숲속 빈터, 트인 곳, 짚더미 가운데 외딴 거처를 찾아 머무느니라. 공양 뒤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하고 몸을 곧게 세우고 앞에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앉느니라.

So vivittaṁ senāsanaṁ bhajati araññaṁ rukkhamūlaṁ pabbataṁ kandaraṁ giriguhaṁ susānaṁ vanapatthaṁ abbhokāsaṁ palālapuñjaṁ. So pacchābhattaṁ piṇḍapāta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ṁ ābhujitvā, ujuṁ kāyaṁ paṇidhāya, parimukhaṁ satiṁ upaṭṭhapetv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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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받은 가르침을 수행자가 실제로 따르는 장면입니다. 아홉 가지 장소 목록이 다시 그대로 되풀이되는데, 이는 가르침과 실천이 정확히 같은 말로 이어짐을 보여 주는 정형구입니다.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우고 알아차림을 앞에 두는 이 자세는 이후 다섯 장애를 버리고 선정에 드는 모든 수행의 물리적 출발점이 됩니다. 말로 들은 가르침이 몸의 자세로 옮겨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묵상

들었거나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기까지 얼마나 걸리는 편인가요? 오늘은 방금 마음에 새긴 것 하나를 곧바로 몸으로 옮겨 볼 수 있을까요? 자세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어요.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탐욕 없는 마음으로 머물며 탐욕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악의와 미움을 버리고 모든 생명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머물며 악의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며, 혼침과 졸음을 버리고 빛을 알아차리며 분명히 알아 혼침과 졸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들뜸과 후회를 버리고 안으로 고요한 마음으로 머물며 들뜸과 후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며, 의심을 버리고 능숙한 것에 망설이지 않고 머물며 의심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So abhijjhaṁ loke pahāya vigatābhijjhena cetasā viharati, abhijjhāya cittaṁ parisodheti; byāpādapadosaṁ pahāya abyāpannacitto viharati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byāpādapadosā cittaṁ parisodheti; thinamiddhaṁ pahāya vigatathinamiddho viharati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thinamiddhā cittaṁ parisodheti; uddhaccakukkuccaṁ pahāya anuddhato viharati ajjhattaṁ vūpasantacitto, uddhaccakukkuccā cittaṁ parisodheti; vicikicchaṁ pahāya tiṇṇavicikiccho viharati akathaṅkathī kusalesu dhammesu, vicikicchāya cittaṁ parisodhe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자리를 잡고 앉은 수행자가 다섯 장애를 하나씩 버려 가는 대목입니다. 탐욕·악의·혼침과 졸음·들뜸과 후회·의심이라는 다섯 가지를 같은 문형으로 차례차례 짚는데, 버리고, 벗어난 상태로 머물며,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세 마디 구조가 다섯 번 그대로 반복됩니다. 이 정형화된 반복은 다섯 장애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 다뤄야 할 하나의 부류임을 보여 줍니다. 이 다섯을 버린 마음이 다음 대목의 선정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탐욕·악의·나른함·들뜸·의심 가운데, 요즘 내 마음에 가장 자주 찾아오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잠시 알아차리기만 해 보면 어떨까요?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 적이 있나요?

그는 마음을 오염시키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이 다섯 장애를 버리고,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것들에서 벗어나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며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무느니라. 생각의 일으킴과 이어 감이 가라앉아 … 두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물고, 희열이 사그라들어 … 세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물며, 행복도 버리고 … 네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무느니라.

So ime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pe…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Pītiyā ca virāgā …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ukhassa ca pahānā …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다섯 장애를 버린 마음이 네 단계의 선정으로 깊어지는 대목입니다. 첫 번째 선정만 온전히 풀어 쓰고, 둘째부터 넷째까지는 원문 자체가 '…뻬…'와 '…'로 세부를 생략한 채 도달점만 짚는데, 이는 이 정형구가 다른 여러 경에서 이미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여기서는 차례만 표시하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작용이 가라앉고, 기쁨이 사그라들고, 마침내 행복마저 내려놓는 흐름은 점점 더 고요해지는 방향을 보여 줍니다.

묵상

몰입해 있던 감정이 점점 가라앉으며 더 잔잔한 상태로 바뀌어 간 경험이 있나요? 그 가라앉음이 잃음이 아니라 더 깊어짐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결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3 닦았어도 어떤 이는 이르고 어떤 이는 못 이른다 3구절

같은 차례를 배워도 결과가 갈리는 까닭을 회계사가 다시 묻습니다.

바라문이여, 아직 배우는 중이라 마음의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위없는 유가안온을 바라며 지내는 수행자들에게는 내가 이와 같이 가르치느니라. 그러나 번뇌를 다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참된 이익을 이루고 존재의 족쇄를 다한 아라한들에게는 이 가르침들이 지금 여기의 행복한 머묾과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이어지느니라.

Ye kho te, brāhmaṇa, bhikkhū sekkhā apattamānasā anuttaraṁ yogakkhemaṁ patthayamānā viharanti tesu me ayaṁ evarūpī anusāsanī hoti. Ye pana te bhikkhū arahanto khīṇāsavā vusitavanto katakaraṇīyā ohitabhārā anuppattasadatthā parikkhīṇabhavasaṁyojanā sammadaññāvimuttā tesaṁ ime dhammā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ya ceva saṁvattanti, satisampajaññāya cā”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계행에서 선정까지 이어진 차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세존께서 정리하십니다. 아직 배우는 이(유학)에게는 이것이 앞으로 나아갈 가르침이지만, 이미 번뇌를 다한 아라한에게는 같은 내용이 더 이룰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삶을 편안히 사는 방식 자체가 됩니다. 같은 계행과 선정의 차례가 배우는 이와 다 배운 이에게 서로 다른 뜻을 지닌다는 것이 이 대목의 핵심입니다.

묵상

같은 습관이라도, 그것을 처음 익힐 때와 이미 몸에 익은 뒤에는 다르게 느껴지지 않나요? 지금 내가 애써 지키고 있는 것 가운데, 언젠가는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 있을까요?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나요?

이렇게 말씀하시자 가나까 목갈라나 바라문이 세존께 여쭈었느니라. ‘고따마 존자께서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이끄실 때, 제자들은 모두 궁극의 완성인 열반에 이릅니까, 아니면 어떤 이들은 이르지 못합니까?’ ‘바라문이여, 내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내가 이렇게 가르치고 이끌 때 궁극의 완성인 열반에 이르지만, 어떤 이들은 이르지 못하느니라.’

Evaṁ vutte, gaṇakamoggallāno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kiṁ nu kho bhoto gotamassa sāvakā bhotā gotamena evaṁ ovadīyamānā evaṁ anusāsīyamānā sabbe accantaṁ niṭṭhaṁ nibbānaṁ ārādhenti udāhu ekacce nārādhentī”ti? “Appekacce kho, brāhmaṇa, mama sāvakā mayā evaṁ ovadīyamānā evaṁ anusāsīyamānā accantaṁ niṭṭhaṁ nibbānaṁ ārādhenti, ekacce nārādhe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바라문이 던지는 질문이 이 경 전체의 두 번째 전환점입니다. 앞서 차례가 있다는 것은 확인되었으니, 이제는 그 차례를 따른 이들이 모두 같은 곳에 이르는지를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에두르지 않고 어떤 이는 이르고 어떤 이는 이르지 못한다고 곧바로 인정하시는데, 이는 완벽한 성공을 약속하는 가르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음 구절에서 바라문은 바로 이 사실을 근거로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묵상

배운 대로 따랐는데도 원하는 결과에 이르지 못한 경험이 있나요?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인정 쪽이 오히려 다음 걸음을 더 가볍게 해 줄 수도 있어요.

‘고따마 존자시여, 열반도 있고 열반에 이르는 길도 있고 고따마 존자께서 몸소 이끌어 주시는데도, 어째서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이르고 어떤 이는 이르지 못합니까?’

“Ko nu kho, bho gotama, hetu ko paccayo yaṁ tiṭṭhateva nibbānaṁ, tiṭṭhati nibbānagāmī maggo, tiṭṭhati bhavaṁ gotamo samādapetā; atha ca pana bhoto gotamassa sāvakā bhotā gotamena evaṁ ovadīyamānā evaṁ anusāsīyamānā appekacce accantaṁ niṭṭhaṁ nibbānaṁ ārādhenti, ekacce nārādhe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바라문이 앞선 대답을 딛고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열반도 있고 길도 있고 안내자도 있는데 어째서라는 물음은 가르침 자체의 결함을 캐묻는 것이 아니라, 같은 조건에서 결과가 갈리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겨냥합니다. 세 가지 조건, 곧 목적지와 길과 안내자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바라문 스스로 인정한 뒤에 묻는다는 점이 중요한데, 이 물음은 다음 대목에서 세존께서 드시는 길 안내의 비유로 곧장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묵상

같은 조건에서 배웠는데 사람마다 결과가 달랐던 경험을 본 적이 있나요? 그 차이를 가르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다른 곳에서 답을 찾아본다면 어디를 보아야 할까요? 그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걸음일 수 있어요.

4 길을 가리킬 뿐이다 6구절

세존께서 라자가하로 가는 길의 비유를 드시어, 안내자가 할 수 있는 일과 걷는 이의 몫을 가르십니다.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내가 도리어 그대에게 물으리니 그대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답하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라문이여, 그대는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잘 아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잘 압니다.’

“Tena hi, brāhmaṇa, taṁyevettha paṭipucchissāmi. Yathā te khameyya tathā naṁ byākareyyāsi. Taṁ kiṁ maññasi, brāhmaṇa, kusalo tvaṁ rājagahagāmissa maggassā”ti? “Evaṁ, bho, kusalo ahaṁ rājagahagāmissa maggassā”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세존께서 바로 답하지 않으시고 되물음으로 이야기를 이끄십니다. 회계사가 셈법의 비유로 대화를 열었듯, 이번에는 세존께서 바라문의 또 다른 전문 지식, 곧 라자가하로 가는 길에 대한 앎을 끌어오십니다. 이렇게 상대가 이미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방식은 이 경 전체에서 되풀이되는 대화법으로, 낯선 물음인 왜 어떤 이는 열반에 이르지 못하는가를 익숙한 상황인 길 안내에 빗대어 풀어내려는 것입니다.

묵상

어려운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이미 잘 아는 다른 경험에 빗대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풀리지 않는 물음 하나를 내가 잘 아는 일상의 장면에 비추어 보면 어떨까요? 뜻밖의 실마리가 보일 수도 있어요.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라문이여, 여기 라자가하로 가고자 하는 어떤 사람이 있어 그대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하자. ‘존자시여, 저는 라자가하로 가고자 합니다. 저에게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알려 주십시오’라고.’

“Taṁ kiṁ maññasi, brāhmaṇa, idha puriso āgaccheyya rājagahaṁ gantukāmo. So taṁ upasaṅkamitvā evaṁ vadeyya: ‘icchāmahaṁ, bhante, rājagahaṁ gantuṁ; tassa me rājagahassa maggaṁ upadisā’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세존께서 앞서 확인한 바라문의 지식을 구체적인 상황으로 옮기십니다. 라자가하로 가고 싶어 하는 어떤 사람이 다가와 길을 묻는 이 장면은, 뒤에 나올 열반을 향한 물음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 놓입니다. 길을 몰라 묻는 사람, 길을 아는 안내자라는 구도가 여기서 마련되고, 다음 구절에서 바라문이 실제로 어떻게 안내하는지가 이어집니다. 목적지를 향한 간절함이 먼저 자리하고, 그다음에야 방법을 묻는 순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간절히 이루고 싶어 마음을 정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던 순간이 있나요? 그때 나는 무엇을 가장 먼저 묻고 싶었나요? 그 물음 속에 이미 내가 원하는 방향이 담겨 있지는 않았나요?

그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이보게, 이 길이 라자가하로 가는 길이니 잠시 가면 어느 마을이 보일 것이고, 다시 잠시 가면 어느 성읍이 보일 것이며, 다시 잠시 가면 라자가하의 아름다운 동산과 숲과 땅과 연못이 보일 것이다’라고. 그대가 이렇게 가르치고 이끌었는데도 그 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 서쪽으로 갈 수도 있느니라.

Tamenaṁ tvaṁ evaṁ vadeyyāsi: ‘ehambho purisa, ayaṁ maggo rājagahaṁ gacchati. Tena muhuttaṁ gaccha, tena muhuttaṁ gantvā dakkhissasi amukaṁ nāma gāmaṁ, tena muhuttaṁ gaccha, tena muhuttaṁ gantvā dakkhissasi amukaṁ nāma nigamaṁ; tena muhuttaṁ gaccha, tena muhuttaṁ gantvā dakkhissasi rājagahassa ārāmarāmaṇeyyakaṁ vanarāmaṇeyyakaṁ bhūmirāmaṇeyyakaṁ pokkharaṇīrāmaṇeyyakan’ti. So tayā evaṁ ovadīyamāno evaṁ anusāsīyamāno ummaggaṁ gahetvā pacchāmukho gaccheyya.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바라문이 실제로 길을 가르치는 상황을 세존께서 구체적으로 그려 보이십니다. 마을과 성읍을 지나 라자가하의 동산과 숲에 이르는 세 단계의 이정표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고 정확한 안내입니다. 그런데도 마지막 문장에서 그 사람은 정반대 방향인 서쪽으로 가 버립니다. 안내가 완벽했다는 것과 그 안내를 따라 목적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라는 것이, 이 비유가 짚으려는 첫 번째 사실입니다.

묵상

누군가 아주 정확하고 친절하게 알려 준 방법을 따르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가 버린 적이 있나요? 그때 무엇이 그 방향을 바꾸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안내의 잘잘못을 먼저 따지고 싶어지지는 않나요?

다시 두 번째 사람이 라자가하로 가고자 다가와 똑같이 물었고, 그대는 앞서와 똑같이 길을 알려 주었다 하자. 그 사람은 그대가 이렇게 가르치고 이끈 대로 무사히 라자가하에 이르렀느니라.

Atha dutiyo puriso āgaccheyya rājagahaṁ gantukāmo. So taṁ upasaṅkamitvā evaṁ vadeyya: ‘icchāmahaṁ, bhante, rājagahaṁ gantuṁ; tassa me rājagahassa maggaṁ upadisā’ti. Tamenaṁ tvaṁ evaṁ vadeyyāsi: ‘ehambho purisa, ayaṁ maggo rājagahaṁ gacchati. Tena muhuttaṁ gaccha, tena muhuttaṁ gantvā dakkhissasi amukaṁ nāma gāmaṁ; tena muhuttaṁ gaccha, tena muhuttaṁ gantvā dakkhissasi amukaṁ nāma nigamaṁ; tena muhuttaṁ gaccha, tena muhuttaṁ gantvā dakkhissasi rājagahassa ārāmarāmaṇeyyakaṁ vanarāmaṇeyyakaṁ bhūmirāmaṇeyyakaṁ pokkharaṇīrāmaṇeyyakan’ti. So tayā evaṁ ovadīyamāno evaṁ anusāsīyamāno sotthinā rājagahaṁ gaccheyya.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두 번째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으로, 원문은 첫 번째 사람에게 주었던 안내를 단어 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이 카드는 같은 말이 그대로 되풀이됨을 밝히고 다시 옮기지 않았으며, 빠알리 인용에는 그 되풀이된 전문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똑같은 질문, 똑같은 사람, 똑같은 안내인데도 이번에는 사람이 무사히 목적지에 이릅니다. 앞선 사람과 이 사람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안내가 아니라 그 안내를 받은 사람 쪽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묵상

똑같은 조언을 들었는데 누군가는 따르고 누군가는 따르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그 차이가 조언 자체가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나라면 어느 쪽에 더 가까웠을지도 궁금해지네요.

‘바라문이여, 라자가하도 있고 라자가하로 가는 길도 있고 그대가 몸소 이끌어 주는데도, 그대가 이렇게 가르치고 이끌었는데도 한 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 서쪽으로 가고 한 사람은 무사히 라자가하에 이르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고따마 존자시여, 거기서 제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입니다.’

Ko nu kho, brāhmaṇa, hetu ko paccayo yaṁ tiṭṭhateva rājagahaṁ, tiṭṭhati rājagahagāmī maggo, tiṭṭhasi tvaṁ samādapetā; atha ca pana tayā evaṁ ovadīyamāno evaṁ anusāsīyamāno eko puriso ummaggaṁ gahetvā pacchāmukho gaccheyya, eko sotthinā rājagahaṁ gaccheyyā”ti? “Ettha kyāhaṁ, bho gotama, karomi? Maggakkhāyīhaṁ, bho gotamā”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세존께서 앞서 바라문이 던졌던 것과 똑같은 형태의 질문, 곧 열반도 길도 안내자도 있는데 왜 갈리는가를 이번에는 길 안내의 상황으로 그대로 되돌려 던지십니다. 바라문의 대답 저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입니다는 짧지만 이 경 전체의 결론을 미리 보여 줍니다. 안내자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사이의 경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이 대답이, 다음 구절에서 세존의 입으로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묵상

누군가를 돕고 싶었지만 그 사람의 선택까지 대신할 수는 없었던 경험이 있나요? 나는 다만 가리킬 뿐이다라는 말이 지금 나나 내 곁의 누군가에게 어떻게 다가오나요? 그 말이 무력함이 아니라 존중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까요?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열반도 있고 열반에 이르는 길도 있고 내가 몸소 이끌어 주는데도, 내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이렇게 가르치고 이끌 때 궁극의 완성인 열반에 이르지만 어떤 이는 이르지 못하느니라. 바라문이여, 거기서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여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니라.’

“Evameva kho, brāhmaṇa, tiṭṭhateva nibbānaṁ, tiṭṭhati nibbānagāmī maggo, tiṭṭhāmahaṁ samādapetā; atha ca pana mama sāvakā mayā evaṁ ovadīyamānā evaṁ anusāsīyamānā appekacce accantaṁ niṭṭhaṁ nibbānaṁ ārādhenti, ekacce nārādhenti. Ettha kyāhaṁ, brāhmaṇa, karomi? Maggakkhāyīhaṁ, brāhmaṇa, tathāgato”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길 안내의 비유가 열반의 물음에 그대로 포개지는 이 경의 결론입니다. 바라문 스스로 내놓았던 대답, 저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입니다를 세존께서 여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다로 그대로 되받으시는데, 이는 세존의 권위를 낮추는 말이 아니라 가르침과 실천의 몫을 정확히 나누는 말입니다. 길이 있고 안내자가 있어도 걷는 일 자체는 걷는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이, 앞서 회계사가 물었던 차례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두 번째 절반의 답이 됩니다.

묵상

가리켜 줄 수는 있어도 대신 걸어 줄 수는 없다는 말이 지금 나에게 어떤 자리를 떠올리게 하나요? 내가 걷고 있는 길에서, 오늘 내가 실제로 내디딜 수 있는 걸음은 무엇일까요? 그 걸음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5 함께 지내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 3구절

세존께서 함께 지내지 않으시는 제자와 함께 지내시는 제자를 대비해 밝히시고, 바라문이 그 가르침을 향과 견줍니다.

가나까 목갈라나 바라문이 여쭈었느니라. ‘고따마 존자시여, 믿음 아닌 생계 때문에 출가한 이들이 있으니, 교활·속임·잔꾀·거만·우쭐댐·경솔·거친 말·함부로 지껄임, 감각 방종·식사에 절제 없음·깨어 있음 소홀·수행자의 삶에 무심함·배움을 가벼이 여김, 사치·해이·퇴보에 앞장섬·홀로 있음을 내던짐·나태·정진 모자람, 알아차림 놓침·분명한 앎 없음·산만함·마음이 흩어짐·지혜 없음·아둔함, 이런 이들과는 고따마 존자께서 함께 지내지 않으십니다.’

Evaṁ vutte, gaṇakamoggallāno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yeme, bho gotama, puggalā assaddhā jīvikatthā n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ā saṭhā māyāvino ketabino uddhatā unnaḷā capalā mukharā vikiṇṇavācā indriyesu aguttadvārā bhojane amattaññuno jāgariyaṁ ananuyuttā sāmaññe anapekkhavanto sikkhāya na tibbagāravā bāhulikā sāthalikā okkamane pubbaṅgamā paviveke nikkhittadhurā kusītā hīnavīriyā muṭṭhassatino asampajānā asamāhitā vibbhantacittā duppaññā eḷamūgā, na tehi bhavaṁ gotamo saddhiṁ saṁvasa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바라문이 화제를 바꾸어, 세존께서 실제로 어떤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는지를 묻습니다. 먼저 함께 지내지 않으시는 쪽을 길게 열거하는데, 믿음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출가한 동기에서 시작해 속임수·거만함·감각 방종·나태·산만함까지 앞서 나온 가르침의 차례를 하나씩 뒤집은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원문은 스물다섯 가지 결함을 한 문장에 늘어놓는데, 이 카드는 그 전부를 낱말 단위로 살려 옮기되 늘어놓는 방식만 간추렸습니다. 이 목록은 세존께서 사람을 미리 가려 배척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앞서 설해진 계행부터 선정까지의 차례를 전혀 따르지 않을 때 실제로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묵상

이 목록에 담긴 여러 모습 가운데, 지금 내 안에도 조금은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나요?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오늘 하나만 골라 살짝 방향을 바꾸어 볼 수 있을까요? 스물다섯 가지를 한꺼번에 고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집을 떠나 출가한 좋은 가문의 자제들이 있으니, 정직·솔직·꾸밈없음·차분함·의젓함·진중함·부드러운 말·삼가는 말, 감각의 단속·알맞은 식사·깨어 있음·수행자의 삶에 마음을 둠·배움을 소중히 여김, 검소·단정함·물러나지 않음·홀로 있음에 앞장섬·부지런함·정진에 정진, 알아차림 확립·분명한 앎·집중됨·마음이 하나로 모임·지혜로움·슬기로움, 이런 이들이니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런 이들과 함께 지내십니다.’

Ye pana te kulaputtā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ā asaṭhā amāyāvino aketabino anuddhatā anunnaḷā acapalā amukharā avikiṇṇavācā indriyesu guttadvārā bhojane mattaññuno jāgariyaṁ anuyuttā sāmaññe apekkhavanto sikkhāya tibbagāravā nabāhulikā nasāthalikā okkamane nikkhittadhurā paviveke pubbaṅgamā āraddhavīriyā pahitattā upaṭṭhitassatino sampajānā samāhitā ekaggacittā paññavanto aneḷamūgā, tehi bhavaṁ gotamo saddhiṁ saṁvasa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앞서 나온 결함의 목록이 하나하나 그대로 부정되며 뒤집힙니다. 교활함은 정직함으로, 감각의 방종은 감각의 단속으로, 나태는 정진으로 바뀌는 이 대구는 앞서 이어진 차례, 곧 계행과 감각 단속과 절제된 식사와 깨어 있음과 알아차림과 홀로 있음과 선정을 그대로 되비추는 거울입니다. 원문은 앞 문단과 글자 하나까지 대칭을 이루는 스물다섯 가지 긍정형 목록인데, 이 카드도 같은 낱말 단위 방식으로 그 대칭을 살려 옮겼습니다. 세존께서 특정 부류의 사람을 편애하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차례를 따라 사는 이들과 자연스럽게 함께 지내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묵상

두 목록을 나란히 놓고 보니, 그 차이가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에 가깝다고 느껴지나요? 오늘 나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내일은 한 걸음만 옮겨 볼 수 있을까요?

‘고따마 존자시여, 향기로운 뿌리 가운데는 창포 뿌리가 으뜸이라 하고, 향기로운 심재 가운데는 붉은 전단향이 으뜸이라 하며, 향기로운 꽃 가운데는 재스민이 으뜸이라 하듯, 고따마 존자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가르침 가운데 으뜸입니다.’

Seyyathāpi, bho gotama, ye keci mūlagandhā, kālānusāri tesaṁ aggamakkhāyati; ye keci sāragandhā, lohitacandanaṁ tesaṁ aggamakkhāyati; ye keci pupphagandhā, vassikaṁ tesaṁ aggamakkhāyati; evameva bhoto gotamassa ovādo paramajjadhammesu.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바라문이 대화를 마무리하며 세 가지 향기의 비유로 세존의 가르침을 기립니다. 뿌리·심재·꽃이라는 서로 다른 세 부류에서 각각 으뜸을 하나씩 꼽는 방식은, 무엇과 비교해도 이 가르침이 가장 낫다는 뜻이 아니라 각 부류 안에서 최고를 가리키는 인도의 관용적 찬사법입니다. 이 비유를 끝으로 바라문의 질문은 마무리되고, 다음 구절에서 그는 곧바로 감사와 귀의의 말을 잇습니다.

묵상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조언이 정말 도움이 되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나요? 오늘 나에게 힘이 된 말 한마디를 떠올려,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해 볼 수 있을까요? 굳이 큰 비유를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6 귀의하다 1구절

바라문이 세존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귀의를 청하고 대화가 마무리됩니다.

‘훌륭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훌륭합니다.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 어둠 속에 등불을 비추어 눈 있는 이들이 사물을 보게 하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처럼 여러 방편으로 가르침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가르침과 수행자 승가에 귀의합니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소서.’ (이 경은 가나까 목갈라나경으로, 일곱 번째로 여기서 끝나느니라.)

Abhikkantaṁ, bho gotama, abhikkantaṁ, bho gotama.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ṁ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ṁ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ṁ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ṁ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Esāhaṁ bhavantaṁ gotam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Upāsakaṁ maṁ bhavaṁ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ṁ saraṇaṁ gatan”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경을 마무리하는 정형화된 귀의 선언입니다. 엎어진 것을 세우고 덮인 것을 열고 길을 가리키고 어둠에 등불을 비춘다는 네 가지 비유는 여러 경에서 똑같이 되풀이되는 찬탄의 관용구로, 앞이 캄캄하던 상태에서 스스로 보게 된 상태로 바뀌었다는 감사를 표현합니다. 회계사의 물음, 곧 차례가 있는가에서 시작해 왜 어떤 이는 이르고 어떤 이는 못 이르는가로 이어진 대화는, 그 답을 들은 이가 스스로 첫걸음인 귀의를 내딛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마지막 문장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훗날 경전을 모은 이들이 붙인 차례 표시입니다.

묵상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이제야 알겠다는 순간을 겪은 적이 있나요? 오늘 대화에서 내가 새롭게 눈뜬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다음 걸음으로 이어 갈 수 있을까요? 거창한 다짐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