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바라문이여, 내가 도리어 그대에게 물으리니
그대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답하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라문이여,
그대는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잘 아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잘 압니다.’
“Tena hi, brāhmaṇa, taṁyevettha paṭipucchissāmi. Yathā te khameyya tathā naṁ byākareyyāsi. Taṁ kiṁ maññasi, brāhmaṇa, kusalo tvaṁ rājagahagāmissa maggassā”ti? “Evaṁ, bho, kusalo ahaṁ rājagahagāmissa maggassā”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세존께서 바로 답하지 않으시고 되물음으로 이야기를 이끄십니다. 회계사가 셈법의 비유로 대화를 열었듯, 이번에는 세존께서 바라문의 또 다른 전문 지식, 곧 라자가하로 가는 길에 대한 앎을 끌어오십니다. 이렇게 상대가 이미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방식은 이 경 전체에서 되풀이되는 대화법으로, 낯선 물음인 왜 어떤 이는 열반에 이르지 못하는가를 익숙한 상황인 길 안내에 빗대어 풀어내려는 것입니다.
묵상
어려운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이미 잘 아는 다른 경험에 빗대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풀리지 않는 물음 하나를 내가 잘 아는 일상의 장면에 비추어 보면 어떨까요? 뜻밖의 실마리가 보일 수도 있어요.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라문이여,
여기 라자가하로 가고자 하는 어떤 사람이 있어
그대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하자.
‘존자시여, 저는 라자가하로 가고자 합니다.
저에게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알려 주십시오’라고.’
“Taṁ kiṁ maññasi, brāhmaṇa, idha puriso āgaccheyya rājagahaṁ gantukāmo. So taṁ upasaṅkamitvā evaṁ vadeyya: ‘icchāmahaṁ, bhante, rājagahaṁ gantuṁ; tassa me rājagahassa maggaṁ upadisā’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세존께서 앞서 확인한 바라문의 지식을 구체적인 상황으로 옮기십니다. 라자가하로 가고 싶어 하는 어떤 사람이 다가와 길을 묻는 이 장면은, 뒤에 나올 열반을 향한 물음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 놓입니다. 길을 몰라 묻는 사람, 길을 아는 안내자라는 구도가 여기서 마련되고, 다음 구절에서 바라문이 실제로 어떻게 안내하는지가 이어집니다. 목적지를 향한 간절함이 먼저 자리하고, 그다음에야 방법을 묻는 순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간절히 이루고 싶어 마음을 정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던 순간이 있나요? 그때 나는 무엇을 가장 먼저 묻고 싶었나요? 그 물음 속에 이미 내가 원하는 방향이 담겨 있지는 않았나요?
그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이보게, 이 길이 라자가하로 가는 길이니
잠시 가면 어느 마을이 보일 것이고, 다시 잠시 가면 어느 성읍이 보일 것이며,
다시 잠시 가면 라자가하의 아름다운 동산과 숲과 땅과 연못이 보일 것이다’라고.
그대가 이렇게 가르치고 이끌었는데도
그 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 서쪽으로 갈 수도 있느니라.
Tamenaṁ tvaṁ evaṁ vadeyyāsi: ‘ehambho purisa, ayaṁ maggo rājagahaṁ gacchati. Tena muhuttaṁ gaccha, tena muhuttaṁ gantvā dakkhissasi amukaṁ nāma gāmaṁ, tena muhuttaṁ gaccha, tena muhuttaṁ gantvā dakkhissasi amukaṁ nāma nigamaṁ; tena muhuttaṁ gaccha, tena muhuttaṁ gantvā dakkhissasi rājagahassa ārāmarāmaṇeyyakaṁ vanarāmaṇeyyakaṁ bhūmirāmaṇeyyakaṁ pokkharaṇīrāmaṇeyyakan’ti. So tayā evaṁ ovadīyamāno evaṁ anusāsīyamāno ummaggaṁ gahetvā pacchāmukho gaccheyya.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바라문이 실제로 길을 가르치는 상황을 세존께서 구체적으로 그려 보이십니다. 마을과 성읍을 지나 라자가하의 동산과 숲에 이르는 세 단계의 이정표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고 정확한 안내입니다. 그런데도 마지막 문장에서 그 사람은 정반대 방향인 서쪽으로 가 버립니다. 안내가 완벽했다는 것과 그 안내를 따라 목적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라는 것이, 이 비유가 짚으려는 첫 번째 사실입니다.
묵상
누군가 아주 정확하고 친절하게 알려 준 방법을 따르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가 버린 적이 있나요? 그때 무엇이 그 방향을 바꾸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안내의 잘잘못을 먼저 따지고 싶어지지는 않나요?
다시 두 번째 사람이 라자가하로 가고자 다가와
똑같이 물었고, 그대는 앞서와 똑같이 길을 알려 주었다 하자.
그 사람은 그대가 이렇게 가르치고 이끈 대로
무사히 라자가하에 이르렀느니라.
Atha dutiyo puriso āgaccheyya rājagahaṁ gantukāmo. So taṁ upasaṅkamitvā evaṁ vadeyya: ‘icchāmahaṁ, bhante, rājagahaṁ gantuṁ; tassa me rājagahassa maggaṁ upadisā’ti. Tamenaṁ tvaṁ evaṁ vadeyyāsi: ‘ehambho purisa, ayaṁ maggo rājagahaṁ gacchati. Tena muhuttaṁ gaccha, tena muhuttaṁ gantvā dakkhissasi amukaṁ nāma gāmaṁ; tena muhuttaṁ gaccha, tena muhuttaṁ gantvā dakkhissasi amukaṁ nāma nigamaṁ; tena muhuttaṁ gaccha, tena muhuttaṁ gantvā dakkhissasi rājagahassa ārāmarāmaṇeyyakaṁ vanarāmaṇeyyakaṁ bhūmirāmaṇeyyakaṁ pokkharaṇīrāmaṇeyyakan’ti. So tayā evaṁ ovadīyamāno evaṁ anusāsīyamāno sotthinā rājagahaṁ gaccheyya.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두 번째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으로, 원문은 첫 번째 사람에게 주었던 안내를 단어 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이 카드는 같은 말이 그대로 되풀이됨을 밝히고 다시 옮기지 않았으며, 빠알리 인용에는 그 되풀이된 전문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똑같은 질문, 똑같은 사람, 똑같은 안내인데도 이번에는 사람이 무사히 목적지에 이릅니다. 앞선 사람과 이 사람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안내가 아니라 그 안내를 받은 사람 쪽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묵상
똑같은 조언을 들었는데 누군가는 따르고 누군가는 따르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그 차이가 조언 자체가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나라면 어느 쪽에 더 가까웠을지도 궁금해지네요.
‘바라문이여, 라자가하도 있고 라자가하로 가는 길도 있고
그대가 몸소 이끌어 주는데도,
그대가 이렇게 가르치고 이끌었는데도
한 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 서쪽으로 가고
한 사람은 무사히 라자가하에 이르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고따마 존자시여, 거기서 제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입니다.’
Ko nu kho, brāhmaṇa, hetu ko paccayo yaṁ tiṭṭhateva rājagahaṁ, tiṭṭhati rājagahagāmī maggo, tiṭṭhasi tvaṁ samādapetā; atha ca pana tayā evaṁ ovadīyamāno evaṁ anusāsīyamāno eko puriso ummaggaṁ gahetvā pacchāmukho gaccheyya, eko sotthinā rājagahaṁ gaccheyyā”ti? “Ettha kyāhaṁ, bho gotama, karomi? Maggakkhāyīhaṁ, bho gotamā”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세존께서 앞서 바라문이 던졌던 것과 똑같은 형태의 질문, 곧 열반도 길도 안내자도 있는데 왜 갈리는가를 이번에는 길 안내의 상황으로 그대로 되돌려 던지십니다. 바라문의 대답 저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입니다는 짧지만 이 경 전체의 결론을 미리 보여 줍니다. 안내자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사이의 경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이 대답이, 다음 구절에서 세존의 입으로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묵상
누군가를 돕고 싶었지만 그 사람의 선택까지 대신할 수는 없었던 경험이 있나요? 나는 다만 가리킬 뿐이다라는 말이 지금 나나 내 곁의 누군가에게 어떻게 다가오나요? 그 말이 무력함이 아니라 존중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까요?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열반도 있고 열반에 이르는 길도 있고
내가 몸소 이끌어 주는데도,
내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이렇게 가르치고 이끌 때
궁극의 완성인 열반에 이르지만 어떤 이는 이르지 못하느니라.
바라문이여, 거기서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여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니라.’
“Evameva kho, brāhmaṇa, tiṭṭhateva nibbānaṁ, tiṭṭhati nibbānagāmī maggo, tiṭṭhāmahaṁ samādapetā; atha ca pana mama sāvakā mayā evaṁ ovadīyamānā evaṁ anusāsīyamānā appekacce accantaṁ niṭṭhaṁ nibbānaṁ ārādhenti, ekacce nārādhenti. Ettha kyāhaṁ, brāhmaṇa, karomi? Maggakkhāyīhaṁ, brāhmaṇa, tathāgato”ti.
맛지마 니까야 MN 107 가나까 목갈라나경 (Gaṇakamoggallānasutta) 배경
길 안내의 비유가 열반의 물음에 그대로 포개지는 이 경의 결론입니다. 바라문 스스로 내놓았던 대답, 저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입니다를 세존께서 여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다로 그대로 되받으시는데, 이는 세존의 권위를 낮추는 말이 아니라 가르침과 실천의 몫을 정확히 나누는 말입니다. 길이 있고 안내자가 있어도 걷는 일 자체는 걷는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이, 앞서 회계사가 물었던 차례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두 번째 절반의 답이 됩니다.
묵상
가리켜 줄 수는 있어도 대신 걸어 줄 수는 없다는 말이 지금 나에게 어떤 자리를 떠올리게 하나요? 내가 걷고 있는 길에서, 오늘 내가 실제로 내디딜 수 있는 걸음은 무엇일까요? 그 걸음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