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행자는 걸을 때는 ‘걷는다’고 알고, 서 있을 때는 ‘서 있다’고 알며,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다’고 알고, 누워 있을 때는 ‘누워 있다’고 아나니, 몸이 어떤 자세로 있든 그대로 아느니라. 이렇게 지내는 이에게는 재가의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져 하나로 모이나니, 수행자들이여, 이렇게도 수행자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닦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gacchanto vā ‘gacchāmī’ti pajānāti, ṭhito vā ‘ṭhitomhī’ti pajānāti, nisinno vā ‘nisinnomhī’ti pajānāti, sayāno vā ‘sayānomhī’ti pajānāti. Yathā yathā vā panassa kāyo paṇihito hoti tathā tathā naṁ pajānāti. Tassa ev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Tesaṁ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ṁ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ṁ bhāveti.
맛지마 니까야 MN 119 몸에 대한 알아차림경 (Kāyagatāsatisutta)배경
몸에 대한 알아차림 두 번째 수행법으로, 앞선 호흡 관찰에 이어 걷고 서고 앉고 눕는 일상의 네 자세로 넘어갑니다. “몸이 어떤 자세로 있든 그대로 안다”는 구절이 이 대목을 아우르는 결론이며, 특별한 자세를 새로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몸이 실제로 하고 있는 동작을 그때그때 알아차리라는 뜻입니다. 앞 절의 호흡 수행과 마찬가지로 “재가의 삶에 얽힌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같은 결과로 마무리되어, 서로 다른 대상을 살펴도 마음이 같은 방향으로 다잡힌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지금 이 순간 몸이 어떤 자세로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앉아 있다면 앉아 있음을, 서 있다면 서 있음을 그저 알아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오늘 하루 자세를 바꾸는 순간을 몇 번이나 알아차릴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